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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whY - <POP IS CRYIN’>

by 이승원|

cover image of Bewhy <POP IS CRYIN’>
Bewhy <POP IS CRYIN’>Opus Magnum

이전 BewhY의 음악은 어딘가 억센 구석이 있었다. 화려한 랩 테크닉과 거룩한 신념, 웅장한 음향 구성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작품은 언제나 청자를 압도하려는 태도를 취했고, 그에 대한 청자의 호오 역시 이러한 지점에서 발생했다. 긍정적인 시각의 경우 그의 음악에서 놀라운 예술적 압도감을 느낄 수 있었을 테지만, 부정적인 시각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다소 권위적으로 다가올 여지가 있었다. 예컨대 ‘가라사대’나 ‘찬란’ 같은 곡에서 드러나는 그의 관념적 주제는 BewhY 본인을 마치 씬의 고고한 메시아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방식은 기존 힙합의 일반적인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어쩐지 간혹 자랑보다는 선언처럼 들리곤 했다. 지극히 사적이고 퇴폐적인 질감으로 선회한 그의 오랜 친구 C JAMM의 행보와 달리 여전히 웅장하고 고압적인 사운드를 추구해 온 그의 음악적 색채 또한 어딘가 높은 위치에서 씬을 내려다보는 인상을 주는 일이 잦았다.

그의 7년 만의 신작 <POP IS CRYIN’>이 특별한 지점은, BewhY가 그 스스로 성자의 지위를 내려놓음에서 출발한다. 이전 두 개의 정규 앨범 <The Movie Star>와 <The blind star>에서 스스로를 Star로 지칭했던 과거와 달리 본작 <POP IS CRYIN’>의 BewhY는 그 스스로를 POP(아빠/아버지)으로 묘사한다. 씬을 대표하는 스타의 자리보다 두 딸의 아버지라는 사회적 지위가 그에게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제 그는 씬의 고고한 꼭대기로부터 벗어나, 두 딸과 아내의 옆이라는 매우 인간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미래와 하느님 아버지를 동시에 올려다 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고난과 갈등, 후회는 작품의 가장 큰 주제가 된다.

작품에 따르면, 그가 이러한 시각의 변화를 보이게 된 계기는 그의 사업적 실패에 있다. 내로라 하는 레이블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차린 본인의 레이블 Dejavu Group은 연이은 상업적 부침과 불미스런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불과 한 달여 전 해체 수순을 밟았고, 그 외에 참여한 주류 사업과 클럽 사업 역시 코로나19와 이태원 참사의 여파로 인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쇼미더머니 5> 이후 몇 년 간 씬의 상업적 꼭대기에서 군림하는 듯했던 그가,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만에 처자식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BewhY 본인의 이러한 경제적 위기에서 출발하는 본작은, 그렇기에 보다 성공과 부에 집착하는 양상을 띤다. 이전 그가 주로 다루던 관념적 주제보다 성(盛)과 쇠(衰)에 관한 현실적 주제가 주를 이루며, 작품의 사운드 역시 그에 보폭을 맞추는 모양새다. ‘웅장함’ 혹은 ‘압도감’이라는 인상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그의 감각적 방향성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적 방향성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전에는 그의 사운드적 압도감이 주로 관악이나 현악의 고압적 연주를 통해 실현되었다면, 본작의 압도감은 주로 왜곡되거나 과장된 전자음을 통해 구축된다. 프렌치 일렉트로의 도회적/기계적 감각부터 <Yeezus>(Kanye West/2013)나 <Big Fish Theory>(Vince Staples/2017)의 전자적 실험, Rage의 과잉친화적 경향성까지 넓은 방면을 아우르는 본작의 방법론은, 주로 장엄한 인상을 주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도리어 집착스럽고 세속적인 질감을 띄게 된다. 철저히 절제된 채 진동하는 음향이 집요함을 보이는 것도, 그 위에서 뚝뚝 끊어대는 랩이 때때로 강박증적인 인상을 주는 것도, 모두 작가가 의도한 방식이다.

본작의 소리가 세속적인 인상을 주는 까닭은 화자인 BewhY가 재물이라는 마몬(Mammon)의 영토에 스스로 발을 담갔기 때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크리스트교의 범용적 미덕인 청빈에서 벗어나 재물을 축적하기로 결심한 BewhY의 선택은 신도 이병윤을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게 만든다. 혹시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마몬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든 것이 아닐까? 본인의 선택에 필연적으로 딸려 오는 종교적 의심은 그를 편집증으로 내몰고, 그러한 편집증 속에서 감행한 현실적 선택은 때때로 지독하고 고약해진다.

앞서 언급했듯, 반복되는 고뇌와 의심 속에서도 그가 재물의 길을 집착하게 되는 배경에는 그의 가족이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울타리 속, 본인의 처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자유는 지금의 그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어서, 감히 성경의 말씀과도 그 경중을 따질 수 있게 되었다. (공산주의에 엿을 날리거나 하는 그의 정치적 수사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의 축적을 긍정하는 화자에게 공산주의의 철학은 결코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가족의 안녕을 위한 경제적 자유와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 두 절대적 가치 사이 반복되는 저울질 속에서 결국 그가 찾아낸 방안은 명쾌하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8/KRV),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KRV)라는 성경의 두 명제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그는 재물에 지배당하는 대신 그 위에 군림하려 든다.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배를 채운 예수처럼, 재물을 자유롭게 거느리고 지배한다면 이를 섬기지 않고도 가족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예수에 가까운 수준의 초자연적 힘이 필요하다. 본작의 BewhY가 STIGMATA, 즉 예수의 성흔을 얻고자 하는 까닭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성흔은 주로 성자의 손에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그는 이미 고결한 성자의 신분이 아닐 터.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그의 손에 드러난 성흔은,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창작물에서 주로 묘사되는 것처럼 예수에 가까운 초인간적 능력을 상징한다 보는 편이 더욱 알맞을 것이다.

가족의 안위라는 다분히 개인적인 동기로 갈구하는 그의 성흔은 성 프란치스코나 비오 신부 같은 성인의 그것과는 명확히 다른 것으로, 이러한 부분에서 <POP IS CRYIN’>은 그의 가장 인간적인 작품이라 칭할 만하다. 분명히 정해진 것은 가족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아비의 결심 뿐, ‘가라사대’나 ‘찬란’ 같은 곡에서 행하던 권위적 선언이나 공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나약한 인간 한 명의 선택과 후회, 갈등이 존재할 뿐이다. 동기와 맥락, 궁극적 목표까지 작품의 모든 서사적 부분에서 인간적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에 이전보다 더 큰 호응이 따르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무결하게 군림하는 자보다 어느 정도 빈틈을 보이는 사람에 더 큰 호감을 보이기 마련이니까.

작품의 괄목할 만한 부분 역시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서 비롯된다. E SENS의 ‘Next Level’이나 Deepflow의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이 보여준 서사적 단단함을 연상시키는 트랙 ‘악수’는 단연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앨범의 여러 트랙 중에서도 특히 괄목할 만하다. “박재범 거르고 손심바”, 소위 ‘박거손’이라는 세간의 연민 섞인 조롱에 정면으로 응답하는 본 곡은 박재범의 AOMG를 비롯한 주요 레이블들의 영입 제안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며 청자로 하여금 편하게 곡의 서사를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심경을 거의 그대로 드러내는 곡의 사실적 발화와 Lacoste - Louis Vuitton - Rolex, 홍대 - 여의도 - 압구정, 지하철 - 택시 - 자차로 이어지는 경제적 점층 구조는 상당히 단순하지만, 메시지의 사실성이 곡의 미학적 핵심이 된 시점에서 이보다 더 화려한 수사가 붙는 것 또한 일종의 사족처럼 느껴진다.

작품이 서사적으로 특별한 또 하나의 부분은 화자가 선택의 근거를 여전히 기독교적 가치관 속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확실히 이전까지 그의 종교적 수사는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졌다 평가하기 어려웠다. 개신교의 영향이 비교적 큰 우리나라에서조차 그 통계적 비율은 약 20%에 불과하며(2025/한국리서치), 힙합 장르의 주 청취층인 10~30대 남성을 대상으로는 그 영향이 더욱 미약한 수준이다. 오히려 해당 연령대 남성들에게는 개신교에 대한 호감보다 반감이 더 크게 작용하리라 보는 편이 알맞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종교적 색채가 부가적인 방식으로 사용된 본작은 청자에 거부감을 줄 여지가 비교적 크지 않고, 오히려 독특한 수사적 스타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현석이 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기독교 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공수레공수거’ - ‘알면서도’의 서사 구성은 믿음이 없는 청자에게도 충분히 위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시선에 맞서 고고히 저항하는 인물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물론 작품 내 BewhY가 보이는 태도와 그의 최종 선택이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경제적 압박에 흔들린 그가 그저 본인의 선택을 종교적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평가할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실제로 그가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모순적 동물이며, <POP IS CRYIN’>의 핵심적 매력은 그러한 BewhY의 인간적 성질을 바탕으로 발아한다. 하나님의 아들과 두 딸의 아버지, 두 개의 정체성이 공존하며 발생하는 필연적 모순을 스스로 인정하고 직면함으로써, 그는 고고한 메시아의 가면을 벗고 한낱 인간의 형상으로 세상 앞에 우뚝 선다. 이렇게 숭고와 거룩함, 권위적 압도감 대신 인간 이병윤 그 자체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본작은, 그의 가장 강력한 작품이자 BewhY라는 아티스트의 실존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장의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