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븐틴의 새로운 유닛, 디에잇과 버논의 <V8>은 장르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키라라, 한정인과 퍼렐 윌리엄스 등 의외의 참여진이 만든 음악 그리고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혼재된 가사는 개인에게 가장 편한 방식을 존중하는 문화 다양성을 표현한다. 이태원이 연상되는 언더그라운드 전자 음악 특유의 서술법을 해치지 않고 K팝 필드에 끌어들였다. 방황과 해탈, 낙관, 부자유 속을 허우적대며 갈망하는 자유. 세부 장르 혹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던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해냈다. 그러고 보면 K팝은 원래 이랬다.
하이퍼팝이 완연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고 에스파 ‘Savage’, 이브 ‘Viola’ 등 K팝에서 널리 쓰여 왔다. 하지만 장르 그 자체를 담았다기보다 재료로의 차용에 가까웠다. 다소 직설적으로 논하자면, 서브컬처에서 이름을 알린 프로듀서 내지는 아티스트를 초빙했다고 하더라도 수익을 담보로 문화적 지명도를 빌리는 차용증처럼 쓴 셈. 이 과정에서 자본과 문화의 교집합이 일어나고, 좋은 퀄리티의 대안이 더러 피어났다. 정상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이들이 하위문화를 표류하며 일어난 이질감은 오히려 클럽 등지로 떠밀려 간 아픔을 달래는 현상이 일어난다. 공익광고는 전체를 감싸기에 누구도 위로하지 못하는데, 되려 K팝은 전체를 안으려 드는 그 지점 때문에 사랑받는다. 뭉뚱그림이 이해받는 토양이다.
그렇다곤 해도 포괄의 논리에서 벗어난 K팝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진 않는다. 하이퍼팝 레이빙에 둘이 올라탄 모양새인 이 앨범이 반가운 이유다. 당장 아일릿의 <MAMIHLAPINATAPAI>나 르세라핌 <’PUREFLOW’, Pt.1> 같이 하이브 안에서 나온 결과물들 속에서도 클럽 튠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본작은 전체가 연대에 얽힌 전자음악과 내통한다. EP의 일관성을 확보함은 물론 문화적 코드를 이식한 작업은 ‘슬프게 춤추는, 슬프기에 춤추는’ 감도를 읽어냈다. ‘BEAT’ 속 “B2B”, “808”, “FX” 등의 맥락이 자연스럽게 투영되는 점, ‘girlsnboys’ 속 세상은 온통 증오로 넘치고, 모두가 지쳐 있어서 그렇다는 중론과 “사랑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자” 는 메시지는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퍼레이드와 페스티벌들이 표어 삼는 “환대 그리고 지지”와 다르지 않다.
타이틀인 ‘singasong’은 묵직한 관념을 뒤로 숨기고 모든 것에 무게감을 싣지 않았다. 복잡한 로직을 뚫고 가볍게 흐르는 신디사이저 리듬이 이를 정확히 포착했다. 믹싱 방향이 달랐더라면 아예 파묻힐 얇은 소리, 흐느적거림에 가까운 보컬은 초반에 언급한 방황과 해탈, 낙관을 품었다. 흔히들 베뉴라고 부르는, 음악이 흐르는 소규모 공간에 가본 이들이라면 목격했을 몸부림에 가까운 춤을 추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안무에 들어간 셔플 댄스까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움직임을 선정한 모든 결정이 탁월하다. “I feel like Mechatok” 이란 가사를 부르는데, 실제로 메카톡이 참여한 이 곡은 거대한 유머 같다. 비트를 제공한 그가 작년 비슬라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들은 더 깊은 이해를 돕는다.
“나는 늘 내가 팝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결과물이 꼭 팝처럼 들리진 않지만, 평행 우주 어딘가에서는 내가 만든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우주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길 바란다. 물론 언더그라운드의 일부로 있으면서 책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고, 여러 컬렉티브에 참여해왔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항상 ‘팝적인 걸 만드는 사람’이었다.”
비슬라 매거진, <[Wide Awake], 팝이라는 축 위에서 확장되는 Mechatok의 세계> 중에서
독일 음악 프로듀서이자 DJ인 그의 바람이 먼 타지인 한국에서 일어났다. 사각 점을 묶어 화살표를 만든 이 디지털 프렌들리한 앨범 아트도 메카톡이 만들었다고.
세븐틴 정규 5집 <HAPPY BURSTDAY>에 수록된 ‘Bad Influence’에 이어 본작의 ‘girlsnboys’에도 퍼렐 윌리엄스의 프로듀싱이 들어갔다. “I’m miserable” 로 시작해 “다른 듯 똑같아” 로 닫는 이 곡은 청춘이 시끄러운 음악 속 춤추는 이유를 함의한다. 퍼렐 윌리엄스의 색깔이 크게 드러나진 않고 팝적인 색채가 강조됐던 작년의 콜라보와는 다르게 특유의 드럼과 베이스, 후렴 멜로디 등 모든 게 퍼렐 리듬임을 표명하는 <V8>이 각자의 음악 색채 존중 속에 탄생했음을 증명한다.
키라라와 한정인이 참여한 버논 솔로곡 ‘mia’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협업의 사례인 이 음악은 작업자들이 남긴 후기를 인용하며 포문을 열고 싶다. 전문은 각각 키라라와 한정인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들의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했음을 알린다.
“mia는 키라라 라는 이름을 쓰는 무슨 홍대 인디 고인물 음악가가 최초로 발매하는 케이팝…입니다 살면서 정말 무지하게 많은 케이팝A&R 분들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언제나, 띠용 제가 왜요? 저는 너무 감성도 다르고 자격이 없는데요? 저보다 절실한 사람들 많잖아요? 같은 생각들이 뭉게뭉게 들었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 중 그 누구도 제가 작업을 해야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수많았던 연락들의 양에 비해 내가 케이팝 작업을 집도“하고 싶게” 만들어준 A&R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저의 생각은 마침내 비뚤어져버림… 그 후로 저는 연락이 올 때마다 이상한 이유를 대며 도망다니기에 이르렀는데… 그러다가 버논 님을 만나게 됩니다 (중략) 고마운 것은, 제가 이 작업을 하고 싶어지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어떤 액션을 해주셨다는 것, 그리고 저에게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줬다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계층에 속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기에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상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버님(버논)이 이런 나의 생각을 최선을 다해 부인해주셔서 그게 돌이켜보면 너무 고맙습니다 나는 정말 하면 안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정말 덕분에 알았다니깐요”
키라라 인스타그램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곡을 써준 적이 거의 없었다. 곡을 써준다는 것은 너무나 내밀한 행위다. 그건 내 영혼이니까. 정말로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만 내 곡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케이팝 작곡가에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중략) 바쁜 산업의 한복판에서 작곡가에게 대상을 사랑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중략) 나는 이제 너의 친구가 될거야. 그래야 곡을 쓸 수 있거든. 그 무엇도 아닌, 노바디인 내가 케이팝 스타인 그에게 선언했을 때 버군(버논)은 좋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게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버군은 이 앨범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한정인 인스타그램 중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둘레를 이루는 K팝에서 이들이 쳤던 울타리를 열 수 있던 건 버논 정도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정도 되는 연차와 위치였기에 작업 제의부터 성사까지 향하는 길을 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K팝 A&R들이 키라라를 설득할 수 없었던 까닭은 시간에 쫓겨서였을 테다. 그도 그럴 게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산업’이니까. 빠르게 많은 후보군을 확보해야 했을 테니까. 이런 지점만 돌아보더라도 버논이 직접 의사를 표출하고, 작업 이전에 이해와 관계를 구축하지 않았으면 이뤄질 수 없던 교차다.
‘girlsnboys’의 퍼렐과 마찬가지로 ‘mia’의 비트는 키라라의 개성이 출처다. 그러나 그토록 강렬한 색채를 지닌 아티스트의 색깔이 전부인 트랙은 아니다. 키라라와 한정인, 버논과 Robby Rob의 사각 레이스라는 게 느껴진다. 옅어진 톤의 밑그림을 명랑한 후렴 멜로디와 가사가 파고든다. “If Stephanie Lee had a dream / 그건 이 모습이 아니길 / 그래, 그렇지만 우린 정신을 더 차려야 해 (…) 낯이 아닌 이제 말을 좀 더 가려야 해” 라니. 청자를 한층 더 몰입하게 하는 힘은 버논의 가사에 있고, 이 곡이 프로듀서에 끌려가는 양상보다 협업으로 보이게 하는 힘도 거기 있다. 소박한 열망이 세상을 좌우하는 세카이계의 논리, <기묘한 이야기>의 성장 드라마에 몰입하지 못한 슬픈 소외를 겪은 자라면 ‘mia’에는 공명할 수 있을 테다. 영화 <해피 엔드> 속 테크노에 뛰어든 청춘처럼, 판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방황이 담겨 있으니까.
연대의 핵인 애착은 이 작품에도 빠지지 않는다. 10년 이상 함께한 K팝 그룹의 일원인 이들이 우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당연스럽게도 K팝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성공을 좇아야 하는 경주의 부담을 그린 ‘rat race’에서도 “They want me more than 16” 같은 가사로 세븐틴을 상정하며, 첫 곡인 ‘Friend’는 이들의 출신을 명확히 품는다. 디에잇의 데뷔 전 TV 출연 인터뷰를 따온 (해석하면 너희들 꿈이 뭐니? 너부터 얘기해 봐 / 난 연예인이 되고 싶어! 다.) 인트로로 시작해 연예계에 몸담은 두 인물과 팬들의 서사를 그린다. 팬들까지 포함한 정겨운 따스함을 눈부신 사운드 속에 담았다. 이런 측면이 이 작품에서 K팝 또한 결코 뗄 수 없는 키워드임을 다시 한번 조명한다.
본작은 확장을 이뤄냈다. 세븐틴 본체가 집중하는 퍼포먼스에 특화된 음악과 그에 뒤따르는 콘셉트 이면의 변주, 그리고 쉽게 진입할 만큼 경사로를 완곡하게 다듬으며 팬들에게 문화를 탐구하고 싶은 의지를 심었으니 말이다. 디에잇이 버논의 음악적 깊이를 아깝게 여겨 출발한 이 유닛은 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 한다. 그 시간이 헛되이 쓰이지 않고 선사한 광풍은 이 여름을 제법 오래 선선하게 지속할 음악을 쥐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