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AP Rocky - DON’T BE DUMB
A$AP Rocky가 <Deep Purple>과 <LIVE.LOVE.A$AP>으로 등장한 지도 얼추 15년이 지났지만, 당장 현재도 그보다 플로우를 ‘멋있게’ 내뱉는 이는 극히 드물다. 수 차례의 연기 끝에, 전작 <TESTING> 이후 무려 약 8년 만에 발매된 그의 네 번째 정규작 <DON’T BE DUMB>은 그런 그의 멋들어진 플로우로 가득 차 있고, 팀 버튼의 미학으로 포장된 재기로운 실험이 앨범 전반에 흩뿌려져 있다. 반복되는 발매 연기가 준 피로감과 그의 육중한 이름값을 고려한다면 다소 탐탁치 않을 수 있겠으나 <DON’T BE DUMB>이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역시 반박하기 어렵다.
Giant Claw & galen tipton - Mobile Suit Gym Rat
미국의 괴짜 음악가 galen tipton은 2024년 또다른 괴짜 음악 집단 death’s dynamic shroud의 멤버 Keith Rankin과 합작 앨범 <You Like Music>을 발표하며 마니아층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해체 클럽의 폭발적 왜곡미를 야성적으로 풀어낸 본작은 과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의 에너지를 분출했고, 여러 갈래를 아우르는 절충적 면모 또한 적절하게 지니고 있었다.
galen tipton과 Keith Rankin(Giant Claw)의 또다른 합작 앨범 <Mobile Suit Gym Rat>은 <You Like Music>의 압도적 왜곡과 야성미 대신 뉴 잭 스윙의 리드미컬한 활기를 끌어오고, 이를 매우 탄력적인 형태로 연성한다. <You Like Music>이 압도적인 속력으로 청자를 압도했다면 본작은 그 대신 90년대 무렵 댄스 음악의 탄성을 작품의 주 기반으로 활용하며, 그 위에 이들 특유의 해체적 작업을 맘껏 끼얹어 이색적인 색채를 완성한다. 고전 비디오게임 음악을 연상시키는 듯하면서도 듣는 즉시 몸을 절로 움직이게 하고, 그 실험적 솜씨에 탄복하게 만드는 본작을 올해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라 표현하는 데도 이렇다 할 어색함이 없다.
Fcukers - Ö
과장된 몸짓은 결코 관능으로 연결될 수 없다. 관능의 이 절대 원칙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듀오 Fcukers는 불필요한 겉치레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시커먼 선글라스 하나에 그들의 뜨거운 댄스 에너지를 오롯이 응집시킨다. Shannon Wise의 보컬은 마치 TTS라도 된 듯 무의에 가까운 데드팬으로 읊조리고, 그 무심함을 놀라운 수준의 퇴폐적 관능으로 연결시킨다.
heavensouls - westside trapped
2025년 발매된 The Sidepeices의 <Darkskin Niggas With Lightskin Problems>를 2026년에 와서야 뒤늦게 발견했다는 사실은 올해 나의 가장 개탄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Death Grips의 야성적 실험성과 글리치 앰비언트의 미시적 감수성이 공존하는 이 해괴한 앨범은 대단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사운드를 자랑했고, 이들의 이후 행보 역시 기대감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괴상망측한 듀오는 올해 초 <Darklight>라는 후속작을 발표했고, 멤버인 heavensouls는 두 달 즈음 후 <Westside Trapped>라는 개인작을 발표했다. 그중 <Westside Trapped>는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기존 The Sidepeices의 색채와 뚜렷한 차별점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비정형적 사운드 콜라주와 실험적 힙합, IDM의 부유감 사이 정도에 위치하던 The Sidepeices의 행보와 달리 <Westside Trapped>의 heavensouls는 서아프리카 토속과 재즈의 방향으로 강하게 선회하며, 이를 특유의 비정형성 구축을 위한 매개로 사용한다. 물론 앞선 <New York Fall, 1977> 등에서 이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본작의 그것은 과거의 주술 수준을 넘어 어떤 영적인 단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언뜻 Fela Kuti에 대한 헌사처럼 보일 만큼 본작의 절규에는 고결한 광기가 서려 있다.
hemlocke springs - the apple tree under the sea
대담하고 도발적인 신스팝 구성의 데뷔 EP <going…going…GONE!>으로 주목받은 신예 팝 싱어송라이터 hemlocke springs는 그녀의 정규 데뷔작 <the apple tree under the sea>를 통해 본인의 색채를 더욱 야심차게 확장하고 심화해 보인다. 여전히 신스팝 내지 다크웨이브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본작은 분홍과 검정 두 색채 사이를 노련하게 아우르며, 놀라운 완력의 송라이팅 솜씨로 그 넓은 영역을 탁월하게 설득시킨다. Lemon Demon을 연상시키는 익살스런 몸짓부터 글래머러스한 신스팝 질주까지,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채 떠오르는 신예를 목격하기란 무척이나 희귀한 일이다.
J. Cole - The Fall-Off
J.Cole이 돌아왔다, 그것도 매우 준수한 앨범과 함께. 29살과 39살의 자신을 고르게 아우르는 <The Fall-Off>에는 클래식한 붐뱁부터 적절한 수용, 완성도 높은 랩과 탄탄한 스토리텔링까지 J. Cole이라는 인물의 정수가 담겨 있다. 지금의 래퍼 J. Cole을 만든 힙합에 대한 사랑과 지금의 인간 Jermine Lamarr Cole을 만든 밑바닥의 사랑은 작품의 원천처럼 앨범 곳곳에 위치하고, 왜 우리가 힙합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강산이 변하고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正道)의 멋, J. Cole이 여전히 최고의 래퍼로 추앙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Jill Scott - To Whom This May Concern
“Who is Jill Scott?”이란 자신감 섞인 질문과 함께 등장하여 새천년의 네오 소울을 호령했던 그녀 Jill Scott, 허나 그 이름은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2015년작 <Woman> 이후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이 있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그동안의 음악 씬 역시 바뀔대로 잔뜩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넓고 치열한 음악계가 10년의 공백기를 갖고 온 중년의 음악가를 위해 미리 자리를 마련해 놨을 가능성은 희박했고, Jill Scott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영원히 역사 속 이름으로 남는 듯했던 그녀의 약 10년 만의 복귀작 <To Whom This May Concern>은 그 놀라운 완성도와 위력으로 그 이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마치 불호령하듯 공표해 보인다. 풍성하고 묵직한 사운드 위를 여유롭게 거니는 Jill Scott의 보컬은 과거의 그녀와 비교해도 이렇다 할 손색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 그녀의 위상을 체감하지 못하던 신세대들의 의문, “Who is Jill Scott?”이라는 신세대들의 질문에 이제 그녀는 “This is Jill Scott!”이라고 자신있게 응답할 것이다.
Kim Gordon - PLAY ME
1953년생, 72세의 Kim Gordon은 여전히 대중음악의 변화 그 최전선에 있다. <No Home Rocord>, <The Collective>로 이어지는 그녀의 최근 솔로작들이 그 분명한 증거로, 특히 그녀의 괴물 같은 앨범 <The Collective>의 경우 트랩의 최근 경향과 충동적/추상적인 노이즈 등을 마구잡이로 엮어내며 놀라운 음악적 진보에 성공한 그녀의 후기 역작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The Collective>에서 이어지는 본작 <PLAY ME>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전작의 음악적 경향을 계승하는 앨범이다. 레이지 씬의 영향을 받은 위협적 트랩 비트와 인더스트리얼 색채, 노이즈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모습은 이전과 다름이 없다. 허나 <PLAY ME>의 Kim Gordon은 전작보다 확연히 간결해진 구성과 발화를 선보이며 미묘한 설득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전작의 날카롭고 선명했던 실험성이 본작에서 무뎌졌다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쉽고 직관적이라는 사실은 분명 언제든 장점으로 돌변할 수 있으며, 그 무뎌진 실험성조차 여전히 날카롭게 느껴진다.
Mandy, Indiana - URGH
잔악한 노이즈와 고압적 인더스트리얼, 오토튠-요한묵시록의 괴랄한 조합으로 서두를 여는 Mandy, Indiana의 역작 <URGH>는 그야말로 ‘비명’의 작품이다. 우리네 사회와 시대, 자본과 개인의 끝없는 지배 구조 그 밑바닥에서 신음하는 이들은 그 처절한 비명을 고스란히 음향으로 옮겨내고, 이내 잔혹한 음성으로 분출한다. 인물의 정신분열은 분열적 구성과 노이즈로, 저항 의식은 EBM의 숨가쁜 행진으로 묘사되고 그 끝에서는 더 이상 참지 말고 일어나 행진하라 (”Lève-toi et marche.” ‘Dodecahedron’ 中) 외치는 Valentine Caulfield의 당찬 음성이 솟구친다.
RAYE - THIS MUSIC MAY CONTAIN HOPE.
동세대 최강의 보컬 탤런트를 지녔다 평가받는 영국의 젊은 싱어송라이터 RAYE는 그녀의 표현적 재능을 기꺼이 작품의 단위로 승화시킨다. Amy Winehouse의 후계라 불릴 만큼 놀라운 수준의 서사성을 지닌 그녀의 보컬은 본작의 과장된 연극풍 무대 위에서 그 서사적 성질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그 감정적/음향적 웅장함을 작품의 정체성처럼 휘두른다. 물론 커다란 볼륨과 음악적 야심으로 가득 찬 본작을 어수선하고 작위적이라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류의 음악적 야심을 행동에 옮기고, 이를 제 능력으로 설득시켜냈다는 사실은 과연 희소한 업적이며, 이 매력에 절로 탄복할 이들 또한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Sideshow - Tigary Funk
<Tigray Funk>를 정의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Tigray Funk>의 몽환적 공간은 차분하고 정적인 동시에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 속을 부유하는 Sideshow의 플로우는 언뜻 여유로워 보이지만 이는 결코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불안과 절망, 붕괴와 친한 것이다. 세상에 내몰린 사내는 그 만성적 피로가 사라지길 기대하며 마약에 취하겠으나, 이것이 또다른 고통을 야기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이미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Slayyyter - WOR$T GIRL IN AMERICA
전작 <STARFUCKER>에서 Lady Gaga 시대 팝을 윤택하게 재현했던 Slayyyter는 약 3년 만의 복귀작 <WOR$T GIRL IN AMERICA>에서 그 윤택함을 완전히 내팽개쳐 버린다. 그 대신 자리잡은 것은 그녀의 거친 반항과 폭발적 돌진으로, 도덕적 관념이나 겉치레를 완강히 거부한 채 맨몸으로 우뚝 선 그녀는 스스로를 ‘최악의 여자’라 칭하며 독한 피비린내를 살포한다. 땀 흘린 피부의 쩐내와 비릿한 핏내, 체액의 지독한 페로몬이 강하게 진동하는 이 앨범을,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팝 앨범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タデクイ - MOTHER
홋카이도 쿠시로 출신의 세 친구들, タデクイ의 소리는 홋카이도의 전경을 닮아 있다. 첫 트랙 ‘舟’에는 유빙을 헤치고 나아가는 쇄빙선의 설렘이, 이어지는 ‘灯台’에는 눈이 소복히 쌓인 민가의 정겨움이 비쳐 보이고, 마지막 트랙 ‘海に来て’의 진행은 탁 트인 태평양의 광활함을 연상시킨다. 친밀한 감수성의 온기가 따스하다 말해도 좋고 치밀한 전개와 거친 보컬이 차갑다 말해도 좋다. 본래 홋카이도란, 본래 눈이란 그런 것이니까.
underscores - U
언더그라운드 팝 씬의 스타 underscores의 걸작 <U>는 현대적 팝의 관념적 이상향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작품이다. 메인스트림 팝과 언더그라운드 팝의 기술적/예술적 경계선이 점차 흐릿해지는 현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듯, 본작의 underscores는 고유의 비타협적 작업 방식을 유지한 채 그 위에 2000년대 팝 스타의 외형을 뒤엎고, 이내 이를 작가적 인장으로 승화시켜 버린다. 나아가 너도나도 헌사에 여념이 없는 Britney Spears부터 EDM 시대의 열기와 K팝의 특징적 색채까지, 폭넓은 취향을 집대성한 본작이 손쉽게 underscores의 이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xaviersobased - Xavier
Jerk 열풍의 주역이자 2020년대 인터넷 힙합 씬의 가장 중요한 이름 중 하나인 래퍼 xaviersobased는 그의 첫 메이저 정규작을 셀프 타이틀로 할당하고 스스로의 색채를 보다 구석까지 밀어붙이는 음악적 야심을 드러낸다. 메이저 레이블에 걸맞은 직관적 감각 속에서, 변화무쌍한 프로듀싱은 여전히 몽롱한 연기 속 미러볼처럼 반짝이고 xaviersobased는 그 아래 클럽 바닥을 취한 듯 서성인다. 언더그라운드의 컬트 히어로로 주목받았던 그, <Xavier>의 그는 아직 그 칭호를 내려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