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만큼 각별한 매체도 드물다. 영화가 처음 받아들인 ‘소리’가 음성이나 음향이 아닌 음악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몇 감독이 무성 영화 시절부터 음악에 신중하게 가담했다는 사실이나 최초의 유성 영화가 <재즈 싱어>(1927)라는 뮤지컬 작품인 것, 그리고 현대에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수많은 음악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음악이 불가분이라는 증거는 수두룩하다. 하지만 정작 음악 문화에 가장 근접한 공연 실황(Concert Film)은 이에 준하는 시장을 획득하진 못했다. 그들은 해당 아티스트 팬들의 전유물이나 기록물 이외의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음악뿐만 아닌 미술 전시,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 등의 대안적 촬영물까지 폭넓은 상영 기회와 관람층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런 열성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작년엔 이 흐름에 방점을 찍듯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2023)가 콘서트 영화 사상 최다 관객 수를 이룩했으며, 같은 해 임영웅의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2023)이 국내 기록을 갈아엎었고, 얼마 전 개봉한 그의 또 다른 영화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2024)이 자신의 위업을 재경신할 기세를 보이는 중이다.
전환점을 제공한 것은 팬데믹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모임 금지나 출연진의 확진 등이 문제 삼아져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공연예술은 일체 관람할 수 없게 되었다. 이의 대안으로 등장한 온라인 콘서트는 초반에는 거부감이 낀 반응을 얻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어나갔다. 오프라인 콘서트와 달리 수용 인원 제한이 없어 무한정으로 스트리밍 티켓을 판매할 수 있었기에 수익 또한 남부럽지 않았다. BTS의 경우 2020년 10월, ‘BTS MAP OF THE SOUL ON:E’을 전 세계 191개 국가 및 지역에서 99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밝혔으며, 이에 따른 시청권 판매 매출은 500억 원대로 추산했고, 하이브의 2020년 상반기 매출 설명회에서 ‘지적재산권 사업을 통한 수익 비중이 2017년 22.3%에서 45.4%로 증가했다’라는 사실을 알렸다. 코로나 사태 이전의 V LIVE 공연 생중계 최고 동시 접속자가 14만 명에 그친 것과 대조하면 놀라운 수치다.
오프라인 공연에 집착하는 클래식 계도 피치 못할 사정에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를 손수 촬영해 업로드하는 ‘홈 플레잉(Home Playing)’이라는 일종의 온라인 콘서트를 자구책 삼았다. 개인의 SNS를 통해 관람하는 공연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연주자의 사적인 모습, 이를테면 캐주얼한 복장과 자택 풍경 등 색다른 재미도 즐길 수 있다. 여럿이 협업을 이루는 앙상블의 경우 흩어져 있는 음악가들을 랜선으로 연결하는 ‘모자이크 앙상블’ 방식을 택하는 등 언택트 환경에서 활용 가능한 여러 대안을 모색 중이다.
이렇듯 인터넷상으로 음악적 교류가 이어지던 현상은 곧 기존의 공연 실황 매체에도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 부문의 고전인 <렛 잇 비>(1970)와 <스톱 메이킹 센스>(1984)가 리마스터 되고 역대 콘서트 영화 흥행 순위 100위권 내에 30개에 육박하는 2020년대 제작 영화가 이름을 올렸다. 실황은 물론 주제가가 돋보이는 영화에 싱어롱 등의 특수한 상영 방식이 취해지는 일은 이제 보기 드문 현상이 아니며 각종 아이돌과 팝스타 등의 공연 실황이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는 일 역시 비일비재하다.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극장가가 도리어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 이어질 본문은 그 뿌리를 헤아리기 위해 거쳐야 할 세 가지 잔뿌리에 대한 단상이다.
영화로써의 공연 실황: 스톱 메이킹 센스의 경우
한 남자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공연장에 들어선다.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카메라는 그의 발끝부터 얼굴까지를 훑어 오른다. 남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번. 1970~80년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구사한 밴드 토킹 헤즈의 프런트맨이다. 그는 희끄무레한 정장을 갖춰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정장은 공연하는 동안 점점 커진다(!) 이런 다분히 연극적인 오프닝에 알맞게 막이 내려오는 것으로 끝을 맺는 영화는 마치 하나의 공연을 촬영한 듯 연출되었지만 실제로는 사나흘간 치른 다수의 무대를 편집한 것이다. 데이비드 번 특유의 역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와 화려한 공연 구성은 실제 공연 관람에 버금가는 고양감에 크게 일조한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영화 <스톱 메이킹 센스>는 토킹 헤즈의 5번째 정규 앨범 <Speaking in Tongues>(1983)의 투어를 <양들의 침묵>(1991)으로 잘 알려진 조나단 드미가 연출한 작품이다. 조나단 드미는 이후에도 닐 영이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공연 실황을 감독했으나 이 작품만이 콘서트 필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줄곧 찬사 받았다. 2023년에는 미국의 독립 영화사 A24에서 4K 복원을 진행해 재개봉이 성사되기도 하였다.
한데 영화는 다른 일군의 작품과 비교하면 이상한 점이 있다. 우선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극적으로 연출된 도입부와 결말부가 그렇고, 관중이 존재하지 않는 공연 실황인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2023)나 빌 에반스 트리오의 라이브 비디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콘서트와는 달리 상당한 관객을 동원한 ‘록’ 콘서트였음에도 관중을 거의 응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렇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의 한 시퀀스를 제외하면 카메라가 관객을 피사체로 삼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톱 메이킹 센스>에는 리액션이 부재하다.
공연 실황에서 관중의 반응을 묘사하지 않는다는 선택은 대담하다. 콘서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모두 현장성으로 반영하는 기본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매체 특성상 서사적인 기능이 약하고 우연에 의존하는 정도가 다분한 탓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이 느슨하다. 마샬 맥루한적 표현으로 논픽션은 픽션에 비해 대체적으로 ‘쿨 미디어’적이다. 그러나 관중을 응시하지 않는 화면을 보는 영화 관람객은 이것이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스톱 메이킹 센스>의 카메라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현장감에 대한 묘사 없이 그 감각을 매체에 특화된 방식으로 전달한다.
그렇기에 <스톱 메이킹 센스>가 지향하는 공연 실황의 형태는 가장 픽션스러운 논픽션이다. 조나단 드미의 목표는 공연을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에 있었고, 또 완전히 성공하였다. 마지막에 이르러 난장에 가까운 춤사위가 벌어지고 관중의 얼굴이 하나하나 호명될 때조차 영화는 고수해오던 내적 요소의 파괴마저 감수하는 흥겨움으로 가득하다. 논픽션이 좀처럼 갖출 수 없는 서사와 음악적 고양을 공연예술에 전가한 뒤 인위적인 연출과 감정으로 승부하는 것, 그것이 <스톱 메이킹 센스>의 미학적 단추다.
기록으로써의 공연 실황: 록큐멘터리의 경우
실은 <스톱 메이킹 센스>가 관중을 바라볼 것인가, 바라보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 최초의 시도는 아니다. 할리우드의 거장이자 공연 실황의 큰 획 마틴 스콜세지는 1970년 우드스탁 페스티벌 실황의 총편집을 맡으며 관중의 리액션을 관습적으로 촬영하는 카메라에 싫증을 느꼈다. 그런 고뇌는 콘서트 영화의 기념비 <라스트 왈츠>(1978)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스톱 메이킹 센스>가 실황이라는 주제에 몰두하며 한 편의 연극적인 성과를 이룬 반면 스콜세지는 다른 방향으로 극을 이끌어 나갔다. 말하자면 <라스트 왈츠>는 인터뷰와 공연의 전후 맥락을 포용한 전형적인 ‘록큐멘터리’에 가까웠다.
록큐멘터리, 록 다큐멘터리란 당연하게도 ‘록’과 ‘다큐멘터리’의 합성어로 프로듀서 빌 드레이크가 1969년 로큰롤의 역사를 다룬 라디오 방송을 일컬으며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중음악에 관련한 논픽션 전반을 크게 포용하는 장르명이다. 이 장르는 다큐멘터리라는 어휘가 전하듯 기록하고자 하는 습성이 강한데, 언급했던 <라스트 왈츠>는 더 밴드의 마지막 공연 전반을 묘사하고, <에이미>(2015)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사후에 그의 생애를 회고하며, <우드스탁>(1970), <김미 셸터>(1970)의 경우 대중음악사에서 유의미했던 축제의 과정을 관찰하고 <더 블루스>(2003) 7부작은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등의 모습을 띤다.
기록적인 지향으로 인해 영화 속에는 공연을 찾아오는 이들이나 관중의 리액션, 때로는 잡담마저 수록되는 경우가 있고, 곳곳에 인터뷰를 적극 활용해 해당 공연이나 아티스트에 관한 청사진을 그리기도 한다. 록큐멘터리의 다수 장면은 후대에 역사적 사료로 인용되거나 아티스트의 팬들에게 시청각적 정보를 구체적으로 선사하는데, 이때 ‘레코딩’이라는 제목 아래 행해지는 음악과 영화의 제작 과정은 괜스레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작품의 성향 탓에 지루하거나 건조할 것이라는 예상을 사기 십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가끔 허구보다 더 깊은 드라마를 쥐고 있다. 빔 벤더스가 메가폰을 잡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의 결성 과정이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2024)의 녹음이 마무리되는 순간, <한여름밤의 재즈>(1959)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관객을 매료하기에 충분하다. 제작 시기 탓에 특별한 위치를 점하게 된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2009)이나 <존 레논의 이매진>(1988)은 불운하게 세상을 등진 아티스트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벅차다. 덧붙여서 <서칭 포 슈가맨>(2012),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는 허구가 체득하기 어려운 우연성과 절실한 아이디어마저 품고 있는 작품들이다. 거기에 온몸을 휘감는 사운드의 향연이 함께 한다면 위 작품들을 사랑하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안으로써의 공연 실황: 비욘세의 경우
공연 실황에 관하여 단 한 명의 예술가를 선정할 때 음악인의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비욘세는 이 분야에서 유별한 영토를 확립하고 있다. 그가 드물게 자신의 공연 실황을 스스로 감독하는 뮤지션이라는 것에서도 그렇지만, <BEYONCÉ>(2013)와 <Lemonade>(2016), <Black Is King>(2020)을 ‘비주얼 앨범’이라는 생소한 미명 하에 공개하며 시각과 청각의 매체 융합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비욘세의 방대한 미적 세계관을 구현하기에 ‘음악가’라는 틀은 다소 비좁다.
작사/작곡부터 프로듀싱, 그리고 음반 전체의 콘셉트나 무대 위에서의 모습까지 자신의 미학적 진영을 빈틈없이 움켜쥔 완벽주의 성향은 공연 ‘예술’이란 말이 부합할 만한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를 창출해낸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를 담는 카메라에도 가공할 수준의 공을 들여 또 한 번의 전율을 극장에서 감각하게 한다. 공연 실황이 해당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 팬들을 위한 대안적 기능을 일삼는 지점을 겨냥한 것이다. 이는 자칫 밋밋한 연출에 의해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실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될 수 있지만, 비욘세는 진작에 파훼법을 깨치고 있었다.
2018 코첼라 페스티벌을 담은 <비욘세의 홈커밍>(2019) 도입부는 카메라를 응시하는 마칭 밴드, 그를 중심으로 갈라서는 댄서들, 이집트의 파라오 네페르티티를 연상케 하는 비욘세의 자태까지 영상물에 대한 완전한 의식 속에 시작한다. 어느 때보다도 조직력 있고 현란한 화면 움직임과 참여진의 활약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스크린에 온전하게 드러난다. 편집 과정에서만 가능한 몇몇 효과의 곁들임은 극장 관람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는 비밀스러운 위로가 되어준다.
<르네상스 필름 바이 비욘세>(2023)에서 이러한 연출은 더 극대화된다. 화면비의 교체나 슬로 모션, 흑백 화면과 공연 준비 과정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가미해 다채롭게 구성한 영상에서 음악을 시각화하는 비전에 대한 야망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새롭게 다가오는 점은 투어 중 있었을 일련의 공연을 교차편집을 통해 한 데 묶은 것인데, 관객은 이를 통해 현장 관중이 미처 보지 못했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한 시공간 안에 엮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이지와 켄드릭 라마, 데스티니 차일드와 메간 디 스탈리온, 다이애나 로스와 카디 비에 이르는 기라성이 함께하는 광경은 오직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우드스탁>은 걸출한 음악인들의 열정적인 공연으로도, 현대사의 문화적 극점에 대한 기록으로도, 화려한 편집 기술과 조명이 이루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으로도 주목받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관중이 사랑과 평화라는 명목으로 한 데 모여 예술을 향유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은 이로써 확실히 증언되었다. 그런데 영화의 틈과 틈으로 이 모든 경이를 뒤로 한 진행자의 장내 공지가 들려온다. 그는 거대한 운집 속에서 한 명의 이름과 출신지를 콕 집어 특정한 뒤 이렇게 말한다. “시티 맥기, 무대 뒤 오른쪽으로 와주세요. 아내가 출산 중이에요. 축하합니다.”, “마릴린 코헨, 마릴린 코헨 어디 계시나요? 그렉 님이 안내소에서 기다리십니다. 청혼을 하고 싶어 하세요.” 등의 안내다. 이런 말들이 재밌었던 것은 우리에게 낭만과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역사적 장소에 이토록 사적인 담화가 우렁차게 말해지곤 했다는 소탈함과, 어지러울 만큼 과격한 인파의 격랑 속에서도 느껴지는 인간미의 사랑스러움 덕분이다.
결국 우리가 음악적이거나 휴머니즘적인 순간을 박제하고자 하는 욕심은 증발하는 시간을 두고두고 아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금의 공연에서 머리 위로 휴대폰이 솟아오르는 광경은 이제 익숙하다. 특정한 때와 장소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와 현장을 공유할 수 있다는 각별함. 그 각별함은 우리가 마주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을 긍정하고야 말게 만든다. 그렇기에 가장 위대한 공연 실황 영화는 당신의 휴대폰 갤러리 속에 있다. 그리고 나의 가장 위대한 공연 실황 또한 나만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글을 줄이고 그 회상에 빠져들면서, 마지막으로 문득 그렉의 청혼이 성공했을 거란 천진한 상상을 해본다.
참고 문헌
- 2문단_(이시림, 이수현. (2022). 코로나 19 이후 한국 아이돌 팬덤의 온라인 공연 경험과 문화적 결속력 변화에 관한 연구. 문화산업연구, 22(1), 35-48, 10.35174/JKCI.2022.03.22.1.35)
- 3문단_(조은아. 온라인 공연, 콘서트를 대체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움 논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