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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숨결과 정교한 전율로 다시 쓰는 신스팝, 막달레나 베이의 <Imaginal Disk>

by 이승원 | 

cover image of Magdalena Bay <Imaginal Disk>
Magdalena Bay <Imaginal Disk>Mom+Pop

팝이 저속, 저질의 음악이라는 인식은 구시대적 상념이 된 지 오래다. 오랜 변화와 탐구 끝에 ‘장르로서의 팝’은 대중의 전유물이라는 틀을 벗어나 놀라울 만큼 활발한 확장과 발달을 자랑하고 있다. ‘어떤 소리든 팝이 될 수 있다’는 개방성 아래 있는 만큼 그 부류도 천차만별이다. 여전히 메인스트림에 머물며 변혁을 도모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누구는 전에 없던 작가성과 예술성의 한계를 탐험하고, 세련을 무기로 팝 본연의 혁신을 꿈꾸는 발명가와 장르 화합의 밝은 미래를 꿈꾸는 중매쟁이까지, 한눈에 포착하기 힘들 정도의 확장적 꿈틀거림에 팝의 지형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듀오 막달레나 베이(Magdalena Bay)는 이렇듯 별종으로 가득 찬 지금의 팝 씬 내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이름이다. 마치 그 어디의 소속도 아니라는 듯 메인스트림 문법을 노골적으로 벗어나면서도 언더그라운드 성향에 마냥 머물지도 않고, 개혁적인 음향 실험이나 화합의 주체라 보기도 어려울 노릇이다. 굳이 구분 짓자면 케로 케로 보니토(Kero Kero Bonito)나 렛츠 잇 그랜마(Let's Eat Grandma)와 같은 신스팝 밴드와 결이 유사하다 할 수 있으나 전자의 경우처럼 아티스트의 표면적 특성을 내세우지도, 후자처럼 신스팝의 장르적 철학을 모범적으로 준수하지도 않는다.

cover image of Magdalena Bay <Mercurial World>
Magdalena Bay <Mercurial World>Luminelle Recordings

이들을 인디 팝 궤도에 올려놓은 정규 데뷔작 <Mercurial World>를 살펴보자. 분명한 댄스 리듬 기반의 신스팝 구성으로 주류 문법을 계승하는 듯하다가도 그라임스(Grimes)의 색채와 닮은 익살맞은 디지털 키치 이미지와 파격적인 진행으로 이를 손쉽게 외면하고, 달콤한 인상이 작품을 지배하려 들면 무의(無意)에 가까운 미카 테넨바움(Mica Tenenbaum)의 보컬이 언제 그랬냐는 듯 형상을 흩뿌려 놓는다. 앞서 그라임스가 그랬듯 특정한 영역에 길게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아슬아슬한 도착증적 쾌감을 전면에 드러내는 독특한 위치 선정이다.

이어지는 소포모어 <Imaginal Disk> 역시 전작의 이러한 특징적 요소를 견지하는 작품이다. 신스팝의 주요 미덕인 공상적인 신스와 발칙한 리듬을 주 요소 삼아 소리를 그려가는 부류의 음악임은 동일하다. 하지만 본작을 전작처럼 마냥 ‘신스팝 앨범’이라고 설명하는 견해는 조금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신스팝의 토양에 뿌리를 내려 넓은 주변 소리 영역으로 가지를 뻗어감은 동일하나, 이번 시도에서는 그 가지를 아예 남의 땅 한복판에 깊숙이 박아버렸으니 말이다.

몽환적인 핵심 무드를 중심으로 뻗어가는 소리부터 장르 유적을 매섭게 탐험하는 탐미적 성격까지, <Imaginal Disk>는 어찌 보면 신스팝보다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에 의해 개량된, 혹은 그 이전의 네오 사이키델리아(Neo-Psychedelia) 영역과 공유하는 바가 많다. 악기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대범한 배치에서는 <Merriweather Post Pavilion>의 애니멀 컬렉티브(Animal Collective)가, 공격적인 연주와 달콤한 멜로디를 연결하는 영특한 작법에서는 <Ceres & Calypso in the Deep Time>의 캔디 클라우스(Candy Claws)가 떠오르고 폭발적인 질감과 진행에도 좀처럼 떨어지는 법이 없는 각 레이어의 선명도는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솜씨와 닮았다. 본작을 팝 앨범이 아닌 네오 사이키델리아, 더 나아가 록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라는 견해도 이해가 가는 이유다.

하지만 필자 본인은 막달레나 베이의 이번 작품을 일종의 신스팝, 정확히는 새로운 현대적 개념의 신스팝 앨범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Imaginal Disk>의 막달레나 베이는 신스팝의 개념에서 ‘신스’를 분리하고 남은 ‘팝’이라는 단어를 현대적 팝의 세계관으로 치환한 다음 다시 떼어낸 ‘신스’를 덧붙이면서 신스팝의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재정립한다. 네오 사이키델리아를 위시한 다양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끌어안으며 이룩한 확장과 음향적 혁신, 여전히 주류 팝과 언더그라운드 모두를 거부하는 듯 은연 중 수용하는 태도, 역설적이게도 <Imaginal Disk>는 이렇듯 팝, 내지는 신스팝으로부터 멀리 떨어짐으로써 그 누구보다 현 세대 팝 이념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레이어를 과격하게 삽입하는 급진적 진행에 따뜻한 친밀이 어리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 어느 때보다 광활한 개방성을 장착한 막달레나 베이는 앞서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의 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이 성공적으로 완성한 바 있는 프로그레시브 팝의 조형 또한 흡수하며 체계화된 신스팝 구성에 전대미문의 다이나믹을 부여한다. ‘That's My Floor’의 울부짖는 기타와 ‘Cry For Me’의 찬란함이 연결되는 선분을 보자. 막달레나 베이 이전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이름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들은 프로그레시브에서 발견하기 쉬운 고압적 진행을 작품 곳곳에 등장시키면서 익숙한 듯 이색적인 쾌감을 형성하고, 동시에 아바(ABBA)가 연상되는 글리터 효과와 배기(Baggy)의 리듬 지향을 함께 체득하여 그 어디에 얽매이지도, 매몰되지도 않는 안정적 자유로움에 도달한다.

더불어 모호하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졌음은 무척 고무적인 요소다. 애니메이션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설정 내에서 인간의 기억과 정신 영역을 실체화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디스크’ 개념을 차용한 본작의 막달레나 베이는 기존 공상과 현실의 조화, 독특한 디지털 키치 이미지를 보다 명료하게 제어해낸다. 죽음, 로맨스, 두려움, 섹스, 모서리에 뱀파이어, 위성 위에 천사… 산발적으로 보이는 소재와 발상들은 디지털 무의식 속에서 기표로서 표류하고 듣는 이는 잠시 동안 이러한 상징 속 저의를 탐사하는 관찰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The Ballad of Matt & Mica’는 그런 흐름에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트랙이다. 작품 속 가상 페르소나와 아티스트의 실제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던 여태까지와 달리 본인의 이름과 스토리를 전면에 배치하는 이 파격은 맥락상 이전의 디지털 무의식과 대비되는 개념, 즉 의식 세계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막달레나 베이는 이에 발랄한 신시사이저 색채와 앞선 트랙의 흔적들(“Bang-Bang”, “Killing Time” 등)을 함께 주입하여 무의식과 의식의 합일에서 오는 쾌재를 주조와 동시에 극대화한다. 잘 짜인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마지막 화를 보는 듯 상쾌하고 창의적인 완결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정도의 완성도와 청취의 쾌감, 탐사 가치를 고루 선사하는 작품을 언제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팝이라는 개념이 주변에 놓인 소리들을 모두 집어삼키는 독특한 예술 영역으로 그 의미를 확장한 지금, 네오 사이키델리아와 신스팝의 세계관 융합과 이에 따른 혁신적 발자취, 음향과 서사에 대한 독창적인 의견 제시가 가득 담긴 <Imaginal Disk>는 현 시대 팝의 이념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한 장의 작품이자 인디 팝의 드높은 랜드마크로 떠오른다. “팝 그룹이 아닌 얼터너티브 그룹으로 보이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멤버 매튜 르윈(Matthew Lewin)의 발언이 의미심장해지는 순간. 막달레나 베이는 이렇게 팝의 고전적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을 철저히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팝을 대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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