
‘down’의 유튜브 MV(MacBook Video) 조회수는 40만을 넘었다. 장르 음악가의 뮤직비디오로써는 상당히 높은 숫자다. 당연히 이 숫자를 국내 팬만으로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댓글난을 열면 세계 각국의 언어로 팬이 아니었던 사람들, 한국 바깥의 사람들이 열렬한 호응을 보낸다. 이 ‘DIY Y2K 감성’은 ‘쿨’한 것은 물론 직접 만든 만큼 개성적이다.
Effie는 이전까지 클라우드 랩, 트랩, 멜로딕 알앤비에 기반한 음악을 했다. 2021년 발매한 EP <Neon Genesis>가 대표적이다. 신시사이저와 어울리는 공간감 있는 보컬에 드럼의 대비가 주를 이뤘다. 당시에도 어느 정도 주목을 모았으나, 유행하는 음악을 한 만큼 힙합의 인기가 사그라들며 함께 잊혀 갔다. 그러던 그는 작년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Accident Prone’과 ‘LKLK’로 속도를 계속 올리다 The Deep과 만나며 본격적으로 클럽 씬 사운드를 가져왔다. 이번 EP 또한 kimj가 프로듀싱한 일렉트로팝 및 하이퍼팝 사운드다. 그리고 그사이에 Effie가 가지고 있던 한국적인 색채가 끼어들었다.
먼저 주목할 부분은 1번 트랙 ‘forever’에서 Manaka의 기용이다. 90년대 일본 여성 알앤비 보컬을 닮은 굵은 톤으로 힙합, 알앤비, 하이퍼팝을 소화하는 아티스트와 색깔을 맞춘다. <E> 발매 직전에는 kegøn, Billonhappy와 레이지 트랙 ‘TESLA’를 작업하기도 했다. 이런 협업은 e5, Lilniina 등 일본의 여성 하이퍼팝 아티스트처럼 스스로의 동시대성을 강화한다.
하이퍼팝은 힙합과 클럽 문화, 그리고 팝의 교집합인 만큼 어떤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때 Effie는 한국의 팝 - 케이팝 - 에 뿌리를 둔다. 이것이 본작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간 수많은 하이퍼팝은 영미권 팝 사운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E>는 f(x)의 ‘Electric shock’, NewJeans의 ‘super shy’, BIGBANG의 ‘집에 가지 마’ 등을 멜로디와 함께 빌려 온다. 물론 이 곡들 또한 영미권 음악에 기초하고 있지만, 캐치한 훅은 분명 케이팝의 유산 중 하나고 가사를 가져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부른다’는 게 중요하다. 이 외에도 한국인 정체성을 상당히 강조한다. 일련의 뮤직비디오에는 지하철 역사, 태극기, 한강공원, 루프탑 코리안 등의 ‘한국’이 쉴 틈 없이 쏟아지고 ‘kancho’에서는 아예 ‘태극기 한국인’이라는 가사를 뱉는다.
‘kancho’까지의 전반부가 하이퍼팝, 버블검베이스, 알앤비라면 후반부는 EDM이다. ‘maybe baby’부터 ‘open ur eyes’ 사운드에는 BIGBANG이 퍼뜨린 시대의 향수가 강하게 묻어난다. 곡 단위로도 빌드업과 드랍의 형태를 띠지만, 세 트랙이 이어서 하나의 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maybe baby’가 앨범에서 가장 짧은 1분 52초, ‘put my hoodie on’이 가장 긴 2분 48초인 것도 ‘maybe baby’부터 이어지는 빌드업이 ‘put my hoodie on’에 이르러 드랍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조차도 BIGBANG의 ‘SOMEBODY TO LOVE’를 닮았다.
가사도 쿨하다. ‘down’의 ‘이건 길어 / 신에 빌어 / 니 버릇도’ 라인은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말들을 창의적으로 이어 붙인다. ‘탑보다 먼저 달에 갈지도’처럼 위트도 있다. ‘let's go’ 뒤에 ‘가자’를 붙이거나 ‘웃고 있지만 전쟁통’같은 부분에서는 한국인 정체성이 배어 나온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지 않나. 이전 시대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감추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을지 몰라도 지금 들어서 있는 건 자기 PR의 시대다.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고유의 멋이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E>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듯 한국적이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E double f i e’에는 ‘K-’가 없어도 Effie가 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음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