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CE
2024 국내 올해의 노래
by overtone | 2025.01.05
10. CIFIKA(씨피카) - Pebble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아티스트 씨피카가 이번에는 포크 사운드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Bonfire> 앨범에 수록된 ‘Pebble’은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한 아르페지오와 담담히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단출하게 얹힌, 마치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는 모닥불 같은 귀한 트랙이다. 이 노래는 스스로를 “해쳐 비추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비관과 혼란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담아낸다. 단순한 멜로디와 몇 되지 않는 코드 변화, 절제된 편곡은 복잡한 화려함 없이도 음악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무엇보다, 굴러온 돌멩이 같은 우리의 존재에 건네는 차분한 위로가 이 곡의 핵심이다.
오늘날 숏폼 콘텐츠에 맞춰 짧고 자극적인 리프로 소비되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Pebble’ 같은 트랙은 더욱 빛을 발한다. 기타 한 대와 목소리 하나, 긴 호흡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차분히 전하는 이 곡은 도파민을 억제하고 끝까지 귀 기울일 수 있는 리스너에게만 열리는 문과도 같다. 소멸해 가는 포크씬에서 이 트랙은 단순히 과거의 전통을 답습한 것이 아니다. 전자음으로 채운 자신의 다른 곡들과 비교해 극단적으로 간소화된 구성 속에서도, 씨피카는 오히려 음악이 가장 본질적일 때 얼마나 강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Pebble’은 올해의 트랙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잔잔하지만 오래도록 남을 여운과 따뜻함을 가진 이 곡은, 씨피카가 음악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순수한 힘 그 자체다. (이예진)
9. 정인 & 마일드비츠 - 탓
정인의 간드러지는 음색이 현악의 지위를 위협할 수준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창법이 기존의 발라드라는 자장을 벗어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한 이는 드물다. 마일드비츠가 마련한 소울의 놀이터 ‘탓’은 나란히 오른 두 아티스트의 이름부터 사이키델릭 풍의 질감까지 낯설고 신비로운 광경으로 가득하다. 기성과 신인, 국내와 국외, 현대와 전통, 음악과 타 예술 등 여러 방면을 교차하며 활용되던 이색적 콜라보가 완연히 제3의 면모를 발현한다. 어느덧 베테랑에 가까워진 두 사람임에도 과거에나 현재에나 씬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서로의 음악 세계를 보완하고 확장하며 청각적 황홀함마저 겸비한 ‘탓’은 올해 떠오른 여러 단일 트랙 중에서도 가장 뜻밖이고도 아름답다. (권도엽)
8. 유라 - 101(Home Home)
유라의 예술 세계는 독보적이다. 그 어떤 인물과 견주어도 유사점을 찾기 힘들 만큼 비범하고, 하나의 문장으로 관통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하며, 그 깊이 또한 가늠이 불가능할 만큼 심오하다. 원체 그 요염한 음색과 시적 언동(言動)으로 얼터너티브 알앤비 씬의 신인류로 취급받았던 그녀이긴 하지만 재즈/록 트리오 만동과의 만남 이후의 유라는 더더욱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재즈적 터치의 가미에 기존의 자율성과 생동감은 극에 달했고, 음악 인격 또한 헤아리기 힘들 만큼 다양하고 복잡해져 일반적인 음악적 예측은 더 이상 무의미했다.
‘101(Home Home)’은 놀랍게도 이토록 광활하고, 기묘하며, 또 입체적인 유라의 표현 인격을 단 3분의 시간으로 압축한다.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의 아찔한 오르내림으로 시작하여 ‘분홍’의 고혹으로 끌어오르는 곡은 결국 ‘샐리 넌 과감해질 필요가 있어’의 검푸른 격정으로 타오르고, 그 속에는 ‘수영해’의 직선적 울림과 ‘미미’의 보편적 선율 감각이 생생히 격동한다. 이 고약한 융합의 한복판에서 목소리는 또 어떻게 이토록 의연할 수 있단 말인가? 경외감 섞인 질문을 남기며 유라의 아린 발돋움은 한층 더 고고하게 떠오른다. (이승원)
7. 파란노을 - Evoke Me
피치포크(Pitchfork) 이안 코헨(Ian Cohen)의 평대로, 파란노을에게 있어 <Sky Hudred>는 “back to basics”과 같은 작품이었다. 허나 <To See The Next Part Of Dream>의 컬트적 성과 이후 급작스런 변화와 여러 사회적 교류를 겪으며 한 뼘 성장한 파란노을은 그 성숙을 잔뜩 품에 안은 채 당당히 되돌아간다. 생장의 굳은 살이 잔뜩 박힌 <Sky Hundred>, 그리고 ‘Evoke Me’는 파란노을의 ‘back to basics, but better’다.
인디 록 팬들이 열광해 마지않을 14분 가량의 대곡 ‘Evoke Me’에 파란노을은 지금껏 쌓아온 모든 음악적 역량을 남김없이 쏟아낸다. 그의 토대가 됐을 브레이브 리틀 아바쿠스(Brave Little Abacus)가 그랬듯, 장대한 러닝타임과 과격한 전환, 장장 세 번을 오르내리는 도전적 구조에도 그 구성엔 흔들림이 없고, 그 처절한 감정 표현에도 전에 없던 노련함이 은은하게 비친다. 백 번 떨어지는 햇살을 기꺼이 등 뒤로 넘기며 현대 이모(Emo)를 대표하라는 과업을 완수한 파란노을, 이젠 그의 이름에 걱정보다 큰 기대를 걸어야 할 차례다. (이승원)
6. 김뜻돌 - 미카엘
발끝만을 쳐다보던 음악 슈게이즈(Shoegaze)가 첫 마디부터 “고갤 들어 하늘을” 보라고 말한다. 장르를 전복하는 이 대담한 제안은 ‘미카엘’의 슈게이즈가 인간의 슈게이즈가 아닌 데에서 발원한다. ‘미카엘’의 낮은 시선은 팔짱을 낀 김뜻돌의 시선과 동일하고, 퇴폐적인 슈게이즈의 눈빛은 ‘미카엘’로 하여금 광채를 띠고 눈높이를 맞추고자 하는 따스함으로 재탄생한다. 그렇게 맺어진 천상과 지상의 소통은 완전무결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천상의 음성을 천사의 것이라 일컫는다.
우리를 대신해 눈을 낮추는 천사를 목격했으니 음악은 슈게이즈가 되기 위해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이토록 막연한 사랑은 물론 지상의 것은 아니지만, 소리라는 무형으로 우리 곁을 끊임없이 맴돌고, 누군가 그러한 음악을 계속해서 선사한다면 그것은 축복이라 할 만하다. 김뜻돌이 ‘현실적’인 것으로 대변되는 속세를 허구의 음성으로 쓰다듬고자 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어떤 음악은 굳이 애써서 인간적인 것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옛사람들이 저마다 환상을 더하던 구름 너머에 머무르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런 선율의 제안에는 잠깐 고개를 내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미카엘’은 어느새 귀로 들어서서 턱 밑에 도착해 있다. 우리의 턱 끝을 치켜올려 현실을 한 곡 동안만이라도 외면하게 만들려는 뜻으로. (권도엽)
5. NewJeans(뉴진스) - Supernatural
뉴진스의 계산된 자연스러움은 일본을 겨냥한 ‘Supernatural’에서도 빛났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가 섞여 국적을 특정하기 어려운 가삿말이 Y2K R&B 문법과 베이퍼웨이브를 만나 독특한 색을 내뿜는다. 브라운관 화면과 보랏빛 풍경, 일본어 자막과 한국어 간판, 퍼렐 윌리엄스의 추임새 콜라주와 뿔 달린 얼룩말을 타고 달리는 해린의 엉뚱함까지. 이 오묘하게 정합적인 가상 공간이 뉴 잭 스윙 사운드를 만나 만들어낸 멜랑콜리는 마치 ‘Ditto’처럼 생소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노스탤지어다. <First Love> 신드롬 25주년을 맞이한 올해, 뉴진스는 이 노래를 통해 우타다 히카루의 ‘Automatic’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본 R&B 계보를 이어 나갔고 K팝의 지역성마저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한수)
4. 비프리(B-Free), Hukky Shibaseki(허키 시바세키) - Get It
“너가 원하는 걸 시원하게 말해!”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Monocrom/1999)의 통렬한 전언과 ‘Break’(Beenzino/2015)의 경쾌한 고백이 공존하는, 가히 올해 가장 통쾌한 한방이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힙합에 몰두했던 ‘힙합의 학생’ 비프리는 이제 ‘힙합의 선생’이 되어 거대한 냉동실처럼 꽁꽁 얼어버린 힙합 씬에 ‘Hot Summer’처럼 뜨거운 일갈을 날린다.
“음악 없는 인생은 만화 없는 만화책 / 그게 말이 돼?”“내 랩은 마치 귀중한 금속”“나는 마이크 앞에서 내 자신과 대결”
비프리의 자랑거리는 돈, 자동차, 귀금속 따위가 아니다. 원하는 걸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배가 고픈데도 배부른 척하는, 경직된 씬과 사회 속에서 여전히 좋은 랩과 좋은 예술을 갈구하는 열의야말로 그의 자랑스런 재산이다. 그것 뿐이랴. 활어처럼 날뛰는 허키 시바세키의 비트 위에서 들소처럼 들이받을 줄 아는 가공할 솜씨 역시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10년의 시간 동안 씬의 정상을 지킨 그 위대한 원동력의 증명. ‘집세가 버거운’ 비프리에게, 돈이 차고 넘치는 래퍼들은 가질 수 없는 멋이 흘러넘친다. (이승원)
3. ILLIT(아일릿) - Magnetic
시시때때로 유행을 요구하는 대중의 입맛에 따라 K팝은 매년 일종의 신드롬을 마련해왔다. 그렇다면 2024년의 신드롬은 단연 “슈퍼 이끌림”의 등장이 아닐까? 근래 급격히 누그러든 K팝 사운드의 기조에서 사랑스러움을 더욱 극대화한 ‘Magnetic’은 듣는 이의 마음마저 단숨에 누그러트린다. 멤버 개개인의 매력과 그룹의 정체성을 최대로 이끌어낸 음악 내외의 구성은 지극히 영리했고 또 성공적이었다. 자석을 문자화한 알파벳의 재치로 하는 부름 속 반칙 같은 상냥함에 누구라도 선뜻 귀를 내어주고 마는 것이다. (권도엽)
2. SUMIN(수민), Slom(슬롬) - 신호등
<MINISERIES 2>의 결말을 알리는 ‘신호등’은 드럼 앤 베이스와 시부야케이를 조합해 2024년의 정서를 포착했다. Slom과 같은 스탠다드 프렌즈 소속 자이언티가 작년에 보여준 ‘V (Peace) (feat. AKMU)’의 연장선상에서 토와 테이(TOWA TEI)의 ‘TECHNOVA’처럼 세련미를, 뉴진스의 ‘Right Now’처럼 동시대성을 갖춘 이 곡은 침묵하는 것으로 진한 멋과 여운을 남긴다. 더불어 주어의 변화를 통해 단편적인 이야기를 개인화된 사회의 보편적인 외로움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나 혼자 붉은 하늘과 함께 떠나보내요”가 관조적인 “어딘가 두 사람 기다렸듯이”로 변화하면 ‘개인사’와 ‘내 생각’에 이르렀던 이야기는 다시 ‘보통의 이별’로 회귀하며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완결성 높은 앨범 트랙으로서도 Sambass라는 장르 트렌드의 변용에서도 심지어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다. 올해의 노래 중 하나로 손꼽기에도 역시 부족함이 없다. (이한수)
1. aespa(에스파) - Supernova
2024년, 에스파는 광야에서 또 한 번 폭발했다. ‘Supernova’는 이름 그대로 초신성의 폭발력을 품은 트랙으로, 올해 K팝 씬에서 가장 빛나는 곡이다.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묵묵히 이어가는 이들의 행보는 음악적인 완성도로 귀결되었으며 압도적인 아우라를 자아냈다. 유영진 없는 SMP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뒤엎고, ‘Supernova’는 전통적인 SMP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SM 음악의 정수를 이어받았다. 기계적인 리듬과 음가가 없는 듯한 멜로디가 만드는 차갑고도 치밀한 설계, 반복적으로 귓가에 맴도는 “Su su su supernova”, “Ah Oh Ay”는 마치 쇠로 빚어낸 듯한 독창적인 질감으로, 곡에 담긴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 곡은 에스파의 세계관이 비로소 대중성과 조우하는 순간이자, 그 세계관을 넘어선 서사를 구축하는 분기점이다. ‘광야’와 ‘ae’로 대표되는 초월적 차원의 서사는 더 이상 소수의 팬덤을 위한 난해한 설정이 아니다. 초신성처럼 폭발하는 비주얼과 퍼포먼스, 명징한 메시지를 담은 가사는 대중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에스파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밟으실 수 있냐”는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이들의 자신감은 한국 대중음악계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주체적인 서사를 상징하며,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치적 맥락까지 더해졌다. ‘Supernova’는 단지 한 곡이 아닌, 한 해를 관통하는 사건이었다. K팝의 첨단과 전통, 실험과 대중성, 그리고 음악적 비전을 모두 담아낸 이 곡은 2024년 에스파가 만들어낸 가장 찬란한 초신성이다. (이예진)
11. aespa - Whiplash
12. tripleS - Girls Never Die
13. CHS - Wet Market
14. QM - 입에총
15. 한로로 - ㅈㅣㅂ
16. NMIXX - DASH
17. EK - Survive
18. 조동희 - 꽃차례
19. KONTRAJELLY - 꽃신
20. 김반월키 - 단상 : 불나방
21. NET GALA - Warp This Pussy
22. 김심야 - WAY 2A HEAD
23. 요 - 틸리쿰
24. ARTMS - Birth
25. KISS OF LIFE - Midas Touch
26. 카코포니 - Snowman
27. NCT 127 - 삐그덕
28. 향우회 - My Little Baby
29. 재현 - Smoke
30. 단편선 순간들 - 음악만세
31. 버둥 - 알아챈 순간
32. 정미조 - 살아있는가 (feat. 하림)
33. 팔칠댄스 - 4DL
34. OKASHII - CRIB
35. 율음 - Train
36. Tabber - Chi-Ka
37. Yetsuby - 1,2,3 Soleil
38. 미역수염 - HEX
39. 로제 - APT.
40. 장세현 - 다음 꿈이 궁금해서 더 잤어
41. O’KOYE - Yezzir
42. Piano Shoegazer - 펭귄
43. Wildberry - dive in your eyes
44. RM - Groin
45. 비비(BIBI) - 밤양갱
46. 수잔 - 바다 뜰채
47. Donna Goldn - 청포도 마누라
48. 윤지영 - LOVE IS EVERYWHERE
49. ZICO, JENNIE - SPOT!
50. IVE - Blue Heart
Recent Choi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