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REVIEW

생과 사 틈의 표류, 우희준의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

by 권도엽 | 

우희준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Self-released

고등학교 시절 체육 수업으로 기억한다. 눈앞에 팔과 하반신이 없는 마네킹이 입을 벌린 채 누워있었다. 가슴팍에 하도 써서 너덜너덜해진 제세동기의 패드를 붙였다. 이명 같은 전자음이 들려오자 명치 부근에 깍지 낀 손을 올리고 힘껏 눌렀다 뗐다. 걸리는 것이 없었다. 하나, 둘, 셋, 넷. 마네킹의 흉부를 압박할 때마다 벌어진 입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숫자를 셀수록 힘은 거세졌는데 사람을 살리기에 과분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이 안에 갈비뼈가 있다면 으깨질 것 같았고 심장이 있다면 터져버리지 싶었다.

학교는 응급처치와 생명의 존엄을 가르치나 죽음에 관해서는 가방끈이 짧다. 죽음은 예방할 것, 멀리할 것, 미뤄야 할 것, 생각도 말고 말도 말 것, 해롭고 나쁜 것이다. 죽음이야 그렇다 쳐도 정반대의 삶은 진정 고귀하고 아름다울까. 그렇다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이라 말하는 우희준의 앨범은 어떻게 가능한가. 삶이 그토록 근사하다면 어째서 삶을 부정하는 예술이 존재하는가.

우희준이 5번 트랙 ‘조용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소리’에서 밝히기를 산다는 행위는 “꿈틀대고 변하고 무언가 원하고 바라고 탐하고 잊고 있고 계속”하는 것이며 “밀어내고 다르다고 믿고 무시하고 없는 채로 살고 죽고 살고”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욕구와 충동이 배타적 태도를 형성하고 악의 고리를 만든다. 경쟁 사회의 발단이다. 우리는 삶에서 은연중에 승리를 쟁취하고자 한다. 그래서 발전을 위한 자기 의심은 “이래도 되나 이게 맞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의 형태로, 내려치기 위한 핀잔은 “저게 맞나 저거 말이 되나 저런데도 살아지나”(‘노력’ 中)의 형태로 꼬리를 늘인다. 서로의 생애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음에도 “네가 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던가 “네가 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며 단정한다. 본인의 삶이 남의 삶보다 높은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 동력을 가하는 이는 우리 자신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산다는 건 이토록 죄 같은 일”이 된다. 우리는 넓은 땅에 살기 위해 “항상 밟고 일어서기만” 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다”. 학업에서 직업까지 잘 살기 위해 행하는 수많은 어용에 동반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내세로 뛰어든다. 7번 트랙 ‘넓은 집’은 살기 싫은 곳이자 부끄러운 곳이 된다. 음반의 첫 곡 ‘낮은 신’에서 “동산을 오른다”와 “얇고 가느다란 뿌리”가 가리키는 것은 이 원죄의식이 태동한 에덴과 선악과다. 창세기부터 줄곧 삶은 나쁘고 죽음은 두렵거나, 삶은 두렵고 죽음은 나쁘다. 둘은 정반대의 개념처럼 논의되지만 실은 한 몸이다. 이 세상에 “우릴 위한 도시는 없”다. (‘굽’ 中) 앨범의 마지막 전언처럼 삶이란 맑다고 믿었지만 빠져서 보니 어두운 강물이다. (‘악다구니’ 中)

그래서인지 시종일관 죽음을 응시하면서도 우희준의 사운드는 생명의 인상처럼 천진하다. 산울림의 동요 작업물을 연상시키는 거칠게 강조된 보컬과 반복적 선율이 분위기를 맑게 유지한다. 그러나 이것을 삶을 긍정하겠다는 신호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상하리만치 밝은 목소리 외에 긍정의 시도는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살아서 음악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한 마디로 그의 현주소를 어느 편의 것으로 보기엔 비약이 있다. 그렇다면 굳이 그 위치를 점하지 않고 가운데에 있다 말해두는 쪽이 적절하다. 삶과 죽음이 갈라서지 않기에 선택할 수 없는 무언가라면 삶도 죽음의 편도 거부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 꾸준히 존재한다. 삶의 악함과 죽음의 공포 중 무엇도 외면하지 않고 영원히 갈팡질팡한다. 우희준은 그렇게 앨범에 관해 스스로 소개하듯 수치심에 빠진 채 살아가거나 슬픔을 모셔두고 춤을 추는 사람으로 있다. 괴로워할 만큼 약하고 버틸 만큼 강인하다. 음반에서 생사와 강약은 함께 노닌다. 앨범과 동명인 10분이 넘는 마지막 연주곡을 보자.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 삶은 고문 같다. 그래서 그걸 어쩌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생에는 ‘심장의 펌핑’이 있고 ‘고문질’이 또 있다. 그냥 있고 그렇게 있다. 아무것도 애써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한평생을 있다.

© 2024 overtone. Designed by Dain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