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발매된 대한민국의 전자음악가 키라라의 셀프타이틀 <키라라>는 기존 키라라의 앨범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었다. 3집 <Sarah>나 4집 <4>에서 행했던 소모적 감정 분출은 찾아볼 수 없었고, 출세작이자 소포모어인 <moves>처럼 사운드 그 자체에만 집중한 작품도 아니었다. 일견 감정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의 서사가 결국 내면의 자아로 귀결된다는 점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번 키라라와의 인터뷰는 이러한 흥미와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앨범의 서사, 사운드 등 작품에 대한 대담부터 아티스트 본인의 여러 가지 철학과 제작 방식, 소감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본 인터뷰가 키라라라는 아티스트와 그녀의 음악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이를 더욱 내밀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날짜: 2025년 3월 22일
방식: 서면 인터뷰
진행: 이승원
얼마 전인 2월 정규 5집인 셀프 타이틀 <키라라>를 발매하셨어요. 특별한 소감이나 감회가 있으신가요?
무지막지하게 많은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앨범을 만드는 일은 많은 일들이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기도 하니까 잘 몰랐는데, 인터뷰를 하고 나서 온갖 매체에 담긴 저의 모습들을 보면서 제 자신을 더 알아가는 느낌입니다. 아, 내가 이런 인간이었구나. 갱생의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2022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이번 앨범과 관련된 대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이번 앨범 <키라라>가 구상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4집을 내고 정확히 1년 뒤, ‘4집 뽕’이 모두 빠진 시점부터였습니다. 4집은 제가 사람들을 모두 미워하는 내용의 앨범이었는데, “이제 그만 미워하자.”라고 다짐하게 된 순간이 ‘4집 뽕이 다 빠진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직후에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었는데, 다음 앨범을 위한 저의 몇 가지 구상들은 ‘감정적이지 않은 앨범을 만들고 싶다’, ‘메시지가 그다지 없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 ‘비행기에 관한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섞여 지금의 5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앨범 작업 자체는 언제부터 이루어졌나요?
제 컴퓨터를 열어보니 저의 5집을 위한 첫 데모곡은 23년 1월에 만든 곡이네요. 23년에 곡을 쌓고, 24년에 피처링진을 섭외하고 행정적인 일들을 수행한 것 같습니다.

피처링 활용이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각 아티스트들을 해당 트랙의 피처링으로 선택한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까요?
‘음악’과 ‘샐러드’, ‘증발’은 곡의 구상부터 각 피처링 아티스트인 선우정아 님, 장명선, 할로우 잰을 염두하고 만든 곡들입니다. ‘콘트라스트’, ‘조각’, ‘조감도’는 곡을 먼저 만들고 난 이후에 곡에 어울리는 피처링을 찾아 완성하게 된 음악입니다. ‘지구 밖’은 한정인 씨와 제가 이전에 다른 목적으로 만들었던 음악을 다시 꺼내 앨범에 수록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콘트라스트’는 시크한 낮은 남자 목소리가 필요했고, ‘조각’은 쫑알대는 높은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했었습니다. ‘조감도’는 제가 의도한 ‘일본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싱어가 필요했었습니다. 각각 언텔(Untell), 스월비(Swervy), 예람이 훌륭한 기량으로 저의 의도를 소화해 주었습니다. 이 세 명의 음악가는 정말 음악을 잘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참여 명단에 할로우잰이라는 이름을 듣고 놀란 기억이 납니다. 스크리모 밴드와 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할로우잰과의 작업은 어떤 발상과 과정으로 이루어졌나요?
제가 저의 우울증과 싸우던 시기에 할로우잰의 음악을 많이 듣고 위로를 받았었습니다. 정말 저도 모르게 할로우잰을 상상하며 음악을 만들고 있더군요. 콘(Korn)과 스크릴렉스(Skrillex)의 협업같이, 제가 스크리밍 보컬을 소화할 수 있는 그나마의 전자음악 장르가 있다면 덥스텝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덥스텝으로 기본 얼개를 만들고, 정성스러운 이메일을 쓰고, 저의 소속사인 까미뮤직이 하필 헤비니스 음악 쪽으로 유명한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고, 할로우잰 멤버들과도 오랫동안 교류해 왔던 덕에 할로우잰 분들을 만나서 조율하는 과정이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이 정말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굴려보니 굴러가더군요.
<이즘 뮤직 클라우드>와의 인터뷰에서 할로우잰과의 작업이 많은 사람과 함께 해서 정말 좋았고, 그래서 곡에도 더욱 애착이 간다고 하셨는데요. 앞으로도 이러한 협업을 적극적으로 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할로우잰과의 작업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소중한 이유는 제가 선배들과 작업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우정아님도 그렇고, 할로우잰 다섯 분도 그렇고, 제가 이번 작업으로 느낀 점은, 선배들은 절대 후배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선배가 되어야지, 이런 생각마저 했었습니다. 협업은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앨범 발매 직후이니 또 다른 새로운 일을 벌일 엄두는 잘 나지 않지만, 만약 제가 또다른 협업을 한다면 책임감 있는 음악가와 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협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감인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의 크레딧을 보면 작사 명단에 키라라 님 본인의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았어요. 작사 작업을 피처링 전적으로 맡기신 건가요?
저는 성격이 너무 솔직한 사람인데, 음악 작업을 하고 이것을 가져다 팔면서 자꾸 느끼는 것은, ‘솔직한 것만이 멋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작사에 자신이 없습니다. 적어도 작사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저보다 훨씬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협업자에게 작사를 부탁했던 것 같습니다.
작사에 대해 피처링 아티스트들에게 특별히 요청한 바는 있었나요?
‘콘트라스트’의 언텔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떤 정서를 담아 작사를 해주시길 상세한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콘트라스트’의 가사는 언텔이 자유롭게 쓴 가사인데, 저는 그것이 ‘국힙’ 스럽다고 생각해서 수록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 장명선 씨의 "난 왼손으로 샐러드를 먹고 오른손으로 운전을 해 / 넌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라는 독특한 가사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샐러드’ 는 건강에 대한 음악입니다. 왼손으로 샐러드를 먹고 오른손으로 운전을 하는 일상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순간은 내가 건강해야 비로소 맞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샐러드를 먹다가, 집에서 찌개를 끓이다가, 길을 걷다 나무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다가,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명선 씨가 나열한 채소와 과일을 선정하고 배열한 기준이 있나요?
장명선 씨가 ChatGPT를 이용해 아주 랜덤한 식물들로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엉뚱한 것이 튀어나오는 것이 이 음악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설령 나뭇가지가 나오더라도 말이 되었을 것입니다.

<moves>의 “키라라는 예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은 춤을 춥니다.”가 그랬고, <4>의 “그냥 댄스 음악이니까, 재밌게 들어주세요.”가 그랬듯, 이번 <키라라> 역시 첫 트랙 ‘이 앨범의 주제’에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이라는 어구가 등장하는 것이 흥미로운데요. 이처럼 앨범 첫 트랙에 표제를 소개하고 들어가는 방식을 선호하시는 건가요?
‘떠먹여 주는’ 예술을 좋아합니다. 이 점은 제 음악이 가진 ‘명징함’이라는 성격과도 맞닿아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 앨범은 제가 ‘숫자’라는 음악으로 공연장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난 직후에 만든 앨범이라, ‘사람들은 떠먹여 주면 좋아한다’라는 생각 또한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숫자’는 정말 과할 정도로 떠먹여 주는 곡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떠먹여 주는 방식은 저에게도 익숙한 방법이거니와, 그렇게 했을 때 효과가 좋다는 자신감까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표제가 즐거움인 만큼 이전 <Sarah>나 <4>에 비하면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밝습니다. 팝 성향이 가까운 트랙들도 있고 말이죠. 스스로의 정서 상태와도 연관이 있나요?
맞습니다. 키라라의 앨범들은 모두 결국 저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인 것 같습니다. 저의 정서 상태가 가장 멀쩡하고 떳떳할 때 이 앨범을 만들었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아 이것이 제 디폴트인 양 우기고 싶어 앨범 제목까지 <키라라>가 되었습니다.
<키라라>가 “산만한 사람이 음악을 하며 근심을 쉽게 잊고 해맑아지는 경험”에 대한 앨범이라고 했던 이번 앨범 소개글이 떠오르는데요. 작품의 서사에 스스로의 경험이 영향을 주기도 하였나요?
작품의 서사보다는 작품의 전반적인 결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근심을 잊으면 사람이 단순해지고, 단순한 사람은 산만하기 쉬우니, 산발적인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앨범에 유독 코넬리우스(Cornelius), 몬도 그로소(Mondo Grosso) 등 일본 전자음악 스타일이 묻어나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인 것 같습니다. 코넬리우스와 오사와 신이치(大沢伸一), 몬도 그로소에 대한 애정은 이전에도 밝힌 적이 있는데, 특별히 이번 앨범에서 그들에게 구체적인 영향을 받은 바가 있나요?
‘콘트라스트’에서 곡의 3분의 2 지점에 감성적인 화성 진행이 나오는 것은 오사와 신이치의 리믹스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영향을 분명히 받았던 것 같습니다. ‘지구 밖’의 편곡은 많은 악기가 흐르다 끊어지다, 흐르다 끊어지다를 반복하는데, 이 부분도 코넬리우스의 <Point> 앨범에서 분명히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밝은 음악이 많은 것도 제가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일본 전자음악들의 영향이 짙은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어렸을 때 포티셰드(Portishead)나 비욕(Bjork) 같은 음악을 들었더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음악 같게 느껴집니다. 저는 저처럼 밝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한국에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름의 블루오션처럼 생각이 들어서, 자부심이 있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이라는 어구 바로 뒤에 ‘음악’이라는 제목의 곡이 나온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음악’이라는 곡에서는 어떤 즐거움을 표현하고 싶었나요?
20대 때는 음악을 만들면서 머리를 벽에 찧거나 허벅지를 꼬집는 등의 자해 습관이 있었는데, 30대 때는 저도 모르게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거나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흔들면서 작업을 하는 등의 새로운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재밌는 롤러코스터 위에 앉아있으면 비명이 절로 나오듯이, 너무 재밌어서 방언이 절로 나오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음악을 만들고자 했고, 본능적인 음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음악’이라는 단어가 나온 만큼 키라라 본인에게 있어 음악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과거엔 수단이었으나 이제는 목적이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이 비루할 때만 음악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삶이 비루하지만은 않으니, 음악을 이유 없이도 찾아보고 싶습니다. 제 자존감을 찾는 방법이 음악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을 하지 않고 길거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제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음악을 만들면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철학이 있나요?
‘있으려면 있고, 없으려면 없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음악 안에서 모든 소리들이 쓰이는 역할이 분명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모든 소리를 다 잘 들리게 한다는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음악’, 예람과 함께 한 ‘조감도’는 선공개되기도 했는데요. 특별히 이 두 곡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제 생각에 ‘음악’이 가장 이상한 음악이고, ‘조감도’가 가장 멀쩡한 음악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 두 곡을 선공개곡으로 골랐습니다.
앞서 <4>에서 트랙 제목을 서사에 활용한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각 트랙 제목이 가지는 이미지가 돋보입니다. 각 트랙의 제목은 어떻게 결정하게 된 것인가요?
딱히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곡 제목을 지은 곡은 그다지 없습니다. 곡 제목도 곡처럼 사람들에게 정보를 ‘떠먹여 주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곡 제목이 얼마나 멋있는가 보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트랙명에 조각이라는 단어가 세 번(‘조각’, ‘조각모음 1’, ‘조각모음 2’)이나 들어가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인가요?
그다지 없습니다. 스월비가 참여한 곡의 제목을 ‘파편’ 으로 할까도 싶었지만, ‘조각’ 으로 통일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각모음이라는 제목의 트랙이 2개나 등장하는 것 또한 흥미롭습니다. ‘조각모음 1’과 ‘조각모음 2’의 공통점과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조각모음’ 곡들은 앨범에서 기능적인 역할들을 합니다. 제가 앨범에서 의도한 정서인 ‘산만함’이 설득력 있으려면 산만함을 주워담는 부분들도 앨범 중간 중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반찬만 계속 먹으면 반찬 맛을 잘 모를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에 밥도 한 숟가락 가득 떠먹여 주고 싶었습니다.
‘조각모음’ 곡들은 ‘주워담는다’, ‘수습한다’의 맥락이 있기 때문에, 차곡차곡 악기를 쌓아나가는 모습, 그 스트럭쳐가 오밀조밀한 맛이 있는 음악들이 되기를 바랐었습니다.
‘증발’과 ‘격추’가 주는 이미지가 상당히 극단적인 것 같아요. ‘증발’, ‘지구 밖’, ‘격추’로 이어지는 상승과 하강의 구성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무엇이었나요?
“지구를 떠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라는 스토리텔링 외에 딱히 더 고려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 상승과 하강이 크게끔 만든 것은, 앨범을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이나믹이 있는 작업이 더 재미있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리믹스나 라이브 앨범 작업을 통해 작품의 범위를 확장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5집의 후속 앨범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앨범은 리믹스도 아닌, 라이브도 아닌, 제가 이전에 해보지 않은, 한국의 음악가들이 잘 하지 않는 새로운 형식의 앨범이 될 예정입니다. 구구절절함의 미덕을 끝장 보고 싶어서, 코멘터리 앨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발매 공지가 올라올 예정입니다.
최근 옫쏭(OddSong)과 엔드오프(Endoff)로 구성된 전자음악 듀오 튠 인 투모로우(Tune In Tomorrow)의 앨범 <too>에 리믹스 트랙 하나(’Be my summer’)로 참여하셨습니다. 그 작업은 어떤 계기로 이루어졌나요?
옫쏭님은 제가 속한 씬에서 오며 가며 자주 뵐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이었고, 언제나 그분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옫쏭님이 알앤비 보컬을 음악 안에서 녹여내는 방식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좋아했던 소리의 건조함이 옫쏭님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만나서 수다를 떤 적도 있었고, 친근한 느낌이 있던 와중에 합리적인 액수의 작업비와 함께 리믹스 의뢰를 받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리믹스 작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 옫쏭님을 좋아합니다.
이번 앨범도 그렇고, 키라라의 음악은 연계된 이미지나 오디오 비주얼 셋 공연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작품 제작에서 염두에 두었던 이미지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저는 보통 어떤 상황이나 풍경을 생각하며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에 영상을 만들 때 그 풍경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풍경이란 음악의 제목 그 자체일 것입니다. ‘콘트라스트’ 는 말 그대로 색감이나 양감의 대비, ‘조각’ 은 조각나 있는 모습, ‘조감도’ 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만약 이 곡들에 영상이 만들어진다면 모두 그 풍경들을 그대로 반영하게 할 예정입니다. 꼬아서는 안 됩니다.
얼마 뒤인 4월 무신사 개러지에서의 공연 또한 오디오 비주얼 셋으로 진행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어떤 비주얼의 영상을 볼 수 있을까요?
이번 5집에서는 총 다섯 곡의 비디오가 새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 비디오들은 모두 4월 19일의 무신사개러지 단독공연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감상 포인트는 ‘조각모음 2’ 는 영상과 소리의 싱크로나이즈가 컨셉이고, ‘Love Me’ 는 벚꽃이 컨셉입니다. 벚꽃이 피자마자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기차표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제가 도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4월 19일의 저의 공연을 인터파크 티켓에서 꼭 예매해주세요.
영상이나 공연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이 따로 있으신가요?
제가 만드는 모든 음악이나 영상에서 공유하는 철학으로 ‘텍스쳐는 재미없다’가 있습니다. 저는 어떤 그림이 화면에 있는지, 어떤 소리가 귀에 들리는지보다 그것들이 ‘언제’ 나오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텍스쳐는 저보다 다른 창작자들이 더 잘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신디사이징보다 샘플링에 훨씬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다른 창작자들이 만든 우수한 텍스쳐들을 첨예하게 배치해서 ‘치고 빠짐’이 많게 만들어 저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댄스음악을 만드는 이상, 아무리 제가 슬프게 음악을 만들어도 관객들에게 닿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공연은 정서의 전달만큼이나 공연이라는 행위의 기능적인 부분들을 우선하여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저의 직업을 가지고 하는 모든 일들 중에 공연이 가장 변수가 많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앨범이나, 레슨이나, 이것들은 제가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것이 완벽한데, 공연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연장에서 어떤 스탭이 토라져서 제 말을 안 들을지, 공연 하루 전에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저의 공연은 재밌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공연은 공연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키라라의 음악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본에 캅세루(CAPSULE), 그리고 저의 선생님인 이준오 님이 하셨던 캐스커 처럼, 2인조 듀오를 결성하여 더 대중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큰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하고, 언제 실체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더 앞으로 나아가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좋은 인터뷰의 자리 만들어주신 오버톤 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키라라의 키라라 단독공연
날짜: 2025.04.19 6PM
장소: @무신사 개러지
상세: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5003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