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영장을 나서는 한 노인이 관리인에게 손을 흔든다. 예순이 넘은 이의 손짓에서 스무 살 소녀의 매혹을 발견한 밀란 쿤데라는 이를 '불멸'이라 불렀다. 육체는 소멸해도 인간이 남긴 제스처는 타인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티스트에게 이 불멸은 때로 잔혹한 형벌이다. 대중이 기억하는 단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는 순간, 예술가는 살아있는 채로 '박제'되기 때문이다. 로살리아는 신보를 통해 바로 그 박제된 손짓을 향해 총을 겨눈다. <LUX>는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모든 '절대적 가치'에 대한 반항이다. 신은 스토커로 전락하고(‘Dios Es Un Stalker’), 오케스트라는 지하 클럽의 사운드와 뒤엉킨다(‘Berghain’). 유일하다고 믿어왔던 절대자, 남성 중심의 권위는 여섯 명의 성녀로 치환되어 트랙 곳곳에서 노래한다. 언어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단일 언어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팝의 관습을 거부하고 13개의 언어를 파편처럼 배치한다. <LUX>는 이러한 태도가 메시지와 형식, 사운드 전반에 응축된 작품이다.
로살리아가 내려친 첫 번째 망치는 ‘신’을 향한다. 서곡에 해당하는 ‘Sexo, Violencia y Llantas’에서 그녀는 세상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신이 먼저가 아니라 세상이 먼저 놓이는 순간 신의 자리는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려난다. 숭배했던 유일신 너머로 로살리아가 바라본 것은 역사 속 여성들, 그중에서도 '성녀'라고 불릴 수 있는 인물들이다. 테레사 수녀와 잔 다르크 같은 익숙한 이름들 사이에서 특히 눈에 띄는 존재는 바로 료넨이다. ‘Memória’에 등장하는 이 성녀는 미의 표상이었기 때문에 수행을 거부당했고, 스스로 얼굴을 훼손한다. 자신을 대표하는 형상을 파괴함으로써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된 손짓을 거부한 것이다. 로살리아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이미지의 해체를 꾀한다. 라틴 팝 스타로 대상화되어 소비된 자신을 강화하는 대신 성녀들의 파편화된 목소리를 통해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자아를 구성한다. 이는 박제된 형상 이후 분열된 페르소나로 기억되기를 택한 전략이며 불멸에 도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앞서 로살리아가 신을 향해 망치를 들었다면 이번에는 형식 자체를 향해 든다. 그 대상은 팝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가사’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의미 전달 수단으로서의 언어를 분해한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일본어를 포함한 13개의 언어는 음절 단위로 해체되고 재배열된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절대적인 것, 유일한 진리가 깨지며 드러난 빛은 더 이상 특정 언어, 특정 신앙, 특정 문화의 전유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로살리아가 포착한 신성은 탈위계적이며 지구 곳곳의 균열을 향해 동시에 스며드는 속성을 지닌다. 그 결과 청자는 이 앨범의 가사를 의미가 아닌 소리의 질감으로 듣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앨범은 ‘난해하다’, ‘불친절하다’라는 반응을 얻는다. 그러나 그 비판의 전제는 여전히 유효한가. 이해하기 쉬운 영어 가사가 곧 친절함이라는 기준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어떤 작품은 즉각 소비되기보다 이해를 위해 품을 들이는 수고를 요할 수 있다. 로살리아가 멀리한 것은 대중이 아니라, 팝은 반드시 친절해야 한다는 서구 시장 중심적 관습이다. 해석하는 방식까지 포함해 팝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선공개 싱글인 ‘Berghain’이 공개되었을 때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바로크풍 현악, 콰이어, 그리고 로살리아의 아리아에 가까운 창법이 더해져 클래시컬한 방향으로 기울 것이라는 예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LUX>는 특정 장르로 치우치지 않는다. 서곡 ‘Sexo, Violencia y Llantas’에서 시작해 ‘Porcelana’에 이르기까지 앨범의 초반부는 분명 클래시컬한 인상을 남긴다. 생동감 있는 현악의 운용은 산뜻하기까지 한데, 탄생과 시작의 환희를 담아내는 데는 이러한 단순함이 효과적이다. 이내 스트링의 울림이 거둬지고 피아노 솔로만 남는 순간 <LUX>의 앨범 재킷이 떠오른다. 연약한 아름다움을 잠시 드러냈다가 다시 전자음악으로 전복되는 이 흐름은 로살리아 특유의 서사를 압축한다. 고전적 형식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곧 해체된다. 이 흐름을 지나 등장하는 ‘Berghain’부터 사운드는 노골적으로 세속화된다. 곡 후반부의 클럽 비트는 사랑과 욕망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앞선 성스러움과 현실을 맞부딪치게 한다. 다만 이 전복은 곡의 말미에 배치되며 여전히 전체 호흡의 균형을 유지한다. ‘Dios Es Un Stalker’로 접어들며 앨범은 어둠의 국면으로 이동한다. 도입부의 피치카토 베이스 워킹으로 은밀한 스토커의 발걸음을 연상시키고, 사일런트 팀파니는 타격을 최소화한 채 공간을 비워낸다. 이 절제는 음향보다 가사와 시선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마지막에 이르러 ‘Magnolias’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이 미니멀한 구성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간소해진다. 앞선 편곡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절제였다면 후반부는 본질만 남기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목관악기로 피워내는 멜로디는 서곡에 등장했던 오토바이 타이어를 관 위에서 태우는 연기를 연상시킨다. 장례를 암시하는 오르간의 울림 역시 애도보다는 축복에 가깝다. 환생과 귀환이라는 결말은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되돌려 놓으며 앨범은 막을 내린다.
결국 <LUX>는 끝없는 파괴를 통해 당도한 ‘빛의 기록’이다. 로살리아는 우아한 손짓을 남기려 애쓰는 대신 수녀복 안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상처를 껴안았다. 왜 하필 빛이었을까. 빛은 결코 한곳에 머물지 않으며 붙잡히는 순간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기 때문이다. 성상의 매끈한 표면을 깨뜨려야만 그 안의 빛이 쏟아져 나오듯 로살리아는 스스로 이미지를 해체함으로써 박제된 우상으로부터 탈출했다. 쿤데라가 말한 ‘손짓’이 타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수동적 불멸이라면 로살리아의 ‘빛’은 스스로를 파괴해 얻어낸 능동적 자유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형상이기를 거부한다. 대신 부서진 틈 사이로 쏟아지는 찬란한 파편이 되어 우리를 눈멀게 한다. 빛은 강하다. 모든 박제를 부수고 다시 태어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