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편안한 목소리로 퍼붓는 폭설, '선명'

by overtone|

새하얀 눈밭 같은 데뷔였다. 선명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개한 EP였기 때문이다. 그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언뜻 친숙하면서도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의 노래는 오랜만이었다. 한겨울 눈밭에서 찍힌 사진을 꺼내보는 것처럼 아련하고, 여름날 샤베트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는 것처럼 시원하며, 가을날 놀이터에서 바라본 노을처럼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이 평화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노이즈의 향연이라니.

기억 속에 메아리치는 목소리처럼 말을 건네는 조지수의 노래, “가만히 들여다볼까?”에 이어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리듯 시원하게 현을 울리는 박희수. 그가 어딘가 맺혀있지만 신경질적이지 않은 톤으로 못다 쓴 ‘편지’의 말들을 이어간다. 형식을 다 걷어낸 두 아티스트의 ‘순수한 도취’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뒤따르는 감정은 후련함이다.

박희수와 조지수를 만났다. 2020년대 인디씬을 자기만의 속도로 관통 중인 동갑내기 뮤지션. 다브다를 거쳐 EBS ‘5월의 헬로루키’로 선정된 밴드 녹이녹의 베이시스트인 박희수와 허니젤리키티, 최근 을지로에서 첫 공연을 마친 연주 밴드 스테고에서 활약 중인 조지수. 그야말로 인디씬의 새 얼굴들이다.

5월 13일 첫 실물 앨범 발매를 앞두고 직접 디자인과 소재를 골라 판매처 네 군데와 계약을 마치고 달려온 참이었다. 홍대의 감각적인 카페에 들어선 두 사람은 통통 튀면서도 발랄하고, 침착하면서도 엉뚱한 에너지가 환상의 케미를 만들어내며 싱그러운 웃음을 자아냈다. 커피를 고르는 데서부터 극명한 취향 차를 보인 두 사람은 인디씬의 새로운 만담 듀오처럼 보였다.

날짜: 2026년 5월 12일
방식: 대면 인터뷰
장소: 카페 오로라
진행: 이승원, 이예진
정리: 이예진

선명이라는 팀

팀 선명을 소개해 주세요.

조지수: 박희수와 조지수가 재밌는 것을 하는 팀입니다. (웃음)

박희수: 뭔가 방향성이 있다기보다, 서로 가지고 있는 취향들을 결합하다 보니 이런 음악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냥 저희가 재미있어하는 걸 하는 팀이에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조지수: 친구의 친구로 만났어요. 그 전부터 각자 다른 팀에서 활동을 했으니까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직접 만나서 친해진 건 작년쯤이에요. 희수가 솔로로 뭔가 하고 싶다고 코드 파일을 보내줬는데, 듣다 보니 여기에 뭔가 더 재밌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로 녹음해서 보내줬거든요. 희수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같이 해볼래?” 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팀 이름 '선명'은 어떻게 지어진 건가요?

박희수: 제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 근처에 '선명 아파트'라는 곳이 있어요. 어차피 저희 작업도 거기서 계속 이루어졌고, 단어 자체의 어감도 좋고, 저희 음악이랑도 잘 어울리는 부분인 것 같아서요.

각자 선명 외에도 다른 팀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요.

조지수: 허니젤리키티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 그 친구가 군대에 가서 잠깐 쉬는 중이에요. 스테고는 작년 여름부터 기타의 규림이라는 친구, 드럼의 요단이라는 친구랑 셋이서 하고 있는 팀인데 막 첫 공연을 마쳤어요.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 하는 팀인데, 엄청 재미를 추구하는 밴드예요. 약간 선명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거기에 푸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박희수: 고등학교 졸업하고 살롱 바다비라는 클럽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밴드 활동도 병행했어요. 군대 가면서 흐지부지됐는데, 전역 후에 ‘다브다’라는 팀에서 베이스를 쳤고, 그 뒤에 ‘녹이녹’을 새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cover image of 선명 <선명>
선명 <선명>Self-released

이번 EP를 소개해 주세요.

조지수: 되게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마음들을 담아보려고 했어요. 기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감정들이 하나 안에 공존하는 것처럼요. 여름이나 폭설, 편지도 그렇고, 각 곡 안에 담겨 있는 되게 여러가지 마음을 한 번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트랙 배치도 폭설에서 여름으로 갈 때 앞 트랙을 완전히 배신하는 것처럼 이어지게 한 것도, 계속 반대되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양가적인 감정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조지수: 예를 들면 여름이요. 저는 여름이 너무 힘들거든요. 더운 게 진짜 힘든데, 기관지가 안 좋아서 여름에 몸은 제일 좋아요. 기관지가 편해지니까 술도 마실 수 있고, 너무 즐겁고. 근데 또 너무 어지럽고, 너무 덥고. 계속 이렇게 정말 다른 마음인데 뗄 수 없는 마음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EP 구상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조지수: 처음에 희수가 코드를 보내줬는데, 그걸 쌓아서 만든 노래가 '편지'예요. 앞이랑 뒤가 엄청 극명하게 다른 노래인데, 이걸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이 곡을 중심으로 다 만들어보자 하게 된 거예요.

박희수: 곡이 어느 정도 완성됐을 때, 그냥 우리끼리 하는 프로젝트 느낌보다는 좀 더 계획을 세우고 공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이 곡 하나만 싱글로 내기엔 맥락이 부족하다 싶어서, 그 맥락을 만들기 위해 ‘다른 곡들도 더 만들어서 EP 볼륨으로 가보자’ 이렇게 된 거예요.

작업 방식이 궁금해요. 어떻게 만들어가셨나요?

박희수: 폼을 다 만들고 따로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테마가 나오면 그 뒤를 계속 잇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그러다 보니 이전에 나왔던 요소가 반복되기보다 새로운 요소들을 조금씩 추가하거나 확 바꾸는 시도를 하게 되고, 폭설처럼 극명하게 변화하는 부분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지수: 처음에는 파일을 주고받으면서 작업했어요. 둘 다 똑같은 DAW를 쓰고 있어서요. 그러다가 하나의 기기로 같이 작업하는 게 더 편하더라고요. 명절날 가족이 다 모였는데 컴퓨터가 하나뿐인 느낌이랄까요. (웃음)

박희수: 믹스는 제가 하고, 가사는 지수가 쓰고, 곡 작업은 상당 부분 같이 해요. 제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지수가 방향을 잡아주고, 또 지수가 소리를 제시하기도 하고. 역할 분담이 명확하다기보다 계속 같이 해나가는 느낌이에요.

조지수: 저는 좀 더 추상적인 쪽이에요. 이 곡은 이래야 해, 이 요소는 여기 들어올 수 없어, 이런 식으로요. 희수는 사운드 자체를 만드는 데 힘을 많이 쓰고, 연주도 훨씬 잘해서 녹음할 때 든든했어요.

사운드에 필드 레코딩을 많이 활용하셨는데, 어떻게 채집하신 건가요?

조지수: 평소 같이 시간 보낼 때 제가 녹음기를 켜놓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어요.

박희수: 필드 레코딩을 활용해 보자고 얘기하고 나서, 이런 소리가 있으면 분명 쓸 때가 있을 거라는 느낌으로 작업하다가 산책하면서 녹음기 켜놓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얻은 소스들을 곡에 녹여놨을 때, 앰비언스가 여러 소리를 묶어주는 그림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제목들이 다 두 글자인 게 의도인가요?

박희수: ‘편지’랑 ‘여름’이 나왔을 때 제목이 모두 두 글자니까, 앞으로도 그냥 두 글자로 하자, 그 정도의 가이드라인이었어요. 근데 이게 좀 과해질 뻔했는데, 영어 제목도 맞춰보려다가 얼마나 어색한지 (웃음). 그냥 한국어 두 글자로 정리했어요. 팀명도 두 글자, 곡명도 두 글자.

다섯 곡

각 트랙에 대해 좀 더 들어볼게요. '폭설'부터요.

조지수: 저는 눈을 엄청나게 좋아해요. 밤에 폭설이 내리고 다음 날 아침에 나가 보면 세상이 너무 달라져 있잖아요. 밤에 내리는 눈은 엄청 고요하고, 안에서 밖을 볼 때 그 눈 내린 풍경이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지거든요. 근데 사실 따뜻할 리가 없잖아요. 눈 내리고 난 다음 날 거리가 하얗게 다 뒤덮여서 너무 낯설어지는 것도 그렇고. 처음에는 좀 더 고요하고 따뜻한 기분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점점 뒤로 가면서 눈부시지만 너무 차가운 그런 것들을 담고 싶었어요.

박희수: 그 단어에서 오는 첫인상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양가적인 느낌들이 있어요.

폭설과 바로 이어지는 '여름'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의도한 건가요?

조지수: 폭설은 눈이고, 눈은 겹겹이 쌓이는 거니까 겹겹이 변화하는 걸 생각했고, 여름은 진짜 갑자기 맑았다가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가 갑자기 바뀌는 것들이 너무 많은 계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름에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좀 더 생각해 봤던 것 같아요.

박희수: 여름 작업이 진짜 어려웠어요. 처음 지수가 보내온 데모는 이런 느낌이 전혀 아니었고, 되게 우울한 여름 장마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어떻게 해야 되지 하다가 재창조해서 보컬 샘플을 따와 처음에 나오는 보컬 샘플들을 만들었는데, 그 뒤에 파트들이 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울면서,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이러고 만들어서 들려줬는데, 처음엔 이게 뭐야... 싶다가 듣다 보니까 이렇게 이어가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계속 나아가게 된 거예요.

잘 안 풀릴 때는 보통 어떻게 하시나요?

박희수: 두 가지 방법이에요. 묻어두고 다른 거 하거나, 울면서 생각이 날 때까지 켜놓고 책상에 앉아 있거나. 전자를 택하면 앨범이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까, 최대한 후자 쪽으로요. (웃음)

'그네'는요?

조지수: 퇴사하고 행복했을 때 썼던 것 같아요. 그냥 일상에서 그네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너무. 그때 희수랑 많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박희수: 근데 그네도 원래는 말도 안 되는 약간 재즈 팝 같은 거였어요. 갈아엎고 난 뒤에는 전자 댄스 음악 같아서 두 번을 갈아엎었고, 그다음에 쓱쓱 됐던 것 같아요. 그 버전은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고 진짜 약속했거든요.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웃음)

조지수: 두 번 갈아엎고 나니까 오히려 제일 잘 풀렸어요. 착착 맞아가면서 너무 즐겁고 기뻤어요.

'일기'는 어떤 곡인가요?

조지수: 좀 더 속마음에 집중하는 노래예요. 저는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는데, 서로 이웃으로 공개하거든요. 가끔 일기를 적을 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완전 비공개는 또 아닌 것 같고, 완전 다 공개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런 느낌의 일기인 것 같아요.

마지막 트랙 '편지'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박희수: 처음에 지수에게 코드 파일을 보내줬고, 거기에 멜로디를 얹어서 저한테 보내줬어요. 구성을 좀 더 늘려서 앞에 조용한 파트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됐는데, 이 소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 되게 좋더라고요. 거기에 다른 악기들을 추가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건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뒤에 다른 파트를 아예 더 만들자고 구상했어요. 처음에는 편지 1, 2처럼 두 곡을 한 곡처럼 내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이어져야 의미가 있는 거라면 한 곡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뒷부분에는 되게 몰아치는 소리를 담으면서, 편지를 적으며 보내고 싶은 마음을 정리하고, 그걸 보내고 나서의 마음을 담아보려고 했어요.

조지수: 답장을 못 받는 편지일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는 거의 멜로디 없이 노이즈가 비비비… 편지도 그네랑 일기처럼 내면에서 출발하는 곡이에요. 편지를 쓸 때는 내 안에 있는 것만 쓰는 거니까. 그런데 결국 편지를 보내는 거잖아요. 다시 외부로 출발하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되게 극명하게 둘로 나뉘는데, 뒷부분은 외부로 나간 걸 생각했어요. 희수한테 많이 맡기기도 했고. 외부, 내부, 다시 외부. 그런 것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편지'가 EP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이유가 있나요?

박희수: 처음에는 슬그머니 다가가고 싶었고, 여름에서는 좀 더 많은 걸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여름의 즐거운 무드를 이어가면서 또 다른 느낌으로 표현했다가, 그렇게 편지로 이어지는 식으로 플랜을 짰어요.

커버 아트워크 얘기도 해주세요.

조지수: 사실 이건 선명 하기 전에 미리 만들어 놨던 거예요. 이름 정하고 나서 제가 “이거 예전에 그렸던 건데 어때?”하고 꺼냈는데, 희수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쓰게 됐어요.

박희수: 저희가 추구하는 이미지랑 되게 부합한다고 생각했어요. 선들이 되게 클리어하고, 그 안에서 눈이 가진 이미지를 봤을 때, 저희가 주제 삼은 것들에 대한 시각을 이미지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작업실

노이즈를 즐겨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조지수: 허니젤리키티에서 쓰였던 노이즈랑 선명에서 쓰는 노이즈는 좀 많이 달라요. 허니젤리키티에서는 삶이나 생활에 밀착된 부분들을 노이즈로 표현하고 싶었고, 선명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가끔 새롭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같은 길이더라도 왠지 오늘은 달라 보이고. 그런 것들을 유도하거나 표현하는 장치로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보컬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조지수: 엄청 계획적으로 하진 않았어요. 부를 때 편했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1번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할 때 즐겁게 하고 싶으니까. 가장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방법으로 해보자 했던 것 같아요.

각자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박희수: 베이스는 고등학교 때부터예요. 친구들이랑 같이 밴드도 하고, 그때 창작을 처음 시작한 것 같아요. 부모님이 진로를 빨리 찾길 바라신다는 걸 무언의 압박으로 느꼈는데, 고등학교 2~3학년 될 때까지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나마 10대 시절을 살아가면서 내가 재미를 느꼈던 게 뭐지라고 생각했을 때, 음악을 듣고 하는 거였던 것 같아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조지수: 2017년 이때쯤에 처음으로 에이블톤을 배웠어요. 키라라 님께 카페에서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 한 달가량 받고 계속 혼자서 뭔가 만들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원래도 음악 듣는 거 좋아하고 관심이 있었는데, 한 번도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다, 곡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었어요. 근데 그때 제일 좋아하던 아티스트가 키라라 님이어서, 레슨을 한다는 걸 보고 ‘나도 배우고 싶다’ 하고 배우게 된 거예요. ‘나도 곡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면서요. 그때도 노이즈가 좋았고, 여러가지 소리를 만드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냥 집에서 그런 것들을 만지는 게 제일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아서,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결과물을 내는 것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어요. 오랫동안.

작업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조지수: 벌써 기억이 미화가 됐나 봐요. (웃음) 둘이 엄청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오히려 엄청 달라서 같이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작을 빨리 하는 편이고, 빨리 해버리자 하는데 뒷심이 좀 부족해요. 희수는 그걸 잘 끌고 가는 힘이 있어서. 제가 잡도리 담당인 것 같아요. (웃음)

박희수: 저도 지수가 얘기해주는 방향들이 있어야 뭔가 하게 되기도 하고요. 둘이서만 하다 보니까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각자가 원하는 걸 계속 조율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서로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게 있다면요?

조지수: 처음에 희수가 이것저것 많이 했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거 다 알고 이끌어줄 전문가인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어요. (웃음) 오히려 그랬으면 진짜 싸웠을 것 같아요.

박희수: 저도 지수가 여러가지 음악을 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이 사람이 가진 스펙트럼들을 더 구체적으로 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베이스만 계속 치다가 기타를 쳐본 것도 있고, 계속 공부해 가면서 했어요.

박희수: 지수가 알고 있는 음악들이 제가 알고 있던 음악들과 다르면서 제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지수를 통해서 알게 된 아티스트들을 지금도 많이 듣고 있어요. 지수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같은 걸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지,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조지수: 저는 되게 예민한 편이거든요. 외부의 것들이 크게 다가오는 편인데, 희수는 저보다 성격이 많이 둥근 편이라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박희수: 저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면서 사는 것 같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작업하면서 각각의 표현들, 그 이유를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고, 그런 걸 얘기 듣는 것이 되게 좋았어요. 지수는 좀 더 자기한테 집중하는 편이라, 그런 것들이 차분해지고 정리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씬, 그리고 선명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영향을 받은 음악이 있다면요?

박희수: 슈퍼카(Supercar) 같은 팀도 좋아하고요. 개인적으로 모임 별이 저의 음악적 뿌리 같은 존재예요. 그리고 서태지는 솔로 앨범들을 너무 좋아했어요. 특히 5, 6, 7, 8집이요.

조지수: 저희 둘 다 진저 비(Ginger Bee)를 너무 좋아해요. 하세가와 하쿠시(Hakushi Hasegawa)도 좋아하고, 아이비(iVy)도 엄청 좋아하고, khc님이랑 모리베(moribet)도 너무 좋아하고요.

공연은 하지 않기로 하셨다고요. 그러면 음악을 어떻게 소개할 계획인가요?

조지수: 저희는 처음에 시작할 때 공연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라이브라는 건 저희가 만든 작업물을 사람들한테 소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라이브 말고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원두가 생각이 났어요. 향과 맛으로 소개하자는 거죠. 청각 외에 다른 감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방향이 어떤 건지 계속 생각해 보고 있어요. 그다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웹사이트고요. 저희가 노션을 쓰는데, 거기다가 아이디어 같은 걸 둘 다 생각날 때마다 올려두고는 해요.

편안한 목소리로 퍼붓는 폭설, '선명' image2© 선명 (@sunmyeong_official)

현재 한국 음악 씬을 어떻게 보시나요?

박희수: 꼭 밴드의 폼이 아니더라도, 선명처럼 둘이서 할 수도 있고, 혼자 할 수도 있고, 각자가 생각하는 멋스러움이 되게 다양해진 것 같아요. 새로운 팀도 많이 나오는데, 그들이 내는 것들이 새롭기도 하면서 어떻게 보면 되게 장르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봐왔던 골든 에라들이 있을 거고, 그것들을 자기 식대로 다시 표현하면서 지금의 음악들이 나오는 거잖아요. 엄청나게 새로운 음악들이 쏟아지는 시기라는 느낌보다는,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좀 더 편하게 세상에 내놓는 느낌이에요. 씬이 더 다채로워지는 것 같고, 자기가 음악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선명이라는 팀은 그 씬 안에서 어디쯤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희수: 저희 음악이 특정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섞어서 앨범을 냈는데, 그 덩어리가 사람들한테 꽤 한 가지 인식으로 읽히는 것 같아요. 그 지점이 저도 흥미롭고. 어떤 씬에 우리가 속해, 우리는 어떤 장르를 하는 팀이야라고 소개하기에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앞으로도 특정 장르를 하는 뮤지션이 되는 느낌보다는, 저희가 재미있어하는 것을 계속하면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박희수: 다음에 EP를 하나 더 낼까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녹이녹을 하면서 기획 공연을 계속 만들어 왔는데, 아티스트가 활동할 때 그 사람이 속하는 씬이 형성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녹이녹 같은 경우에는 포스트락 하는 팀들이 한국에 그렇게 많지 않다고 느껴져서, 한 덩어리로 묶일 수 있는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만들자는 의도에서 기획 공연을 계속 만들어 왔어요. 선명은 라이브를 할 계획이 없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아티스트들과 교류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저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곡을 저희 식대로 풀이해 보는 리메이크 앨범을 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끝으로, 두 사람

각자 취미가 있다면요?

조지수: 커피를 진짜 좋아해요. 그리고 뜨개질,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엄청나게 좋아해요. 사진도 좋아해서 어딜 가면 카메라로 많이 찍고요.

박희수: 공연을 되게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캠코더로 녹화해서 아카이빙도 해요. 악기들도 좀 모으는 편이고요. 비싼 악기보다는 히든 젬을 찾는 걸 좋아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TX1이라는 시리즈가 있는데, 캠코더같이 생긴 디카예요. 켜면 렌즈가 앞으로 돌출되면서 커버가 벗겨지는 소리가 나요. 실제로 보면 엄청 작아요. 약간 2000년대 감성이에요. 어떤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동경하는 음악들이 나왔을 때 그 사람들이 남겨둔 기록을 지금 시대에 경험하는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오버톤 독자들에게 앨범 한 장씩 추천해 주신다면요?

조지수: 사타닉포르노컬트샵(Satanicpornocultshop)의 <Arkhaiomelisidonophunikheratos>(2010) 요.

박희수: 이어(ear)의 <The Most Dear and The Future>(2025)를 추천해 드립니다.

편안한 목소리로 퍼붓는 폭설, '선명' image3© 선명


선명의 EP <선명> 피지컬 앨범은 아래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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