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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를 위한 마취, 마취로서의 음악과 밈 시대의 소비 방식 : 2025년 최대의 문제작, EK - <YAHO>

by 이승원|

cover image of EK <YAHO>
EK <YAHO>260ASIA

유행 싫어하는데 또 유행 따라가래
변화를 원하는데 자꾸 옛날 얘기해
- EK ’Where u at’ 중

‘우리가 얼마나’의 치밀한 랩 디자인으로 씬에 이름을 알리고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까지 획득한 래퍼 EK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그것이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때의 EK와 지금의 EK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그렇게 어느덧 EK의 자아를 가두는 구속이 되어 스스로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쇼미더머니> 출연 이후 수 년간 행했던 음악적 시도도 사실상 무위에 그쳤고, 2024년 발매한 첫 정규 앨범 <ESCAPE>는 그동안의 이미지를 탈피하기보다는 익숙한 틀 내에서 최상의 성과를 보여준 작품이었기에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기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진짜 EK’, ‘지금의 EK’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가 얼마나’의 EK, ‘GOD GOD GOD’의 EK를 갈구했다.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래서 EK는 그놈의 어여쁜 껍데기에 험한 욕설을 퍼부어 버리기로 결심한다.

질긴 껍데기를 단번에 탈피하기 위해 EK는 대단히 위험하고도 도발적인 수를 감행한다. 향정신성 약물, 소위 마약이 가지는 극단적 성질을 이용해 보다 급진적인 페르소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실제 서두에서부터 그는 가루를 흡입한 듯한 신음과 함께 약물 복용자의 형상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현재 스스로의 정신적 위치를 어딘가 높은(high) 곳, 오면 기분이 좋은 곳으로 정의하며 이전의 그였다면 차마 발표하지 못했을 종류의 가사를 취한 듯 뱉어댄다. 실제로 그가 마약을 복용했는지 여부는 물론 불분명하지만, 작품 내 화자로 등장하는 EK는 틀림없이 본인을 마약 복용자로 대해주기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앨범의 타이틀이자 작품을 상징하는 감탄사인 YAHO는 이때 화자가 느끼는 극단적 해방감의 표현으로, 이 해방감은 너무나 크고 극단적이어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하는 윤리적 제약마저 단번에 무시해버린다. 약물의 힘을 빌린 저열한 경험담부터 인터넷 잡설 수준의 저급한 음담패설까지, 이런 방식의 사설을 환영할 집단은 실제로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수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수준 높은 가사’의 영역에서도 벗어나며 세간의 평가 기준을 완전히 이탈해버린다. 약물과 향락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삼으나 그것이 어떠한 유미적 해석 따위를 거치는 것도 아니며, 굳이 따지자면 저열한 화장실 유머 혹은 정제되지 않은 사춘기 남학생의 속내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성경험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거나 마약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묘사한 작품은 이전에도 제법 많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역겨운 묘사를 행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SKIT (삼각관계)’ 같은 경우 첫 청취에서는 나 또한 강한 거부감에 재생을 잠시 중단해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보기 좋은’, ‘듣기 좋은’ 형태를 상당 부분 벗어날 뿐만 아니라 풍자나 전위의 영역에도 좀처럼 기대지 않는 <YAHO>의 수사는 듣는 사람에 따라 (어쩌면 처음 듣는 사람 대부분이) 충분히 불쾌감을 느낄 만한 수사로 가득 차 있고 그렇기에 일견 수준 이하의 괴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허나 이토록 불쾌한 감상이 정확히 의도된 바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YAHO>의 EK는 청자가 불쾌하게 느낄 만한 비상식적, 비윤리적 수사를 다분히 고의적으로 작품 전반에 배치시키고, 이를 오롯이 전복하여 직선적인 쾌감의 형태로 전개한다. 넓게 보아 이 방식은 우리가 랩 장르 등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해 왔던 작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탈과 범죄, 과감성의 강렬한 매력을 전개해 온 힙합 장르의 유서 깊은 작법처럼 <YAHO>의 EK는 마약 남용과 무분별한 성관계 등 일탈적 주제를 자연스럽게 배덕의 쾌락으로 연결시킨다. 클럽 전자음악, 댄스음악 베이스로의 음악적 선회는 이러한 쾌락주의 노선의 연장선에서 합당한 맥락을 가지며, 이는 클럽 음악의 태생적 쾌락 추구, 힙합 장르 특유의 과시적 태도와 서로 맞물리며 신선한 감상을 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기존 인식론적 테두리에서 벗어난 외설 언어들을 서술 언어로써 거느리는 순간의 순수한 저항적 쾌감 역시 작품의 주요한 재미다.

이러한 요소를 중심으로 하기에 작품은 파티 이후의 공허함이 담긴 후반부보다는 파티 순간의 광기가 실린 전반부에서 더 분명한 매력을 발휘한다. 직선적인 하드스타일 터치와 노골적 발화를 적극적으로 가용한 전반부를 듣고 나면 비교적 후반부의 외설이 무난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이 부분에서 작품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쾌락주의 노선에 맞춰 전자음악/댄스음악 기반으로의 변화를 꾀한 <YAHO>의 EK는 그에 걸맞게 플로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화자의 외설 언어가 예술로서의 외설적 재현이 아닌 외설 그 자체로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리 온 내 딸아
네 두 눈이 어여쁘구나
먹음직스럽구나
요리 중엔
어린 양의 눈알요리가 일품이라더구나

잘 먹었다 착한 딸아
후벼 먹인 눈구멍엔 금작화를
심어보고 싶구나 피고름이 질컥여
물 줄 필요 없으니, 거
좋잖니……

어디 보자, 꽃핀 딸아
콧구멍 귓구멍 숨구멍에도 꽃을
꽂아주마 아기작 아기작 걸어다니는
살아 있는 꽃다발
사랑스럽구나

이리 온, 내 딸아
아버지의 바다로 가자
일렁거리는 저 거대한 물침대에
너를 눕혀주마
아버지의 바다에, 널
잠재워주마

- 김언희, <아버지의 자장가>

디지털 고추털 자지털 보지털
섞여 있는 모습 보면 정말로 기가 막혀
맛있어 더 먹어
웃지 말고 받아들여
지금 내가 하는 건 선전포고

종이 한 장 차이 표고버섯
종이 한 장 차이 표고버섯

MDMA
MBA
MDMA
MBA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약발이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약발이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약발이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올라 약발이 올라

- ‘MollyWorld’ 中

일례로 한글 외설 문학의 대표적 사례인 김언희 시인의 글과 2번 트랙 ‘MollyWorld’의 가사를 비교해보자. 관람자를 위해 대상을 무대에 올리는 장면이 없는 재현을 외설적 재현(obscene representation)으로, 반대로 관람자를 위해 대상이 무대에 올려져 관람객이 충분히 거리를 취할 수 있는 재현을 포르노적 재현(pornographic representation)으로 정의한 핼 포스터(Hal Foster)의 주장에 의거하였을 때, 전자는 분명 외설적 재현에 속하지만 후자는 포르노적 재현으로 분류할 수 있다. 김언희의 외설이 남성인 아버지의 언어를 통해 여성인 딸을 타자화하며 그 폭력성을 (무대화하지 않고) 리얼리즘적으로 전시한다면, EK의 수사는 일견 사실적이면서도 현실과의 맥락적 연관성을 거부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무대화된 작품 안에 집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시를 읽는 독자는 현실에 밀접한 류의 불쾌감을 느끼게 되지만, 후자의 청자는 표현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그 가사를 실재하는 위협이나 불결함에 연관시키지는 않는다. 그저 EK가 전시한 자신, 마약 중독자의 환락적 모습을 멀리서 관람하고 그 에너지를 전이받을 뿐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이를 통해 EK의 외설적 수사는 현실적 맥락과 심미적 맥락을 벗어나 유희 그 자체를 위한 행위로 승화된다. 과정과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현실적 맥락과 고의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앞서 언에듀케이티드 키드(UNEDUCATED KID)가 선보였던 기믹 플레이와도 유사한 효과다. 구구절절한 말보다 불건전한 이미지 한 장이 더 큰 파급력을 가지듯, 이들의 유희는 웬만한 서사를 압도하는 전달력을 자랑한다.

사유보다 강한 유희, 이러한 포르노적 재현은 그 자체로 청취자의 뇌를 마취시킬 가능성을 내재하기도 한다. 자극적 내용으로 가득한 포르노그래피의 반복적 노출이 뇌의 기능을 저하시키듯 자극적 수사와 자극적 사운드로 점철된 음악이 잠시 청취자의 사고를 마취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CupcakKe의 랩을 가사와 함께 들어본다면 이러한 현상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EK는 이러한 마취의 가능성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쓰이지 외설적 표현을 반복하고 환락성을 강조하듯 비트를 노골적으로 때려대면서 청자가 잠시 멈춰 생각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해버린다. 다시 말해 <YAHO>의 EK는 청자에게 사유하지 않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로써 작품의 유희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YAHO>는 쾌락과 유희를 전달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몸소 드러내 전이시키는 작품이라 불러야 타당해 보이며 (’FE!N’ 같은 사례가 이러한 종류에 속한다.) 눈치 보지 않고 재미있게 놀겠다는 EK의 말은 이러한 지점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유를 잠시 마취시킨다는 점에서 작품은 최근 몇 년간 대두되어 온 브레인롯(Brainrot) 현상과도 닮아 있다.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 같은 밈(meme)은 어떤 사유를 통해 전파된 것이 아니었다. 트랄랄렐로 트랄랄라, 봄바르딜로 크로코딜로 같은 언어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으며 그저 밈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즐기기 위해 생산된 유희에 불과하다. 공감하면 즐기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오히려 이를 보고 아무 의미 없다며 성을 내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이다. 작품을 대하는 EK의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EK는 <YAHO>가 마음에 들면 같이 맘껏 즐기고 아니면 썩 꺼지라고 말하고 있다. 즐기는 자들끼리 재밌게 즐기고 있으니, 이에 대한 비판 또한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TTS 음성과 극단적 표현을 통해 언캐니(Uncanny)를 극대화한 ‘SKIT (삼각관계)’ 같은 사례는 이러한 관점에서 청취층을 제한하는 일종의 진입장벽처럼 기능하기도 한다. 조악한 AI 이미지로 본능적 거부감을 형성했던 이탈리안 브레인롯의 사례처럼.) “중학교 때 내 별명은… 벌레”, “종이 한 장 차이 표고버섯” 등 <YAHO>의 가사 중 일부가 밈으로서 활용되는 최근의 현상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YAHO>처럼 일반 사회의 시각에서 매우 부적절한 작품이 밈으로 떠오르고 당해 장르 최고작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예술의 질보다 흥미가 우선시되기 시작했다는 핼 포스터의 말이 떠오른다. 취향과 흥미가 예술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고, 파편화된 취향과 관심사가 각각의 즐거움을 전개하고 있는 작금의 밈 시대, 좋은 음악이라는 기준은 이제 완전히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음악이 꼭 보편을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동시대 가장 아이코닉한 작품이 될 잠재력을 지닌 수작 <YAHO>의 EK는 과연 그 과감한 시각과 도발적 언어, 변태적 표현력을 통해 음악 유희의 범주를 새롭게 정의하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