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백현진의 <서울식>이 그러했듯, 유독 자연스러움을 담은 음반이 있다. 이 <붕새의 날개> 또한 그렇다. 타고난 성정을 자연스럽게 내비치는, 복잡다단함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보다 보면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살고 싶게 만드는’ 음악과는 다른 층위의,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드는’ 양반들의 음악은 이 지점을 타고 스며든다.
‘전범선과 양반들’이던 시절에는 한양을 노래했다면, 이름을 바꾸고 작년 발표한 <해방촌>부터는 서울을 투영한다. 도심지의 삭막함보다는 일렁이는 햇빛에 집중하며, 자연스럽다 못해 자연을 수용하기로 한 듯 첫 트랙부터 새 소리도 힘껏 지저귄다. 날카로운 하드 록에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은 서프 록에 가까운 양태로 보다 편안하게 다가온다. 리듬 악기는 시원하고 그 외에는 나른하거나 강단 있게 적절한 온도를 유지한다.
마치 공원의 아늑함. 집 이외의 거리에서 쉴 틈을 내어주는 자리는 현대인이 놓치기 쉽지만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다. 앨범 전반에 두드러지는 코러스는 산들바람이 되어주고, 유려한 기타 연주는 책이 되었든, 뜨개질 혹은 SNS 속 소식이든 앉아 집중할 흥미 요소가 되어준다. 베이스와 드럼, 퍼커션이 흥겨운 템포로 기분 좋은 드라이브감을 선사하는 ‘하늘’을 듣자면 오랜만에 흙내음을 맡으며 저벅저벅 걷는 편안함, 스쳐 가던 곳에서 취향에 맞는 가게를 찾았을 때의 짜릿함이 맴돈다. 이렇듯 본작은 일상의 층위에서 누리는 기쁨을 닮았다.

이 앨범의 중심에 배치된 ‘제멋’은 마치 분수대처럼 간결한 언어로 희망의 화수분을 흩뿌린다. “자기만의 빛, 제멋대로”. 메마른 마음에는 이 정도의 함축적인 말로 충분하다. 힘찬 목소리 끝에 폭주하는 선율이 무지개를 만든다. 한낮의 아름다운 풍경이 이 안에 담겼다.
그 뒷편에 두 갈래로 나뉜 표제 ‘붕새’와 ‘날개’는 해가 저물어가는 적막에 해당한다. 시간의 흐름 같은 박자와 생각을 곱씹을 틈을 쥐어주는 연주의 향연이 울타리가 되어준다. 구겨진 상념을 펴다 보면 이내 “뭉게뭉게 구름 하늘하늘 위로” 닿도록 돕는다. 음악의 역할은 때로는 기댈 곳 없는 이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것임을 아는 듯 연주하는 열 손은 공간감을 빚어내는 데 열중한다.
‘해야’와 ‘얼굴’ 등의 트랙은 이들의 2010년대가 사뭇 스치기도 하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이란 축적일까. 시간은 각자의 역사를 쥔 채 거칠었던 눈매가 유순해지게 만든다. ‘전범선과 양반들’이 ‘양반들’이 된 시점 또한 같은 맥락일 테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함께”의 미덕을 헤아리는 일은 지고 들어가는 게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택하는 최선의 덕목에 가깝다. 작업실에서의 즉흥 연주에서 출발해 음악역 1939에서 합숙하며 녹음했다는 이 결과물은 음악 내외적으로 앞서 언급한 미덕을 증언한다.
혼자서 날개뼈를 더듬거려 봤자 어떤 것도 돋아나지 않는다. 알아봐줄 수 있는 서로의 눈이 있을 때에야 각자의 날개는 펼쳐진다. 사람은 혼자일 때보다 여럿일 때 강하다.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표상 <붕새의 날개>가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