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그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오래 내릴 비였는지, 잠깐 지나갈 비였는지를. 전진희의 네 번째 정규 앨범 <雨後 uhuu>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피아노를 매개로 내면의 감정과 호흡하는 시간이 ‘우중(雨中)의 시간’이라면, 바깥 세계를 응시하며 반추하는 시간은 ‘우후(雨後)의 시간’이다. 연주할 때는 몰랐던 ‘우후의 시간’이 유월(六月)의 녹음(綠陰)을 타고 들려온다. 그제야 내면에서 고이고 맴돌던 음들이 바깥으로 흐른다. 이윽고 덮개를 열어 숨어있던 피아노의 현들도 숨을 쉬게 개방한다. 230개의 피아노의 현들이 ‘우후의 바람’을 타고 공명한다. 그렇게 전진희는 내면에서 외부 세계로 한 발짝 발을 내딛었다.
이러한 확장성은 현악(絃樂) 편곡에 드러난다. 프로듀서 우메바야시 타로와의 협업은 전진희의 음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럼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라는 곡명처럼 시작부터 봄의 생기와 같은 생명력이 바이올린을 타고 앨범 전반에 흐른다. 이후 녹음이 걷히듯 피아노가 등장하고, 첼로의 저음으로 주제의 전이가 일어난다. 피치카토가 만들어내는 왈츠 리듬 위로 바이올린이 춤추며 솟아오른다. ‘스트링(String)’과 ‘스프링(Spring)’이 한 끗 차이임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다. 활과 손끝의 떨림, 그 미세한 진동이 현악기가 자아내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이렇게 정제된 우아함 속에 사극과 같은 장중함이 스치고, 마치 고요한 숲에서 잠깐 느꼈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긴장과 해방을 반복하며 하나의 선율로 수렴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어지는 ‘雨後 after rain’은 그 과정의 확장판이다. A-B-A’의 구도 속에서 곡의 중후반부인 2분 11초경 짧게 등장하는 B 파트는 30초가 채 되지 않지만 분위기를 반전한다. 장조에서 단조로의 이행, 상행과 하행을 반복하는 주제 선율위로 피치카토가 흩뿌려지며, 여름날 스쳐가는 소나기처럼 순간적이되 선명한 감정의 전환을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한 계절감의 묘사라기보다 감정의 격랑을 곡의 구조 안에 효과적으로 배치한 결과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도, 전진희의 피아노는 언제나 절제되어 있다. 화려한 테크닉은 그의 담백한 진심을 전하는데 무용하기에 적재적소에 할 말만 하고, 때로는 침묵한다. 그래서 더욱 깊고 치유적이다.
전진희의 음악 여정을 돌이켜보면 하비누아주에서 시작된 ‘인디 팝’ 시절과 맞물려 발표했던 첫 솔로 앨범 <피아노와 목소리>를 기점으로 건반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목소리 대신 피아노로만 월별로 습작하듯 그려낸 <Breathing> 연작을 거치며 점차 내면으로 가닿아 왔다. <雨後 uhuu>는 그 내면이 외부 세계와 호흡하는 지점에서 새롭게 태어난 결과물이다. 정재형이 베이시스라는 대중적인 팀에서 출발해 <Le Petit Piano>(2010)라는 연주 중심의 앨범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립했다면, 전진희 역시 동일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가창이다. 정재형의 연주 앨범은 여타 피아노 앨범들이 그러하듯 클래시컬하게 가창을 배제했다. 그러나 전진희는 틀 안에 갇히지 않고 필요할 때 직접 노래했다. 솔로 데뷔 앨범과 <아무도 모르게>(2023)가 그랬듯 ‘피아노’와 ‘나’의 노래가 한 몸처럼 엮여 클래식 트랙 직후 발라드 트랙을 배치함에도 주저함이 없다.
‘여린 빛’은 그 전환의 정점을 보여주는 곡이다. 직전 트랙 ‘Summer to fall’에서 여름에서 가을로의 성쇠(盛衰)를 불안정한 텐션의 코드로 묘사하며 유영하던 분위기와 달리, 이 곡에서는 익숙한 발라드의 언어를 구사한다. “두려움에 울던 어젠”이라는 가사의 멜로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발라드 특유의 애수 어린 코드 전환과 긴장 해소 구간까지 하비누아주 시절의 대중적인 방식이 돌연 튀어나온다. 이 지점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유연함이 빛을 발한다. 다소 급작스러운 전환으로도 볼 수는 있으나 전진희라는 아티스트의 색깔이 그러하다. 팝의 언어와 클래식의 문법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 그렇기에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Dawn snow’는 발라드 트랙으로만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알베르티 베이스로 단정하게 짜인 이 곡은 새벽 기차역의 풍경처럼 느릿하고 고요하다. 일종의 인터루드 역할을 하는 트랙으로, 뒤이어 ‘괜찮나요’라는 발라드 트랙으로 자연스레 인도한다. ‘괜찮나요’는 건반을 누르는 아날로그한 잡음과 숨소리마저 담긴 곡으로 사람의 온기가 묻어나는 공기를 자아내며 내면의 고백을 이끈다. “나의 연약함이 나를 이길 때 쓰러져도 괜찮나요”라는 문장은 차마 못 쓰러지는 이들에게 쓰러져도 괜찮다고 대신 말해주는 공감의 시(詩)다. 전진희는 그 역할을 자처한다. 단단하되 무너지게 허락해 주는 음악. 이 앨범이 위로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후반부의 전환점은 ‘20250511 Intro - Live’ 트랙이다. 3분쯤, 익숙한 주제가 흘러나온다. 전작 <Breathing II>(2025)의 ‘Breathing in April 2020’에 등장했던 바로 그 주제다. 다섯 해 만에 다시 연주한 이 멜로디는 이전에 비해 훨씬 관조적으로 힘을 빼고 흐뭇한 미소로 연주하는 듯하다. 지나온 시간과 기억의 간극이 이 짧은 연주 안에 담겨있다. 여운이 가시기 전 모든 것이 끝난 후의 쓸쓸한 서정을 닮은 ‘Breathing in June - Live’가 기타 사운드로 시작된다. 전진희가 간헐적으로 사용해 온 기타는 이번에도 나일론 현의 쓸쓸한 정조를 뿜어낸다. 마치 이병우의 <기타 생각 없는 생각>(1993) 앨범의 기타와 같은 쓰임이다. 이후 스트링이 더해지고, 피아노가 대위적으로 흐르며 크레셴도로 밀려온다. 종반부에서 주제 선율 ‘솔라시솔미’가 피아노와 스트링, 기타와 합치되어 흘러나올 때 청자는 모든 것이 하나의 결말로 수렴되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곧 ‘회복’의 엔딩이다.
<雨後 uhuu>는 결코 복잡하거나 대단한 음악적인 언어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이 지닌 가장 단순한 언어와 여백을 활용한다. 전진희는 적은 말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연주하는 법을 안다. 사적인 감정이 보편의 감정으로 치환되는 접면 위에서 전진희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한다.
창밖의 숲과 방 안의 피아노, 외부 세계의 빛과 내면의 어둠이 마침내 하나의 목소리로 만나게 되는 순간. 그것이 바로 <雨後 uhuu>다. 비는 그쳤고 우리는 마침내 그것이 얼마나 깊은 시간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무너졌던 나를 다시 조금씩 일으켜 세운다. 음악은 그렇게 약한 우리를 일으켜 다시 걷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