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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oonerism>: 맥 밀러의 이른 안녕

by 이승원 | 

cover image of Mac Miller <Balloonerism>
Mac Miller <Balloonerism>Warner, REMember

“Okay, I went to sleep faded, then I woke up invisible”
“오케이, 희미하게 잠들었다가, 투명인간이 되어 깨어났어”
(‘Do You Have a Destination?’ 中)

우리는 사후 앨범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의 새로운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할 수도 있겠고, 또 혹자는 아티스트의 유산을 들쑤시는 행위에 고인모독이라는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특히 근래 힙합 씬을 필두로, 사망한 아티스트의 미발매곡을 돈벌이 용도로 내놓는 일이 비일비재하기도 하였기에 사후작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 또한 이해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방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보자. 과연 ‘좋은 사후 앨범’은 무엇이고, ‘나쁜 사후 앨범’은 또 무엇인가? 나아가 사후 앨범만이 가지는 예술적 핵심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피상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사후작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는 단연 고인이 가진 의도, 아티스트리, 예술성의 반영일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아티스트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되고, 아티스트의 색깔과 방향성이 온전히 표현된 작품을 대체로 ‘좋은 사후작’이라 말하고 또 받아들여 왔다. 이는 일종의 팬과 아티스트로 구성된 작은 음악 공동체의 사회적 약속이었다.

사후작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이유 또한 이 점에서 기인한다. 사후작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티스트가 사망했다는 감각을 내재하고, 대체로 고인에 대한 애수를 장착한 채 작품을 감상하기 마련인데, 그렇기에 작품에 어떤 결함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고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고인에 대한 애수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후 앨범이 가지는 문제의 책임을 고인에게 전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 시점에서, 사후 앨범의 호오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인 ‘반영’은 작품의 완성도를 내포하는 개념이 된다. 아티스트의 의도가 재현되는 동시에 뚜렷한 흠결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cover image of Mac Miller <Circles>(2020)
Mac Miller <Circles>(2020)Warner, REMember

맥 밀러의 사후작 <Circles>가 현대 사후 앨범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직전 <Swimming>의 연작으로 계획된 작품으로서, 명확한 창작 의도를 가졌고, 이를 프로듀서 존 브리온(Jon Brion)의 능란한 솜씨와 분명한 재현 의지를 통해 실현해냈으니 ‘반영’의 측면에서 <Circles>는 더 이상 흠잡을 곳이 없었다. 나아가 실제 죽음을 염두에 두며 이어간 (혹은 그렇지 않아 더욱 효과적인) 작사, 기존 작법의 연장선상에 있는 몽환적 구성에 힘입어 작품은 단순 재현 이상의 감각을 획득할 수 있었다.

허나 <Circles>가 단순히 좋은 사후 앨범을 넘어 특별한 작품으로서 기억되는 것은 비단 높은 구현도와 완성도, 작사·작곡 기법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상기한 여러 요소들이 맥 밀러의 실제 죽음과 맞물리면서 <Circles>의 표현은 보다 복합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예술은 언제나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보다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나. 육체의 죽음이 결국 맥 밀러의 영혼에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때때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남자를 볼 수도, 그 어둠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는 남자를 관음할 수도, 생의 개념과 번뇌를 벗어난 초월자의 모습을 목도할 수도 있었다. 맥 밀러가 그토록 비통한 죽음을 맞지 않았더라면 과연 우리는 ‘Good News’에서, 예컨대 “Can I get a break?” 혹은 “At least it don't gotta be no more.” 같은 가사에서, 지금의 심도 높은 감상을 얻을 수 있었을까. <Circles>는 과연 이러한 현상으로서 사후작이 아티스트의 삶과 죽음 전후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고,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이상향이 된 셈이었다.

<Circles>가 발매되고도 5년이 지난 2025년 1월 17일, 그의 두 번째 사후작 <Balloonerism>이 발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대와 함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맥 밀러라는 탁월한 아티스트의 신작, 나아가 <Circles>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 역시 컸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넘은 인물이 작품의 녹음 시기인 2014년 경의 화자와 능란히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분명 의문에 부쳐야 했다. 나아가 녹음 시기인 2014년 무렵이 <Watching Movies with the Sound Off>나 <Faces>의 실험적 앱스트랙트, 혹은 딜루셔널 토마스(Delusional Thomas) 명의의 호러코어(Horrorcore)를 제작하던 시기와 가깝다는 사실 역시 우려를 낳기 충분했다. 다시 말해 사후작으로서 <Balloonerism>은 <Circles>보다도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Balloonerism>과 작품 속 맥 밀러는 놀랍도록 무거운 공기 속에서 풍선처럼 떠갈 뿐이다. 기존의 앱스트랙트, 사이키델리즘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유사한 시기 작업된 <Watching Movies with the Sound Off>, <Faces>와 달리 대체로 성나 있지 않고, 이후 맥 밀러를 정의할 재즈 랩/네오 소울 작법이 엿보이는 사이로 스스로의 우울과 불안을 띄워 보낼 뿐이다. 딜루셔널 토마스의 이름을 끌어온 ‘Transformations’가 단순 탈선이 아닌 심리적 혼돈의 표상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 2014년 경 녹음된 작품에서 아티스트의 현재와 과거 곳곳의 편린이 비쳐 보이니, 본작을 이전의 진심 어린 래퍼 맥 밀러와 이후 송라이터 맥 밀러 사이의 ‘미싱링크(missing link)’라 표현한 피치포크 매튜 스트라우스(Matthew Strauss)의 요약도 꽤나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렇듯 먼 과거의 향수와 근과거의 감각, 현재의 애수가 공존하기에 <Balloonerism>의 감정선은 5년 전 <Circles>가 주었던 그것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색다른 형태로 발현할 수 있다. 맥 밀러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하나의 소설이고 <Circles>가 결말 직전이라면 <Balloonerism>은 위기에 해당할 터. 녹음 시기와 발매 시기가 약 10년의 텀을 두고 명확하게 분리되는 만큼, <Circles>에서 유령을 닮은 형태로 죽음 전후 시제를 유연하게 오가던 화자는 <Balloonerism>에서는 그 죽음의 시제와 비교적 멀리 떨어진 인물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적 포지셔닝에서, 2014년의 맥 밀러는 그의 코 앞에 닥쳐온 죽음, 이를 잠시 벗어난 미래, 그리고 다시 찾아온 위기에 침몰한 그 순간과 끊임없이 교차하고, 또 충돌한다. 그 형태는 일종의 회상이 될 수도, 복선이 될 수도, 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감상에 죽음이라는 사실이 삽입되면서, <Circles>가 그랬듯, 감상자는 결국 사무치는 복합적 애상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아티스트의 다양한 면모, 시제가 겹겹이 충돌하는 작품이 하나의 일관된 감상으로 마감됨은 중요하다. “Cocaine is ruthless(코카인은 무자비해)”(‘DJ's Chord Organ’ 中)라는 전언과 함께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시저(SZA)의 목소리부터 일종의 연애담 형태를 띠는 ‘5 Dollar Pony Rides’의 생기, 자조 섞인 ‘Manakins’에서 비쳐 보이는 희망의 편린까지, 작품의 여러 장면들은 죽음이라는 사실과 충돌하여 마치 고인의 일기장을 펼쳐 보는 듯 보편적 비애의 형태로 밀려든다. 그중에서도 ‘Funny Papers’나 ‘Rick's Piano’ 같은 트랙을 앨범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뽑을 수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 간결한 악기 구성으로 집중도를 높임을 물론이거니와 “Didn't think anybody died on a Friday(아무도 금요일에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 했었어)”(‘Funny Papers’ 中), “What does death feel like?/Why does death steal life?(죽음은 어떤 느낌일까?/죽음은 왜 삶을 훔치는 걸까?)”(‘Rick's Piano’ 中) 같은 가사의 등장은 현재의 사실과 과거의 표현을 정면으로 부딪치게 하여 보다 격정적인 감상을 야기한다.

나아가 <Balloonerism>의 맥 밀러는 단순 애수의 감정으로 작품을 마무리짓지 않는다. 앨범의 마지막에 다다르는 순간, 영혼처럼 부유하는 맥 밀러는 꿈 속에서 전화를 걸어오고, 이내 희망적인 격려를 직간접적으로 전하기에 이른다. “Do they love just like we do? / Do they feel just like we do?”(‘Tomorrow Will Never Know’ 中) 그 격려와 의문이 듣는 우리를 향하는 것인지, 맥 밀러 스스로를 향하는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로써 현세에 묶여 있던 맥 밀러의 풍선이 삶의 굴레를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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