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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브릿지 ① 에스파 ‘Supernova’에 담긴 48년 전 전자음악의 DNA

by 이예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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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은 ‘광야’라는 메타버스를 사운드로 어떻게 구현하고 있을까? 작년 K팝 씬의 초신성이었던 에스파의 ‘Supernova’를 보면 그 전략을 알 수 있다. 이 곡은 가상과 현실을 잇는 초월적 세계관 ‘광야’에 걸맞게 기계적인 하이퍼-테크놀로지 사운드를 지향한다. ‘사건은 다가와 Ay Oh Ay’라며 분절된 음가로 캐치한 리프를 만든 것은 물론, 알루미늄 같이 냉정한 선율로 아름답고 유려한 선율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작곡도 한몫한다.

이러한 차가운 질감의 핵심 리프는 곡의 브리지 구간인 2분 10초에 등장한다. 이는 ‘전자음악의 시초’라 불리는 독일의 4인조 그룹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관련이 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1977년 <Trans Europa Express>, 이른바 ‘기차 앨범’을 발표했다. 유럽 횡단 특급 열차 TEE를 주제로 한 이 앨범은 열차 사운드와 전자 비트를 결합하며 일렉트로닉 음악의 미래를 개척한, 한 마디로 ‘유러피언 테크노 팝의 시발점’이었다.

에스파의 ‘Supernova’ 속 사운드가 숨어있는 타이틀 곡 ‘Trans Europe Express’에는 독일 음악 특유의 감정을 배제한 듯한 이성적인 멜로디가 등장한다(1분 33초).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로 구현한 이 멜로디는 감정의 고조나 변화를 극도로 억제하며 불규칙한 ‘사인 그래프’를 그리듯 2도 간격으로 움직임으로써 청자에게 차가움, 무표정함, 그리고 비인간적인 정교함을 남긴다. 록 음악이 역동하던 1970년대 후반, 기계적인 반복성을 택함으로써 ‘기계 인간’이라는 콘셉트를 공고히 했던 선율이다. 이러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긴 멜로디를, 에스파는 ‘우린 어디서 왔나 Oh Ay’에 이어 붙이며 ‘Supernova’의 서사를 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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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역사적인 리프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Supernova’의 해당 멜로디는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와 더 소울 소닉 포스(The Soul Sonic Force)의 ‘Planet Rock’을 경유하며 또 한 번의 변이를 겪었다.

밤바타가 이끄는 이 힙합 그룹은 ‘Trans-Europe Express’(1977)의 멜로디와 후속작 <Computer World>(1981)의 ‘Numbers’ 비트를 결합해 초기 힙합의 한 형태인 일렉트로(Electro)를 창조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문화적 전이이다. 밤바타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냉철한 이성을 끌어오면서도 이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 운동인 ‘아프로 퓨처리즘’과 결합했다. 사색적이고 고독한 독일의 기계 리듬이 뉴욕 브롱스의 댄스 플로어에서는 자유와 혁명을 외치는 뜨거운 비트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샘플링의 샘플링’ 전략 덕분에, 크라프트베르크의 선율과 비트는 글로벌 댄스·스트리트 음악의 DNA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2024년, 에스파는 ‘Supernova’를 통해 이 역사적인 리프를 다시 소환했다. 멜로디의 구조로 보면 첫 마디는 크라프트베르크에, 두 번째 마디는 아프리카 밤바타에 가깝다. ‘Planet Rock’이 ‘Trans-Europe Express’의 멜로디를 끝부분만 완전 4도로 떨어뜨려 끝맺은 것을 감안하면, 에스파의 멜로디 끝부분은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는 40년 이상 이어진 전자 음악의 계보를 극도로 현대적인 K팝 댄스 트랙 안에 전략적으로 삽입한 예리한 시도다.

크라프트베르크가 인간이 만든 기술을 고독하게 관조했다면, 에스파는 광야, æ(아바타), 싱크 아웃 등의 메타버스 콘셉트를 통해 기술과 능동적으로 융합하는 초현실적 존재 방식을 구현한다. 유럽 횡단 열차처럼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Supernova’는 레퍼런스의 깊이와 음악사적 정통성이 어떻게 상업적인 매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다. K팝이 이러한 전략을 지속한다면, 다음 세대의 K팝은 단순히 유행을 선도하는 것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들리는 음악으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