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REVIEW

HAVE YOU EXPERIENCED <EUSEXUA>?

by 권도엽 | 

cover image of FKA twigs <EUSEXUA>
FKA twigs <EUSEXUA>Young, Atlantic Records

선공개 싱글 발매 전 유튜브에 “HAVE YOU EXPERIENCED EUSEXUA?”라는 제목의 비주얼 티저가 올라왔다.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에는 컬트 아티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 차례로 ‘Eusexua’를 논한다. 이들의 외형과 행위, 정체성은 매우 다채로우며 <EUSEXUA>의 젠더적 태도가 범성애적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트위그스는 공공연한 LGBTQ의 지지자다. 트위그스 뿐만 아니라 그간 하이퍼팝을 위시한 유수의 전자음악과 LGBTQ의 연결고리는 과거 펑크나 힙합의 사회적 맥락에 준하는 목소리를 확보했다. 차별점이라면 여전히 반문화로 간주되곤 하는 펑크나 힙합에 비해 전자음악은 ‘팝’의 지위를 누린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를 수놓은 찰리 XCX의 <brat> 신드롬이 이를 증명했고, 우리는 그것을 brat summer라고 불렀다. 그리고 ‘Eusexua’ 발매 직후 EUSEXUA FALL이라는 별칭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만 의아함이 남는다. ‘Eusexua’란 트위그스에 의해 창안된 Euphoria와 Sexual의 합성어로, 극도의 희열과 성적 함의를 지닌 “인간 경험의 극치”다. 심지어 트위그스가 활용하는 전자음은 청각적 쾌감을 추구하는 데 있어 현존 최선의 도구다. 특정 소리를 본래 직조하는 기능 덕분에 부단한 음향적 혁신을 이뤄낸 전자음악은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기 수월하다. SOPHIE의 ‘LEMONADE’를 듣고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감 반응)을 떠올리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시 말해 쾌락을 지지하는 동시에 LGBTQ를 지지하는 일은 모순 같다. LGBTQ에 대한 지지는 공정성과 밀접하나, 전통적으로 쾌락은 윤리의 배면에 있다. 인류는 오랜 시간 그것을 타락으로 여겼다. 유혹에 이기지 못해 선악과를 탐한 최초의 인간은 원죄를 껴안았고, 쾌락을 숭배해 손에 닿는 족족 황금이 되기를 바란 왕은 자기 자식마저 금덩어리로 만드는 참극을 벌였다. 쾌락은 연약한 인간에게 권모술수를 유도한다. 트위그스가 <EUSEXUA> 발매 이전의 시간을 “치유의 여정”이라 일컫고 전 연인이던 배우 샤이아 라보프의 성적 학대를 고발한 사실을 떠올리면 의아함은 커진다.

하지만 정말 쾌락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지대할까? 그렇지 않다. 쾌락은 현대에 더 이상 윤리에 저촉되지 않는다. 윤리와 달리 쾌락 자체는 가치판단 용어가 아니다. 자신의 잣대에 맞추어 강요된 도덕이야말로 비윤리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 흑인이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 식민지 치하에서 이름 석 자를 고수하는 것, 이 모든 일은 당대 권력의 입장에서 부도덕한 일이었다. 과거에 그랬고 지금에도 일부 그렇듯 도덕은 올바름을 가장한 억압이다. 동성애가 범법인 사회에서 동성애자에게 쾌락의 추구는 해방이다. 쾌락은 도덕을 타파하는 기제이며 경우에 따라 도리어 윤리적인 것이다.

이것이 트위그스의 음악이 일찍이 ‘일그러진 알앤비’로 불리며 규범적 (혹은 장르적) 해석을 거부한 근거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은 기이하다던가, 폭발적이라던가, 불안하다던가, 처연하다던가 하는 여러 수식이 가능함에도 한 가지로 종합되지 않는다. 이를 받치는 이질적인 장르의 교합과 전통적 전개를 뭉갠 불확실한 흐름은 해체주의적이고도 무정부주의적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미(美)와 거리가 먼 이미지나 사운드 역시 그렇다. 또한 가사는 희미한 화자나 비선형적 언어로 가득한 단상뿐이다. 그 누가 이곳에서 기호와 이데올로기를 논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러한 난장에서도 쾌락의 구현만큼은 강화된다. 아티스트가 비록 음악은 아닐지라도 정신만큼은 테크노에 있다 말했듯, 레이브 씬의 격렬함은 음반 곳곳에 즐비하며, 어느 때보다도 적나라한 육체에 대한 묘사는 음악 내외로 거듭된다.

쾌락은 어느 편에도 해당하지 않는 투명한 감각이다. 그것이 본능의 충족을 뜻한다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표현의 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윤리의 배면도 아닐뿐더러 삶의 배면에도 둘 수 없다. 예술의 배면에는 더더욱 둘 수 없다. <EUSEXUA>의 희열은 그러한 희열이다. 윤리도, 삶도, 예술도 등지지 않기 위해 그 무엇도 묘사하지 않는 희열이다. 비주얼 티저의 질문을 상기하자. 당신은 그런 희열을 느껴본 적 있는가? 당신은 진정 외형에 상관없이, 맥락에 관계없이, 사상이나 젠더에 얽힘 없이 순수한 전율을 감각한 적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여전히 대답을 유보해야 한다. 그러나 다행히 트위그스는 그렇게 냉담한 예술가는 아니다. 분명 당신의 대답 유보는 <EUSEXUA>를 재생하기 직전까지나 유효할 것이다.

© 2024 overtone. Designed by Dain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