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의 심미적/음악적 트렌드가 정-반-합의 거시적 구조를 따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녀,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하며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으로 이어지는 K팝의 르네상스를 이끈 프로듀서 민희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2023년 뉴진스의 성공과 함께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민희진은 소녀시대의 콘셉트에 대한 질문에 이런 말을 전했다.
소녀시대가 나오기 이전의 걸그룹들은, 제가 생각했을 때 약간 어떤 정형화된 느낌들이 있었거든요. “닿을 수 없는 미소녀”,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중략) 사람들은 싫증을 금방 느끼잖아요. 근데 그 싫증이 어떤 논리로 이루어지냐면… 정-반-합으로 보통 이렇게 정리가 돼요. 정이 있으면 거기에 대한 반이 생기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합이 생기거든요 꼭. 그리고 다시 정-반-합이 또 이어져요. (중략) 그래서 (소녀시대) 이전의 반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었을 때, 굉장히 친근하고 화장기를 뺀, 담백한…
흥미롭게도, 이렇게 기존 K팝의 철저한 안티테제로서 등장한 소녀시대는 오랜 기간 K팝의 표본으로 자리잡았다. 반으로 시작한 콘셉트가 새로운 정의 명제로 거듭난 것이었다. 모두가 소녀시대의 친근한 컨셉을 참고했고, 누군가는 본받았으며, 누군가는 이를 기반으로 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방향성이 업계의 문법을 정의하는 하나의 표준이 된 셈이었다.
소녀시대가 황혼기로 접어들고,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다름 아닌 트와이스였다. 이들은 소녀시대가 제시한 ‘친근함’의 개념을 재차 강화하고, 이를 더욱 현대적인 형태로 전달하며 스스로 새로운 K팝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Perfect Velvet>의 위상을 필두로 더 높은 음악적 평가를 받기도 하는 레드벨벳이나 국제 단위의 인지도를 획득한 블랙핑크 등 동세대 내 경쟁자들 역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하였지만, 결국 ‘K팝 걸그룹’을 상징하는 이미지(소녀시대가 가졌던 그것)를 획득한 것은 트와이스라고 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제법 오랜 기간 동안 K팝 시장 꼭대기에 자리할 수 있었다.
소녀시대가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오랫동안 상징적 지위를 지켜냈듯, 트와이스 또한 ‘OOH-AHH하게’로 데뷔한 이래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은 업계의 중심이고, 이제는 케케묵은 단어인 ‘한류’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이들이 10년의 시간 동안 상징적 위치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트와이스의 인상적인 곡 20개를 간단하게 살펴보며 이들의 10년과 K팝의 지난 10년을 동시에 되돌아본다.
20. POP! (2022)
대부분의 K팝 그룹, 아니, 어쩌면 모든 K팝 그룹은 해당 그룹의 미학적 핵심이 되는 멤버를 가진다. 그 한 명의 (혹은 그 이상의) 멤버는 그룹의 음악적 색채나 콘셉트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며, 그룹의 얼굴이자 중심으로서 작품 제작 과정의 기준이 된다. 이는 해당 멤버의 보컬 역량과 음색, 비주얼, 안무 수행력, 스타성, 콘셉트 소화력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으나 K팝에서 흔히 말하는 ‘센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예컨대 걸그룹 레드벨벳의 센터는 아이린이지만 작품 제작 과정에서 그룹의 음악적 중심이 되는 멤버는 슬기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레드벨벳이 레드-벨벳의 투 트랙 작풍을 구성할 수 있었던 근간에 팝과 알앤비를 오가는 슬기의 보컬 수행력과 넓은 콘셉트 소화력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레드벨벳 슬기와 함께 K팝 3세대를 대표하는 ‘5툴 플레이어’인 나연은 과연 트와이스라는 그룹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탄탄한 기본기와 청명한 음색으로 무장한 그녀의 보컬은 언제나 곡의 도입부, 코러스, 브릿지 등 핵심 파트를 도맡았고, 트와이스의 곡 설정, 콘셉트 설계의 토대가 됐다. 초기의 상큼함부터 후기의 성숙함까지, 트와이스가 연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룹의 색채를 발전시켜갈 수 있었던 원동력 또한 그녀에게 있었다.
그룹의 첫 번째 솔로 데뷔 주인공이 나연이었던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연의 솔로 데뷔곡이자 트와이스의 첫 솔로 트랙인 ‘POP!’은 나연의 상큼한 보컬과 캐릭터를 상쾌하고 건강한 관능의 영역까지 확장한 작품으로, 왜 그녀가 트와이스를 대표하는 인물인지, 나아가 왜 그녀가 K팝 3세대를 대표하는 재능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매력적인 곡이다.
19. Fanfare (2020)
2016년 K팝 시장을 지배하듯 한 트와이스의 영향력은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자국민의 해외 성취를 기뻐하는 현대인의 본성은 그룹의 세 명 중 한 명이 일본인인 이들에게 일본 진출의 문을 열어주었고, 트와이스는 이러한 환영에 부응하듯 J팝 시장에 전격 침투하며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트와이스의 수많은 일본 활동곡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곡으로 손꼽히는 ‘Fanfare’는 이런 트와이스의 특수성을 적절하게 대변하는 곡이다. 이들은 K팝의 형식적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그 속의 J팝이 선호하는 정서, J팝이 환영하는 사운드를 담을 줄 알았고, 이를 통해 J팝 시장에 안정적으로 발을 들임은 물론 2010년대 후반 이후 K팝과 J팝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18. I CAN’T STOP ME (2020)
트와이스의 커리어 두 번째 정규 앨범 <Eyes Wide Open>의 타이틀곡, 신스웨이브 작법을 가동한 ‘I CAN’T STOP ME’에는 분명한 호불호가 있었다. 성숙미를 끌어올린 신스웨이브 구성이 그룹과 맞지 않는 옷이라는 평가가 간혹 있었고, 곡 전반에 흐르는 은은한 ‘뽕끼’와 오묘한 오리엔탈 색채에 불호를 표하는 이들도 왕왕 존재했다.
허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후렴이 “I can’t stop me”라는 비문을 거듭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I CAN’T STOP ME’의 굳건한 사운드 구성과 위력적인 멜로디는 끝내 곡의 매력을 인정하게 만든다. 특히 후렴 멜로디가 가지는 캐치함은 곡의 최대 장점으로, 팝 음악에서 멜로디의 지위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17. Alcohol-Free (2021)
데뷔 7년차, 멤버 전원이 성인의 나이를 훌쩍 넘긴 트와이스는 2021년 여름 발매된 EP <Taste of Love>의 타이틀 트랙 ‘Alcohol-Free’를 통해 술이라는 독특한 테마를 꺼내들었다. 취하다, 마시다 등 음주를 연상시키는 묘사가 연이어 등장했음은 물론 후렴에는 샴페인, 모히또, 피냐 콜라다 등 술 이름이 열거되었고, 뮤직비디오 또한 술과 트로피컬, 휴양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제법 흥미로운 콘셉트였는데, 이러한 테마를 더욱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콘셉트만큼이나 노골적인 장르 선택이 있었다. 가벼운 라틴 색채를 가미하거나 트로피컬 하우스 계열로 타협하는 대신 이들은 분명한 보사노바 구성을 들여왔고, 그로써 보다 설득력 강한 서머 송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16. YES or YES (2018)
(특히 초기) 트와이스의 정체성은 ‘거부하기 힘든 직선적 러블리함’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들이 2018년 말미에 발표한 곡 ‘YES or YES’는 과연 트와이스 본연의 캐릭터를 대단히 적확하게 연결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어이없어”, “하여튼 웃겨” 등의 반응으로 사랑이 시작된다는 우스갯소리에 공감한 적 있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터. “뭘 고를지 몰라 준비해 봤어”라는 개방적 태도의 관용구와 “둘 중에 하나만 골라 YES or YES”의 ‘답정너’를 대비하며 연결되는 후렴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벼운 실소를 유발하면서도 그 당당한 매력에 절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토록 뻔뻔한 고백과 상큼한 매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15. KNOCK KNOCK (2017)
‘YES or YES’가 “나의 마음을 받아라”라고 뻔뻔하게 강요하는 곡이라면, ‘KNOCK KNOCK’은 “나에게 다가오라”는 솔직한 고백을 담은 곡이다. 굳이 돌려 말하지 않는 이러한 직진성부터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매력적인 멜로디까지, 단 한 번이라도 트와이스의 곡에서 매력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거부하기 힘든 요소들이 ‘KNOCK KNOCK’에는 가득 차 있다. 동시에 트와이스의 첫 번째 겨울 테마 송인 이 곡은 대중이 일반적으로 윈터 송에 기대하는 묘한 아련함을 성공적으로 담아내며 트와이스의 첫 전성기를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무척 모범적인 K팝 트랙이자 윈터 시즌 K팝의 교본과도 같은 곡.
14. Talk that Talk (2022)
굳이 꼬아 말하지 않는 트와이스의 직진성은 상술한 ‘KNOCK KNOCK’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22년에도 유효했다. 보다 모던한 사운드로의 확장에 성공한 ‘Talk that Talk’의 트와이스에게도 ‘솔직한 고백’은 매력적인 주제였고, 어렵지 않게 다시 꺼내들 만한 테마였다. “때로는 뻔한 말이 더 좋다는 걸 알잖니”, “단순한 Words 사랑한다는 말 / 그게 다야 / 난 꾸밈없이 듣길 원하지”, “난 심플하게 다 말할게 I love you”… 단순하지만 거부하기 힘든 고백이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정론을 떠오르게 한다.
13. Strategy (feat. Megan Thee Stallion) (2024)
본 목록에서 소개될 노래 중 가장 최근에 발매된 곡인 2024년작 ‘Strategy’는 트와이스가 자랑하는 강점 중 하나인 진행의 완급조절이 돋보이는 곡이다. 여전히 다채로운 악곡의 파트 구성은 비트의 진행과 안정적으로 어우러지는데, 그러한 유려함 와중에도 멜로디의 캐치함을 놓치지 않는 특유의 솜씨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더불어 K팝의 피지컬을 아득히 상회하며 곡의 감칠맛을 더한 메간 디 스탤리온의 벌스까지. 10년차를 바라보는 이들의 제작 수준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한 곡이다.
12. HOT (2019)
트와이스의 상업적 전성기는 이견의 여지 없이 ‘OOH-AHH하게’ - ‘Cheer Up’ - ‘TT’로 이어지는 데뷔 초기지만, 트와이스가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준 시기는 <FANCY YOU>와 <Feel Special>로 대표되는 2019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트와이스는 상큼한 소녀의 이미지에서 성숙한 성년의 이미지를 향해 가고 있었고, 이러한 과도기적 시기의 중심에서 다양한 색채를 창출해낼 수 있었다.
비교적 핑크빛을 띠는 EP <FANCY YOU>에 수록된 트랙 ‘HOT’은 해당 시기의 수록곡 중 가장 간결하고 깔끔하게 청각을 매료하는 곡이다. 물론 찰리 XCX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 ‘GIRLS LIKE US’, 중독적 리듬의 ‘STRAWBERRY’ 등 앨범 전반이 매력적인 곡으로 가득하긴 하지만, ‘HOT’의 편곡이 과시하는 위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11. The Feels (2021)
트와이스는 그들의 첫 영어 싱글인 ‘The Feels’에 그들의 강점을 노골적으로 몰아 넣었다. 전성기를 장식한 하이틴 감성과 이후의 성숙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혼합시켰은 물론, 특유의 가볍고 캐치한 멜로디를 다시 한번 전격으로 대동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이 실제로 영어권 시장에 유효했는지 여부는 미지수지만, 분명한 것은 주무기를 잔뜩 끌어 모은 ‘The Feels’의 ‘아는 맛’이 너무나도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10. 날 바라바라봐 (2017)
정공법과 솔직함을 즐기는 트와이스의 많은 곡들 중에서도 이 곡은 유독 직설적이다. “나를 바라봐”라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전달함도 모자라 “날 바라바라봐”라는 언어적 위트로 표현에 애교를 더하고, 이를 다시 영어로 직역하여 뇌리에 지속적으로 각인시킨다. 상대방을 향한 애정을 이 정도로 분명하게 표현하는 곡이 또 얼마나 있을까. “오글거린다”는 개념이 솔직한 감정 표현을 계속해서 제한하고 있는 지금, 이처럼 노골적인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그룹은 극히 드물고, 이는 작가주의로 점철된 팝 시장에서 K팝이 가지는 가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9. TT (2016)
2016년을 넘어 K팝 역사상 최대의 연타석 히트 중 하나로 기록될 ‘Cheer Up’ - ‘TT”의 연이은 대성공은 신인에 가까웠던 트와이스의 지위를 단숨에 ‘국민 걸그룹’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전국의 남자 고등학생들은 틀림없이 트와이스 멤버 중 누가 ‘최애’인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펼쳤을 테고, 킬링파트인 “Shy Shy Shy”와 “너무해, 너무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국에 울려퍼졌을 것이 분명했다. 상업적 성공을 넘어, 이 시기 트와이스의 인기는 가히 하나의 현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TT’의 이러한 성공은 여러모로 ‘친숙함’이라는 요소가 K팝 시장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우는 표정을 뜻하는 이모티콘 ‘ㅜㅜ’를 ‘TT’로 연결한 제목부터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네”, “피부는 왜 이렇게 또 칙칙”, “짜증날 것 같애 화날 것 같애” 같은 생활밀착형 표현, 과도한 컨셉 설정 대신 택한 할로윈 분장 수준의 단순한 의상까지… 보편적인 청자에게 더욱 쉽게 다가가기 위한 이 선택은 블랙아이드필승의 대중친화적 멜로디 솜씨와 어우러져 2016년 K팝을 대표하는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8. LIKEY (2017)
성공가도를 달리던 트와이스는 2017년, 그룹의 첫 번째 위기이자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SIGNAL’의 발매였다. 분명한 매력이 존재하는 곡인 만큼 발매 후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는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리는 수준이지만, 발매 당시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었다. 작사/작곡/편곡에 직접 참여한 박진영 프로듀서를 향한 비판이 줄을 이었고, 비난 수준의 혹평을 제기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데뷔 후 처음으로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받게 된 트와이스는 첫 정규 앨범인 <twicetagram>과 타이틀곡 ‘LIKEY’를 통해 결국 반등에 성공했다. 가요계 입문 이후 가장 큰 비판을 떠안은 박진영 프로듀서는 곡 작업에서 물러나 다시 프로듀싱을 블랙아이드필승에게 일임했고, 이러한 후퇴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속도감 있는 비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가벼운 멜로디는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적중했고, 파트 분배나 콘셉트 설정에서는 미묘한 변화도 포착할 수 있었다.
7. LOVE FOOLISH (2019)
‘HOT’ 부분에서 언급한대로, 트와이스가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던 시기는 <FANCY YOU>와 <Feel Special>로 대표되는 2019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의 방점을 찍은 곡은 다름 아닌 수록곡 ‘LOVE FOOLISH’였다. 상큼함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던 트와이스의 기존 작풍에서 크게 벗어난 이 곡은 타이틀곡 ‘Feel Special’과 함께 그룹이 비로소 성년의 이미지를 완성하게 한 기반이 되었으며, 그룹에게 생소했던 주제인 긴장과 위험, 애증의 정서를 성공적으로 풀어낸 인상적인 트랙이 됐다. 나아가 트와이스 커리어 최고의 B-사이드 트랙으로 손색이 없는, 그룹의 음악적 전환기와 확장, 대담성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곡이다.
6. OOH-AHH하게 (2015)
트와이스의 첫 등장이 흥미로웠던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비주얼. ‘OOH-AHH하게’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9명의 멤버는 단 한 명도 동일한 의상을 입고 있지 않았고, 샛노란 포니테일부터 분홍빛 숏컷까지, 헤어 스타일이나 머리 색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수많은 그룹들이 데뷔 초 시기 멤버 얼굴 각인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트와이스의 코디네이팅은 곧바로 멤버 개개인의 존재감 증대로 이어졌다.
이에 맞춰 곡 또한 비교적 뚜렷하고 다채롭게 구성되었는데, 이것이 트와이스의 등장이 흥미로웠던 두 번째 이유다. 트와이스라는 그룹의 등장을 알린 ‘OOH-AHH하게’는 제법 다양한 질감의 라인이 번갈아 등장하고, 또 재빠르게 전환되며 9명 각각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담아낼 만한 자리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곡의 도입부를 보면, 나연의 상큼한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진행하다가도 모모의 랩이 갑작스레 개입하는데, 이러한 구성을 통해 멜로디 위주로 진행되는 곡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짧은 시간 내에 비(非)보컬 멤버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초기 트와이스의 다른 타이틀곡에서도 마찬가지다.)
‘OOH-AHH하게’의 트와이스가 이토록 비(非)중심 멤버 파트 배치에 힘쓴 이유, 트와이스의 등장이 흥미로웠던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단연 강력한 멜로디의 존재였다. “어떻게 내가 움직일 수 없게”로 시작하는 후렴 멜로디는 당대 그 어떤 멜로디보다도 상쾌했고, 듣는 이의 귀를 끌어당기기에 알맞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파트를 나연-지효에게 할애하지 않는 것이 뭔가 잘못된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이라이트 파트를 나연-지효에게 배정하기 위해 다른 파트를 잘게 쪼갰다 하여도 과언은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전략적 수는 완전히 적중했고, 위력적인 멜로디와 함께 훗날 트와이스가 3세대의 패자(霸者) 중 하나로 성장할 기반이 되었다.
5. Heart Shaker (2017)
트와이스의 두 번째 윈터 송, ‘Heart Shaker’ 또한 ‘OOH-AHH하게’ 만큼이나 청량하고 상쾌한 멜로디를 통해 청자에게 매우 쉽고 빠르게 다가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이 이미 세대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거듭난 시점에서, ‘OOH-AHH하게’의 다채로운 코디네이팅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소녀시대가 ‘Gee’에서 보여주었던 필승의 흰 티-청바지 조합, 그룹 최강의 무기인 위력적 후렴을 동시에 대동한 ‘Heart Shaker’의 작법은 친밀함을 주로 다루는 트와이스의 접근법 중에서도 가장 대중친화적이었고, 발매와 동시에 이 곡의 성공을 예견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4. FANCY (2019)
트와이스의 두 번째 챕터, 그 서막을 알린 곡 ‘FANCY’는 트와이스의 음악적 변화를 상징하는 곡이다. 앨범 소개글에서부터 ‘확연히 다른 컬러’를 명시한 ‘FANCY’는 보다 침착하고 성숙한 사운드 조성을 통해 상큼함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던 이전 작풍과 분명한 차이를 보였고, 테마를 대하는 태도 또한 보다 대담하고 도발적인 모습이었다. 새로운 작풍 그 자체에도 충분한 매력이 있었지만, 이러한 변화가 더욱 분명히 적중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기존의 색채를 놓치지 않는 음악적 타협이 있었다. 분명히 다른 분위기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곡은 초기 트와이스가 가지고 있던 특장점, 명료한 멜로디 설정을 굳건히 유지했고, 그로써 기존의 상큼함을 달콤함으로 확장하여 앨범 커버의 분홍빛으로 연성할 수 있었다. 과연 그룹의 지속가능성을 향한 야심과 절충이 만든 인상적인 트랙이다.
3. Cheer Up (2016)
‘국민 걸그룹’ 트와이스를 존재하게 한 2016년 최고의 히트곡이자 3세대 K팝을 상징하는 메가 히트곡 ‘Cheer Up’을 다시 들을 때마다 거듭 드는 생각은, 이 곡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곡임을 떠나 기억 이상으로 단단한 음악적 완성도를 가진 트랙이라는 것이었다. 악곡의 서두부터 마무리까지의 진행은 대단히 치밀하고, 각 파트의 매력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사이의 연결을 제법 자연스럽게 구성한다. 치명적 중독성의 멜로디 아래 브레이크비트의 속도감을 위치시키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후렴의 탄탄한 진행, 자연스럽게 고조되는 브릿지 이후 등장하는 댄스 브레이크 파트의 구성적 재치… 여타 히트송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음악적 허술함보다는 오히려 웰-메이드라는 수식어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샤샤샤”로 알려진 킬링 파트가 기대 이상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인상적인 부분. 히트곡을 반드시 고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잘 만든 히트곡을 고평가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2. Feel Special (2019)
그 어떤 여자도 평생 소녀일 수 없고, 그 어떤 남자도 평생 소년일 수 없다. 바람직한 어른이 되는 일은 모름지기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트와이스의 음악적 변화는 이러한 인정과 성숙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고, 10년의 시간을 달려온 베테랑의 품격 역시 이러한 변화의 산물이었다.
‘FANCY’가 그 물꼬를 트는 확장의 시작이자 변화의 과정이었다면 그 뒤를 이은 ‘Feel Special’은 이러한 성숙의 만개 혹은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어른의 여유와 품격이 느껴지는 곡은 분홍빛을 띠던 ‘FANCY’의 달콤함을 고혹적인 금색의 우아함으로 발전시켰고, 이는 그룹의 연차에 맞아들며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네가 있어 난 다시 웃어”, 커리어 내내 노래하던 직관적 애정이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한 순간. 데뷔 10주년을 맞은 트와이스의 커리어를 되돌아 볼 때 가장 호화롭게 빛나는 곡이다.
1. What is Love? (2018)
트와이스라는 그룹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당연히 사랑이다. 그중에서도 그룹의 전성기인 초기에는 이러한 테마가 더욱 두드러졌다. 언제나 이들은 사랑의 빠지는 과정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토록 일반적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는 그룹이 보편적인 사랑을 받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테마로 요약할 수 있는 트와이스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곡으로 ‘What is Love?’를 뽑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어떤 노래보다도 직관적으로 사랑에 대해, 특히 순수한 사랑의 설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사탕처럼 달콤하다는데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데(…)
하루종일 웃고 있다는데
세상이 다 아름답다는데
곡이 흥미로운 지점은, 화자가 사랑을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상태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클리셰적 어구를 잔뜩 동원한 후렴은 화자가 “책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드라마 속에서 사랑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분명한 설득력을 가지고, 오히려 극대화된 순수성으로 다가올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에 대한 설렘’은 ‘사랑의 설렘’보다도 보편적인 주제가 아닐까?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 또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를 거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What is Love?’는 보편성을 최대 강점으로 했던 트와이스의 가장 상징적인 곡이자 K팝의 본질적 순수성 추구와 리얼리즘을 관통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