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여름, 송도. ‘Girl I Love You’가 흐르는 동안 무대 뒤 스크린에 인터페이스 하나가 떴다. 군사 정보 플랫폼을 본뜬 화면이었다. 그 위로 문구 하나가 올라왔다. 지금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택배 서명 습관으로 신원을 식별하고 앱 전환 빈도로 집중력을 점수화한다는 화면이 뒤를 이었다. 그들은 지구본을 돌리다가 한 지점을 짚었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인천. 곧 객석의 얼굴들이 하나씩 레이저 사각형 안에 갇혔다. 화면을 보던 내가 화면에 읽히는 사람이 되기까지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유감’을 연주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이십여 분 지났을 때였다. 최루탄과 전경, 학생이 뒤엉킨 민주화운동 시기의 자료 화면 위로 그 곡이 흘렀다. 그 화면에는 1980년 광주도 있었다.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못 하는 걸 영국 밴드가 하네.

그 희열은 어디서 왔을까. 관객을 감시하는 화면 바로 다음에 검열의 역사를 품은 곡이 왔다. 우연으로 보기 어려운 순서였다. 이날 그들은 곡을 늘어놓지 않았다. 곡마다 메시지를 실었고, 곡과 곡 사이의 순서와 맥락까지 짰다. 그 많은 거대담론을 압축해서 쏟아냈는데도 이야기는 흩어지지 않았다. 라이브 연주의 힘이었다. 그리고 질문 하나가 남았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좀처럼 하지 않는 말을 외국 밴드가 했다. 그것은 아티스트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일이었을까, 이방인이라는 위치에 관한 일이었을까.
매시브 어택은 트립합 밴드다. 대중에게는 ‘Teardrop’ 같은 곡명이 더 익숙할 것이고, 트립합이라는 장르명은 그보다 낯설 것이다. 1991년 <Blue Lines>는 이 장르의 출발점 중 하나다. 브리스톨의 사운드 시스템 문화와 흑인 음악의 전통 위에서 전자음악과 힙합, 덥, 소울과 레게가 뒤섞여 태어난 장르다. 템포는 느리고 가사는 묵직하다. 록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음악은 아니다. 뛰고 소리 지르고 따라 부르는 공연의 쾌감을 정확하게 비껴가니까. 다만 그들의 무대에서 영상은 음악을 보완하는 장치가 아니다. 2003년 무렵부터 그들은 비주얼 아티스트 집단 UVA와 함께 화면으로 말하는 공연을 해 왔다. 그날도 그랬다.
음악이 더 빠르고 빽빽했다면 영상이 붙어도 나는 그것을 음미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템포가 느렸기에 나는 스크린의 긴 문장과 이미지, 한국어 자막을 실제로 읽을 수 있었다. ‘Angel’에서 그들은 묵직한 저역의 베이스로 느리게 땅을 울렸다. 소리를 채우기보다 비워 두는 쪽으로 짰다. 악기가 빠진 자리에 잔향이 남았고, 그 여백에서 메시지가 도드라졌다. 코드는 대체로 두세 개의 화음을 돌았고 멜로디의 음형도 좁았다. 절제였다. 그 절제 덕분에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그들은 음악으로 사유의 계기를 주되, 감각을 전부 점령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을 현장에서 몸으로 겪었다. 1열 펜스, 스피커 바로 앞이었다. 눈을 감고 한참을 들었다. 드럼이 울릴 때마다 머리카락이 날렸다. 라이브인데도 박자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아서 놀랐다. 나는 박자를 공기가 아니라 발밑에서 올라오는 떨림으로 받았다. 곡마다 원시적으로 두드리는 타악기 리듬이 몸에 남았다. 그 정확한 반복이 이어지자 어떤 대목은 주술처럼 들렸다.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라이브 공연과 함께 보는 경험. 그날 지구 곳곳의 문제들이 유독 깊이 박힌 것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화면의 완성도로도 그 감각을 거들었다. 첫 화면이 켜지는 순간 스케일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정작 내가 놀란 대목은 화질이 아니라 싱크였다. 길게 넘어가는 컷은 물론이고 짧게 착착 끊기는 컷까지 라이브 연주와 어긋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라이브로 듣는 기분이었다. 한국어 자막까지 붙어 있었다. 언어의 벽을 넘어서라도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태도로 읽혔다.
그들은 인트로 필름부터 자막으로 말을 걸었다. 페이저라는 이름의 원숭이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뉴럴링크가 2021년에 공개한 시연 영상이다. 수천 개 신경세포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읽어 해독한 신호가 커서를 움직인다는 설명이 붙었다. 원숭이는 열심히 조이스틱을 움직였다. 자막이 뒤따랐다. “조이스틱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손은 움직이지만 화면을 조종하는 것은 이미 읽혀 버린 뇌다. “모두를 다스릴 반지”라는 문구 뒤로 그들은 팔란티어라는 이름을 신제품 발표회처럼 소개했다. 화면은 폭격 현장으로 넘어갔고, 마지막 문장이 떴다. “알고리즘은 항상 당신을 찾아냅니다.”
알고리즘은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마다 값을 매겼다. ‘Black Milk’에서 그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으려는 부자들의 이미지를 띄웠고, 권력자와 군인의 얼굴을 차례로 보여 주었다. 강한 자도 결국 죽는다고 말하는 화면이었다. 그다음이 앞서 말한 ‘Girl I Love You’의 감시 시퀀스였다. 그 끝에 그들은 피터 틸의 문장을 인용했다.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그가 2009년 케이토 언바운드에 기고한 <어느 자유지상주의자의 교육>의 한 대목이다. “나는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인트로에서 ‘Girl I Love You’까지, 그들의 시선은 마음에서 몸으로, 몸에서 값으로, 그리고 객석으로 옮겨 갔다.
다음 곡이 ‘시대유감’이었다. 1995년 서태지는 이 곡의 가사를 고치라는 사전심의 요구를 받았다. 그는 고치는 대신 노랫말을 지웠고, 4집에는 가사 없는 연주곡으로 실었다. 그가 택한 침묵은 이듬해 사전심의제 폐지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됐다. 바로 앞 곡에서 시스템은 관객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지 아닌지를 감시했다. 바로 다음 곡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는 검열에 맞선 역사가 됐다. 적어도 내게 이 순서는 우연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회고에서 멈추지도 않았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 문화는 정치적 힘을 잃었는가. 화면은 그렇게 현재를 심문했다.
나를 움직인 것은 영상 자체가 아니었다. 광주의 자료 화면은 영화에서도 보았고 유튜브에도 있다. 그러나 열린 공연장에서 그 화면을 보는 일은 다르다. 바람이 불고, 깃발이 휘날리고, 함성이 터지고, 수만 명이 같은 장면 앞에 선다. 교육의 장소도 추모의 자리도 아닌 엔터테인먼트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공연이 막 달아오르는 대목에서 그 장면을 마주하는 일은 전혀 다른 사건이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 감상하는 사람에서 함께 목격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느낀 희열은 서태지의 곡을 매시브 어택의 연주로 들어서 온 것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장면을 수만 명이 동시에 보고 있다는 감각, 거기서 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한국의 무대가 떠올랐다. 한국의 유명 뮤지션이 같은 방식으로 ‘시대유감’을 부르고 광주의 영상을 같은 규모로 상영했다면 관객과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국내 대형 공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현실에 목소리를 낸 음악은 민중가요에서 인디 씬까지 늘 있었다. 다만 수만 명이 모이는 상업 무대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피하는 쪽이 오랫동안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져 왔다. 나는 모든 음악가가 저항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춘과 사랑을 노래하는 일이 정치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말해져야 할 문제가 이렇게 많은데, 그 무대에서 그것을 공론화하는 음악은 보기 어렵다. 이제는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드물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여야 공정하다. 그 관행을 깬 이들은 외부자였다. 그 사실 앞에서 나는 한 밴드의 용기보다 그들이 선 위치를 생각했다.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말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외부자가 타인의 역사를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연대가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을 자기 메시지의 정당성으로 삼기도 한다. 이날의 영상이 내게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그들이 광주를 자기 이야기로 흡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관객이 이미 알면서도 말하지 않던 역사를 한국 관객에게 되돌려주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은 이야기를 넓혔다. ‘Take It There’에서는 두 도시를 관광 안내처럼 소개했다. “스위스 추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돈이 모이는 곳.” “콩고민주공화국이 당신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모든 광물이 채굴되는 곳.” 우리가 가상이라 부르는 세계는 사실 저 땅속의 물질과 어린 손에 기대어 서 있다. 그들이 말한 추출의 대상은 광물만이 아니었다. “당신의 분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플랫폼은 분노를 풀어 주지 않는다. 분노가 계속 돌게 하고, 그 회전에서 수익을 걷는다.
이어진 ‘Song to the Siren’은 그 구조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영상은 1884년을 출발점으로 내놓았다. 유럽이 아프리카 지도 위에 선을 긋는다. 지도는 텅 비어 있다. 물론 그 땅이 비어 있었을 리 없다. 비어 있던 것은 식민 권력의 시선이다. 그들은 그 선을 가자와 베이루트의 현재까지 이어 붙였다. 질서와 보호를 약속해 온 제국의 목소리를 따라간 자리에는 부서진 국가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그렇게 읽었다.
‘Inertia Creeps’에서 화면이 돌변했다. 방금까지 제국과 국경을 다루던 스크린에 유명인들의 트윗과 가십이 쏟아졌다. 나는 곧 알아차렸다. 저것이 우리의 피드다. 전쟁과 가십이 같은 크기,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 곳. 요즘은 지우지 않고도 검열할 수 있다. 더 자극적인 것을 띄워 우리의 눈을 돌려놓으면 그만이다.
이 공연의 비평적 핵심은 열한 번째 곡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국기가 떠오르고 자유를 외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그 뒤 그들은 ‘Safe From Harm’의 첫 음을 내기도 전에 숫자부터 세기 시작했다. 사망자와 부상자, 굶는 사람, 파괴된 병원, 살해된 언론인과 의료인의 숫자를 차례로 넘겼다.

2조 8,870억 달러. 2025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 총액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2026년 4월에 발표한 수치로, 전년보다 실질 기준 2.9퍼센트 늘었다. 11년 연속 증가다. 그들은 사망자 수를 빠르게 띄웠다가 지우기를 거듭했다. 그런데 군사비에 이르자 숫자를 가장 느리게 끌어올렸고 음악도 함께 고조시켰다. 사람의 죽음은 계속 다음 숫자로 바뀌는데, 죽음을 만드는 데 쓰인 돈 앞에서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대비 때문에 나는 그 액수를 빨리 읽고 지나칠 수 없었다.
숫자를 다루는 방식도 섬세했다. 죽은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숫자를 빼면 집단에 가해진 폭력의 규모를 증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숫자만 내놓지 않았다. 수천, 수만 단위로 넘어가던 화면에 문장 하나가 떴다. “2026년 4월 12일 이스라엘에 의해 사망한 레바논 적십자 자원봉사자 하산 바다위의 시신에서 발견된 파편 조각 수.” 그 아래 숫자는 28이었다.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한 사람의 몸에 박힌 쇳조각을 셌다. 셀 수 없는 규모 옆에 셀 수 있는 한 사람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곧 숫자를 모두 지우고 한 사람의 목소리만 남겼다.

‘Unfinished Sympathy’였다. 타악기 소리 위로 스트링 리프가 흘러나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투어 객원 보컬 데보라 밀러가 노래를 시작했다. 원곡보다 조금 더 절절하고 소울풀한 목소리였다. 그 아래로 브레이크비트가 깔렸다. 힙합 댄서의 발놀림이 떠오르는 리듬이었다. 곡 중반에 이르자 스트링 멜로디가 비화성음으로 이탈하며 위태롭게 흔들렸고, 마이너 화성은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위에서 타악기만은 맑게 울렸다. 슬픈데 반짝였다. 묵직한 스트링, 그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브레이크비트와 타악기,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울 보컬. 셋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균형을 잡았다. 트립합이 왜 섞임의 음악인지 나는 몇 분 동안 귀로 이해했다. 고요한데 움직이는 음악. 정중동이라는 말이 이만큼 들어맞는 곡도 드물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화면을 꺼 두었다. 통계와 자막으로 말을 쏟아내던 이들이 처음으로 연주와 목소리만 남긴 것이다. 나는 방금 본 숫자들을 안은 채 그 노래를 들어야 했다. 도망칠 새 정보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완성되지 않은 공감이라는 제목이 그 순간처럼 정확했던 적은 없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쉽다. 어려운 것은 그 마음이 공연장 밖까지 따라 나오는 일이다.
후반부의 ‘Group Four’에서 그들은 방향을 안으로 틀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문장이 떴다. 그리고 되물었다. 그 자신이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다면?
‘In My Mind’가 다시 나왔다. 공연의 첫 곡이었던 그 곡이다. 처음에 이 곡은 알고리즘이 당신을 찾아낸다는 문장에 이어 우리의 마음을 읽었다. 이번에는 질문들로 무거워진 관객의 마음을 심문했다. “개인주의의 약속은 당신이 자유롭기만 하다면 머릿속에서 낙원을 찾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과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가도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면. 당신이 느끼는 것, 당신의 생각이 다른 어딘가에서 왔다면.”
그들은 나의 기준마저 가족과 사회와 자본과 플랫폼이 만든 것일 수 있다고 물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남에게서 온 언어와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도 그것들을 어떻게 배열하고 무엇을 거부할지는 여전히 내가 고른다. 자유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나를 찾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안에 들어온 것들의 출처를 따져 묻고 가려내는 능력, 그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공연은 선동인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페스티벌은 원래 종교 집회를 닮았다. 아티스트는 자기 세계관을 설파하고 군중은 함성으로 하나가 된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그 에너지를 개인의 고백과 치유, 사랑과 놀이에 쓴다. 매시브 어택은 그것을 사회적 의식과 역사적 기억 쪽으로 밀어 올렸다. 음악은 감정을 증폭하는 예술이다. 그날 그들이 증폭한 것은 문제의식이었다. 소재가 선명했던 만큼 증폭의 힘도 컸다.
나는 이 공연이 선동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거대한 화면과 사운드, 수만 명의 함성 앞에서 관객은 판단하기 전에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기준을 떠올렸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쓰는가, 확인할 수 없는 인상을 쓰는가. 피해자를 자기 메시지의 근거로 소비하는가, 피해자를 피해자로 남겨두는가. 관객을 자기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는가, 각자에게 돌려보내는가. 결론을 쥐여 주는가, 판단의 여지를 남기는가.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준은 대체로 충족한다. 적어도 군사비는 출처가 분명한 수치였고, 숫자만 내놓지 않고 희생자의 이름 하나를 띄운 순간이 있었다. 세 번째 기준에서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들에게는 분명한 적이 있었다. 팔란티어, 피터 틸, 선 긋는 제국. 특정 이름을 지목하는 순간 관객은 그 지목에 동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갈린다. 팔레스타인 국기가 떠오른 순간은 더 그랬다. 깃발은 이름보다 빠르게 편을 가른다. 다만 그들이 지목한 것이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공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업과 발언이었다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네 번째. 마지막에 화면을 비운 선택 때문에 나는 이 공연을 열린 정치예술 쪽에 놓는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퇴장하는 길에 이런 말들이 들렸다. “나는 매시브 어택을 담을 그릇이 안 되는 것 같아.” “중간에 좀 위기였어, 나갈 뻔.” 이해한다. 사람들은 뛰고 소리 지르고 떼창하러 페스티벌에 간다. 머리 아픈 일을 잠시 내려놓게 해 주는 것도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이다. 매시브 어택은 그 자리에서 생각하고 가라고 요구했다. 그 반응의 차이까지가 이 공연의 일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 곡 ‘Teardrop’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비트에 맞춰 조명만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로 백발이 된 엘리자베스 프레이저의 목소리가 얹혔다. 콕토 트윈스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듣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끝내 잘 믿기지 않았다. 물론 전성기의 목소리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비브라토는 조금 가늘어졌고 발성의 힘도 빠졌다. 그런데 티끌 없이 맑은 음색만큼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결을 간직한 채 노래하는 그녀에게 나는 경의를 느꼈다. 마이너하고 절제된 묵직함이 이어지다가도 그녀가 노래하는 대목에서만은 햇살이 쏟아지듯 환해진다. 나는 그 대조를 이 곡의 미학으로 읽는다.
‘Song to the Siren’의 세이렌은 노래로 선원을 홀려 배를 난파시킨다. 1983년 This Mortal Coil이 이 노래를 다시 불렀을 때 그 목소리도 프레이저였다. 그런데 2026년의 가장 강력한 세이렌은 어쩌면 알고리즘이다. 조금만 더 봐. 다음 영상도 봐.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몸을 묶었듯 우리도 스크린타임 제한이라도 걸어 두지 않으면 그 목소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매시브 어택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알고리즘이 생각하지 말고 계속 보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계속 봐 왔다면 이제 생각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세상의 고통을 몰라서 외면하는 게 아니다. 가자도 알고 광주도 알고 노동 착취도 안다. 알면서 넘긴다. 그러니 지금 예술이 할 일 중 하나는 이미 아는 것 앞에서 우리가 눈을 돌리지 못하게 발을 묶어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몇 시간 전에 본 릴스도 기억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데 두 달 전에 본 공연이 아직도 말을 건다. 생각하라고.
공연 영상
매시브 어택, 2026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YouTube ‘목캔디의 인디밴드 라이브’)
‘시대유감’ 25:53 / ‘Safe From Harm’ 1:01:16 / ‘Unfinished Sympathy’ 1:28:44
사진 출처
YouTube ‘목캔디의 인디밴드 라이브’ 영상 캡처(사진 1-3), Hanse0n ARCHIVE(사진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