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OCK PARTY 2026 2026. 09. 12-13 해방촌 일대
시작
녹사평역에서 내려 대로변을 따라 십 분쯤 걸었다. 오밀조밀한 블록이 얹힌 나지막한 언덕, 한남동과 이태원을 반씩 섞어놓은 듯한 풍경을 따라 올라갔다. 좁은 자리를 두고 타코 집과 이탈리안 식당이 각축전을 벌였다. 테라스라고 부르기에는 의자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자리. 그곳마다 사람들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건물 사이에 낀 어두운 골목을 서너 군데 지나쳐 올라가니 프레스 티켓을 받기로 한 카페가 보였다. 5층 루프탑의 칸막이 뒤 부스에서 프레스증을 받아 매직으로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썼다. 이틀 내내 그 이름표를 목에 걸고 다녔다. 미아 방지용 장치라도 건 사람처럼.
언젠가 홍대를 배경으로 한 방 탈출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기분이었다. 베뉴 주소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펫 사운즈나 부기우기야 알려진 곳이지만,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블록 파티의 단골 베뉴이자 밴드 양반들의 작업실이라는 ‘토굴’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결과 네이버 지도에 ‘토굴 프레드 페리’를 통째로 집어넣고 결과 없음을 마주하는 우둔함을 저질렀다. 구글 지도로 옮겨서야 찾아간 곳은 정말로 굴이라고 부를 만한 지하였다. 회색 시멘트 벽에 ‘토 굴’이라고 직접 쓴 빨간 천이 노란 전구 옆에 걸려 있었다. 베뉴 사이는 지도상 도보 십 분, 한 번 왔다 갔다 하면 이십 분이었다. 집에 와 보니 펜타포트에 갔던 날과 비슷한 걸음 수가 찍혀 있었다.
토굴 입구
정기엽 에디터와 함께 프레스로 초대받아 금요일부터 사흘간 열린 페스티벌 중 주말 이틀간 그 문들을 오가며, 각자 인상 깊게 본 공연을 골랐다. 해방촌과 경리단 일대 8개 공간에서 토요일 51개, 일요일 47개, 총 98개의 프로그램이 돌아갔다. 올해 라인업에는 이날치와 김오키, sogumm, THAMA, 까데호가 있었고 호주에서 온 펑크 베테랑 Hard-Ons도 이름을 올렸다. 페스티벌은 대개 헤드라이너를 앞세워 홍보한다. 그런데 주최 측은 모든 아티스트를 균등하게 소개했다. 입구마다 선 스태프는 대부분 외국인이었고, 안쪽에서는 가게 사장님들까지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겉으로 보기에 그날의 해방촌은 여느 주말 오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골목을 꺾어 올라 건물에 가까이 다가설 때마다 음악이 터져 나왔다. 문을 열면 페스티벌이었고, 닫으면 해방촌이었다. 일요일, 부기우기로 향하는 길의 벤치에서 두 여자가 키스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을 수도 없이 지나쳤다. (이예진)
하헌진
라이브의 묘미인 즉흥성과 관객과의 호흡. 하헌진은 그 두 가지를 충족했다. 진득한 기타 솔로로, 공기 자체가 ‘하헌진’인 특유의 입담으로. ‘카드빚 블루스’(<김간지X하헌진>, 2013)를 원곡보다 키를 올려 운을 떼는 자신감부터 13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다행히 기타 줄은 끊어지지 않았고, 솔로 연주는 흥겹게 이어졌다. 그의 휠(feel)은 정확히 줄의 떨림과 떨림 사이, 그 체공시간만큼 전해졌다. 템포가 늘었다 줄었다 하다가 간혹 길게 늘어질 때면 관객이 받는 휠의 강도도 그만큼 세졌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호우”(대략 얼굴을 찡그리며 내뱉는 바로 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장에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하헌진, 댕크야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 친구의 전화는 수신이 끊겨있었지” 같은 가사를 덤덤하게 읊조릴 때는 강산에스러운 무심한 마침표와 이유 있는 체념이 느껴졌다. ‘날 사랑해 주오 / 병원에서 말하길’ (<너의 행복>, 2022)의 “제발 술을 끊으라네” 같은 대목처럼, 한국어 블루스만이 줄 수 있는 생활형 가사가 사람 냄새를 풍기며 감겨들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웃긴 사람인지 실감했다. ‘오 나의 야옹아’ (<너의 행복>, 2022)의 주인공인 반려묘 ‘야옹이’는 이 노래만 들으면 제 이름을 너무 많이 불러서 싫어한다는 이야기, 공연 전날 집 나간 고양이를 유학파 고양이 탐정에게 부탁해 한 시간 반 만에 찾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딱히 웃기려 들지 않는데도, 다 듣고 나면 친해진 듯한 기분이 남는 입담이었다. 최항석을 비롯한 한국 블루스 뮤지션으로 트랙제로에 선정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작 댓글에 자기 이름만 없는 게 재미있어 스토리에 올렸다는 이야기까지. 가식도 젠체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블루스에서 노래와 농담과 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들은 잔소리가 가사가 되고, 집 나간 고양이가 무대 위의 이야기가 된다. 말 한마디에 하하하 웃음이 터지는 도란도란한 공기 속에서, 하헌진은 토요일 댕크야드의 마지막 순서를 그렇게 장식했다. (이예진)
이재
조그마한 단상이 전부인 무대였지만, 현장의 모두가 이재를 보며 보랏빛 안개를 들이마셨다. ‘Listening Love’ 도입부터 나오는 코러스들은 새하얀 상의에 형형색색의 보자기를 두른 채 등장했고, 이재는 동화책을 쥐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문장들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감정은 아니었으리라. 대신 동심을 놓지 못한 어른들은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그 아름답고 덧없는 언어와 차분한 심장의 온도를.
술을 마셔서도, 좋은 멜로디를 들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진정되는 미묘함이 있었다. 마치 무한한 애착을 주고받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분위기 좋은 바 ‘업리프트’에 찾아온 밤은 그렇게 구연동화로 시작했다. ‘고장 난 마음’엔 이런 가사가 있다. “갑자기 울어버린 날엔 내가 다시 태어나는 날”. 눈물이 차오르진 않았지만 벽지가 울어버린 것처럼 부풀어 오른 마음을 가지고 무대를 나섰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듯이 다음 행선지로 <Purple Trip>을 떠났다. (정기엽)
이랑
이랑은 시위 무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번이 올해 마지막 공연이 될 거라고 언급했다. 그래서인지 벌써 10년이 넘은 곡부터 최근 싱글 ‘SHAME’,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우리의 ㅁ’까지 커리어 전반을 훑는 구성으로 꾸며졌다. 불안정한 음향 때문에 연주를 끊고 다시 시작한 적도 있었지만, 스피커에서 오송출되는 소음마저 음악의 일부처럼 들리는 착각이 일었다. 장점만 남기고 단점은 거세한 무언가보다 단점을 덮을 만큼 장점이 커다란 것이 아름다운 예술이라 믿는다. 그런 시선으로 미루어 이랑이 펼친 수십 분엔 충만한 조응이 가득했다.
쉽게 떠올리는 가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결의 화목하고 단란한 마음이 지하를 채웠다. 그의 노래처럼 슬프게 화가 난 사람들이 모여, 타인의 화를 이해하기에 보이는 배려가 느껴졌다. 손을 잡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는 심지. 멜로디에 스며든 언어가 동기화시키고 만 감정. 제법 긴 호흡이면서 저릿한 서사가 응축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를 부를 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거칠고 직접적으로 닿은 목소리를 하염없이 되짚으며 심장을 어루만졌다. (정기엽)
녹이녹
녹이녹은 올해 첫 정규 앨범 <내 옷은 냄새가 없다.>를 발매하며 포스트록 씬에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나간 뒤에야 의미를 갖게 되는 우리 모두의 순간들, 지나온 시간의 ‘냄새’를 이야기하는 앨범이다. 꼭 한 번 라이브로 듣고 싶었던 이들을 일요일 펫 사운즈에서 만났다. 건물 계단을 오를 때부터 시원하고 강렬한 록 사운드가 진동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공연 초반인데도 관객들은 이미 무대에 시선을 빼앗긴 채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녹이녹, 펫 사운즈
외국인 관객이 특히 많았다. 곡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이 밴드가 누구냐”, “너무 좋은데”라며 미소 지었고, 뜻밖의 발견을 남기려 스마트폰을 바삐 움직였다. 펫 사운즈는 곡과 곡 사이마다 정체 모를 흥겨운 남미 음악을 틀었는데, 관객 사이에서 “이 여운을 간직하고 싶은데 차라리 음악을 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녹이녹은 그만큼 연주로 공간을 장악했다.
이들의 음악에는 어딘가 도시적인 서늘함이 있다. 연주는 대체로 절제되어 있었고, 그러다 이따금 액셀을 밟으면 꾹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듯 짜릿했다. 여름날 즉흥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어지는 ‘OAK’의 전주처럼 낭만적인 대목이 불쑥 끼어들었다가도, 곡은 이내 포스트록 특유의 거대한 에너지로 밀려 나갔다. 서늘함과 뜨거움, 낭만과 폭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귀한 밴드다.
마지막은 ‘See You Tomorrow’였다. “안전 귀가 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인사 후에 아쉬움을 눌러 담은 작별의 멜로디가 흘렀고, 관객들은 연주자들을 따라 일제히 머리를 흔들었다. 느리게 흐르던 템포가 순간 가속하는 대목에서도 베이스와 기타, 드럼은 흔들림 없이 합을 맞췄다. 이 팀의 안정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2026년에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예진)
따마
페스티벌에서 다수의 만족도를 이끌려면 어쩔 수 없이 유명 곡의 배치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따마는 이번 공연에서 그보다는 평소에 잘 안 하던 곡을 많이 들고 왔다고 언급하며 노래를 이어갔다. 이럴 때 결국 멜로디의 힘이 중요해진다. 모르던 곡이더라도 그루브에 몸을 싣고, 맥주 한 모금 들이켠 듯 상쾌한 찡그림을 자아낼 가창과 연주가 뒤따르면 그만이다. 유명세는 도움이 될 뿐, 필수는 아니니까.
따마는 현장에서 그 완급 조절을 잘해냈다. 소울풀한 목소리로 감성과 탄성을 오갔다. 블록 파티 내내 여기저기서 활약한 밴드 양반들의 멤버와 잔나비, 소울 딜리버리 등에서 연주하는 드러머 신드럼 등의 연주도 분위기에 일조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소리에 ‘토굴’을 가득 메운 관중도 환호했다. 그중엔 팀 모요(moyo)를 함께하는 죠지와 쏠도 있었는데, 죠지는 무대를 향해 ‘Do It For Love’를 함께 불렀다. 이렇게 무대 위아래의 구분이 없는 공간 속에서 현장의 모두가 끊이지 않는 호흡을 주고받았다. (정기엽)
차승우와 사촌들
이랑에 이어 슈퍼밴드인 차승우와 사촌들도 블록 파티 무대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일시정지를 선언했다. 사유는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는 것. 잊힐 때쯤 앨범을 들고 올 거라는 차승우의 언급이 있었다. 그때가 되면 이 팀은 더 이상 과거의 추억을 끌어오는 데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이 될 테니 그날을 기다리자.
일요일 10시, 피곤할 법도 한 시간이지만 지침도 태워버릴 연료에 불과했다. 바깥의 선선함과 무관하게 덥고, 뜨거웠다. 드러머 김간지는 금세 겉옷을 벗었고, 한경록은 행복한 표정으로 객석을 바라봤다. 예정된 마지막 곡 ‘모험광백서’가 끝나고도 퇴장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앵콜에 응했고, 즉석에서 다른 스테이지 라인업이던 해피 이조코의 요청과 합류로 ‘청춘 98’이 선곡됐다. 그뿐인가, 두 번째 앵콜 ‘한밤의 히치하이커’ 이후에도 크라잉넛 멤버들이 등장해 ‘말달리자’로 피날레를 함께 장식했다.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펑크 대잔치였다. (정기엽)
우륵과 풍각쟁이들
그야말로 빅밴드다. 리허설 때부터 여덟 명이 무대를 가득 메우더니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키보드라는 익숙한 밴드 편성에 북을 잡은 고수, 태평소, 색소폰이 더해졌다. 좌측에는 테너 색소폰과 태평소를 맡은 이승문이, 우측에는 알토 색소폰의 김지홍이 섰으니 사운드의 폭발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태평소와 색소폰이 동시에 울려 퍼지는 순간, 국악기냐 양악기냐를 따질 틈도 없이 둘은 그저 ‘불고 울리는 관악기’로 한데 뒤섞였다. 재즈 공연장인 부기우기에서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이들은, 재즈처럼 주제를 제시하고 솔로로 멤버마다의 면면을 드러낸 뒤 다시 주제로 돌아오는 구성의 연주곡들을 들려주었다. 눈여겨볼 장면도 많았다. 김지홍은 알토 색소폰으로 태평소 소리를 흉내 내듯 고음을 내질렀고, 이승문은 테너 색소폰을 내려놓고 아예 태평소를 들어 불었다. 기타리스트는 트럼펫을 겸해 벨을 주먹으로 막아 눌린 음색을 내는가 하면, 꽹과리를 치기도 했다. 그 사이로 굉장히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재즈 피아노까지.
우륵과 풍각쟁이들, 부기우기
이들 악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삼십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내 포화 상태에 가까운 데시벨이었지만, 이들 공연이 아니면 언제 이런 사운드를 들어 보겠나 싶은 과감한 시도였다. 팀 이름에는 가야금의 상징인 ‘우륵’을 내걸었지만, 실제 공연은 예상보다 훨씬 재즈에 가깝게 들렸다. 산조와 재즈가 ‘즉흥 솔로 연주’라는 지점에서 닮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점에서 부기우기라는 장소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연주에, 소리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극단으로 치닫는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국악과 양악의 구분이 얼마나 무용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저 부르고, 치고, 울릴 뿐이다.
고깔을 쓴 멤버부터 눈이 가지처럼 뻗어 나간 모자를 쓴 멤버까지 캐릭터도 각기 독특했다. 이들이 벌인 ‘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기우기의 블록 파티는 막을 내렸다. (이예진)
끝
이렇게 남산타워 바로 아래, 뜨거운 해방촌의 사흘이 끝났다. 좁고 기다란 도로에서 누군가는 야장을 즐기고, 누군가는 바삐 공연장 이곳저곳을 오갔다. 자연 속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듯한 페스티벌도 좋지만, 도심 속에서 일상을 비튼 쾌감에도 그 나름의 매력이 존재한다. 해방촌 일대를 향유하는 이들이 지역의 멋을 한껏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 블록 파티, 벌써 수년째 지속되는 흐름 속에 올해도 땀과 웃음이 넘실댔다. (정기엽)
사진 |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