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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ke enough>, 공간으로 실존을 꿈꾸기

by 이승원 | 

cover image of Oklou <choke enough>
Oklou <choke enough>True Panther, Because Music

<choke enough>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일단 팝과 트랜스(trance), 전자음악의 관계에 대해 얘기해 보자. 팝이 전자음악을 수용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고, 현시점에서는 대단히 보편적인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 디스코 리바이벌을 비롯한 댄스 음악에 대한 반작용적 수요를 불러왔음은 물론 유능하고 창의적인 프로듀서들이 드럼앤베이스를 필두로 한 전자음악의 잔가지들을 팝 시장 내부에 통째로 이식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전자음악의 수많은 갈래들이 각자의 입맛대로 팝 아이덴티티에 이식되는 와중에 유독 트랜스는 외면받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장르 자체가 고착화되면서 그 신선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다운과 클라이맥스를 포함하는 기승전결 구조의 서사적 쾌감으로 사랑받았던 장르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틀에 박힌 구성에 사로잡혀 버렸고, 이에 피로감을 느낀 리스너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신세대들에게, 종종 과해지는 감정선은 전혀 ‘쿨’하지 않았고 브레이크다운의 빌드업은 간혹 잔잔하다 못해 지루했다. 자극적인 사운드가 범람하는 시대에 1분가량의 느긋한 빌드업을 기다려 줄 만큼 여유 넘치는 관객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은 비단 관객뿐만이 아니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로, 트랜스는 근래 팝 시장이 요구하는 방향과도 철저히 어긋나 있었다. 빠른 소모와 즉각적인 전달이 트렌드가 된 시점에서 트랜스의 구조적 경직성은 대단히 부적절했고 지나치게 고착화된 패턴과 뻔한 클리셰 역시 팝의 입맛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렇듯 오랜 기간 팝 시장과 EDM 씬에서 동시에 외면받아 온 장르인 트랜스가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치포크(Pitchfork) 필립 셔번(Philip Sherburne)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Y2K 미학 및 노스탤지어와 긴밀히 연결된다. 실제로 Isyti의 <bootleg(+)> 같은 작품은 2000년대 비디오 게임풍 배경의 앨범 커버와 함께 당시 비디오 게임에 실제로 등장할 법한 사운드를 하드 트랜스 구성에 유려히 녹여냈고, Y2K 서브컬쳐 미학을 기반으로 부상한 장르 헥스디(HexD)와도 트랜스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더불어 TDJ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트랜스를 풍자적인 렌즈로 왜곡하며 장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데, 이는 초기 PC 뮤직의 사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PC 뮤직이 그랬듯, 누군가 이 외골수 장르를 팝의 요구에 맞춰 변형하는 것도 가능할까?

Y2K 노스탤지어, 드림코어, 파티 걸 에스테틱이 어우러진 ‘take me by the hand’ 뮤직비디오. Y2K 에스테틱과 트랜스에 조예가 깊은 드레인 갱(Drain Gang) 소속 래퍼 블레이드(Bladee)와 함께한다.

이제 오케이루(Oklou)와 그녀의 정규 데뷔작 <choke enough>를 들여다보자. 언뜻 <choke enough>는 마치 2020년대 트랜스 트렌드의 형식과 미학을 팝(장르로서의 팝)의 성향과 적절하게 융합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물론 그녀가 트랜스 형식을 <choke enough>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미학적인 측면부터 볼까. 작품은 Y2K 노스탤지어와 파티 걸 에스테틱 사이에 위치하며 근래 트랜스 계열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충분한 교집합을 가진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맥락은 마찬가지. 타이틀 트랙 ‘choke enough’를 비롯한 다수의 수록곡은 트랜스가 으레 가지는 점층-점강의 구조를 수용하고 있고, 앰비언트 브레이크다운 이후에 클라이맥스가 등장하는 구성을 활용한다. 물론 이는 전성기 트랜스의 색채와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니며, 오히려 Isyti나 TDJ, DJ Courtesy 등 근래 트랜스 제작자들의 방향성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기존 대중적 트랜스가 가지던 껄끄러운 요소들, 이를테면 지나친 과장이나 지루하고 뻔한 진행 등을 최대한 억제하고 이를 더 침착하고 부드러운, 현대적 입맛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교정했으니 말이다.

물론 <choke enough>의 오케이루는 여기서 더 나아가 비트의 반복적인 압력마저 절제, 작품의 조성을 단숨에 기체에 맞먹는 수준으로 경량화하여 그녀의 기존 사운드 영역 가까이로 편입시킨다. 타이틀 트랙 ‘choke enough’를 볼까. 비트의 존재감은 비교적 경미하며 그 자리를 침착하고 산뜻한, 하지만 밀도 높은 공간감이 대신한다. 이는 습도 높은 앰비언트로 무게감과 부유감을 동시에 구성한 직전 믹스테이프 <Galore>나 2019년 ‘What’s Good’의 연장선으로, 본작은 이에 신스 플루트, 트럼펫 등의 악기 활용이나 독특한 클래식 터치, 과감한 베드룸 팝 접근(’blade bird’)을 더하기도 하며 앨범이 단순 장르의 차용을 통해 Y2K의 감각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닌, 장르의 본질적 철학과 구조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서사와 색채를 확장하는 작품임을 시사한다.

<choke enough>의 작법이 유독 독특해지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작품은 어떠한 이미지나 상황, 노스탤지어를 떠올리는 공상의 과정을 트랜스의 구조적 특성을 통해 시각화함으로써 심상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그 전달력을 끌어올린다. 예를 들어, 계곡을 보고 어릴 적 친구와 물놀이를 하던 기억을 연상한다고 해보자. 우선 우리는 계곡을 본다. 계곡이라는 배경을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우리는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고, 친구와의 대화, 물이 닿았을 때의 감각, 당시의 분위기… 이런 파편적 기억들을 차근차근 떠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그 장면에 동화되어 감정에 젖어 드는 순간이 찾아오고, 뒤이어 생각은 마무리된다. <choke enough>가 악곡 진행을 통해 형상화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으로,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이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악기를 추가하다 어느 순간 표현을 극대화하는 특유의 진행을 통해 작품의 흐릿한 사운드가 구성적 명료함을 획득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작품의 쾌락 양상 역시 이러한 구성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물론 <choke enough>는 엄밀히 말해 트랜스 작품이라기보다는 트랜스의 요소를 활용한 앰비언트 성향의 얼터너티브 팝/알앤비 작품으로, 트랜스 구성을 완전히 벗어나는 트랙도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작품이 청취에 있어 쾌감을 형성하는 방식은 ‘choke enough’ 같은 트랜스 트랙이 가지는 그것과 전반적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주제 선율의 반복 속에서 악기가 등장하는 순간과 그 점층의 쾌감, 사운드가 극대화되며 감정선이 최고조를 향하는 때의 환희, 환희 이후 사운드가 점강할 때 잔존하는 소리 파편이 주는 여운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것이 최근 FKA 트위그스(FKA twigs)가 ‘Eusexua’에서 트랜스를 활용했던 방식과 동일한 것이냐는 데에는 의문이 남지만, 두 인물 모두 트랜스를 어떠한 구성적 쾌감의 도구로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또한 ‘Eusexua’와 <choke enough>는 ‘부재(不在) 속의 실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을 가진다. 물론 <choke enough>는 ‘Eusexua’의 경우보다 부재 쪽에 더 큰 무게추를 두며(예컨대 ’Eusexua’의 화자는 Eusexua라 불리는 초월적 실존 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지만 ‘choke enough’의 화자는 실존 감각을 느끼기 위한 수단에 해당하는 ‘교통사고 내기’를 가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부재, 결핍, 취약의 정서는 작품의 사운드를 결정하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오케이루가 보컬을 사용하는 방식은 주목할 만하다. 당장 오케이루와 가까운 관계인 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의 경우와 비교해 볼까. 색채와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악곡 위에 군림하는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의 캐롤라인 폴라첵과 달리 <choke enough>의 오케이루는 보컬의 진행 방향과 지위, 색조를 주변 악기들과 같거나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하며 화자의 존재 감각을 의도적으로 차단한다. 이는 악곡의 진행을 매끄럽게 다듬어줄 뿐 아니라 청자로 하여금 화자가 제시하는 개인적 서사와 부재의 정서를 손쉽게 스스로에게 전이하고 이를 보편적 노스탤지어로까지 확장할 수 있게 한다.

"트랜스 음악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공간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입니다. (…) 독일에서는 이것을 '플루흐트푼크트(fluchtpunkt)' 라고 부르는데요, 모든 아이디어, 예측, 꿈, 희망, 상상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뜻합니다. 현실과 전혀 연결되지 않은, 시뮬레이션이죠.”

-하인리히 다이슬(Heinrich Deisl), 음악 저널리스트-

"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는 단순히 좋아하는 음악의 한 종류를 넘어… 거의 종교적 경험에 가까워요. (…) 그리고 평범한 삶에서 우리가 놓치는 유대감에 대한 것이기도 하죠.”

-아르민 판 뷔런(Armin van Buuren)-

<choke enough>의 오케이루는 소리로 어떤 공간을 직조하고, 그 안에 그녀의 여러 생각, 결심, 꿈, 희망, 상상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하나 주목할 점이 있다면 그녀가 그 공간을 가득 채우지 않고 오히려 한참 남겨둔다는 것으로, 마치 나머지 공간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채워달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번 그녀가 내민 손길에 응해볼까. 그녀와 우리의 결핍 가득한 삶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은 어떤 유대감에 관한 이야기가 되고, <choke enough>는 그로써 하나의 창의적 어법을 가진 얼터너티브 팝 걸작을 넘어 보편적 애수와 치유의 힘을 지닌 한 편의 공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