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리치 블랙모어. 에스토니아 국립 오케스트라·올라리 엘츠·선우예권 내한 공연 리뷰, 2026년 9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프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를 떠올려 본다. 곡이 시작되면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가 홀로 울린다. 빰 빰 빰 - 빰 빰 빠밤 - 빰 빰 빰 - 빰 빰. 곧 하이햇과 오르간이 붙고, 드럼과 베이스가 차례로 들어온다. 악기가 하나씩 쌓이는 동안에도 처음 들은 그 기타를 따라가게 된다. 짧은 음 몇 개가 되풀이되며 곡 전체를 지탱한다. 리프는 길잡이다.
리치 블랙모어는 이 리프가 베토벤에서 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07년 CNN 인터뷰에서였다. 교향곡 5번의 주제를 거꾸로 돌려 보다가 얻었다며 “베토벤에게 돈을 많이 빚졌다”고 했다. 54년 된 록 리프가 218년 된 교향곡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럴까. 그 이야기는 공연이 끝난 뒤에 하자.
운명 교향곡을 떠올려 본다. 빰빰빰빰 -. 빰빰빰빰 -. 비보처럼 내리꽂히는 네 개의 음. 베토벤은 1악장 내내 이 네 개의 음을 놓지 않는다. 현악기가 주고받고, 호른이 외친다. 서정적인 제2주제가 흐르는 동안에도 저음의 현은 이 주제의 변형을 연주하며 끊임없이 두드린다. 클래식에서는 이렇게 곡을 끌고 가는 짧은 재료를 ‘동기(motive)’라고 부른다. 반복되며 곡을 하나로 묶는다는 점에서 리프와 통한다. 1악장 전체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동시에 이 네 음을 모르는 사람도 드물다.
공연장에서 나에게 전율이 오는 순간 중 하나는 이런 주제를 현장에서 직접 듣는 순간이다. 와, 내가 이걸 듣는다고? 베토벤 5번이 바로 그런 곡이다. 수도 없이 들은 곡인데도, 이 곡을 오케스트라의 실제 소리로 듣는다는 생각에 공연을 기다렸다. 지난 9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가득 찼다.
* * *
금빛. 그날의 공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남는 색이다. 공연은 듣는 것이기 전에 보는 것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는 나라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약 7,100km. 창단 100주년을 맞은 그 나라의 국립 오케스트라(ERSO)가 한국과의 수교 35주년을 기념해 서울을 찾았다. 1부에 단원들이 악기를 들고 들어서자 객석이 살짝 술렁였다. 조명 아래 금관악기가 빛나고, 단원들의 밝은 머리칼까지 함께 빛났다. 반사된 듯한 눈부심이 사진처럼 남았다. 그날 무대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지휘자 올라리 엘츠의 해석이었다.

극적인 순간은 2부 시작이었다. 인터미션이 끝났을 때 객석은 앞선 호연으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엘츠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박수가 터졌다. 그는 객석을 향해 환히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박수가 잦아들기도 전에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 빰빰빰빰 -. 장내가 두 번째로 술렁였다. 박수와 주제가 겹친 것이다. 관객들은 황급히 손을 거뒀다.
‘운명’은 베토벤이 붙인 제목이 아니다. 정식 곡명은 교향곡 5번이다. 베토벤이 이 주제를 두고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는 비서 쉰들러의 전언에서 나온 별칭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이 곡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같은 음을 세 번 두드리고 길게 떨어지는 음형은 과연 노크처럼 들린다. 엘츠의 템포는 빨랐다. 문을 두드린 운명은 빗속의 마차처럼 내달렸다. 첫 노크에 두 번째 노크가 응답한다. 번개 뒤의 천둥처럼. 현악기들이 같은 음형을 차례로 이어받으며 차오르다가, 오케스트라 전체가 한 번 더 멈춰 선다. 빰빰빰빰 -. 처음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는 듯한 대비였다. 그 뒤로 비슷한 모양의 울림이 짧고 황급하게 이어졌다. 하나의 주제가 이 악기에서 저 악기로 옮겨 다니는 동안, 관객은 꼼짝없이 끌려갔다. 그렇다. 운명은 몇 초 만에 찾아와 귀를 단숨에 사로잡기도 한다.
엘츠의 5번은 시작부터 달랐다. 보통은 장내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잠시 텀을 두고 첫 음을 낸다. 엘츠는 그 텀을 두지 않았다. 습격을 당한 듯했다.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할 수도 있는 주제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터지자, 공기가 단번에 바뀌었다. 과감한 시작이었다.
그 박수가 길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1부가 좋았다. 단원들이 처음 들려준 곡은 에스토니아 작곡가 퇴누 쾨르비츠의 ‘오로라를 위한 찬가’(2011)였다. 처음 듣는 곡이었다. 미리 알고 따라갈 주제가 없으니 소리를 하나하나 더듬어 갈 수밖에 없었다. 현악기들은 음정을 뚜렷하게 짚기보다, 하모닉스처럼 가늘게 떨리는 배음을 내며 한 무리로 움직였다. 수십 개의 활이 한꺼번에 방향을 틀 때마다 강물 속 금빛 물고기 떼가 일제히 몸을 뒤집는 것 같았다. 그 아래로 조성이 분명한 찬가풍 선율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팀파니의 트레몰로 위로 금관이 크레셴도로 부풀 때는 말러가 떠올랐다.
그 부피에 비해 편성은 작다. 트롬본이 없다. 호른과 트럼펫은 둘씩, 목관도 대부분 둘씩이다. 베토벤 시대의 오케스트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작은 오케스트라로 쾨르비츠는 높은 음역의 떨림에 빛을, 그 아래 선율에는 그것을 올려다보는 사람의 노래를 그렸다. 에스토니아 시골에서 본 오로라의 움직임을 잊지 못해 쓴 곡이라는 작곡가의 말이 비로소 이해됐다. 이 악단은 고국의 하늘을 펼쳐 보이며 공연을 열었다.
1부의 두 번째 곡은 수교 35주년을 기념하는 협연, 선우예권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였다. 이번에는 주제가 오가는 길이 들렸다. 오케스트라의 일격과 피아노의 하강으로 곡이 열리고, 곧바로 오보에가 첫 주제를 노래한다. 그 주제를 피아노가 받고, 다시 오케스트라가 받는다. 1악장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짧은 악구를 빠르게 주고받는 대목이 많다. 선우예권의 1악장은 포르테마다 힘이 많이 실려 소리가 무거웠다. 반면 여리게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작은 소리까지 뒤쪽 객석에 분명하게 닿았다. 빠른 음들이 쉬지 않고 쏟아지는 하행 악구도 선우예권은 막힘없이 쳐 내려갔다. 테크니션다운 장면이 여러 번 보였다.
2악장에서 엘츠는 손을 거두고 첫마디를 피아니스트에게 맡겼다. 선우예권이 스스로 들어가자 현이 곧바로 뒤를 받았다. 엘츠는 한발 앞서 현을 이끌며 피아노와 호흡을 맞췄다. 1악장에서 무겁던 피아노가 그때부터 노래하기 시작했다. 3악장의 코다에서는 바이올린이 유니즌으로 주제를 노래하고, 그 사이를 피아노가 수놓았다.

앙코르로 선우예권은 브람스의 인터메조 A장조(Op.118-2)를 골랐다. 슈만이 1853년 ‘새로운 길’로 세상에 알린 스무 살 브람스가 40년 뒤 클라라에게 바친 소품집의 한 곡이다. 슈만의 협주곡이 끝난 자리에 그 뒷이야기가 이어졌다. 윗선율이 느리게 노래하는 곡이다. 선우예권은 한 악구 안에서도 소리를 여러 번 부풀렸다 잦아들게 했다. 2악장에서 보인 서정이 여기서 더 풍부해졌다.
1부를 마친 올라리 엘츠와 선우예권.
다시 베토벤으로 돌아가자. 이 네 음이 길잡이라면, 교향곡 5번의 길잡이는 악장을 건너 돌아온다. 3악장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여리게 솟아오르며 시작하고, 곧 호른이 포르티시모로 그 리듬을 외친다. 1악장 첫머리에서 현악기가 선언한 네 음이 이번에는 3박자의 옷을 입고 호른의 목소리로 돌아온다. 주제를 이미 알고 있으니 그 아래의 소리까지 들렸다. 1부 내내 엘츠의 시선과 손은 주로 왼쪽의 제1바이올린을 향했다. 베토벤에서는 오른쪽 제2바이올린 쪽으로 자주 돌아갔고, 그쪽 소리도 한층 잘 들렸다.
4악장에서 운명은 C장조로 터졌다. 트롬본과 피콜로, 콘트라바순이 처음 소리를 냈다. 1악장부터 자리에 앉아만 있던 연주자들의 악기가 비로소 소리를 낼 때, 시선이 쏠리고 반가움이 밀려온다. 다단조로 시작한 곡이 다장조로 뻗어 나갔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걸어 나가는 발걸음 같았다. 그런데 베토벤은 이 승리의 행진 한가운데서 3악장의 그 리듬을 여리게 한 번 더 불러낸다. 어둠 속에서 들리던 노크가 환한 C장조 사이로 기억처럼 스친다. 같은 음형이지만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시 들린다. 행진이 다시 시작되자 감격스러웠다. 엘츠는 상반신 전체로 오케스트라를 몰아붙였다. 템포는 점점 빨라졌고 금관이 앞으로 나섰다. 코다에서는 환희에 찬 듯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내달렸다. 그 속도 속에서도 소리의 중심은 분명했다. 저음이 두텁게 받치고 그 위에서 현이 가볍게 움직였다.
C장조 화음으로 곡이 끝났다. 박수가 다시 터졌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박수였다. 몇몇 관객은 일어서서 손뼉을 쳤다. 오케스트라의 첫 앙코르는 슈만의 ‘저녁 노래’(Op.85-12, 스벤센 편곡)였다. 두 번째 앙코르는 에스토니아 작곡가 에두아르드 투빈의 ‘에스토니아 춤곡 모음곡’ 중 ‘세투 춤’. 1부의 슈만을 다시 소환했고, 고국의 하늘로 연 무대를 고국의 춤으로 닫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블랙모어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머릿속 건반으로 두 음형을 번갈아 쳐 보았다. 둘 다 솔에서 출발해 3도를 움직인다. 방향은 반대다. 베토벤은 내려가고, 딥 퍼플은 올라간다. 그다음 음들도 다르다. 블랙모어가 영감을 받았을 수는 있지만, 음만 놓고 보면 별로 닮지 않았다. 그래도 둘은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곡의 맨 앞에 놓였고,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혔다.
리프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리프는 반복으로 기억된다. 한 곡 안에서 몇 번이고 돌아오고,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다시 연주되면서. 하지만 되풀이되기만 하는 음악은 박제가 되기 쉽다. 베토벤은 4악장 행진 한가운데 3악장의 노크를 다시 불러냈고, 엘츠는 박수가 채 그치기 전에 첫 음을 꺼냈다. 익숙한 음형도 돌아오는 자리와 때에 따라 새롭게 들렸다. 리프는 그렇게 다시 들리면서 살아남는다. 218년 된 리프가 박수 소리 사이로 불현듯 끼어들던 그 몇 초 동안, 나는 그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놀랐다.
* * *
Photo by Rowan Lee, courtesy of 마스트미디어 (@mastmediaclas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