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변정아 인터뷰

by over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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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은 세상을 구하고, 세상은 영웅에게 구해진다. 영웅적 서사는 거의 언제나 영웅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세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영웅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결국 영웅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이 연약한 세상이 아니었나.

연약한 우리는 서로를 구원하고, 그렇게 서로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연약한 세상은 구원자를 필요로 하고, 젊은 싱어송라이터 변정아는 이때 구해지는 우리의 연약한 세상에 주목한다. 스스로의 취약함을 숨기지 않는 그녀의 음악은 언제나 구원자를 환영하고, 구원자와 함께 전진한다. 본 대담에는 새하얀 세상을 지닌 싱어송라이터의 새하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조금의 발자국 덕분에 더욱 아름다운 온기를 전한다.

날짜: 2026년 4월 21일
방식: 대면 인터뷰
장소: 카페 따우전드
진행: 이승원, 정기엽
정리: 이승원

최근 싱글 ‘Saint’를 발표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Saint’는 제가 기존에 냈던 곡들과는 결이 많이 다른 곡이었어요. 주변 반응은 좋은 편이었고, “정아야 너 이번에 좀 분출했구나.” 하면서 반가워해주시는 반응이 많았던 것 같아요. 기존 제 음악을 들어주시던 지인이나 팬분들 중 몇 분은 직전 ‘눈밭’의 연장선 같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구요. 저는 그 메시지적인 연장선을 듣는 분들께서 못 느끼실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 연관성을 발견해주시고, 말씀해주시더라구요. 실제로 그렇거든요.

실제로 ‘Saint’의 화자가 보여주는 태도나 정서 등이 직전 ‘눈밭’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래도 두 곡 모두 실제 제 경험에 빗대어 쓴 곡이고, 비슷한 시기의 감정을 담은 곡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둘 간의 차이가 있다면요.) ‘눈밭’의 경우는 보다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어요. 온전히 제 안의 외로움이나 결핍에 관한 이야기여서, 제 내면의 감정들을 좀 더 면밀하게 살피고, 메세지나 사운드 디자인까지 전반적으로 디테일하게 풀어내려고 노력했었죠. ‘Saint’는 이제 조금 바깥으로 넘어와서, 그래서 내가 결국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지금의 저는 계속해서 고여있지 않으니까요. 결국 정체되어 있는 듯한 시간이나 마음도, 언젠간 과거가 될 거라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던 거죠.

변정아 - Saint

확실히 ‘Saint’는 이전 곡들과 사운드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어요. 중반 록 스타일로의 선회가 인상적인데요.

처음 작업을 할 때부터 “나는 락적인 요소를 가미할 거야.” 이런 목적을 가지고 만든 건 아니구요, 처음 뼈대는 그냥 보컬 트랙 하나에 기타 트랙 하나였어요. 아무래도 전 기타로 노래를 만드니까. 그런데 곡의 메시지를 생각해 봤을 때, 혼자 계속 고여 있다가 빛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인데, 그런 장면을 설득력있는 사운드로 연출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뭔가 확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코러스 파트의 편곡을 지금의 형태로 완성시킨 것 같아요.

기존에 잘 사용하지 않던 사운드 구성에 있어서 무언가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조금 있었어요. 이 곡 자체만을 생각해보면 사운드를 좀 더 쌓아도 되려나 하는 욕심이 생기는데, 또 이전에 발매한 제 음악들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었거든요. 그래도 아직까진 저를 포크 기반의, 포크 팝 아티스트 정도로 생각해 주실 텐데 말이죠. 그래서 그 ‘정도’를 정하는 게 약간 어려웠어요. 같이 작업한 맹무영이라는 프로듀서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늘 제 음악의 숲을 봐주시는 분이거든요. 그 오빠가 “정아야 이거는 너무 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저도 이건 좀 그런가 하면서 그 정도를 조절해가며 계속 트랙을 쌓아간 거죠.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Saint’라는 곡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20대 초반에, 외로움이나 우울감같은 감정 안에서 빠져나오질 못 했어요. 저 혼자서 늘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었고… 당시의 저는 이 시간이 과연 끝나긴 할까, 이 상황이 해결되긴 할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더라고요. ‘나의 삶에도 새로운 챕터가 열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었어요.

‘Saint’는 결국 망가져있는 과거의 제 모습을 투영해 설정한 화자와, 어떤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실제로 제 삶을 구원해준 친구를 만나고 쓴 곡이에요. 그 친구를 만나고 제 삶이 정말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했고, 사람이 아무리 외롭고 우울한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평생 거기에 갇혀 있으리란 법은 없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께 저마다의 세인트가 반드시 나타날 거란 메시지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곡 제목이 ‘Saint’잖아요, ‘Saint’라는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바도 그런 주제와 관련이 있겠네요.

방금 말한 그 친구, 저를 그런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해준 그 친구랑 지금도 정말 가깝게 지내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나 이런 곡을 썼는데, 제목을 뭐라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얘기를 했었고, 하루 정도 계속 같이 고민을 해봤어요. 근데 친구가 예전에 어떤 기사를 봤는지, 스위스 알프스 쪽에서 눈사태나 설산 구조에 사람 대신 투입되는 구조견을 ‘세인트 버나드’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세인트 어때?” 라는 제안을 그 친구로부터 받게 되었고, 실제 Saint라는 단어도 어떤 종교적인 의미나 구원자, 수호자 같은 뜻이 있잖아요. 그게 되게 흥미롭게 느껴졌었어요.

흰 말이 등장하는 앨범 커버도 비슷한 맥락일까요. 물론 개와 말은 다르지만요. (웃음)

일단 제가 말이라는 동물을 되게 좋아해요. 실제로 서양에서는 백마를 미적으로 완벽한 존재로 여겨서 ‘구원자’, ‘영웅’, ‘천상적인 존재’의 느낌으로 묘사하기도 하잖아요. ‘Saint’라는 곡도 저를 구해준 어떤 수호자,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니까 흰 말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렇게 ‘수호자’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저는 밝고 깨끗한, 눈부신 느낌이 드는데, 또 이 곡의 화자를 생각해보면 약간 파괴적이고 어질러진 느낌이 많이 떠오른단 말이죠. 이 두가지 느낌을 커버에 어떻게 담아보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물론 ‘Saint’는 저를 꺼내준 구원자에 대한 내용이지만, 결국 이 곡이 시작된 지점은 제 우울감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하얀 말이 붉은 피눈물을 흘리는 그림이 그냥 딱 직관적으로 떠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에 취미로 공부하던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저 혼자 막 만들어 봤는데, 제 실력으로는 괜찮은 이미지가 잘 안 나오더라구요. 그러다가 AI 아트웍을 굉장히 잘 만드시는 작가님 한 분과 우연히 컨택이 돼서 곡과 가사를 보내드리고, 작업된 이미지를 받았어요. 받자마자 너무 좋아서 채택된 이미지가 지금의 커버예요.

‘Saint’를 최근에 발매하셨고, 또 최근에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제가 최근 1년 동안 공연을 안 했었어요. 음원 작업에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 개인적인 이유도 있어요. 작년에 첫 단독 공연을 작게 했었는데, 그 공연이 제가 평생 했던 공연 중에서 가장 크게 말아먹은 공연이었거든요. 그래서 제 자신한테 너무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진짜 아직 한참 더 갈고 닦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공연을 좀 기피하게 됐던 것 같아요. 트라우마가 생겨버려서 무섭기도 했구요.

그러고 1년 동안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음원 작업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싱글을 3개 내고 하다 보니까 다시 공연을 하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최근에 공연 일정을 좀 잡고 있었어요.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공연을 할 수 있게끔. 그리고 곡도 쓰고 있는데… 다음 작업물은 아마 EP가 될 것 같아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계획을 해두고는 있어요.

변정아 - 눈밭

그 기간 중에 발매하신 직전 싱글 ‘눈밭’이라는 곡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듣고 싶습니다.

‘눈밭’은 외로움에 관한 노래예요. 곡을 대표하는 감정도 외로움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아티스트분들의 신보를 처음 들을 때, 곡과 함께 느껴지는 날씨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면 음악이 훨씬 더 좋게 느껴지는 인상을 자주 받았어요. 제가 이번 1월 싱글 발매 날짜가 예전부터 잡혀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곡을 만들던 당시에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었고, 가장 먼저 새하얀 눈밭이 떠올랐어요. 보통 눈밭이라는 게 그냥 되게 설레고, 아름답고, 충만한, 그런 의미로 느껴지잖아요. 하지만 이 눈밭을 어떻게 다시금 해석해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봤는데, 하얀 눈에 아무 발자국도 찍혀있지 않아 만들어진 풍경이라는 게 혼자 그 누구의 관심도 없이 차갑게 버텨온 마음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눈밭’은 그런 마음을 이야기한 노래예요.

중반에 건반 연주로 선회하는 파트가 굉장히 인상적인 곡인데요. 이 전환 파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셨나요.

눈밭은 아무도 놀러오지 않는 내 눈밭 같은 마음과, 발자국이 찍히고 난 후 내 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혼란스러움에 관한 내용인데, 그 때 제 마음 안에서 막 소용돌이치고 충돌하는 감정을 인털루드에 담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에 저는 그런 파트가 만들어질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 했는데, 그때 같이 작업한 schpes4라는 프로듀서 친구가 되게 여러가지 시도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예요. 아이디어도 정말 많은 친구라 그 친구가 작업 도중에 막 혼자서 거침없이 건반을 치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여기는 아예 피아노 연주로 가는 게 어떻냐 제안했고, 그 연주를 조금 더 발전시켜서 해당 파트가 만들어지게 됐어요.

주로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에 대한 곡을 많이 쓰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지금 만 나이로 스물넷인데, 서울에 20살 때 올라왔어요. 이제 약 5년차 정도가 됐는데, 서울에 상경하게 된 스무살 때부터 약 3년 간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거든요. 지금까지의 제 인생을 그래프로 나타내본다면, 20대 초반의 시간은 아예 수직 낙하해서 바닥을 길 정도로.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그냥 외로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 올라와서 친구도 없었고, 주변에 속하고 싶은 어떤 커뮤니티조차 없었어요. 마음 맞는 사람 하나 찾기 힘들더라구요. 다른 뮤지션분들은 어떻게 저렇게 마음 맞는 동료를 찾아서 음악을 하는 거지? 나는 그냥 방구석에서 혼자 기타 잡고 곡 쓰는 거밖에 없는데… 너무 고여 있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저는 요즘까지도 곡 작업을 할 때 곡이 좀 안 써지거나 하면 그냥 옛날 일기장을 자연스럽게 찾아보거든요. 그 당시의 일기들을 읽어보면, 정말 비슷한 내용 밖에 없어요. 이 생활이 언제 끝날까, 너무 지겹다, 너무 외롭다, 이런 내용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그 시절의 저에게 지금의 저까지 지배 당하는 감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정말 많이 괜찮아졌고… 되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의 이런 행복감을 음악에 녹여보려는 시도가 아직은 조금 어색한 것 같고요, 조금은 쓸쓸하고 우울한 감정을 노래하는 게 저는 아직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제 음악의 근원이 그런 감정에 있나 봐요. 20대 초반에 느낀 감정들이 여전히 제 기저에 존재하는 것 같네요.

변정아 - 사사로운 나의 것들을 네게 내어주고 싶어

‘눈밭’ 이전에 발매된 ‘사사로운 나의 것들을 네게 내어주고 싶어’는 또 완전히 그런 느낌은 아닌데요. 어떻게 쓰게 된 곡인가요.

맞아요. 그 당시는 앞서 ‘Saint’에서 얘기했던, 저를 그 우울감에서 꺼내준 친구를 만났을 때였거든요. 그 친구를 만나니 정말 인생의 걱정이 없어지더라구요. 저는 제가 평생 불안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시는 너무 편안하고 즐거운 나날들이 계속되니까 그 때 그런 곡이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아요.

(그때 바로 쓰신 곡이겠네요.) 네 맞아요. 바로 써서 곧 작업에 들어갔어요. 9월 발매 예정이었는데, 9월이면 살짝 덥긴 하지만 7, 8월 정도의 타오르는 느낌은 아닌, 약간 바람 살랑살랑 부는 늦여름이잖아요. 자연스럽게 그 계절감에 맞는 곡을 내고 싶었고, 바스락거리는 질감과 함께 기분 좋은 산뜻함이 느껴지게끔. 그렇게 작업하고 싶었어

‘사사로운 나의 것들을 네게 내어주고 싶어’ 이전까지는 또 약 1년 반 정도의 공백기가 있으셨어요. 또 그 전에도 공백기가 꽤 있으셨구요. 그 시기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데뷔곡인 ‘어린 날’을 내고서는 제가 음악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어요. 당시에 그럼에도 데뷔곡을 발매했던 이유는… 제가 그 때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홍대 쪽 여러 공연장들을 돌아다니며 자주 공연을 했었어요. 그때는 당연히 셋리스트가 싹 다 미발매곡이었고, 대부분의 관객분들이 그 ‘어린 날’이라는 곡을 좋게 들어주셨었어요. 그리고 저도 그 땐 빨리 음원을 내야겠다는 어떤 쫓기는 듯한 마음이 있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데뷔 싱글은 아직 제 실력이 누군가에게 번듯하게 내놓기에는 한참 부족했을 때 발매한 거였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에 음원을 발매할 때에는 시간이 많이 들더라도 실력이나 감을 많이 쌓고 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실제로 그 시간 동안 음악적으로 공부도 많이 했구요.

그렇게 해서 그 뒤에 EP를 냈죠. 많은 품을 들여서 만들었고, 발매 후에도 이전 싱글보다 훨씬 자랑스럽고, 여러모로 후련했던 앨범인데, 뮤지션을 업으로 삼는다는 게 그냥 음악만 열심히 만들어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나라는 아티스트를 어떻게 브랜딩 해야할지, 발매 후 홍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지식이나 고민의 시간도 부족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앨범을 한 분이라도 더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보다, EP를 냈다는 그 사실에만 어느 정도 만족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도 하고, 저보다 활동한지 오래된 뮤지션분들께 자문도 구해가며, 학교도 다니고 하다 보니 시간이 또 금방 지나간 것 같아요. 저도 제가 1년 넘는 시간 동안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cover image of 변정아 <Endless>
변정아 <Endless>Self-released

EP 얘기가 나온 김에, 2024년에 발매하셨던 EP <Endless>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총 4곡이 수록되어 있었고, 각각 다른 사랑의 양상을 담고 있었는데요.

맞아요. 그 당시에 저는 계속 음악으로 어떤 장면 연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그 EP에는 여러 가지 사랑의 장면들을 하나의 앨범에 담으려 했던 목적이 있었죠. 싱글 단위로 낼 때는 그래도 비교적 렝스가 긴 앨범보다 부담이 덜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조금 더 용감하게 해보는 느낌이라면, 앨범 단위 작품에는 그래도 저라는 아티스트 고유의 색채를 조금 더 담고 싶어지는 것 같거든요. (일종의 정체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일까요.) 맞아요. 나라는 사람, 변정아라는 아티스트도 잘 설명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어느 정도 컨셉이 명확히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고민들을 싱글보다 조금 더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저도 첫 EP이다 보니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나온 결론이 결국 제가 겪어 온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다른 걸 시도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고, 당시 제가 겪었던 사적인 이야기들을 엮어 그렇게 저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랑의 형태들에 관한, 사랑의 순환에 대한 앨범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그런 <Endless>를 통해 전하고 싶으셨던 핵심적인 주제가 있다면요.

너무 상투적이긴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사랑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부터도 여러 형태의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일종의 회의감을 많이 느껴 봤고, 이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도 이젠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저는 계속해서 사랑 안에 있으려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고 하거든요. 모든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서 무조건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래야만 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단순하게 “나 이제 진짜 끝이야”, “너 안 좋아할 거야” 이런 마음이 들더라도 그 마음이 생겨남과 동시에 그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앨범의 3번 트랙 ‘제자리’라는 곡이 그런 노래예요. 이 과정이 뭔가 계속 제자리걸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끝나지 않는 순환 같고. 그래서 앨범 제목도 <Endless>로 지었어요.

혹시 그 순환을 조금 더 길게 표현해볼 생각을 없으셨나요? 4곡 이상으로 말이죠.

있었죠. 그런 생각이 있긴 했는데, 저는 그 4곡으로도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 잘 설명됐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랑의 양상이 있긴 하죠. 하지만 저는 당시에 제 경험에 빗대어 힘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곡들만을 담고 싶었어요.

좋은 말이네요. 그럼 그 전에 발매하셨던 데뷔곡 ‘어린 날’은 어떤 곡인가요.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어린 날’은 앞서 말씀드렸던, 20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쓴 곡이에요. 그 때는 제가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언젠가는 이 어린 시절의 저를 생각하며 한 번 웃고 말겠지, 하는 조금은 허황한 희망에 기대는 마음으로,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곡이에요. 앞 질문에 대한 답변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데뷔 싱글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럼에도 어리고 불완전했던 시절을 이 곡으로 남겨둘 수 있어서 좋아요. 부끄러움은 없어요.

성인이 되자마자, 꽤 어릴 때부터 서울에 올라오셨네요.

맞아요. 20살 때 국제예술대학교라는 학교에 입학을 했었고, 반수를 해서 21살 때 지금 다니고 있는 홍익대학교에 진학을 했죠. 아직까지도 졸업을 못하고 있어요.

예술 계열 대학교에 진학하고자 결심하셨던 계기나 이유가 있다면요.

너무 평범하긴 한데… 저는 그냥 초등학생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지금은 성격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때는 학교에서 소위 ‘나대는’ 애였거든요. 무슨 축제를 하든 공연을 하든 무조건 나가서 뭐라도 해야하는… (웃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제가 학창시절을 모두 똑같은 동네에서 보냈어요. 초, 중, 고가 다 붙어있는 그런 동네 있잖아요. 저는 신정초등학교-신정중학교-신정고등학교 이렇게 학교를 나왔는데, 또 학교를 그렇게 같은 동네에서 나오다 보면 초등학교 친구들이 고등학생 때까지 쭉 이어지잖아요. 그렇게 오래 본 친구들한테 “나 음악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되게 부끄럽더라구요. 놀리기도 할 테고. 부산 친구들은 또 되게 거치니까 “네가 뭔데 노래냐” 이럴 수도 있고… (웃음) 그래서 그런지 친구나 가족들에게 음악에 꿈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교 2-3학년 쯤이 되면, 친구들은 다 진로를 찾고 결정할 때잖아요. 저는 또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서 그럼 그냥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실용음악과 입시에 대한 내용을 좀 찾아보게 됐어요. 부산에 있는 가장 유명한 학원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는데, 학원비가 생각보다 너무 비싸더라구요. 제가 동생이 둘 있는데 당시 두 동생이 모두 예체능을 하고 있었어요. 이미 부모님의 어깨가 심하게 무거워보이는 상황에서 “나 보컬 학원 가고 싶으니까 학원비 좀 대줘.”라고 말하는 게 너무 철없어 보이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깊게 하다가 학원비를 벌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어요. 물론 부모님께서 조금의 지원을 해주시기는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학원비를 충당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하루 일정이 학교 갔다가 알바하고, 알바 쉬는 날에만 학원 가서 연습하고, 이러니까 또 노래 연습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럼 주객이 전도된 거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또 많이 했죠. 나한테 지금 제일 불필요한 게 뭘까. 그래서 나온 결론이 학교를 자퇴하는 거였어요. 2학년 2학기 말쯤, 학교를 자퇴하고 약 2년 동안 계속 집-학원-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 입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기타 연주도 그때 시작하신 건가요?

맞아요. 저희 아버지가 기타를 치셔서 어릴 때부터 기타를 가끔 치긴 했지만요. 집에 아버지가 쓰시던 엄청 큰 바디의 기타가 있었는데, 그냥 쳐보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네이버에 코드 검색해서 찾아보고 쳐보는 정도였어요.

근데 이제 또 입시를 하려면 나만의 무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제 스스로 생각했을 때 저는 막 엄청난 보컬리스트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았고, 그런 걸 지향하지도 않았고… 그때 또 잔나비나 혁오 같은 국내 밴드 음악들을 많이 좋아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 노래말고도 악기 연주까지 능숙하게 할 줄 알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처음 발성을 배우면서부터 기타를 잡고 발성 연습을 했었어요. (웃음) 그래서 지금도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것보다 기타를 잡고 노래하는 게 더 편해요. 그게 더 자연스럽고.

Mitski - First Love/Late Spring

그때부터 최근까지, 인상적으로 들은 작품이나 아티스트도 있을까요?

근 2년간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Phoebe Bridgers. 너무 동경하는 아티스트예요. 최근에는 Mitski의 <Bury Me At Makeout Creek> 앨범도 반복재생해서 많이 들었고요. Annika Kilkenny 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어 몇 곡 들어봤는데 너무 좋아서, 계속 찾아 듣는 중이에요. 공교롭게 모두 여성 아티스트들이네요. 이 아티스트들이 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직설적으로 써내려가는 가사와, 또 그 가사와 일치되는 모든 것들이… 너무 좋아요.

저는 지금 시간이 흐르면서 리스너분들의 감도 자체도 되게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아티스트가 정말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겉핥기 식으로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도 음악을 만들 때 그 지점을 항상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정말 진실되게 가사를 썼나?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위 아티스트들은, 정말 닮고싶은 아티스트들이에요.

확실히 곡을 쓰는 과정에서, 곡이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본인의 이야기, 본인의 가사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나 구절이 있다면요.

정말 모든 곡의 가사가 소중하긴 하지만, <Endless>의 마지막 트랙인 ‘권태’라는 곡의 가사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제가 보통 곡을 완성해서 편곡 작업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리는 편인 것 같은데, 처음 쓴 가사를 금방 마무리짓지 않고, 뭐라도 하나 고치고, 이거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제법 길거든요. 근데 ‘권태’라는 곡의 가사는 첫 벌스를 뱉은 순간부터 되게 순식간에 쓴 가사고, 한 군데도 고친 부분도 없어요. 그만큼 날 것의 감정을 진솔하게, 가감없이 써 내려간 곡인 것 같단 생각이 들죠.

제가 마지막으로 했던 공연이 작년에 박진휘라는 싱어송라이터와 함께 한 기획 공연이었는데, 그 공연에서 ‘권태’를 불렀을 때, 제 라이브를 처음 들으셨다는 관객 한 분께서 정말 오열을 하셨다고 해요. 당시에는 공연하느라 그 사실을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보러 온 친구들이 그런 분이 있었다고 말해주더라구요. 그 분과도 끝나고 인사를 나눴구요. 그 분이 그 때 ‘권태’에 대한 감상을 말씀해 주시는데, 곡을 써내려가던 때의 제 감정이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된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깨달았었어요. 그리고 권태가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곡이구나 알게 됐구요. 그 공연 이후로 이 곡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네요.

변정아 - 권태

그런 리스너분들의 반응이나 평가를 봤을 때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너무 좋아요. 저는 제가 만든 음악이라도, 발매를 하고 난 후에는 들어주시는 분들의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정말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많은 리스너분들께서 다르게 느껴주시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고, 그런 부분이 되게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작업할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 했던 감상을 말씀해 주시기도 하고, 제가 정말로 의도한 바를 정확히 알아차려 주시기도 하고, 그럴 때 너무 좋죠.

그런 멋진 소통을 위해 공연 활동을 재개해보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마지막으로 했던 공연이 작년 4월에 진휘 언니랑 같이 했던 공연인데, 그게 저희 자체 기획 공연이었어요. 따로 공연 기획자 분 없이 저랑 진휘 언니 둘 다 처음으로 온전히 모든 걸 다 기획해본 공연이었거든요. 티켓 판매나 공연장 대관, 공연 컨셉, 포스터 제작까지 싹 다 저희가 만들어본 거죠. 저는 언제나 기획자 분이 섭외를 주시면, 그 때 가서 무대만 열심히 했는데,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외에 모든 것들까지 다 저희 힘으로, 저희 의견으로 만들어지니까 물론 힘이 들긴 했지만, 너무 좋은 작용이 되더라구요. 실제로 공연에 오셨던 분들도 이전 공연들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얻고 돌아가신 것 같구요. 그래서 그 공연 덕분에 제가 무대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고, 나중에 공연 복귀를 할 때는 또 그런 기획 공연을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아마 여름 즈음, 6월 말이나 7월 초 즈음에 전지선이라는 싱어송라이터와 같이 기획 공연을 하게 될 것 같고, 당장 가까운 건 언플러그드에서 복귀 공연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 외에도, 공연을 직접 기획하실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티켓 판매도 저희가 해야 되고, 공연 관련 문의도 저희가 받아야 되니까 저희 번호도 그냥 공개했었거든요. 제 개인 핸드폰으로 문의 연락도 오고, 인스타그램 DM으로도 연락 오고 하다 보니 공연 당일에 관객분들과 인사할 때 더 반갑기도 했어요. 이렇게 뮤지션이 직접 친근하게 공연에 관한 설명을 드리고, 직접 준비한 이벤트를 보여드리는 게 관객 분들 입장에서 조금 더 만족스럽고,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관객 분도 있을까요?

질문을 받자마자 바로 한 분이 떠오르는데, 그 때 제가 서울에 막 올라왔을 때였어요.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했던 공연이 언플러그드 오픈 마이크라는 공연이었거든요. 저는 그 때 인지도가 아예 제로였고, 저와 비슷하게 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뮤지션 다섯 팀을 묶어서 하는, 한 달마다 열리는 공연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운이 좋게도, 같이 공연한 분들 중에 팬층이 이미 조금 있으셨던 팀이 두 팀 정도 계셨던 것 같은데, 아마 그 분들 중 한 팀의 팬이셨던 것 같아요. 그 분께서 그 때 제 무대를 인상 깊게 봐주셨는지, 그 이후로 제가 정말 많은 공연을 돌았는데도 불구하고 공연에 거의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와주셨어요. 항상 공연이 끝나면 첫 번째로 인사를 해주시기도 하고, 제가 음악을 내거나 인스타그램에 소식을 올리면 언제나 첫 번째로 재빠르게 반응해주시기도 하고… 이제 그 분은 제 첫 시작을 알고 계시니까 “공연 좋았어요”에서 그치지 않고 이번 공연의 제 컨디션이 어땠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다 알아주시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그 분께 언제나 1번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제게 정말 든든하고, 소중한 분이죠.

현재 스스로 생각하시는 본인의 정체성은 어떤 건가요?

제가 최근에 공연 활동을 많이 잡게 되면서, 소개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스스로를 좋은 말로 포장한다는 게 사실 되게 낯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고, 제가 아직 보유한 타이틀도 많지 않아서… 아직 딱 한 가지 키워드나 문장으로 뚜렷하게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활동한 내용이나 스스로 저라는 인간의 고유성을 비추어 본다면, 어쨌든 저는 기저에 어떤 쓸쓸함과 외로움이 깔려있는 사람이자 아티스트인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많은 분들께서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해서 들을 수 있게끔, 그 지점을 늘 신경쓰고 있고, 포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음악 갈래를 노래하고 싶은, 그런 아티스트 정도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확실히 최근까지, ‘Saint’ 전까지만 하여도 완연한 포크를 기반으로 하셨는데 차후에 다른 장르적 시도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으신가요.

명확하게 “이걸 해보고 싶다” 하는 건 없는데, 같이 작업하는 편곡자나 연주자 분들께서 제가 장르적으로 많이 열려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종종 해주시더라구요. 저는 어떤 ‘장르’를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되기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 이야기가 잘 전달되게끔, 그에 걸맞는 사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편곡 과정에서 어떤 사운드적인 고집이 생기다 보면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 어떤 제약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Saint’ 같은 경우도 그렇구요. 물론 모든 소리는 제 취향 안에서 선택되는 본능같은 것이겠지만요. 그런 것처럼 앞으로 곡 작업을 할 때에도 만약 제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어떠한 소리가 있다면, 그게 어떤 소리든 가감 없이 선택해서 작업 하고 싶어요.

그 이야기들을 전할 때, 가사를 작성할 때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평소에 쓰지 않는 말들로 너무 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았나? 정말 평소의 내가 생각하는 단어들과 생각들을 왜곡없이 가사에 잘 녹여냈는가? 이런 것들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음악으로 과하게 포장하는 걸 되게 경계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또는 내가 느낀 감정은 이러이러한 낯선 감정이었는데, 그 감정을 일반적인 감정의 형태로 치부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경계를 하면서 가사를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또 반대로 지금 나 너무 솔직하지 않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해요. 저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솔직함의 수위를 조절하는 게 가장 어렵죠.

그럼 그런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그 후에 곡조가 나오는 타입이려나요.

제 곡 중에 사운드가 먼저 만들어진 곡은 단 한 곡도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거의 대부분 글이 먼저 나온 곡은 비교적 빨리 완성하고, 리프나 멜로디가 먼저 나온 곡은 좀 더디게 완성하는 편이에요. 가사 검열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거죠. 때때로 다르긴 하지만요. 가사에 맞춰서 멜로디와 사운드를 만드는 건 쉬운데, 음악에 맞춰서 가사를 쓰는 건 되게 어렵더라구요.

공연 활동이나 앨범 작업 등은 계속해서 하실 계획이시고, 이외에도 또 하고 싶으신 활동이 있으신가요?

OST 작업을 꼭 해보고 싶어요. 저 드라마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언젠가의 목표죠. 라디오 같은 것도 나가보고 싶고… 음원이나 공연뿐만 아니라 조금 더 다양한 분들이 저를 접할 수 있게끔 활동 반경을 넓혀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정말 열심히 해야죠.

혹시 차후에 본인 곡의 뮤직비디오를 찍어보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네, 물론 있어요. 아마 다음 EP에서 도전해보지 않을까요. 최근에 좋아하는 동료 뮤지션분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많은 걸 느꼈거든요. 뮤직비디오가 이런 좋은 작용을 일으키는구나, 비디오와 함께 재생되는 음악을 들으면, 음악에 대한 인상이 또 한 번 달라지기도 하는구나 하면서요. 이런 시각적인 자료를 음악과 같이 낸다는 게 아무래도 아티스트 스스로 더욱 명징하게 본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봐요.

마무리를 하면서, 변정아라는 아티스트가 리스너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갔으면 하시나요.

과거에 좋아했던 아티스트를 생각하거나 예전에 좋아하고, 즐겨 듣던 음악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듣다보면 그 과거 속 내 모습이 같이 재생되는 느낌이 들잖아요. 저도 제 음악이 리스너분들의 특정 시절을 함께하는, 잠깐이라도 가장 친하게 느껴지는, 그런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어쨌든 한 시절을 가장 친하게 지낸다는 건, 영원히 남는 기억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삶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장면들을 음악으로 기록하고 싶어요.

제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는 또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을 만들게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제 기저에 깔린 감정들이 아예 사라질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너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라. 제가 너무 좋아하는 반 고흐(Vincent van Gogh), 영혼의 편지의 구절 중에, “인간의 영혼에 깊게 새겨진 것은 영원히 살아 있어서 계속해서 그 대상을 찾아 다닌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모두가 지나온 삶에서 본인을 대표하는 감정이나 어떤 시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와 같은 시간을 살고, 같은 삶을 경험 중인 분들이 계시다면 제 음악을 잘 들어주시고, 오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변정아 - 기다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