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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IXX - <Fe3O4: FORWARD>: 성숙은 곧 확장, 확장은 곧 전진.

by 이승원 | 

NMIXX <Fe3O4: FORWARD>JYP엔터테인먼트

엔믹스의 신인 시절을 되돌아본다. 마치 K팝의 공식 자체를 전복시켜 보겠다는 듯 거창하게 내건 ‘믹스팝(MIXX POP)’은 언뜻 보기에도 실현 불가능해 보였고, 실제로도 썩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물론 나름의 의도는 있었을 것이다. 멤버 개개인의 기량이 워낙 이렇다 할 구멍 없이 뛰어나기도 하였으니, 다양한 사운드를 한 곡에 몰아넣어 멤버 하나하나의 특색을 살리겠다는 발상에 도달했다 하여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주요한 문제는 그 발상이 너무 이상주의적이었다는 것이고, 냉정히 말해, 그 거창한 목표에 비해 제작진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정체 모를 컨셉과 과격한 색채의 ‘占 (TANK)’부터, 괜찮은 소스들을 당혹스러운 형태로 끼워 맞춘 ‘O.O’와 ‘DICE’, 과격한 색채를 내려놓았음에도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낳은 <expérgo>, 'Party O'Clock’까지… 섬세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제작에 악곡은 너무도 쉽게 그 설득력을 잃어버리곤 했다. 더불어 코디네이팅, 뮤직비디오 등 비주얼적 요소마저 악평을 무더기로 맞닥뜨렸으니, 엔믹스라는 브랜드, 그룹의 정체성이 침몰 위기에 봉착했다 하여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DASH’, 나아가 <Fe3O4: BREAK>의 타개는 놀라운 자구책으로 떠올랐다. 올드스쿨 힙합을 뼈대로 하는 타이틀 ‘DASH’와 브라질리안 펑크(Funk)의 열기를 지닌 리드 싱글 ‘Soñar (Breaker)’는 마치 초기 믹스팝의 이상향처럼 보였고, 핑크팬서리스(PinkPantheress) 풍 사운드를 끌어안은 ‘Passionfruit’,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을 공존시키는 클로저 ‘Break The Wall’은 그룹이 일반적인 시류와도 성공적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도, 이후 경로 설정에 있어서도 대단히 성공적인 도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NMIXX <Fe3O4: BREAK>JYP엔터테인먼트
NMIXX <Fe3O4: STICK OUT>JYP엔터테인먼트

허나 <Fe3O4: BREAK>의 기세를 이어갔어야 할 <Fe3O4: STICK OUT>의 감상은 대체로 이전만 못했는데, 이는 작품의 중심 흐름이 힙합이라는 장르에 매몰된 탓이었다. 키드밀리(Kid Milli)라는 거물을 초빙하며 본격적인 랩 뱅어를 모색한 리드 싱글 ‘SICKUHH’는 미진한 랩 프로듀싱으로 인해 이전만큼 놀라운 감상을 전하지 못했고, 타이틀로 내건 ‘별별별 (See that?)’ 역시 올드스쿨 힙합의 둔탁함에 퇴색되어 고유의 특색과 텐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DASH’나 ‘Soñar (Breaker)’가 어떻게 좋은 곡이 되었는지, 무엇이 곡의 핵심이었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Fe3O4: FORWARD> : 성숙, 그리고 확장

이렇게 또 한 번의 결정적 실패를 맛본 엔믹스는 그룹의 시야를 과감하게 넓혀낸다. 보란 듯이 트랩 기반으로 진행되는 타이틀 ‘KNOW ABOUT ME’를 필두로 래칫(’Slingshot (<★)’), 레이지(’Papillon’), 트립 합(’High Horse’) 등 힙합 전반과 계열 장르로까지 그 범위를 벌림으로써 고전 힙합 비트가 가지는 정형성에서 벗어나려는 심산이다. ‘KNOW BOUT ME’가 타이틀로, ‘High Horse’가 선공개로 결정된 것 역시 의도는 마찬가지일 터. 만약 <Fe3O4: FORWARD>가 <Fe3O4: BREAK>, <Fe3O4: STICK OUT>의 경향성을 계승하는 앨범으로 기획됐다면, ‘Slingshot (<★)’과 ‘Papillon’이 선공개와 타이틀 트랙 자리를 나눠 가지지 않았겠는가. 일련의 구성을 통해 <Fe3O4: FORWARD>는 기존의 행보보다 더욱 다원적인 지향을, 나아가 더욱 성숙해진 테마를 시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첫 트랙이자 리드 싱글인 ‘High Horse’는 그러한 의도들을 강하게 집약한다. 집약적이다 못해 그 소리 곳곳에서 어떤 의도성이 진하게 느껴져, 마치 “어때? 예술적이지?”, “이래도 감탄 안 해?”라며 청자에게 말을 건다 느껴질 정도. 곡의 전개를 살펴보자. 건반과 보컬이 그룹의 성숙을 과시하듯 중후하게 판을 깔고, 불현듯 브레이크비트를 개입시켜 순간의 의외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중후반의 보컬 퍼포먼스는 일견 뮤지컬을 연상시킬 만큼 고압적인 형태로 전개된다. 그 의도성과 색채가 너무도 강해, 청자를 감탄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곡처럼 보일 지경이다.

‘High Horse’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토록 과시적이고 다소 작위적인 태도에도 그 표현이 썩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곡의 그 새로운 시도가, 그 생경한 스타일이 오히려 그룹의 특장점에 어색하지 않게 결합한 덕이다. 일례로 직전 ‘SICKUHH’의 경우는 엔믹스의 곡이라기보단 키드밀리의 곡에 엔믹스 멤버들이 개입한 꼴이었다. 랩 본연의 무드와 재치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곡이었던 만큼 자체적 랩 스타일을 전개하기 힘든 멤버들의 경우 종종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을 주곤 했다. 이와 달리 ‘High Horse’는 보컬의 색채로 일관하는 작법을 택하며 비교적 음색이 두껍고 소울풀한 성격이 강한 보컬과 자연스럽게 발을 맞추고 과감한 악기 구성과 곡 구조를 통해 청자를 비교적 쉽게 카타르시스까지 견인할 수 있게 된다. “나 옷 잘 입지?”라며 독특한 브랜드 의류를 잔뜩 입고 나왔는데, 그 스타일이 제법 어울린 느낌이랄까. 이 시점에서 ‘High Horse’, 내지 <Fe3O4: FORWARD>의 선회와 시도는 가공할 설득력을 획득한다. 도전적인 감행이 그럴듯한 맥락을 갖춤으로써 일종의 합리적인 선언이 되는 셈이다. 차후 행보에 따라, 어쩌면 ‘High Horse’는 인트로 트랙이라는 개념이 K팝 제작의 또다른 표준이 된 이래 가장 도전적인 시도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High Horse’가 다소 극단적인 확장을 택한 만큼 타이틀 ‘KNOW ABOUT ME’의 방향성은 비교적 절충적이다. 트랩 기반의 칠(chill)한 무드를 택함으로써 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형성함과 동시에 이전 ‘DASH’가 보여줬던 중심 색채 또한 유지해 낸다. 곡의 전반적인 무드를 지속하기 위해 가령 “NMIXX!”라던가, “Change Up!”이라던가 하는 식의 급작스러운 선회는 생략되었지만, 파트를 뻔뻔하게 끼워 맞추는 특유의 작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숙이라는 테마가 가지는 인상과 기존 엔믹스가 가지고 있던 색채 사이의 넓은 범위 안에서, ‘KNOW ABOUT ME’는 상당히 적절한 지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고 새로운 가능성의 포석을 두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결정적 차이 : 채도를 낮춰 안정성을 제고하다.

신항로 개척에 성공했다는 것 이상으로 고무적인 지점은 명확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기존 믹스팝 노선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이전 'Soñar (Breaker)’의 성공적인 교합이 어지럽게 삐걱대던 초기 믹스팝의 양상을 어느 정도 정렬했다고 한다면, 본작의 믹스팝 트랙들은 여기에 일련의 기교를 주입하는 데 성공하며 곡의 쾌락 양상을 단번에 끌어올린다. 예컨대 ‘Papillon’에서 규진의 “drop it!”이 등장하는 타이밍과 그 섬세한 음량, 배이, 릴리 등 음색이 독특한 인물의 파트를 어디에 배치할 것이냐에 대한 적확한 해답, 곡의 포괄적인 감상을 끌어올리는 드럼 패턴 같은 것이 그렇고, ‘Slingshot (<★)’에서 “NMIXX!”와 함께 변주가 일어나는 지점, 절정의 여운을 뻔뻔하게 매듭짓는 마무리의 간결함이 또한 그렇다. 믹스팝 형식은 아니지만, 레드벨벳식 알앤비를 편곡적 기교로 재해석한 ‘Ocean’의 경우도 마찬가지. 마치 일순간 어떤 소리를 어떤 타이밍에, 어떤 강도로 집어넣어야 하는지 통달한 것처럼 보일 만큼 작품의 사운드 운용 방식은 뛰어나다.

나아가 곡 전반의 톤을 낮춰 통일성과 안정성을 제고했음은 결정적이다. 단적인 예시로 ‘Slingshot (<★)’’과 ‘占 (TANK)’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두 곡의 테마는 유사하다. 전자는 슬링샷처럼 신속하고 정교한 타격에 대해 다루고 있고, 후자 역시 탱크의 과감하고 거침없는 전진성을 과시하고 있다. 음정보다 리듬에 무게를 두는 코러스 파트의 작법도 꽤나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허나 두 곡의 인상은 완전히 상이하다. ‘占 (TANK)’의 쏘아대는 랩과 무분별한 고음은 제멋대로 감상을 이탈하여 난잡하다는 인상을 주고, 전반적인 보컬/랩 톤을 매끄럽게 다듣은 ‘Slingshot (<★)’은 곡의 구조가 보다 복잡함에도 불구, 한결 안정적인 진행을 보여준다. 하나의 톤으로 일관하는 코러스("Slingshot / 목푠 이미 포착…”) 역시 정신 사납게 휘갈긴 ‘占 (TANK)’의 그것(”Freaky Fresh Fresh I’m so Freaky…”)보다 한결 편안하다. 믹스팝의 주요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변주 이후 진행은 또 어떠한가. ‘占 (TANK)’의 작위적 변곡에 릴리와 설윤의 보컬이 힘에 부쳐 보이는 반면, ‘Slingshot (<★)’’의 2차 변주 이후 치달아 오르는 하모니는 작품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뽑을 수 있을 만큼 탁월한 모습이다.

이와 같은 탈색이 어떻게 이토록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느냐를 논하기 위해, 나는 엔믹스라는 그룹의 전반적인 보컬 톤이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려 한다. K팝 걸그룹 리드보컬 중에서도 유독 저음역대가 두드러지는 축에 속하는 설윤, 중성에 가까운 이색적 음색을 보유한 배이는 물론 쏘아대는 형식보단 어느 정도 두께감을 갖는 파트에서 더 뚜렷한 매력을 보이는 규진과 지우, 알앤비에 기반을 두어 굳이 고음역을 취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제 색채를 내는 것이 가능한 릴리까지, 정확히 말하자면, 멤버 개개인의 보컬이 고음역대보다 중저음역대에서 더 높은 수행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욱 알맞겠다.

본작의 경우, 작품 내 모든 트랙이 이 사실을 얼추 인지한 상태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악곡의 대부분을 중저음 혹은 그에 준하는 음역이 차지하며 고음역의 보컬은 곡에 포인트를 주기 위한 장치로서 간혹 사용될 뿐이다. ‘Papillon’은 과연 그러한 성질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레이지 스타일의 성난 도입부 이후 등장하는 배이의 저음은 놀라울 정도로 관능적이며, 그 직후와 코러스 화음부에 고루 드러난 설윤의 중음역은 그 어느 때보다 강건하고 생기 넘쳐 보인다. 메인보컬의 역량이 강조되는 프리-코러스 파트 역시 음역대를 과도하게 끌어올리는 대신 보컬의 움직임과 맵시 위주로 유연하게 진행되어 혼란스럽지 않고, 그 덕에 곳곳에 주입된 편곡상의 기교 역시 제 멋을 발휘한다.

여담이 길었지만 결국 종합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Fe3O4: FORWARD>가 구성, 질감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놀라운 수준의 작품이며, 엔믹스라는 그룹의 전반적인 방향성에 긍정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Fe3O4: FORWARD>의 성취를 통해 엔믹스는 이제 보다 성숙한 무드를 체화하며 레드벨벳의 그것이 연상되는 투-트랙 노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고, 특유의 과잉 없이도 믹스팝의 구성적 쾌감을 전달하는 방법을 발견, 그룹의 얼굴인 규진에 의존하지 않고도 ‘규진스러운’ 색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Fe3O4: BREAK>의 도약이 <Fe3O4: STICK OUT>의 정체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기에 섣불리 장담하긴 어렵겠지만 이제 조금 더 큰 주목을 엔믹스라는 그룹에 달아 보아도 괜찮은 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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