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생 인류는 탄생 이래 가장 쉽게 음악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닿아 있지만, 앨범이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 보인다. 알고리즘 시스템을 위시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앨범보다는 개별 곡 단위의 청취를 유도하고 있고, 단기간의 자극을 추구하는 숏폼 콘텐츠의 보편화 역시 곡 하나, 파트 하나마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앨범의 존재 의의를 흐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마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는 LP판이나 CD의 수요 또한 사실상 기념품 수준에 지나지 않으니, 세상이 더 이상 앨범 단위 청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여도 썩 틀린 말은 아니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듯 가벼운 청취가 일상화된 시기일수록 ‘앨범 단위 청취’라는 일련의 행위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일상의 자동화된 지각에서 낯설고 생경한 지각으로 향하는 행위가 예술의 핵심적 과제임을 고려하였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과거 일상적이라 말할 수 있었던 앨범 단위 청취 행위가 점점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져 낯설고 생소한 경험으로 변모해 버렸기 때문에, 앨범을 청취하는 행위가 비로소 그 일상의 반복으로부터 저항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이 된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아직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조차 받지 못한 최근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다. 당신은 일상에서 멀어질 준비가 되었는가? 일상을 낯설게 대할 준비가 되었는가? 2025년이 막 지난 지금 가장 낯선 형태의 삶을 맞닥뜨릴 준비가 되었는가? 여기 당신의 ‘낯설게 하기’를 도와줄 100장의 상징적 작품이 있고, 우리는 그중 상위 10장에 대한 선정의 변을 더했다. (이승원)

10. Miley Cyrus (마일리 사이러스) - Something Beautiful
할리우드 스타로 보낸 20년의 세월을 마일리는 “백색소음 같았다”라고 회고한다. 내면의 주파수와 단 한 번도 맞닿지 못한 채, ‘내가 아닌 나’로 흐릿하게 부유해 온 시간을 향한 뒤늦은 참회다. 이제 그는 흩어진 방향을 고쳐 잡는다. 앨범에는 굴곡진 삶의 이면과 지병, 고난을 통과하며 벼려낸 지난한 시간이 촘촘히 박혀 있다. 인위적인 포장지를 벗어던진 아티스트의 진면목은 생경함을 넘어 깊은 경탄을 자아낸다.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로 뻗어 나간다. 팝을 고착된 형식이 아닌 유동적인 생태계로 바라보는 통찰은 아트 록, 일렉트로 디스코, 댄스 팝 등 파편화된 장르를 유기적인 흐름으로 엮어낸다. 스승 돌리 파튼을 연상시키는 드라마틱하고 변칙적인 보컬은 전 트랙을 관통하며 단단한 감정의 뼈대를 세운다. 이질적인 장르를 늘어놓은 듯 보이나, 중심에는 과거의 모든 자신을 기꺼이 끌어안은 한 인간의 서사가 버티고 있다. “커튼 뒤에는 천국과 공포가 함께 기다리고 있다”라는 서늘한 자기 인식은 앨범을 지탱하는 단단한 축이 된다. 모든 상처와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비로소 가닿을 수 있었던 고통스러운 자기완성이다. (이예진)

9. YHWH Nailgun (야훼 네일건) - 45 Pounds
앨범은 불길한 고주파음 네 개의 순차적 합성으로 문을 연다. 이내 빠른 패턴의 드럼과 함께 내려치는 신스가 등장하고, 뒤이어 잭 보존(Zack Borzone)의 목이 쉰 듯한 불쾌한 보컬이 들어온다. 있는 힘껏 쥐어짜낸 목소리는 음악에 의해 뒤편으로 끌려나가는데, 그 와중에도 잭의 울부짖음은 끊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야훼 네일건이 선보이는 끔찍하고 정신 없는 난장은 안일한 쾌(快)를 거부한다.
아주 짧게 울리는 공격적인 로토톰, 신스의 불협화음이 뇌리까지 박히는 ‘Iron Feet’, 보컬이 마치 손바닥으로 누른 용수철이 옆으로 튀어나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Tear Pusher’, 의외로 팝적인 ‘Castrato Raw (Fullback)’과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Sickle Walk’는 우리를 경험한 적 없는 공간으로 초대한다. 블랙 미디의 모건 심슨을 연상케 하는 드러머 샘 피카드의 폭발하는 연주와 Model/Actriz가 ‘Cinderella’로 살짝 먼저 보여줬던 위태로운 인더스트리얼 예지몽을 동시기에 현실화한 모습으로 말이다. 노웨이브, 아트 펑크, 포스트 펑크 같이 기존에 있던 어떤 표현으로도 이들의 스타일을 정확히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부인하기 어렵다. 이들의 이니셜이 록의 미래에 새겨져 있다. (이한수)

8. Ninajirachi (니나지라치) - I Love My Computer
휴머노이드의 상용화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다. <I Love My Computer>라는 앨범의 제목도 그러려니 싶다. 하지만 그녀의 동반자 컴퓨터는 의외로 미래적인 모습이 아니다. 환상적인 앨범 커버를 들여다보면 흰 케이블에서 검은 케이블로 덩굴이 자라나 있고, 그 밑엔 연식 있는 랩톱과 뒤통수 달린 모니터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2000년대 풍의 모에 아니메 캐릭터도 아키하바라에서 게이머즈 간판이 철거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과는, 콘센트를 꽂아 만든 일렉트릭 기타 비슷한 무언가도 무선 마우스와 무선 키보드가 자연스러운 2025년의 모습과는 조금 딴판이다.
이처럼 언뜻 미래지향적인 선언처럼 들리는 ‘Fuck My Computer’ 역시 실상은 과거를 향한 지독한 집착이다. “내 컴퓨터를 따먹고 싶어 /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거든”으로 대표할 수 있는 컴퓨터를 향한 애착이 음반 곳곳에서 드러난다. 잊고 싶은 기억이 담긴 ‘Delete’나 ‘Infohazard’ 같은 곡을 포함해 ‘iPod Touch’라든가 호주 최초의 컴퓨터이자 전자 음악을 최초로 연주했던 ‘CSIRAC’처럼 노스탤지어를 풍기는 소재를 매개해서 말이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현시대 트랜스의 흐름과 더불어 EDM, 하우스, 일렉트로클래시 등 10대 시절 그의 취향이 잔뜩 담겨 있다. 쉴 새 없이 자기 취향을 떠들어대는 와중에 한두 명쯤은 니나 윌슨의 어린 시절로 휘말려 들어가버렸다고 해도 납득할 만하다. (이한수)

7. Jane Remover (제인 리무버) - Revengeseekerz
유서 깊은 비디오게임 <포켓몬스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포켓몬 ‘펄기아’는 우주 공간을 지배하는 신수(神獸)로 묘사된다. 특히 그의 포효는 인간의 말로 ‘공간절단’이라 불리는데, 온 세상의 공간을 찢어버릴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하다 전해지곤 한다.
이토록 압도적인 힘을 가진 포켓몬 ‘펄기아’의 울음소리 샘플이 (‘Dark Night Castle’을 제외한) 작품 내 모든 트랙에 삽입되었다는 사실은 <Revengeseekerz>가 일종의 ‘공간절단’을 목표 삼는 작품임을 암시한다. 제인 리무버가 음향 공간을 절단하는 방식은 ‘펄기아’가 그 포효로 행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흔히 우리가 ‘절단’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날카로운 물질을 사용해 음향을 잘라내는 방식 대신 압도적 크기의 진동과 위력을 기반으로 공간의 엔트로피를 극대화하여 공간이 제 스스로 절단되게끔 만드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 면에서 이 기법은 절단보다 폭발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언더그라운드 씬의 손꼽히는 실험가가 거대한 폭발을 계획한다는 점에서 작품은 1940년대 맨해튼 계획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디지코어 씬의 선도자로서 등장했던 그녀는 점점 더 강한 과잉과 자극을 추구하는 디지코어 전쟁의 오펜하이머 박사가 되어 ‘압도적 힘 위의 평화’를 모색한다. 그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 <Revengeseekerz>의 압도적 분열은 원자폭탄 수준의 폭발력으로 주변 공간을 초토화시키고, 그 극단적 수준의 자극을 과시하며 음향적 쾌락에 대한 논쟁 자체를 일순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폭발은 그 어떤 사상자도 낳지 않기에 그녀는 세상의 파괴자도, 죽음 그 자체도 될 필요가 없다. 그저 이 버섯 모양의 구름 위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흔들면 될 뿐. (이승원)

6. FKA twigs (에프케이에이 트위그스) - EUSEXUA
트위그스의 보컬은 매번 치명상이다. 레이브 씬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만큼 쾌락과 밀접한 연관을 띠는 <EUSEXUA>는 “인간 경험의 극치”를 표방하며 때론 기이하고 때론 흥겨우며 때론 위험하게까지 들린다. 표제곡 ‘Eusexua’를 지나 샘플링으로 화제가 된 ‘Drums of Death’부터 레이브 씬에 적합할 ‘Childlike Things’, 이어지는 트위그스 특유의 보컬이 돋보이는 ‘Striptease’까지 분주하게 정렬된 트랙의 다채로운 풍조는 음반의 확장성에 기여한다.
넓어지는 저변은 음악적 담론에 치우치지 않는다. 흔히 악으로 간주되던 쾌락의 순수한 면을 들추어 전자음의 질적 특성을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하는 데에 일조한 음반은 지속적으로 정치적 올바름과 동행해온 전자음악의 태도를 다시 증명한다. 울거나 웃거나 춤을 추는 동안은 어디에도 속박의 징후란 없다. 당신의 발이 한번 구를 때 그것은 깨어지고, 두번 구를 때 그것은 터지며, 세번 구를 때쯤엔 산산조각으로 사라진다. 가끔 자유라고도 불리는 인간 경험의 극치, Eusexua야말로 음악의 진정 순기능인 셈이다. (권도엽)

5. ROSALÍA (로살리아) - LUX
마리아 상이 깨어지자 빛이 쏟아진다. 균열 사이로 스민 빛은 저마다의 내면에서 잔불로 피어난다. 2025년은 가치 전복의 해였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무색해진 약자 보호 명분, 연쇄 보안 사고가 깨부순 시스템 신뢰, AI 딥페이크가 부추긴 불신이 세상을 덮쳤다. ‘절대적인 것’을 향한 거부 반응은 파도처럼 번졌고, 우리 안에 세워졌던 상(像)들은 하나둘 부서졌다. 그 대상은 대개 남성성과 유일신으로 상징되어 온 절대자였다. 로살리아는 그 도그마를 향해 망치를 들었다. 파괴의 순간 시선은 반대편으로 향한다. 여성, 그리고 다수의 신들. 잔다르크와 테레사를 비롯한 성녀들의 목소리가 로살리아의 입을 빌려 터져 나온다. 군림하던 형상은 흩어지고, 각기 다른 시공간을 관통한 목소리들이 격렬히 교차하며 다성(多聲)의 구조를 쌓아 올린다.
다성성은 언어를 관통해 소리라는 물성으로 흐른다. 팝 음악에 절대 언어라는 게 존재하는가. 로살리아는 형식을 통해 이 질문을 던진다. 모국어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를 축으로 독어와 아랍어 등 13개의 언어가 파편처럼 얹힌다. 여기서 다성성은 의미를 매개하는 도구를 넘어선다. 각 언어가 품은 고유한 억양과 숨소리를 악기 삼아 쌓아 올린 청각적 질감이 문장의 자리를 꿰찬다. 즉각적인 해독은 어려워도 감정만큼은 선명히 와닿는다. 결국 정보 전달이라는 소명을 벗어던진 언어 앞에서, 우리는 뜻을 좇던 청취 방식을 버리고 소리를 물질로 감각하는 새로운 세계를 목도한다. ‘팝은 영어가 중심’이라는 암묵적인 통념을 명확히 이탈한 결과다. 뜻을 묻지 않아도 이 음악은 충분히 전달된다. (이예진)

4. Oklou (오케이루) - Choke Enough
화면을 보는 시간이 현실 생활의 시간보다 길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를 진짜 현실이라고 불러야 할까? 올해 가장 현실적인 동시에 가장 초현실적인 팝 앨범, <choke enough>는 이러한 현 시대의 현실 관념 혼돈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초연결과 과잉 자극이 범람하는 작금의 디지털 라이프 속에서, 오케이루는 현실을 마치 환상처럼 대하며 지속적으로 그 환상적인 현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현실의 소중한 조각을 포착하고 그로써 스스로의 진정한 실존과 존재 가치를 탐색한다. 현실의 인간이 침대에 누워 꿈을 꾸듯, <choke enough>의 그녀는 디지털 라이프 안에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현실이라는 꿈을 꾸는 셈이다.
이렇듯 비현실이라는 현실 속에서 실재 현실을 지속적으로 부여잡는 작품이 그 의도와 주제 의식을 실현하는 방식은 독창적이다. 앞서 그녀를 언더그라운드 팝의 새로운 대안으로 위치시켰던 믹스테이프 <Galore>의 방법론을 더욱 강화한 본작은 특유의 침착한 전자적 앰비언트 위에 실물 현실을 상징하는 여러 현실적 터치를 덧입히며 그 현실적 백일몽을 청각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를 연상시키는 ‘thank you for recording’의 신스 플루트나 고전적 선율미로 무장한 ‘ict’의 트럼펫 같은 실물 악기 소스의 적극적 사용, “내 손을 잡아달라”는 등의 노골적 가사, 공상의 과정을 구조화하는 트랜스 구성 같은 요소들도 그러하거니와, 바흐 푸가를 닮은 철저한 반복과 점층은 그 대담한 수평적 각인으로 비현실과 현실의 혼돈이라는 작품의 테마를 보다 강렬하게 밀어붙인다. 이토록 기술적/미학적 면모를 고루 견지하며 그 진취성을 팝 씬에 강하게 설파한 작품이 몇이나 있었나. 현실적인 동시에 초현실적인, 과거지향적인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온화한 동시에 치명적인 <choke enough>는 과연 2025년 팝 씬의 가장 조용한 혁명이다. (이승원)

3. Dijon (디종) - Baby
본 이베어와 저스틴 비버를 넘나드는 독특한 협업 전선 밖 펼쳐진 디종의 개인 작업은 4년 전 <Absolutely> 때만 해도 웰메이드라는 감상에 수렴하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여름 반전된 이미지로 나타난 <Baby>는 거칠지라도 진취적이고자 하는 자아가 발휘된 음악적 날카로움이 가득하다. 본인을 포함한 훌륭한 프로듀서진과 같이한 이번 음반은 그가 타 작품에 남긴 어떤 크레딧보다도 확실하게 빛난다.
급격한 돌출과 거친 왜곡이 강화된 <Baby>의 탁월함은 곡의 세부사항을 도입, 브릿지 등의 소심한 부속물로 취급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절정으로 간주하는 집중력이 담보한다. 곧잘 활용되는 루프나 형식적 전개를 거듭하지 않으니 들려오는 모든 요소는 일종의 물질로 다가온다. 이 태도는 트랙을 넘어 앨범 전반에도 강력한 인상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부족한 반복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청취 동기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Baby>의 성취는 단순히 진보적이라거나 쾌락적이라는 말로는 다 하기 어려우며, 웰메이드라는 척도로 판단되기보다 웰메이드라는 개념을 스스로 정의하기를 원하고 있다. (권도엽)

2. Oneohtrix Point Never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 Tranquilizer
음악 예술이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는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와 같은 디스토피아적 상상의 결정적 촉매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끔찍한 상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다시 말해 음악 예술이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러한 가정에서, 진보적인 음악을 제작하는 행위는 일종의 예술적 기만 혹은 희롱이 될 것이다. 진보라는 팻말을 내건 음악 모두가 사실은 과거의 흔적을 짜깁기한 양두구육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진보의 가능성을 상실한 예술에게 남은 것은 깊이(아래)와 높이(위), 포용(옆)과 역사(뒤)뿐이기에, 미래 시제를 잃어버린 예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은 과거와 현재를 강하게 긍정하는 일이다. <Tranquilizer>는 이러한 가정에서 과연 ‘최선의 전자음악’이라고 칭할 만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의 정보 접근성이 극단적으로 가까워진 아카이브 시대,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는 이러한 정보 실존의 무용성과 시제 경계의 소멸을 긍정함으로써 다시 한번 현대의 핵심적 시대정신으로 강하게 접근한다.
작품은, 마치 <Replica>(2011)가 그랬던 것처럼, 90년대 상업 샘플 CD의 비선별적 모음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그는 이 샘플들을 모아 놓은 인터넷 아카이브가 한 순간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을 목격한 경험을 공유하고, 이토록 끊임없이 사라졌다 돌아오는 정보의 불가피한 필멸성/영원불멸의 재생 가능성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제작 과정으로 승화시킨다. 샘플로 상징화된 과거는 때때로 지루하고 끔찍하지만, 초보적 샘플 검색 프로그램인 Sononym을 사용해 이를 우연적으로 뒤섞이도록 하는 다니엘 로파틴의 이 단순무식한 제작 방식은 그 끔찍함마저 긍정하고 애정하는 궁극적 형태의 사랑을 대변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완성한 결과가 최근 그의 커리어 중에서 가장 즉각적인 쾌감을 선사한다는 사실은 특별하다. 예컨대 ‘Lifeworld’의 불규칙적 드럼 루프 위로 반짝거리는 신스는 마치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의 초기 비디오게임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신비로움을 발산하고, ‘Storm Show’의 바람은 언제는 산들바람처럼, 또 언제는 얼음 폭풍처럼 강렬하게 청자의 귀를 쥐고 흔든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그의 청명한 태도, 다니엘 로파틴은 이 천진한 소리로 우리에게 그 불안마저도 사랑하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승원)

1. Geese (기스) - Getting Killed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사회학의 종주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그의 저서 <자살: 사회학적 연구(Le Suicide: Étude de sociologie)>(1897)를 통해 자살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개인이 사회에서 고립되어 발생하는 이기적 자살, 개인이 사회와 너무 밀접하여 발생하는 이타적 자살, 사회 규범이 붕괴하여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 그리고 사회 규범이 과도하여 발생하는 숙명적 자살.
문자 그대로로는 ‘죽임 당하기’, 즉 타살을 뜻하는 <Getting Killed>는 이중 무려 세 가지의 유형을 동원하여 아주 철저하고 처절하게 자멸하는 작품이다. 우선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 앞서 2024년 말 솔로작 <Heavy Metal>에서도 인상적인 몰락을 선보였던 ‘파멸의 달인’ 카메론 윈터(Cameron Winter)는 청년을 파멸의 해구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금의 사회적 혼돈을 고스란히 전시하고, 그 혼돈 틈에서 기꺼이 무너지기를 택한다. <Heavy Metal>이 그랬듯 스스로의 취약함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그 헐벗은 몸으로 청년이 직면한 위험을 목도, 이내 그 고통의 수문을 열어 물밀듯 밀려오는 파도에 침몰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이토록 분명하게 스스로 파멸하기를 택한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이 사회가 현재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해서든 은폐하려 함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자살은, 자살에서 끝나지 않기 위해, 더 돋보이는 모양으로 전시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Getting Killed>가 이토록 기묘한 사운드를 택한 이유이고, 또한 이 시점에서 화자 카메론 윈터의 파멸은 청년의 동시대적 고통을 대표하는 숙명적 자살이 된다. (그 숙명은 어쩌면 십자가를 진 예수보다 나팔을 쥔 여호수아 혹은 가브리엘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롤링 스톤스로 대표되는 고전 블루스 록의 카리스마부터 캡틴 비프하트-프랭크 자파의 실험적 삐걱임, 빅 시프의 흔들리는 포옹까지 넓은 영역을 페이드-아웃처럼 아우르고, 블랙 컨트리 뉴 로드와 블랙 미디를 위시한 윈드밀 씬의 도래 이후 가장 창의적인 작곡으로 무장한 이들의 이질적 연주는 끝끝내 제 의도대로 스스로의 숭고한 무너짐을 더욱 처절한 모습으로 치장한다. 이 기묘하고 집요한 걸작이 스스로를 이토록 산산이 무너뜨리면서까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 손에 나팔을 든 사내가 다른 한 손으로 총을 겨누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결국, 또다른 실재적 파멸을 막기 위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승원)
Honorable Mention (11~100)
11. caroline - caroline 2
12. 青葉市子 (Ichiko Aoba) - Luminescent Creatures
13. PinkPantheress - Fancy That
14. Blawan - SickElixir
15. FKA twigs - EUSEXUA Afterglow
16. Darkside - Nothing
17. Sudan Archives - The BPM
18. Clipse - Let God Sort Em Out
19. Rochelle Jordan - Through The Wall
20. Natalia Lafourcade - Cancionera
21. Tyler, the Creator - DON'T TAP THE GLASS
22. redveil - sankofa
23. The Orchestra (For Now) - Plan 75 (EP)
24. billy woods - GOLLIWOG
25. Wednesday - Bleeds
26. Adrianne Lenker - Live at Revolution Hall
27. aya - hexed!
28. 電球 (Denkyu) - 分解 (EP)
29. Ethel Cain - Perverts
30. Joanne Robertson - Blurrr
31. Jerskin Fendrix - Once Upon A Time... In Shropshire
32. Mac Miller - Balloonerism
33. Elita - Hell Hill
34. Nourished By Time - The Passionate Ones
35. loopcinema - LOOP:GLAMOUR
36. Panda Bear - Sinister Grift
37. Kelela - In The Blue Light (Live)
38. kanekoayano - 石の糸
39. Bad Bunny - DeBÍ TiRAR MáS FOToS
40. McKinley Dixon - Magic, Alive!
41. Psychedelic Porn Crumpets - Carpe Diem, Moonman
42. Black Country, New Road - Forever Howlong
43. Smerz - Big city life
44. Sam Fender - People Watching
45. Maruja - Pain To Power
46. Makaya McCraven - Techno Logic
47. Deafheaven - Lonely People with Power
48. Los Thuthanaka - Los Thuthanaka
49. Djrum - Under Tangled Silence
50. Hiromi's Sonicwonder - OUT THERE
51. Earl Sweatshirt - Live Laugh Love
52. Hayley Williams - Ego Death At A Bachelorette Party
53. betcover!! - 勇気
54. Blood Orange - Essex Honey
55. Kali Uchis - Sincerely,
56. Big Thief - Double Infinity
57. Model/Actriz - Pirouette
58. dj galen - the Death of Music
59. Viagra Boys - viagr aboys
60. Amaarae - BLACK STAR
61. yeule - Evangelic Girl Is a Gun
62. Backxwash - Only Dust Remains
63. Men I Trust - Equus Asinus
64. Deftones - private music
65. Snõõper - Worldwide
66. JADE - THAT'S SHOWBIZ BABY!
67. Erika de Casier - Lifetime
68. The Weeknd - Hurry Up Tomorrow
69. Youth Lagoon - Rarely Do I Dream
70. Honningbarna - Soft Spot
71. Hayden Pedigo - I'll Be Waving as You Drive Away
72. Saya Gray - SAYA
73. Racing Mount Pleasant - Racing Mount Pleasant
74. Lucy Bedroque - Unmusique
75. Navy Blue - The Sword & The Soaring
76. Saba & No I.D. - From The Private Collection of Saba and No ID
77. Skrillex - F*CK U SKRILLEX YOU THINK UR ANDY WARHOL BUT UR NOT
78. Rebecca Black - SALVATION
79. Silvana Estrada - Vendrán Suaves Lluvias
80. Mei Semones - Animaru
81. Japanese Breakfast - For Melancholy Brunettes (& Sad Women)
82. Doja Cat - Vie
83. Shallowater - God's Gonna Give You a Million Dollars
84. KAYTRANADA - AIN'T NO DAMN WAY!
85. César y su Jardín - Corre y suelta a los perros
86. clipping. - Dead Channel Sky
87. Hesse Kassel - La Brea
88. Danny Brown - Stardust
89. Marina Sena - Coisas Naturais
90. Destroyer - Dan's Boogie
91. quickly, quickly - I Heard That Noise
92. Tropical Fuck Storm - Fairyland Codex
93. CMAT - EURO-COUNTRY
94. Gaby Amarantos - Rock doido
95. Masako Ohta & Matthias Lindermayr - Nozomi
96. Chuquimamani-Condori - Edits
97. Annahstasia - Tether
98. Little Simz - Lotus
99. Laufey - A Matter of Time
100. 星野源 (Gen Hoshino) - 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