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구를 소재로 다룬 장면들을 떠올린다. 다짜고짜 오가는 공과, 서사를 보여준 뒤의 매치는 무게감이 달라져 있다. 같은 동작에도 더 힘이 실린 것 같고, 그것을 보는 관중의 집중력도 좀 더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힘이다. 외면으로는 알 수 없는 내면의 열기, 그것을 깨달았을 때 끓는 피는 무엇보다 강렬하다. 표제곡인 ‘American Ping Pong’도 같은 원류를 타고 흐른다. “눈물” 과 “위로” 에 의존해 노력했던 주인공을 우리는 알 수 있고, “이길 수 없어” 라고 체념하지만 그럼에도 승부를 띄우는 심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렇게 지레 부정하곤 하지만 해내려고 노력하는 화자를 앨범은 거듭 노출한다. 단죄할 수 없는 단념이 가득하다.
밴드가 스스로 내세우는 장르는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다. 스트록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등이 대표하는 2000년대 초반에 부흥한 장르.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스타일상으로 비슷하면서 더 포괄적인 개러지 록이 아니라,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라는 명명을 선택한 이유. 그 장르가 당대 깔끔한 음악을 구사하던 밴드 콜드플레이, 트래비스 등의 반대급부로 떠올랐다는 데 있다. 거칠고 쿨한 멋을 의도한 날 것. 라이브를 직접적으로 녹음한 것 같은 보컬은 정제된 단어를 거부한다. 토해내듯 불만을 쏟아낸다. 눈물인지, 땀인지 글자 위로 뚝 떨어지면 불안이 될 중간 점의 감정을.
해외에서나 알려진 음악 스타일을 통해 이들이 노래하는 주제는 더없이 현대 한국인스럽다. 이 음반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전작 <dude..>보다 파괴적인 연주 위에 직장인과 음악인, 현실과 꿈 사이 고뇌를 들춘다. ‘Holiday’가 이 간극을 잘 나타낸다. 생명력 넘치고 차분한 여름을 닮은 멜로디와 상반되게 “웃으며 영업했던 나를 보던 너의 경멸” 에 아파하고, “미뤄뒀던 벌” 을 받으러 간다고 말한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 _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한 번쯤은 봤을 테다. 이루지 못한 열망에 한탄하는 넥타이 맨 사람, 공허를 덮고자 주말이 되면 부리나케 구두를 벗어던지는 사람을. 이 ‘자해’는 이후 ‘Complexity is not mine’과 ‘404(Paul)’로 이어지다 음반은 마침표를 찍는다. 헌데 이 모든 이야기가 음악으로 발매됐다는 것은 결국 음악을 택했다는 것 아닐까? 문제는 음악을 한다고 고역이 멈추진 않는다는 데 있다. 여기서 3번 트랙 ‘Goonies’로 돌아가자. “검정치마 듣는다고 으스대던” 이가 “비틀즈 앨범 이름 하나도 못 대면서 우쭐” 대는 모습을 비꼬며 시작하는 이 곡은 역설적이게도 <201> 시절의 검정치마를 닮았다. 오마주를 숨길 생각도 애초에 없어 보인다. 도입부터 ‘좋아해줘’와 비슷하고, 귀에 꽂히는 간주도 조휴일의 작법이 연상되니까. 앨범 전체의 가사를 쓴 송그루가 전작 <dude..>에서 선보였던 꼬집는 시선, 그로부터 일군 조소와 해학이 특히 이 곡에 집약해 있다. 후발주자로서 2020년대에 서 있는 음악인의 질투, 무게감이 잘 드러났다.
“칼” 과 “피” 가 낭자한 어두운 테마의 ‘Butcher Boy’가 앨범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에 많디많은 과장된 비극은 결국 우리네 삶의 결핍으로 치환되곤 한다. 현실에서 피를 볼 수는 없으니 가상 세계에서 맘껏 휘두르고 체혈을 낮추는 거다. 앨범에서 노래하던 시샘, 비꼼, 좌절, 갈등은 삶의 불만을 음악 속에서 찌르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몸짓을 통해 무엇을 얻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 또한 ‘Butcher Boy’에 있다. “슬펐던 나의 노력이 날 배신하지 않길 바랐어”. ‘American Ping Pong’을 팽팽하게 만든 긴장감도 결국 노력이 빛을 보길 바란 간절함에서 왔을 터. 열등감에서 피어난 승부욕이 곳곳에 넘친다.
이 작품이 정우 ‘철의 삶’, 윤지영 <나의 정원에서> 등 예쁜 멜로디와 노랫말을 지닌 음악과 궤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결국 삶과 헤매는 과정을 청자와 나누고, 각자가 자기 인생의 주역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건투를 비는 주먹 인사인 건 동일하니까. 1집에서는 스타일의 차용에 불과했던 장르 채택이 2집에서는 의미를 강화하는 데도 한몫했다는 점에서 취향과 상관없이 현대인에게 권할 법한 음반이다. 결핍을 토로할 마땅한 인물이 없는 사회인이라면, 그 실타래를 음악에 던지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