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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데뷔 20주년, BIGBANG BEST 20

by 정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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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나우아임영 등 작년 음악계에서 화두에 오른 아티스트들이 “빅뱅 키드”였음을 증언하듯, 빅뱅의 영향력은 국내에서 지배적이다. 2000, 2010, 2020년대에 걸쳐 일간, 주간, 월간 음원 차트 1위를 달성하며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한다. 심지어 이 집권은 여전히 진행 중. 대중성을 논할 때면 뺄 수 없게 된 그들은 이름처럼 크게 한 방 터뜨렸다.

한국 시간으로 4월 13일과 20일, 미국의 가장 큰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의 라인업 상단에 각인되며 다시금 큰 한 방의 발포를 준비하고 있다. 군입대 전후로 크고 작은 활동은 있었으나, 본격적인 재시동은 이제 시작. 약 8년 반만의 조우다. 멤버 변동을 거친 끝에 남은 세 멤버가 작년부터 줄곧 기대를 끌어올린 데뷔 20주년의 첫 행보, 그 베일에 싸인 발걸음에 기대를 걸며 빅뱅의 지난 시간 속에서 20곡을 선별했다. 솔로곡은 명단에서 제외했음을 밝힌다.

20. Love Club (2009)

국내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일본 메이저 정규 1집 수록곡이다. 앨범 내에서도 구석진 곳에 배치된 곡이기에 크게 언급조차 되지 않지만, 크레딧을 살펴보면 빅뱅 커리어의 분기점 삼을 만한 음악임은 분명하다. 지드래곤, 페리, 테디 작곡. 빅뱅의 기반을 크게 힙합과 전자음으로 구분할 때 전반의 핵심 파트너는 페리, 후반은 테디이기 때문이다. 이 둘에 더불어 지드래곤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은 팀의 방향성 전환을 앞둔 기념비로 남았다.

악기와 목소리의 쓰임이 청각적으로 이를 입증한다. 일렉트로닉을 상징하는 신디사이저 운용과 2008년 <REMEMBER>, <NUMBER 1> 등 앨범을 통해 점화한 오토튠이 자리한 후렴과 건반과 보다 직접적인 보컬이 채우는 1, 2절의 조화는 빅뱅이라는 그룹 내에서 각 프로듀서들이 맡아온 역할들을 응집하고 표현한다. 2009년 2NE1의 ‘In the Club’, ‘Let’s Go Party’ 같은 트랙에서 살필 수 있는 파티 문화를 곡의 주제 삼은 점 역시 빅뱅 그리고 YG의 2009년이 자연스레 녹아든 사례가 됐다. 올드 빅뱅을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곡.

19. 마지막 인사 (2007)

‘거짓말’로 범국민적 인기를 차지한 후 연달아 히트를 기록하며 지금의 위치에 닿게 한 곡. 전작에서는 편곡에 참여했던 용감한 형제가 작곡에도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비트에서 2010년대 초까지 손담비, 애프터스쿨, AOA 등에 걸친 특유의 신디사이저 튠이 느껴지는데, 그가 히트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게 된 시작점으로도 볼 수 있다.

리듬이 청중을 들뜨게 만드는 데에 일조했지만, 지드래곤이 짜낸 멜로디도 못지않은 역할을 해냈다. “B to the I to the G (Bang Bang)”, “Baby, baby, baby” 같은 강렬한 훅이 여러 곳에 배치되며 잊지 못할 중독성으로 2007년을 사로잡았다. 포인트를 살리는 탑라이너의 능력과 1년 안에 대표곡을 만드는 데 성공한 멤버들의 여유가 노래에서도 돋보인다.

18. MONSTER (2012)

역대 타이틀 중 가장 컨셉추얼한 곡으로, 괴물이 된 화자를 상정한 이별 노래다. 태양 솔로인 ‘I’ll Be There’와 유사한 설정과 어두운 분위기 일색인 곡으로, 디테일한 설정이 눈에 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자고 했지만, 그게 내일일지는 몰랐다는 맥락이나 “내게 가장 큰 아픔은 네가 그들 같아졌단 것뿐” 같은 가사는 무게 추를 두 배 단 채로 귀에 걸린다.

개성을 드러내는 것뿐 아니라 한 편의 연극을 소화하는 듯한 표현력이 일품. 보컬에 튠을 걸어 광적인 순간을 만들고, 브릿지에선 심장 박동 같은 드럼과 “날 잊지 말아 줘”라는 대사를 통해 호소력을 배가시킨다. 비극적 엔딩을 청각적으로 빚어낸 건반 역시도. 빅뱅에게 쉽게 상상할 수 없던 K-POP 성공 공식 ‘퇴폐미’를 얼마나 뛰어나게 재현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트랙이다.

17. Number 1 (2008)

레이디 가가 ‘Just Dance’ 같이 클럽에서 나올 법한 음악이 주를 이룰 무렵, 빅뱅 또한 일렉트로닉 댄스로의 본격적인 선회를 시작했다. 일본 활동 연표상 ‘How Gee’로 시작과 함께 올드스쿨 힙합을 선보이고, ‘With U’로 이후의 힙합을 재조명한 뒤 당시 주류 음악을 흡수한 ‘Number 1’을 꺼내 든 것.

스웨덴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Number 1’에서 지드래곤이나 다른 멤버의 크레딧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빅뱅의 아우라가 느껴질 만큼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 어셔를 레퍼런스 삼은 태양이 녹아든 벌스는 당시 K-POP에서 찾기 어려운 인상임은 분명하다. 만들어진 클럽 튠, 노출을 위한 노출 속에서 외설과 스피커가 찢어지는 댄스 홀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표현한 아이돌 그룹은 여전히 흔치 않다.

16. BANG BANG BANG (2015)

2008년에는 동방신기와, 2015년에는 엑소와 1위 경쟁을 다툰 게 빅뱅이었다는 점은 이들이 얼마나 오래 상업적인 성과를 지속한 팀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곡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FANTASTIC BABY’로 활동할 시절 약 80만 명이 운집하던 투어를 150만 명까지 끌어올린 성장의 시기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거짓말’, ‘붉은 노을’ 등이 국내에 빅뱅을 각인했다면, 해외까지 저변을 넓히게 한 히트는 ‘FANTASTIC BABY’와 ‘BANG BANG BANG’이다.

절도 있는 군무와 멋진 장면으로 점철된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8억 회를 넘겼고, 특유의 에너제틱한 폭주 덕에 숱한 무대가 화제를 낳았다. 물론 빅뱅보다 라이브가 뛰어난 그룹도 있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타는 해외에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이 움직임이 당당한 질주로 박수받을 수 있는 이유는 기죽지 않는 카리스마에 있다.

15. 맨정신 (2015)

2013년 MAMA 무대에서 지드래곤은 이 곡의 브릿지를 ‘삐딱하게’와 녹여내며,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음악을 세상에 꺼냈다. 그 특유의 목을 긁는 가창과 멤버들의 뻥 뚫린 보컬이 록 사운드와 맞물려 신나고 흥겨운 난리통을 만드는데, 이 모습은 빅뱅의 악동 이미지와 일치하며 좋은 그림을 탄생시킨다. 태양도 남다른 텐션을 선보이지만, 지드래곤과 대성이 주고받는 멜로디가 일으키는 시너지가 인상적인 곡.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는 “떼창”을 낳고, 유독 라이브에서 폭발력을 자랑한다. 또한 가사처럼 “돌아버리겠”는 상황을 타파하고 싶은 이들이 노래방에서 ‘맨정신’을 자주 부르며 인기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온몸을 쥐어짜는 노래와 편하게 고음을 쏟는 목소리가 합쳐져 대중음악 역사를 스쳐 간 로큰롤 스타 이미지를 빅뱅에 아로새긴다.

14. LOVE SONG (2011)

2010년대 들어 빅뱅의 음악성은 본격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했다. 태양이 솔로 첫 정규 <Solar>를 발표하며 R&B 스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고, 지드래곤은 <One Of A Kind>와 GD&TOP으로 힙합을 중심으로 장르 팬들도 손뼉 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한 개인 이력 사이, 그룹으로 다시금 뭉쳤을 때의 출사표 ‘TONIGHT’은 힘이 과하게 들어간 곡이었고, 오히려 여유를 되찾은 ‘LOVE SONG’이 질적 성장을 보여주기엔 더 좋은 지표였다.

T.O.P의 낮은 톤이 초반 분위기를 잡아주고, 대성과 태양이 호소력 짙은 노래를 잇는다. 슬픈 노랫말 사이에 시원한 기타 리프가 바람처럼 흩날리는데, 마냥 신나지도, 구슬프지도 않은 감정을 잉태하며 오묘한 지점을 남긴다. 이렇게 단순한 음악 위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가창은 마치 백지에서 점점 채워지는 라이브 페인팅을 보는 기묘함과 같다. 어느 오선지든 채울 수 있는 자신감이 당시의 그들에게 있었다.

13.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 (2022)

4인조 빅뱅의 처음이자 마지막 싱글은 록 발라드였다. 비틀즈 ‘Let It Be’를 떠오르게 하는 앨범 아트와 각기 다른 곳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는 한 시대의 방점을 찍는 표식이었으리라. 대중음악 연표상 어느 시대에 놓더라도 어울릴 선율 아래, 4명은 꾸밈 없이 눌러 담은 구절을 읊는다. 단조로운 구성에도 불구하고 귀를 잡아끄는 가창이 화려한 겉옷을 벗고서야 보이는 근육처럼 드러난다. 켜켜이 쌓은 코러스도 폭넓은 감상에 한몫 더한다.

빅뱅이 한 시대를 풍미했음을 느끼게 된, 이 곡과 얽힌 개인적인 일화가 있다. TV에 많은 그룹이 해외 유수의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는 뉴스가 쏟아지던 군 생활 중이었다. 평소라면 낮에는 군가를 제외한 음악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한 부대 안에 간부들이 재생한 이 음악이 꽤 여러 차례 귀에 걸렸다. “언젠가 다시 올 그날 그때를 위하여”, 당시의 내게 “그때”는 전역으로 들렸고, 지금은 눈앞에 놓인 이들의 복귀로 들린다. 다른 뜻, 같은 단어로 여전히 “그때”를 기다린다.

12. 눈물뿐인 바보 (2006)

데뷔 싱글 중 유일하게 멤버 모두가 가창에 참여한 곡이다. R&B/소울, 힙합에 능통한 레이블인 YG에서 선보인 그룹인 만큼, 첫 단추부터 태양의 원숙한 보컬을 느낄 수 있다. 대성과 교차로 후렴과 애드리브를 주고받는 부분도 10대 소년들이라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 YG의 여느 그룹이 그렇듯 2000년대 초중반 선배 그룹 원타임(1TYM)의 정서를 그대로 계승했다.

코첼라 퍼포먼스를 앞둔 시기, 3명의 멤버로 부른 마지막 곡이기도 하다. 2025년 말 지드래곤의 투어 마지막 공연에서의 일이었다. 몇 년 만의 독무대에서 GD는 때아닌 라이브 논란을 빚을 만큼 목 컨디션이 저조해진 상태였는데, 이 곡을 부를 때만큼은 모두가 그때 그 목소리로 돌아간 듯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초심을 다시금 꺼내 보게 한다는 점에서 묘한 감동이 일었던 현장이었다.

11. BLUE (2012)

초기 음악 중 ‘바보’ 같은 곡이 유독 팬들 사이 알려진 음악이 된 데에는 탁월한 미성 활용에 있었다. 2000년대 후반 지드래곤이 많은 트랙에서 활용한 작법을 고스란히 2010년대의 빅뱅에 옮겨 왔을 때의 효과는 대단했다. 테디의 물오른 프로듀싱과 멜로디가 교차해 쓸쓸한 관념적 겨울을 한 곡에 담아낸 것. 눈이 마르지 않는 스노우볼처럼 말이다.

앨범명 <ALIVE>처럼 생존 신고와 동시에 들고 온 ‘BLUE’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빅뱅 대표 발라드가 됐다. 그룹을 뒤흔든 악재를 발판 삼아 보다 단단한 음악성으로 치환한 덕이다. 예술 감각은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게 마련. 수많은 사건사고를 방황으로 포장하는 일은 자충수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음악이 그것을 묘수로 바꿨다.

10. How Gee (2008)

메이시오 파커 & 더 맥스(Maceo Parker & The Macks)의 ‘Soul Power ‘74’를 샘플링한 90년대 블랙 머신(Black Machine) ‘How Gee’를 샘플링한 곡.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 1년 반이 지나 다시 힙합을 꺼내 들기 위해 선택한 올드스쿨 힙합은 탁월했다. 스크래치를 입으로 흉내 내고 더블링을 주고받는 사이 곡의 전반에 랩이 쏟아지는 구조가 인기 아이돌 그룹에게서 보기 힘든 고증이었음은 분명하다.

‘거짓말’, ‘마지막 인사’로 지속한 인기에 힘입어 해외 진출을 위한 곡이었지만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멜론이 지배적인 국내 음원 사이트이던 시절, 이 곡이 멜론 차트 상단을 차지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거리감 느껴지는 슈퍼스타로 도약하기 이전에 장르의 클래식을 본따 거리 음악의 멋을 전파했다.

9. BAD BOY (2012)

같은 앨범에 ‘FANTASTIC BABY’가 힙합 외적으로도 장르 이전을 마친 2012년 빅뱅을 대표한다면, ‘BAD BOY’는 그들의 뿌리를 가늠케 한다. 둔탁한 비트에 달라붙는 랩과 어렵지 않은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쌓아온 역량의 출처를 재확인시킨다.

최근 방영된 <쇼미더머니>에서 나우아임영과 김하온이 힙합은 멋이다, 힙합은 실력이다를 놓고 디스전을 펼쳤지만, 정답은 둘 다라고 이미 13년 전에 빅뱅이 결론 놓았다. 전곡 타이틀이라는 모험을 두었던 <ALIVE> 앨범에서 ‘BAD BOY’가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던 이유는 능숙하게 트랙 위에 올라타는 빅뱅의 역량, 그것이 전부다. 뛰어나게 소화함으로써 얻어내는 매력은 퍼포머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이다.

8. 천국 (2008)

클래지콰이와의 협업, 싸이월드 세대의 멜로딕한 서정성에의 추구 덕에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프로듀서 다이시 댄스와 함께한 작업물. 뮤직비디오에서 애인이 죽음에 처하고, 비통하게 울어대던 당대 시류를 관통한 곡이 ‘하루하루’라면, 더 긴 세대를 아우르는 건 이 곡이다. 20대 초반의 빅뱅이기에 표현할 수 있던 감정, 현악으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도입과 싱그러운 사랑의 설렘을 ‘천국’이라 일컫는 과장된 찬미. 그것이 백미다.

한국만큼이나 빅뱅의 주무대였던 일본, 더 커다란 메이저 시장에 본격 발돋움을 한 곡도 이 곡이었다. ‘My Heaven’이라는 이름으로 번안해 발매한 것. 재밌는 점은 번안곡의 주제는 정반대로 이별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는 나의 천국이다”와 “천국이었다”는 두 케이스를 포용하는 하나의 멜로디. 2000년대 말의 풋풋한 시절이 커다랗게 그려진 하나의 수채화는 많은 감정을 끌어당겼다.

7. Always (2007)

30대 중후반을 넘어가는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이야기하듯, 청량한 콘셉트가 어울리는 시기가 분명히 있다. 빅뱅 또한 청년이 채 되지 않은 앳된 얼굴이던 시절에 청량한 팬송을 만들었다. 페리와 테디의 손길과 함께. ‘거짓말’이 작곡가 지드래곤의 힘을 대중에게 드러낸 사례라면, 이 곡은 두 세대에 걸친 YG 대표 프로듀서들의 노련한 테크닉이 만든 정취 가득한 사랑 노래다.

데뷔곡조차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초기 곡이 드물었던, 히트곡 위주의 10주년 콘서트 세트 리스트에 팬들을 향한 헌사로 이름을 올렸다. 여타 K-POP 그룹에 비해 팬송의 가짓수가 적었던 게 수록의 가장 큰 이유겠지만,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데에도 그 뜻이 있었을 테다. 어떤 음악은 그것을 들은 당시로 청자를 끌어당긴다. 순수했던 시절은 돌아오지 않지만, 동심으로 자기를 돌보도록 만든다.

6. LOSER (2015)

자신을 자조하는 패배주의 가사는 2015년 K-POP이 소구하던 주체성과는 궤를 달리한다. 당장 ‘LOSER’ 이전과 이후에 1위를 차지하던 곡이 각각 당찬 미쓰에이 ‘다른 남자 말고 너’와 빅뱅 ‘BANG BANG BANG’인 점을 보면 이들의 출발이 얼마나 달랐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단아적인 면모가 빅뱅의 상징이고, 한 달에 한 번 컴백이라는 모험도 상업적 성과로 답하며 자신감을 증명했다.

‘BAD BOY’의 반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자기혐오를 출발선에 둔 <MADE> 시리즈는 ‘LAST DANCE’에 닿아 탁월한 수미상관을 그리는 데도 일조했다. ‘소년에서 남자로’ 따위의 컴백 표어에 지나지 않던 말뿐인 성장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즈려밟고 일어선 성숙한 표현으로 성장을 증명한 것. “너나 나나 그저 길들여진 대로 각본 속에 놀아나는 슬픈 삐에로” 같은 가사는 이전의 소년미 넘치던 이들이 뱉었다면 설득력을 잃었을 테니 말이다.

5. CAFÉ (2011)

TV의 영향력이 아직은 짙던 2011년, 매체를 통해 선보인 무대 덕이 컸겠지만 되려 타이틀인 ‘TONIGHT’보다 더 오래 각인되는 수록곡으로 남았다. 방송의 도움닫기를 고려하더라도 이는 사실 대단한 성과다. 쏟아지는 음악 사이에서 몇 번의 라이브로 여전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만들었다는 거니까. 당장 음원 사이트 댓글을 보더라도 어떤 곡보다 ‘CAFÉ’에 대한 언급이 많다.

빅뱅의 많은 곡이 1절 GD-태양, 2절 T.O.P-대성을 기본 골자 삼지만, 이 곡은 오직 한 명이 저음으로 랩을 도맡고 네 명이 보컬에 처량함을 더한다. 베이스, 드럼, 건반, 기타 같이 모든 악기가 재즈에 기반을 둔 사이 가성으로 뻗는 고음과 중저음의 조화가 예쁜 곡이다. 대성의 목소리가 힘차게 내지른 후 억누르던 감정을 고조시키는 T.O.P의 바통 터치가 폭발력을 가질 수 있던 것도 그러한 조화 덕. 곡이 노래하는 마음을 더 끌어올렸다는 층위에서 전개의 중요성을 상기시킨 음악이다.

4. BAE BAE (2015)

<쇼미더머니>의 파급력은 팝에서의 랩 역시 본격화했다. 라임을 크게 의식하지 않던 지드래곤이 ‘One Of A Kind’ 같은 곡으로 획을 긋게 만들었고, 이렇듯 모든 아티스트가 음악계에서 꾸준히 상호간 영향력 주고받기를 되풀이한다. 일리네어 레코즈의 <11:11>, YG 후배 래퍼 바비, 비아이가 출연했던 <쇼미더머니> 세 번째 시즌 등으로 트랩이 주류로 대두된 시기에서 멀지 않은 때, 빅뱅 또한 그에 힘입어 트랩을 커리어에 설치했다.

개인 활동으로 구축한 성장세를 한껏 입증하는 랩의 유려함과 달콤하고 야릇한 보컬라인의 조화는 <MADE>라는 대형 프로젝트의 더할 나위 없는 오프닝이었다. 특히 태양 ‘RINGA LINGA’, 최근에는 베이비몬스터 ‘Woke Up In Tokyo’처럼 국내에 구전으로 퍼진 멜로디를 자주 인용하는 YG 작법은 양날의 검이지만, 이 곡에 한해서는 스치기만 해도 베일 일격에 성공했다. “찹쌀떡” 세 글자 챈트가 로컬라이징과 임팩트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니 말이다.

3. Wonderful (2008)

쉽게 이들을 ‘탈 아이돌’이라 규정하는 청중이 많지만, 빅뱅은 아이돌이다. 흩어져 있을 땐 슈퍼스타, R&B 뮤지션, 종합 엔터테이너로 규정되더라도 모이면 명확히 여느 그룹과 마찬가지로 퍼포먼스를 구사하지 않나. 그런 빅뱅이 연령으로나 풍기는 분위기로나 K-POP 러브송을 가장 알맞게 표현할 수 있을 때 나온 설렘이 극대화된 곡이다. 2008년 겨울의 쌀쌀한 날씨보다 피어나는 입김이 더 세밀하게 떠오르는 따뜻함을 지녔다.

랩 스킬이나 가창력은 당연히 2010년대에 들어선 빅뱅에 비하면 한참 어리숙하다. 하지만 질적인 면으로만 좌우할 수 없는 게 음악이며 문화고, 예술이다. 무어라 딱 잘라 말하긴 어려우나 그 안에 녹아든 감성, 그것이 2008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만들었다. 원더걸스가 ‘Nobody’를, 브라운아이드걸스가 ‘Love’를 논하던 시절의 설렘과 낭만을 빅뱅은 ‘Wonderful’로 빼어나게 풀었다.

2. Still Alive (2012)

2012년 EP의 48초짜리 서곡의 확장 속에는 자초했거나 일견 억울했던 시간 속 좌절을 딛은 빅뱅이 담겼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던 커리어에서 입은 첫 번째 강한 타격, 그에 대한 대응으로 선택한 방법은 정면 돌파였다. 그들을 지적하던 손가락을 하늘 위로 뻗게 할 ‘FANTASTIC BABY’, ‘BAD BOY’, ‘BLUE’ 연타석을 기록하며 종횡을 바꾸는 데 성공했으니 “그 손가락질은 내가 아직 이슈란 증거” 같은 의기양양한 가사도 우습지 않게 됐다. 여느 그룹이라면 무너질 법한 고초도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 있던 이유는 빅뱅의 음악이 지닌 위력인 점이 다시 한번 입증된 예다.

당시의 핵심 화두는 대성과 지드래곤이었으나, 2026년에 와서 T.O.P의 가사를 되짚어 보면 묘한 예측 같이 느껴진다. 최근 발표한 개인 음반 <다중관점>을 넓게 해독하면 ‘Still Alive’의 파편으로 보아도 될 만큼 말이다. 이만큼 시끌시끌한 별이 여전히 빛날 수 있던 이유를 직접 상기시키는 노래. 살아남아 숙였던 고개를 다시 빳빳하게 치켜드는 이들을 마냥 미워할 수 없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LAST DANCE (2016)

셀러브리티 지드래곤의 무기는 멋이지만, 송라이터로서의 강점은 꼭 멋에 있진 않다. ‘Heartbreaker’, ‘삐딱하게’ 등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솔직함 그리고 ‘IF YOU’ 등으로 대표되는 서정성이다. 데뷔 10년 존속을 자축하며 꺼낸 20대 마지막 이야기는 화려한 축포보다 유약과 불안이었다. 『세상에 너를 소리쳐!』 (2009) 같은 책에서도 밝혔듯 친구가 “흔하던” 그가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고 들이키는 쓸쓸한 성배는 차갑다. 그렇기에 한 모금만 마셔도 정신이 번뜩이게 될 터. 지나온 시간을 그리워하며 마지막 춤을 추겠다는 결심은 이들의 지난 수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강한 울림을 남긴다.

그룹 초기부터 지드래곤이 빚은 캐릭터가 지배적이었고, 여전히 그의 아우라가 짙지만 그간 두터운 솔로 활동으로 멤버 개개인의 힘도 강해졌다. 그 내실이 고스란히 자리에 남겨져 참여한 모두가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하고, 울먹임을 고조시킨다. 누구 하나 끌려가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태양, 대성 등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상응 그리고 T.O.P의 투박하게 눌러 담은 메시지는 가사처럼 “알 수 없던 황홀경”을 펼치며 진정성 있는 온점을 찍는다. 영화 속 명장면처럼 길이 남을 4분 40초를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