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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아로 주조한 은탄환, yeule의 <Evangelic Girl Is a Gun>

by 이한수 | 

cover image of yeule <Evangelic Girl Is a Gun>
yeule <Evangelic Girl Is a Gun>Ninja Tune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싱가포르 출신 아티스트 율(yeule)이 창조한 전자 예술 세계에 빠져든 추종자들, Glitches에게 이번 앨범은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의 세 정규작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도 앰비언트와 글리치라는 공통된 궤적을 그려왔다. 세상의 구석에서 피어난 <Serotonin II>는 앰비언트 팝의 언어로, 후속작 <Glitch Princess>는 말미의 4시간 44분짜리 실험으로, 고통에 절규하는 <Softscars>는 인디트로니카와 드림 팝으로 스스로를 어루만졌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에 걸쳐 조금씩 다르게 써온 이 언어들에는 확실한 공통 언어 기반이 존재했다.

<Evangelic Girl Is a Gun>은 이들에게서 벗어난다. 이 분명한 얼터너티브 록으로의 전환은 트립 합을 동반하며, 사운드의 결도 확연히 달라졌다. ‘We Are Making Out’처럼 일렉트로클래시에 기반한 ‘Evangelic Girl is a Gun’과 ‘She is picture perfect porcelain’이라며 울부짖는 ‘The Girl Who Sold Her Face’ 정도가 연속성을 띠고 있을 뿐이다.

‘Eko’에서 ‘Dudu’로 이어지는 구간은 앨범의 핵심 변화 지점이다. 율은 인디트로니카의 감각을 유지한 채 직접적인 팝으로 나아간다. 이전까지의 율의 음악에 앰비언트 팝, 글리치 팝, 인디 팝, 드림 팝, 아트 팝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면 이번에는 말 그대로 대중음악으로서의 팝에 가까워졌다. 여전히 우울함은 남아 있지만, 이전보다 밝고 선명하게 마무리한다. 특히 ‘Eko’의 “I drove her to the edge”나 ‘Dudu’의 코러스 및 브릿지는 앨범 표지처럼 명료하게 다가온다.

이번 앨범이 전작의 ‘cyber meat’와 닮았다고 느껴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주로 Chris Greatti와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다. <Softscars>의 대부분이 Kin Leonn과 Mura Masa와의 협업이었다면, 이번에는 이들의 참여가 각각 ‘1967’과 ‘Evangelic Girl is a Gun’, ‘Tequila Coma’와 ‘What3vr’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앨범의 프로듀서는 여전히 Nat Ćmiel, 율 자신이다. 그가 누구와 함께하든 새로운 자아를 꺼내 보일 수 있다는 걸 확실히 했다는 점에서 이번 변화 역시 확장이다.

Portishead 사운드와 이와이 슌지를 향한 사랑 아래 그려진 이번 초상은 파이널 판타지 속 캐릭터 ‘율’처럼 같은 이름과 외형을 지녔지만, 전혀 다른 인물로 느껴진다. Reddit AMA에서 “항정신병 약물의 복용을 줄였다”라고 밝힌 것처럼 일련의 앨범은 가상의 페르소나를 내세운다기보다 인간 Nat Ćmiel의 관심사와 감정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Evangelic Girl Is a Gun>은 그 변화가 도달한 한 지점에서, 더욱 선명한 언어와 형태로 다가오는 또 하나의 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