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모두를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니체는 자신의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면서도 소수의 독자라면 본인의 깊은 뜻까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블루메 포포(Blume popo)가 내건 ‘eine musik für alle und keinen’(모두를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음악) 역시 음악에 소리 이상의 의미를 담아두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ost pops(popo), 팝의 다음을 말하는 행위는 곧 팝에 관한 탐구와 그것으로부터의 탈구축이다. 올해 1월 29일 발매한 <Test for Texture of Text>에서 이는 가사에 나타나는 발음을 재확인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발현된다. 2023년 싱글 ‘彼方高さから躰放ったあなた’(저 높은 곳에서 몸을 내던진 당신, 카나타 타카사카라 카라다 하낫타 아나타)를 1번으로 일본어의 아, 이, 우, 에, 오 다섯 모음을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한다.
국내의 비슷한 사례로 소울 컴퍼니의 ‘아에이오우 어?!’ 시리즈가 있다. 둘은 공통으로 시니피앙(소리)의 자유를 증명함과 동시에 시니피에(의미)에서 정합성을 갖추려 한다. 해당 시리즈가 ‘본토 힙합’을 현지화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모음을 제한함으로써 언어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본작 역시 ‘포스트팝’을 위한 실험을 위해 모음을 통일하고 있다. 앨범의 목적이 실험에 있음은 커버 아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단어가 쓰여 있는 종이를 길게 자른 뒤 이를 가로와 세로로 엮자 소리의 파형이 드러난다. 마치 일본어의 직사각형 모양 오십음도에 있는 행과 단을 각각 씨실과 날실로 음악을 직조해 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니 본 실험이 소리를 위한 실험임은 확실하다.
블루메 포포의 슬로건을 상기한다면, 이 소리를 위한 실험에도 소리 이상의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밴드의 작사 담당 요코타 단(横田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독일 혼혈인 그는 SENSA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을 보낸 일본에서 현재 독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친구들과 꾸린 밴드도 지금은 두 국가를 거점 삼아 활동하고 있다.
혼혈 이중언어 사용자들은 부와 모의 언어를 모두 모어로 인식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중 자주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퇴화하는 첫 언어 손실(First language attrition)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끈을 잡고 있지 않는다면 부모 한쪽과의 연결고리가 점차 희미해지는 셈이다. 본작에서 요코타는 이 연결을 유지하는 것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처럼, 자아를 확립하고자 한다.
<Test for Texture of Text>는 현대 언어학이 발견한 문제를 구조주의적 접근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모두 들춰냈을 때 우리는 ‘언어적 디아스포라’로서의 고민과 마주한다. 트랙을 넘기며 발견했던 모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다섯 멤버들이 품고 있는 고민의 성정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자신을 위한 음악은 모두를 위한 음악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