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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을 한 몸에 받는 한로로의 대응

by 정기엽|

cover image of 한로로 <애증>
한로로 <애증>authentic

이러나저러나 한로로가 작년 이룩한 성과는 대단했다. 2023년 작 ‘사랑하게 될 거야’와 작년 발표한 ‘0+0’이 쌍두마차로 국내 음원 차트 최정상에서 경주를 벌이고, 멜론 뮤직 어워드 등 연말 무대에도 등장하며 여러 차례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초등학생들의 흥얼거림 레이더에 아이브 다음 한로로가 오를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일반적인 보폭 이상으로 발 빠르게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폭발적인 성공가도 사이에 쏘아올린 <애증>은 그간의 커리어를 함축한 싱글이다. 지난 앨범들의 편곡을 맡은 음악적 파트너 Ryo와 진동욱이 각각의 축을 담당했으며, 꾸준히 표현한 짓눌린 상처를 견디고 사랑을 찾아 나서는 낭만적 화자를 “애증”이라는 두 글자에 보기 좋게 눌러 담았다. 다만 그저 청춘의 1인 혹은 가상의 소녀이던 화자를 본인으로, 직접적으로 설정했을 뿐. 마침 상황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음악 스트리밍 차트와 도서 베스트셀러, 두 분야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며 <자몽살구클럽>과 한로로를 둘러싼 언쟁은 과열된 게 사실이다. 화두는 문학성과 음악성에서의 잣대로, 쉽게 말해 “그 정도냐”는 비아냥의 살이 폭주한 것. 인기에 딸린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겁지만, 억울한 면도 확실히 존재한다. 전작이 서사를 떼놓고 음악만 보면 설득력이 부족한 작품이긴 했지만, <자몽살구클럽>처럼 자극적인 요소를 옅게 다룬 동시대 문학은 얼마든 있다. 그리고 소위 “오그라드는” 감성을 가졌다고 한들, 그러한 표현법이 오답도 아니다.

감성의 초점이 다른 사람들한테 오글거린다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도 안했으면 좋겠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구

2014년 10월 19일, 종현 트윗
https://x.com/realjonghyun90/status/523521812697595904?s=20

인터넷 파이에 한로로가 차지하는 트래픽이 늘어남에 따라, 자신을 겨냥한 많은 활에 그는 노래로 대답한다. “모두가 쉬운 마음으로 나를 미워하지만 몇 초 뒤면 사라질 감정엔 관심 없어요”라고. “언제부터 날 그렇게 못 본 척했었나요”라고. 그야말로 애증이다. 사랑 속에 체득한 초연과 증오에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그림자가 담겼다.

Ryo가 참여한 ‘게임 오버 ?’는 <자몽살구클럽>의 일본풍 연주가 주를 이룬다. ‘내일에서 온 티켓’, ‘용의자’ 같이 작중 비교적 신나는 리듬의 명맥을 잇는 듯 질주하는 기타 리프 아래 전작 속 동아리를 대신해 게임에 빗대어 컨셉추얼한 가사를 풀어낸다. 전작 작품의 주인공들에게 바치는 엔딩이 작년 공연에서 선보인 미발매곡 ‘너와 나’라면, 이 음악은 집필을 마친 한로로의 작가 후기쯤 되어 보인다. “저기는 목숨이 세 개지만 여기는 목숨이 단 하나야, 아까운 만큼 뛰어들어”라는 가사는 그가 창조한 아이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

고초를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무거운 심정을 가볍게 버무리기에 게임 콘셉트는 마땅한 선택지다. 힘든 퀘스트가 넘쳐나는 세계를 체험하지만 플레이어는 안전을 보장받는다. 마치 한로로라는 캐릭터를 지켜보는 대중처럼. 그의 서사에 몰입한 층위에게 후렴의 “나 역시 가만히 잠들 수는 없어요”라는 용기의 맥락은 더 없이 힘 있는 전파일 테다. 사랑에 대한 관찰이 소외를 야기하듯,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까지 설득시킬 수 있냐는 의문엔 석연찮은 물음표가 남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담은 이번 싱글에서 타이틀인 ‘게임 오버 ?’보다 귀에 걸리는 곡은 ‘1111’이다. 생일에서 비롯된 제목이 노랫말을 완성한다. “사랑하는 것들”과 “미워하는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과정을 빼어나게 담았다. 애써 청춘을 포괄하려고 주어를 전체에 양보하지 않고, 본인의 일과를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 커다란 울림을 낳는다. 감정의 표류 속에서 방황하는 자, 거친 ‘파도’를 어느덧 감성의 대표 키워드가 된 ‘윤슬’로 탈바꿈한 과정이 단순히 단어의 포장 공정 속에서 이뤄진 게 아님을 한 곡으로 표명한다.

이야기의 적절한 음악 토대를 만든 데카당 진동욱의 편곡도 훌륭했다. 록 음악을 장르 삼은 한로로가 본격적으로 밴드와의 합을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한 <집> 또한 그가 감독했음을 떠올리자면 진동욱은 한로로에게 더없을 음악적 파트너다. 음악 선배를 넘어 ‘선생님’이라고 지칭하는 애착이 상호 간의 이해에서 왔음을 증명하듯, 한로로의 목소리로 차마 닿을 수 없는 구석까지의 외침을 가득 들어찬 연주로 가능하게 한다. 2022년, 2024년보다 정돈된 조우가 아리따운 시너지를 일으켰다.

한로로가 커리어 내내 전달한 이야기는 쉽게 함축된다. “그럼에도 사랑”. 인본주의에 가까운 일관된 주제를 통해 심지를 굳히고 나아가고자 하는 결심을 <애증>에 담았다. 음악과 문학성이 비록 100퍼센트의 기량이 아니라는 의심의 촉에 매달려 있지만, 자랑할 만한 장점임은 분명하다. 꼭 100점을 맞아야만 으스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열심히 “행운을 빈다”는 희망의 표현 “Toi toi toi!”를 대중에게 설파했을 뿐인데 Toy, 장난감 취급을 받은 그의 억울함도 적당히 토로하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적당한 채비 역시 좋은 타이밍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