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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갈피 셋> 왜 지금 리메이크인가?

by 이예진 | 

cover image of 아이유 <꽃갈피 셋>
아이유 <꽃갈피 셋>EDAM엔터테인먼트

<폭싹 속았수다>의 양금명과 <꽃갈피 셋>의 아이유를 동시에 감당하는 일은 인간 이지은에게 무리였다. 아티스트가 한 시기에 입을 수 있는 페르소나의 수는 정해져 있다. 그중 한 가지를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국민 여동생, 청춘의 아이콘, 서사형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리메이크 장인까지 숱한 역할들을 해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나 아이유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그녀의 이름 앞의 수식어들이 이제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유는 쉼 없이 달려왔다. 지드래곤이 말한 ‘언제나 사랑받는 아이유’는 단순한 찬사라기보다 사실에 가깝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내놓은 결과물들이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순환을 이루며 지금의 위치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누구나 부진할 때가 있듯 아이유 또한 <The Winning>에서 흔들린 중심축이 <꽃갈피 셋>에 이르러 힘을 잃었다. 창작자로서 위기다.

전작의 미온한 반응으로 인한 부담감 탓에 아이유는 리메이크라는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카드를 택했다. 창작자의 감을 믿고 가는 모험 대신 과거의 감성에 기대 대중의 박수부터 챙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반등했을지라도 작품성으로는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첫 트랙부터 목소리에 피로한 기색이 묻어난다. 곡의 분위기에 따른 톤의 변화가 적고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보컬이 감정을 덜어낸 듯 기계적인 인상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도한 스케쥴을 소화하는 아이유의 피로를 이해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생기는 순간 그녀는 스타로 이해받는 것이지 뮤지션으로서는 설득력을 잃는다.

타이틀로 내세운 ‘Never Ending Story’는 이러한 흐름의 결정체다. 부활의 명곡을 택한 것은 가창력으로 대중의 기대를 충족하겠다는 출사표였으나 1절 후렴의 고음을 가성으로 처리하는 선택에서 그 기대를 보란 듯이 비껴간다. 곡 중반부의 클라이맥스를 더욱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의도적인 숨 고르기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도입부의 단 몇 초 만에 호오가 갈리는 청취 환경에서 이러한 우회는 설득력을 잃는다.

아이유가 매번 기대를 충족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과정이 대중과의 호흡에 있었다는 점에서 잃어버린 방향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전작 <The Winning>이 대중성보다는 과도한 메시지와 추상적 해석에 기울며 공감대를 놓쳐 생긴 첫 번째 실패였다면 <꽃갈피 셋>은 최소한의 해석조차도 사라져 껍질뿐인 결과물로 남았다. 결국 대중으로부터 회피한 결과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검증된 트랙 구성으로 작품을 만든 셈이다.

또한 참여진에 기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으려 했다. ‘Last Scene’은 수민&슬롬 편곡으로 특유의 미니멀한 사운드를 구현해 원작의 세련미의 각도를 틀었으나 아이유의 목소리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전자음보다 어쿠스틱의 여백이 어울리는 아날로그한 음색이 흡수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한 장의 정지된 스틸컷처럼 감정선을 이어가는 원슈타인의 피처링조차 흐름을 환기하지 못하니 무색무취의 결과물만이 남았다. 이어 배치된 ‘미인’ 또한 바밍타이거 편곡으로 재기 발랄한 미니멀 사운드로 결을 이었으나 아이유가 가창에서 의도한 시크함이 색달리 들리지 않는 것은 앨범 전반의 보컬 톤이 모두 다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주선율과 대선율이 각각 탑라인과 리프로 주고받으며 형성하는 호흡이 중요한데, 편곡에 목소리가 묻어나지 않으니 노래의 맛이 살지 않으며 기획에서 의도한 유쾌함을 반감시켰다.

결국 이 앨범은 아이유의 소진을 드러낸 작품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입고 싶은 옷이 없어 보이고 억지로 걸친 옷 또한 제 몸에 맞지 않았다. 첫 트랙과 끝 트랙인 ‘빨간 운동화’와 ‘네모의 꿈’에서 아이유의 주특기인 소녀적 낙관으로 생기라도 불어넣어 보려 하지만 이조차도 여타 다른 작품에서 많이 구현됐던 관성적인 방식이다. 그나마 ‘소격동’의 서태지 리메이크 연장선상에 놓인 ‘10월 4일'이 소녀 화자라는 세계관을 간신히 이어가며 이 앨범에 유일한 서사적 설득력을 부여한다.

아이유는 전작들이 증명하듯 결코 대충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꽃갈피> 시리즈의 ‘나의 옛날이야기’, ‘너의 의미’, ‘비밀의 화원’과 ‘가을 아침’을 떠올려보면 그 노래들은 분명 살아 있었다. 아이유는 이번에도 애썼다. 그러나 그녀가 소화하는 페르소나의 포화로 인한 한계라면 진정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걸음을 잠시 멈춰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또한 리메이크라는 장르 안에서도 이 앨범의 위치는 불분명하다. 리메이크는 선배 뮤지션을 향한 경의이자 사라져가는 시간에 숨을 불어넣는 표현 방식이었다. 장필순이 조동진을 노래하던 때와 발라드 가수가 오래된 감성을 빌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이 노래를 아이유가 부르면 사람들이 반가워하겠지’라는 단순한 기획만이 남았다. 리메이크란 잊힌 감정을 다시 꺼내는 일이다. 익숙한 선율 어디쯤만 맴돌다 돌아오는 것은 커버에 가깝다.

그럼에도 <꽃갈피> 시리즈는 단발적인 싱글 기획이 아닌 앨범 단위의 연작으로 리메이크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앨범이 브랜드화되었고 장르 측면에서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아이유는 자신이 애써 만든 브랜드를 회피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훗날 연작을 다시 이어가더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부르고 싶다는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본질이 되살아날 것이다. 또한 슬럼프를 감추기 위해 화려한 크레딧과 온갖 콘셉트의 뮤직비디오로 힘을 주기보다 차라리 기타 한 대에 자신이 부르고 싶은 진짜 노래로 연약한 살갗을 드러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유를 오래 본 대중은 그 모습마저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