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고 저기고 매년 제멋대로인 연말 결산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에서 “여기”를 담당 중이다.) 비록 담론이나 진단보다 관성으로 처리하는 작업처럼 보여도 의의는 분명하다. 여력의 한계로 살피지 못한 가작을 추켜세우는 일, 그리고 일상을 할애해 음악에 애정을 쏟은 사람들의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갔는가 돌이켜보는 일. 2024년 국내외로 하이퍼 팝의 대두에 이목이 쏠린 것을 회고하면 2025년의 파급력은 비교적 무난할지 모르지만, 연표가 곧 역사가 아니듯 사건만이 음악을 대변하지 않는다. 굳건한 팬덤의 힙합은 기성 아티스트의 전환점 같은 앨범이 수를 놓았고, 인디 록은 번뜩임과 안전지향 사이 갈등을 겪고 있으며, K POP은 세대교체를 암시하는 중이다. 어지러운 사회상에 비해 놀라울 만큼 무관심한 가사와 놀라울 만큼 날 선 가사도 공존했다. 이번에도 격렬하게 포문을 열어젖힌 새로운 얼굴이 있었고 속세 바깥에서 제 작풍을 고수하는 미적 다양성의 수호자가 있었다. 올해 음악의 물결은 거칠지 않게 부서지는 파도로 유연하고 부단히 채워진 셈이다. 고로 이 추운 겨울 한 해를 보내는 글로서는 서둘러 시류를 논하기보다 인사로 시작해야 도리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올해도 애써 누군가의 귀를 즐겁게 해준 모든 사람과 시간 내어 부족한 글을 읽어주는 여러분께 다음 해에도 음악 같은 안녕을 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권도엽)

10. 염따 - 살아숨셔 4
“Flex 해버렸지 뭐야 빠끄~” 같은 기믹도 ‘돈 Call Me (Prod. BRLLNT)’ 같은 대표곡도 ‘까방권’이 되어주지 못했다. 마미손과의 비프에 티셔츠 저작권 논란에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시간이 한참 흘러 “오랜만~”이라는 짧은 인사로 돌아온 염따의 한 손에는 <살아숨셔 4>가 들려 있었다. 마지막 싱글 발매일로부터 2년 반, <살아숨셔 3>로부터는 4년 반만이었다.
언제나처럼 하늘에 편지를 부치고는 사과부터 했다. “황세현아 잘 지내냐 요새는 우리 연락이 없다”라고 시작하는 ‘윽’의 2절 벌스와 ‘FLEX’를 늘어놓으며 이전 태도를 반성하는 아웃트로에 진심이 묻어나온다. 앨범 바깥에 있던 과거가 앨범 안의 현재로 이어지면서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더콰이엇을 향한 동경과 부러움을 특유의 순수한 톤으로 풀어내는 ‘더콰이엇’도 마찬가지다. ‘순정(純精)2025’부터는 본래의 강점 ‘염따’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연착륙한다. SNS를 끊고 음악에 집중하겠다는 진심이 거둔 승리. 정공법은 언제나 통한다. (이한수)

9. NMIXX (엔믹스) - Blue Valentine
4세대 K팝에서 엔믹스만큼이나 위태로운 초기를 보낸 그룹이 또 누가 있을까. 소위 3대 기획사라 불리는 JYP엔터테인먼트의 명함을 걸고 나왔음에도 엔믹스의 데뷔 초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수많은 손가락들이 그룹의 연이은 실패를 조롱했다. 이런저런 소스들을 우악스럽게 끼워맞춘 데뷔곡 ‘O.O’부터 당혹스러움만을 강하게 남긴 ‘Young, Dumb, Stupid’까지, 멤버 개개인의 재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적용한 ‘믹스팝’이라는 (당시로선) 기괴한 방법론은 대체로 그 누구의 지지도 얻지 못했고, 그 기조 그대로 그룹이 머지않아 침몰하리라 예측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최소한, 지금처럼 당해 최고로 꼽히는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며 놀라운 상업적 반등에 성공할 것이라 예언하는 것보단 확연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런 면에서 <Blue Valentine>의 지위는 제법 상징적이다. 물론 앞서 믹스팝의 체계적 완성을 해낸 <Fe3O4: BREAK>의 경우나 음악적으로 가장 큰 놀라움을 선사한 <Fe3O4: FORWARD>의 경우를 그룹의 더욱 결정적인 음악적 변곡점으로 보아야 알맞겠지만, 이토록 침몰 위기에 있던 그룹을 지금의 상업적 반등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Blue Valentine>은 엔믹스의 ‘환희의 음반’으로서 단연 배타적인 위치를 점해야 마땅하다.
물론 그렇다 하여 <Blue Valentine>이 이러한 상징적 지위에 의존하는 작품이라 평한다면 다소 곤란하다. 타이틀 트랙의 상업적 성공, ‘SPINNIN’ ON IT’의 믹스팝 정체성 완성부터 하여 본작에는 우리가 K팝 정규 앨범에 기대하는 핵심적 가치가 적확히 들어차 있다. 예컨대 ‘Phoenix’나 ‘Really Hurts’, ‘PODIUM’ 등의 킬링 트랙을 필두로 모든 수록곡이 저마다의 고른 완성도를 지닌다는 점이 그렇고, 레드벨벳식 다층적 팝을 계승하는 ‘Game Face’와 ‘Crush On You’, 데이식스식 팝 록 형식을 따르는 ‘ADORE U’ 등을 통해 K팝 헤리티지를 인상적으로 확장해나간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더불어 데뷔 때부터 줄곧 제창해 오던 라틴 색채가 다수의 트랙에서 그 효력을 발휘하며 그룹의 정체성을 확언한다는 사실까지. 이처럼 K팝 정규 앨범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가치를 단숨에 확보한 <Blue Valentine>은 과연 그 사운드 구성 하나만으로도 K팝의 장르적 확장성과 극대주의 노선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며, 나아가 4세대 K팝의 변곡 속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상징적 음반이라 칭할 만하다. (이승원)

8. 류한길 - ⑧ Rhythm Machine
통제와 함락의 자연관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무작위적 모습은 배격되고 조경된 자연만이 득세하는 중이다. 류한길이 쓴 소닉 픽션에 드러나듯 숲을 산책하던 중 발견한 나무토막 더미처럼 잔여물에 불과한 자연음, 배경음, 잡음, 소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그들을 도려내거나 이용할 뿐 존재하게 두지 않는다. 발상의 전환이나 개성 따위를 수호하던 예술의 양상도 그렇다. 이해되는 것만이 늘 아름다운 것이다. 너도나도 평이함을 선호하는 세간 속 잘나가는 작품이란 신기할 정도로 합리적이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적절한 비평으로 작용하는 소닉 픽션과 전시, 음반의 형태로 제작된 <⑧ 리듬머신>은 이런 세계 속에서 나머지의 역할을 자처한다. 배기음을 연상시키는 음향의 반복과 변주로 구성된 곡은 불쾌감을 두들겨 자극하는 반음악이다. 소닉 픽션에 적혔듯 “강약의 그루브”, “추상적 바이브”, “이질적인 리듬”을 추구하는 즉흥적 소리는 인간 관념이 개입하기 이전 자연에 귀 기울이고 잔여물에 불과한 존재를 떠올려 스스로 다원성을 실천하는 행위다. 때문에 사운드는 세계와 나머지의 간극만큼 어긋나 있고 합리성이라는 척도는 거부당한다. 우연과 필연 같은 서술은 세계를 자아중심적으로 왜곡한 결과이고 현상의 배후에 주체에 의한 사고방식은 없다. 우주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인간이 운명을 발명했을 뿐이다. 그곳에야 비로소 가능성이 있다. 완전함, 순환, 동질성이 아닌 기이함, 불쾌, 마찰과 파열만이 음악 바깥을 꿈꾼다. (권도엽)

7. 우륵과 풍각쟁이들 - 풍류
전통의 재구성은 한국 대중음악의 영구 과제이며, 근래 대중음악의 괄목할 만한 성과 또한 대개 이와 결부되는 것이었다. 매년 국악과 대중음악의 접목을 빼먹지 않던 평단의 기호를 넘어 크로스오버는 대중의 이목도 본격적으로 사로잡는 중이다. 그런 중 등장한 우륵과 풍각쟁이들의 음반은 자칭 “아방가르드”나 “재즈”와 같은 거리감이 있는 표현과 어울리면서도 속된 경쾌함을 지향하는 점에서 국악의 민속적 성격을 잘 헤아리게 만든다. 트랙당 평균 13분에 이르는 대곡 단 3개로 이룩한 <풍류>는 말뜻대로 신명나는 합주와 멋으로 그득하다.
유장한 곡의 규격이나 가파르고 억센 소리는 과거 프로그레시브 록의 잔재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풍물놀이의 역동성을 지닌다. 마지막 트랙 ‘연쇄-난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이 민중에 만연한 선율을 차용하거나 국적 불문의 즉흥 합주를 울리는 등, 서양을 중심으로 진행된 대중음악의 문법과 국악의 접점을 능숙하게 모색한다. 특별한 사설 없이도 공감하기 쉽게 내세워진 소란의 미학은 청자를 흥겨움의 장으로 몰아넣고, 절정으로 치닫는 비명 같은 창은 국악이 품은 주술적 면까지 목격하게 만들며 무언가 씐 양 연신 오랜 추임새를 외치게 한다. (권도엽)

6. 김오키 - 힙합수련회 2025
재즈 뮤지션이 내건 힙합 정신이라니. <힙합 수련회 2025>는 올해 가장 기묘하고도 참신한 음악적 성취다. 김오키는 스스로를 ‘돈만스키’라 자처하며 힙합의 외피와 서사를 두르지만, 정작 판이 깔린 뒤 그가 휘두르는 무기는 거친 숨으로 내뱉는 재즈 색소폰이다. 앨범의 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재즈라는 몸과 힙합이라는 정신이 매끄럽게 합쳐지기보다는 덜컥거리며 맞물리는 순간, 그 아슬아슬한 키치함과 압도적인 진지함 사이의 줄타기에서 독창적인 불꽃이 튄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흔한 서사도 김오키를 통하면 결이 달라진다. 르세라핌을 향한 팬심을 숨기지 않는 수미상관의 구성부터 ‘영포티알파메일’의 비장하고도 솔직한 고백, 원슈타인과 김일두의 나른한 공기, 여기에 오메가 사피엔의 본능적인 랩까지. 20곡의 방대한 흐름을 지루할 틈 없이 끌고 가는 것은 탁월한 완급 조절과 영화적인 연출력이다. 재즈의 깊은 터치로 보편적 감정을 설득하고, 록과 일본 포크까지 넘나드는 파격적인 믹스는 김오키의 진정성이 아니면 성립될 수 없는 조합이다.
앨범은 불필요한 수사나 겉치레를 걷어내는 것이 진짜 힙합이라고 외친다. 삶과 사랑, 그리고 2025년의 밈과 쇼츠 발 온갖 ‘뜬금없는’ 재미들을 긍정하는 용감한 포효다. ‘Parental Advisory’ 로고 대신 자신의 예명을 새긴 채, 456억을 베팅한 구애부터 이별 후의 지질한 미련까지 김오키의 속내를 까뒤집어 보여준다. 장난기 섞인 키치함을 한 꺼풀 벗겨내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뜨겁고 진지한 감정의 파고가 쏟아진다. 이러한 투명한 노출은 자기 객관화를 넘어선 예술적 결단이다. 규격과 형식을 비틀어 자유를 맛보고, 만남과 이별의 반복을 힙합의 자세로 수련하길 택한 한 영포티의 생존 방식. 장난처럼 던진 말들 사이로 끝내 숨길 수 없었던 진심이 보인다. (이예진)

5. Sik-K (식케이) & Lil Moshpit (릴 모쉬핏) - K-FLIP
트래비스 스캇의 카피캣이라 폄하되기도 하며 한국 힙합의 오리지널리티 비판 중심에 섰던 인물 식케이는 어느 순간부터 힙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꾼 듯 보인다. 그에게 힙합이란, 나아가 트랩이란 더 이상 미국에 종속된 개념이 아니었다. 트랩은 이제 성공인 동시에 망상이었고, Amen인 동시에 108배였으며, 롤렉스인 동시에 신천지였다.(’TRAP’ 中) 간단히 풀어보자면, 그에게 트랩은 곧 식케이 그 자신이자 그의 인생이었고, 동시에 그가 자라난 영토, 그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식케이는 그렇게 본인의 인생과 동일시된 트랩의 문화적 방향성을 미주가 아닌 한반도로 전환한다. ‘Fasho’ 등을 통해 이전에도 로컬 샘플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왔던 프로듀서 릴 모쉬핏과 함께, 식케이는 국내 대중음악•대중문화가 가진 역사성의 파편을 주워모아 단숨에 뒤집어 메칠 각오를 다진다. <K-FLIP>/<K-FLIP+>는 과연 그 각오의 기록으로, 그 안에 샘플의 형태로 차용된 문화적 연결성은 어떤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빛을 발한다. 2010년대 트랩의 빛나는 순간(’LALALA’, ‘PUBLIC ENEMY’)과 힙합 씬의 대중적 접점(’LOV3’)은 물론 인디 록의 과거(’PUBLIC ENEMY’)와 현재(’K-FLIP), 심지어는 인디 포크의 중심(’SELF HATE’)과 뉴 미디어의 파편(’KC2’)까지, 식케이와 릴 모쉬핏은 샘플의 뿌리를 조금도 숨기지 않는 노골적 태도로 샘플링 기반의 레이지, 트랩 음악이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국내 대중음악의 헤리티지를 강하게 집약하고 그로써 국내 힙합 씬의 중요한 레거시로 거듭나는 셈이다.
나아가 현 시대 가장 짜릿한 레이지 사운드와 날카로운 벌스들이 범람하는 <K-FLIP>/<K-FLIP+>의 본질적 쾌감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조차 작아 보이게 할 만큼 강렬하게 힙합 씬의 중심을 파고든다. 올해 힙합 씬 최대의 히트곡 ‘LOV3’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도파민 수치를 과시하는 ‘PUBLIC ENEMY’, 한국어 레이지 벌스 구성의 최첨단을 넘보는 ‘LALALA’까지. “또 다시 보여줘야 돼.”라는 식케이의 뻔뻔한 다짐이 증명하듯, 올 한 해 힙합 씬 정상을 이 두 사내가 모두 차지하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이승원)

4. 옴 - 가가호호 (EP)
누군가의 집집마다 자리했을 풍경. 냉장고 안에 먹다 남은 홍삼과 매실이 있고, 아침에 일어나 창가에서 해님을 보고, 뱃일을 떠나며 아이에게 심부름을 맡기고, 그러다 보면 다음 날이 찾아온다. 많지 않은 말로 일상을 눈에 선하게 하는 아담한 노래와 더불어 음악은 시공간을 주조하는 생기로 가득하다. 바람결처럼 흐르는 ‘봄바람’의 신디사이저와 동전 소리를 닮은 ‘심부름’의 찰랑이는 타악음,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는 보컬의 미덕까지 소박함의 향연이 토속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한국풍이라는 표현이 선뜻 떠오르는 <가가호호>는 최근 크로스오버에서 국악을 직접적으로 융합하려는 시도보다 감수성의 차원에서 미시적이고 섬세한 작업을 이룩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증명할 수도 없는 아름다움과 기풍이라는 문제에서 예술은 운좋게도 그것을 직접 내어보일 수 있다. 봄바람이, 홍삼이, 뱃노래가 한국적인가 하는 질문은 무용하다. 명백한 사실은 <가가호호>가 들려주는 형용불가한 선율 곳곳으로 우리는 이 땅 위의 몇 가지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권도엽)

3. 키라라 - 키라라
키라라는 마침내 자신을 긍정하며,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인 해방구에 도달했다.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자멸적인 감정에 침잠하던 전작들을 지나, 이번 셀프타이틀 앨범에 이르러 ‘웃기고 재밌고 신나는 댄스 음악’을 만들겠다는 선언을 실천한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음악. 창작 행위에 온전히 몰입한 이가 느끼는 환희가 청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선우정아, 언텔 등과 협업한 ‘음악’이나 ‘콘트라스트’가 보여주듯, 전반부는 클럽으로 돌진하는 듯한 위트와 예측 불가능한 충돌이 빚어내는 활기로 가득하다. 장르와 정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유희를 통해 음악을 빚는 근본적인 기쁨을 선명하게 내지른다.
<키라라>의 독창성은 삐뚤어진 유기성, 즉 ‘망한 놀이공원’ 같은 아이러니에서 터져 나온다. 다장조의 행복감을 자아내는 불독맨션의 ‘Destiny’를 샘플링해 팝적인 영민함을 뽐내다가도, ‘샐러드’에 이르러 심오한 사유 대신 ‘상추… 양배추…’를 나열하며 언어의 의미를 소거한 자리에 비트의 쾌감만을 남긴다. 질서와 균형을 거부한 채 질주하는 셈이다. 특히 ‘조감도’에서 ‘격추’로 이어지는 중후반부의 흐름은 ‘지구를 떠나려 했으나 실패했다’라는 서사를 따라 드라마틱한 낙폭을 만들며 앨범의 무게감을 확보한다. 클래지콰이류의 애수부터 스크리모의 파괴력까지, 키라라는 비트만으로 전자음악이 담아낼 수 있는 감정의 층위를 치열하게 조립하며 ‘가벼움을 지향하나 결코 얕지 않은’ 질감을 완성했다. 수백 가지 소리의 충돌과 조합으로 청각을 시종일관 자극하는 이 앨범은, 키라라라는 세계를 가감 없이 펼쳐 보이며 우리를 그 즐거운 혼란 속으로 기꺼이 끌어당긴다. (이예진)

2. Effie (에피) - E (EP)
올해 에피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리스너라면 반성해야 한다. 2025년 국내 음악 씬에서 에피의 존재감이란 그만큼 뜨거웠다. 범상치 않은 예고편 이상을 보여준 <E>, 자신을 향한 하이프가 과장이 아님을 증명한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 이 2장의 EP를 합쳐 단 30분이라는 시간 만에 국내 하이퍼팝 씬을 평정하고 태평양 건너 대니 브라운의 ‘샤라웃’까지 받았다. kimj로 모은 주목 위에 “20세기 출생들은 이제 좀 꺼져봐”라는 파격적인 라인과 “CAN I SIP 담배” 같은 독창적인 표현 등을 적재적소 활용하며 성공을 거둔 에피는 이제 크루 MY UNNIES와 함께 코첼라를 향하고 있다.
봄에 발매한 EP에 모든 실마리가 숨어 있다. 감성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전반부 ‘forever (feat. Manaka)’, ‘down’, ‘코카콜라’, ‘kancho’에선 신세대의 독특한 시선을 겸손 없이 표출했다. ‘maybe baby’를 기점으로 하는 후반부 본격적 댄스 음악으로의 트랜지션 또한 완성도 높다. 거기에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덤이다. 강하게 말해서 이 한 장만으로 독자적인 영토를 개척해 냈다. ‘morE hypEr summEr’가 찾아왔을 때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었을 뿐. (이한수)

1. Huremic (휴레믹) - Seeking Darkness
불교는 해탈의 종교임과 동시에 고뇌의 종교다. 흔히 불교에 무지한 우리가 부처라는 이름에서 열반의 초월적 이미지만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불교에서는 또한 부처가 그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번뇌와 씨름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거듭된 고뇌 끝에 진리가 있기에, 어쩌면 그 고뇌 속에 깨달음의 본질이 숨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파란노을의 사이드 프로젝트 휴레믹의 첫 번째 앨범 <Seeking Darkness>는 바로 이러한 고뇌, 깨달음에 닿기 위해 계속해서 번뇌에 부딪히는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모티브가 된 데즈카 오사무의 걸작 <붓다>(1972~1983)가 부처를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으로 묘사하며 그 과정의 진리를 탐구했듯, <Seeking Darkness>는 번뇌와 고뇌의 양태를 포스트록의 장대한 혼란으로 구현하며 그 무명(無明)의 어둠을 특유의 압도적 생동감으로 명시한다. 코끼리 울음소리 같은 여러 샘플과 서울대학교 예술과학센터에서 제공하는 국악 가상악기 등을 활용한 작품의 이 소리는, 언뜻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불교적 사운드’와 분명한 교집합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노이즈의 파괴적 쾌와 포스트록 진행의 서사적 쾌를 굳건히 견지함으로써 확연히 신선한 감상을 야기한다. 놀라운 솜씨다.
나아가 이러한 솜씨가 기존 파란노을의 작풍과 확연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은 특별하다. 만화 <붓다> 속 등장인물 타타의 비극적 생을 점층적 구조에 투시하는 첫 트랙 ‘Seeking Darkness Pt.1’의 경우나 또다른 등장인물 아자타샤트루의 굴곡진 생을 드럼의 아찔한 질주감과 급작스런 침강으로 암시하는 ‘Seeking Darkness Pt. 4’의 사례처럼 본작의 휴레믹은 주로 감정 외부의 독립적 테마를 악기 연주에 상징적으로 투과하는 방식의 접근을 보여준다. 이는 감정의 심도 깊은 묘사로 특유의 정체성을 축조하던 이전 파란노을의 작법과는 확연히 다른, 오히려 사운드 고유의 기술적·서술적 면모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작품은 그 방향 설정 자체만으로도 제법 신선한 인상을 주고 그의 미래 음악적 변화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이 독특한 인물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놀라운 음악가적 열의와 샘솟는 호기심, 인상적인 재능이 어우러진 이 걸작은 빛과 어둠의 이분법을 지우고 무명의 지혜를 드러내며 그 스스로 아직도 풀어낼 말이 남았다 역설하고 있다. (이승원)
Honorable Mention
11. Effie -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 (EP)
12. 우희준 - 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밑을 찔러 따갑다! (EP)
13. PCR - People Come Raging (EP)
14. NMIXX - Fe3O4 : FORWARD (EP)
15. baan - neumann
16. 주혜린 - stereo (EP)
17. 이최희 - GNPP
18. EK - YAHO
19. 오헬렌 - Show window project
20. 우희준 -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
21. NECTA - Seoul Bizarre (EP)
22. 최엘비 - her.
23. 이최희 - ONE DAMN RESULT : GREAT PAIN
24. 백현진 - 서울식: 낮 사이드
25. 유라 - A side (EP)
26. B-FREE - FREE THE MANE 3
27. moribet - so, ho hum
28. archie - world in delay (EP)
29. Herhums - Binding Chimes
30. khc - 아침놀
31. 산만한시선 - 산만한시선2
32. 정은혜 & 까데호 & 김예찬 - NAMDO CALLING
33. 꿈벅추 - 어린미래
34. 몰라시스템 - 시스템 오작동 (EP)
35. 향우회 - The Panic Tool (EP)
36. damirat - Curostenn
37. kimj - KOREAN
38. L-like - Phil (EP)
39. 전진희 - 雨後
40. Yves - Soft Error (EP)
41. 썬 타운 걸즈 - 처음은 이제 없어요 (EP)
42.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 - Invasion (Deluxe)
43. 백예린 - Flash And Core
44. 권나무 - 삶의 향기
45. BROSTONE & 김동민 - Tukimi (EP)
46. 토끼9 - education (EP)
47. Asian Glow - 11100011
48. Mudd The Student - LAGEON
49. tripleS - ASSEMBLE25
50. 제니 - Ru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