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의 무지(無知)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앎이라는 본질에 다가갈 기회를 차단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성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성장은 무지(無知)를 인지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수많은 “몰라”에서 출발하는 몰라시스템의 음악은 그렇기에 일종의 성장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을 확신하지 않는 태도는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정서적 혼란을 정확히 포착하게 하고, 이를 소리에 정확히 담아냄으로써 밴드, 그리고 개인은 분명한 성장을 거둔다. 이들의 무지와 혼란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이들의 음악 안에 있겠으나, 본 인터뷰가 그 해답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해 본다.
날짜 : 2025년 9월 16일
방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카페 깊이
진행 : 이승원, 이한수
정리 : 이승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각자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박진영(이하 진영): 안녕하세요. 저는 박진영입니다.
팝콘tv걸찬(이하 걸찬): 저는 김승민이라고 합니다.
sannie(이하 산희): 박산희입니다. 반갑습니다.
각자 솔로로도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세 분이 밴드를 결성하게 되신 건가요.
진영: 저희가 같은 학교를 다녔어요. 저랑 산희가 각자 복학을 해서, 승민이가 다니고 있는 학년에 다니게 된 거죠.
그럼 진영 님, 산희 님 두 분이 위 학번이시고 승민 님이 아래 학번이신 거네요.
걸찬: 그렇죠, 제가 후배…
진영: 까마득한 후배죠. (웃음) 원래는 눈도 마주칠 수 없는… 그런 차이지만, 세상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웃음)
산희: 제가 학교 강의 중에 발표 과제가 있어서 제 자작곡을 발표했었어야 했는데, 밴드로 편곡하기에는 애매한 곡이었어요. 그래서 전자음악 하는 친구랑 둘이 해보면 멋있겠다 생각을 해가지고 승민이한테 얘기를 해서, “둘이 해볼까” 하다가… 베이스를 영입해 보면 어떨까 해서 진영이까지 오고 해서 이렇게 셋이 준비를 했었고… 그게 저희의 시작이었어요.
그게 언제쯤이었던 건가요?
걸찬: 거의 3~4년 됐을 거예요.
진영: 결과물이 너무 재밌게 나왔었어요.
그럼 그렇게 오래전에 과제로 만나셨다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밴드 결성을 하게 되신 건 언제쯤인가요.
산희: 작년…
진영: 작년 말?
걸찬: 작년 거의 끝나갈 때였던 것 같아.
진영: 아니야, 아니야. 시작은 작년 여름.
산희: 작년 여름!
진영: 작년 초에 했지.
걸찬: 작년 초에 했는데 우리 앨범 발매가 이번 연도 초였다고?
산희: ‘GREENROOM<3’이 오래 걸렸어.
진영: ‘GREENROOM<3’을 되게 오래 했어.
걸찬: … 몰랐어요.
진영: 원래 이제 카톡을 진짜 안부 인사 정도만 했거든요. 발표 수업할 때 만들어 놨던 톡방에서 “얘들아 잘 사냐.”, “언제 한번 보자.” 하다가…
걸찬: 3년 동안 그것만 했어요. “잘 지내지?”, “어~”
진영: 그 안부 인사도 했던 이유가, 그때 과제 발표하고 나서 “나중에 밴드 같이 하자” 이런 얘기도 나눴었거든요. 그걸 빌미로 가끔씩 안부 인사를 하게 되더라고요. 밴드 하기로 했던 사이니까. 그러다가 이제 우연히 셋 다 “뭔가 해보자” 하는 상태가 겹쳐가지고 이렇게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럼 몰라시스템이라는 밴드명은 새로 결성할 때 지어진 건가요?
산희: 그 과제 발표를 할 때도 “이름을 몰라 밴드로 하자” 이렇게 얘기가 되어 있었어요. (뒤에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붙은 건 무슨 이유인가요. solar system이라는 단어가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맞아요. 그거를 의도한 게 맞아요. 어감도 뭔가 재밌고.
진영: 시스템 붙이면 있어 보일 것 같아서… (웃음)
산희: 저희가 서로 무슨 질문만 하면 “몰라”, “몰라” 이랬거든요. 밴드 이름 정할 때도 “밴드 이름 뭐로 할까?” - “몰라” 이래서 밴드 이름도 몰라로 하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거를 토대로 이번에 살짝 바꿔서 몰라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걸찬: 너무 다양해요. “언제 모이지?” - “몰라”, “뭐 먹으러 갈래?” - “몰라”…
혹시 다들 MBTI가 어떻게 되시나요. 뭔가 P의 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산희: 저는 ENTP.
진영: 저는 INTP.
걸찬: 저는 INFP에요. 근데 거의 다 50%쯤이에요. I 빼고는.
산희: 전부다 N - P구나 우리.
진영: 그래서 저희가 좀 즉흥적으로 뭔가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거에 대해 웬만해선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아서 그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걸찬: 그러니까. 누가 이상한 소리 해도 다 같이 이상한 소리 하고.
그럼 이제 음악 얘기로 넘어와서… 그렇게 세 분이 본격적으로 밴드를 결성하면서 특별히 지향하게 된 음악적 방향이나 목표가 있었을까요?
진영: 저는 원래 없었는데 그냥 이렇게 셋이 하다 보니까 되게 신기한 느낌의 소리들이 나와서 그 느낌을 유지하는 게 제 목표인 것 같아요.
산희: 저는 처음부터 이 세 명이 모였을 때의 시너지가 뭔가 독특한데… 그 독특함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다들 성격부터 뭔가 평범하진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 가지고… 뭔가 셋이 모여서 밴드를 한다면 정말 흔하지는 않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운드가 주는 느낌도 그렇고, 곡의 구성이나 던지는 메시지, 이런 것들이 뭐랄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특이한 걸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걸찬: 저는 약간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포인트들이 있는, 분명히 팝송에서 쓰이지 않는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는데 결국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팝송으로 들리게끔 하는, 그런 거를 만들고 싶어요. 약간…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간 것 같더라구요. 요즘 나오는 멋있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그런 느낌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익숙하면서도 뭔가 익숙하지 않은 포인트들이 섞여 있어서 그거를 이제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거죠. 저는 그런 거를 항상 만들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곡을 들어보면 확실히 팝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구성이나 사운드 측면에서 독특한 부분이 많은데, 곡 제작은 보통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나요?
걸찬: 다른 팀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곡마다 항상 달라요. 산희가 어떤 루프에다가 아이디어를 담아 오면 거기에다 저희가 덧붙이기도 하고, 저희가 풀 트랙을 악기로만 만들어서 가져오면 산희가 거기다 붙이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붙여가면서 빌드업이 돼요.
그렇다면 가사는 어떻게 쓰시나요?
진영: 이건 저희가 작업을 좀 특이하게 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저희가 항상 일주일에 한 번씩 디스코드(Discord, 온라인 메신저) 통화를 켜고 모여서 구글 닥스(Google Docs) 문서를 하나 열고 거기다 회의록을 작성하거든요. 가사는 주로 산희가 쓰긴 하는데, 산희가 주제나 일화 같은 걸 던져달라 할 때 거기에 쓸데없는 소리를 잔뜩 쓰다 보면 산희가 거기서 캐치를 해서 가져가는 게 있어요.
일종의 브레인 스토밍 같은 거네요. 그럼 순서는 보통 어떻게 되나요? 가사나 주제가 먼저인지, 혹은 곡이 먼저인지.
산희: 그것도 곡마다 다 달라요. 제가 평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메모장에 써둔 거 중에 골라서 시작할 때도 있고, 트랙 막 보내놓은 것 중에 하나를 골라서 멜로디를 쓰고 그다음에 작사를 할 때도 있고.
이번 EP에도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한 곡들이 섞여 있겠네요. 가사를 먼저 쓰게 된 곡이 있다면요.
산희: ‘P.32’ 같은 곡은 가사 소재가 먼저 나와 있었어요. 이미 있던 거를 보내준 트랙에 멜로디랑 같이 불렀고…
진영: 그렇구나.
걸찬: 나도 몰랐어.
산희: ‘GREENROOM<3’도 가사가 먼저. 그 두 개만 가사가 먼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머지는 곡이나 트랙이 먼저 있었고, 거기에 입힌 느낌이겠네요.
나머지는 곡이나 트랙이 먼저 있었고, 거기에 입힌 느낌이겠네요.
산희: 네. 멜로디 먼저 쓰고, 나중에 “여기다 무슨 얘기를 할까 얘들아” 하고 멤버들을 괴롭혀 가지고… 약간 또래집단 상담하듯이, “썰 좀 풀어보세요”, “너네 찌질했던 기억을 빨리 내게 말해주렴” 이랬어요. (웃음)
진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 굳이 끄집어내려고… (웃음)
산희: 제가 팀을 시작하면서 하고 싶었던 거 중에 그런 것도 있었거든요. 어떤 곡은 승민이가 가사를 다 쓰고, 어떤 곡은 진영이가 자기 얘기로 가사를 다 완성하고, 그걸 제가 전도사님같이 전달하는 거죠. 물론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세 명의 얘기가 섞여 들어간 가사를 쓰고 싶어가지고 멤버들을 열심히 괴롭혀서 뽑아오고 있어요.

재밌네요. 그렇게 해서 이제 얼마 전에 EP를 발매하셨는데, 이번 EP를 작업하면서 특별히 신경 썼던 부분이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지요.
산희: 저는 개인적으로도 EP나 앨범 단위 작품을 내본 적이 없어서… 이번이 제 생애 첫 EP 작업이었거든요. 그런 만큼 뭔가 조각조각 이어지지 않은 곡들을 모아서 내기는 싫었어요. 완전히 직선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통일된 주제가 있었으면 좋겠더라구요. 그래서 대체로 작사도 좀 나중에 했어요. 주제를 먼저 정하고, 그 세계관 속에 들어맞는 조각들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EP 제목이 ‘시스템 오작동’이잖아요. 자기 감정을 스스로 깨닫는 게 쉬울 것 같지만 마냥 쉽지 않을 때도 많은데, 그런 소화하기 힘든 감정을 마주할 때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멤버들한테 감정적으로 벅찼던 경험 같은 걸 들려달라 하면서 그걸 넣으려고도 했구요.
진영: 앞서 승민이가 얘기했던,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느낌이 있는, 그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그게 전달이 잘 되려면 아무래도 듣는 입장에서 친절한 장치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들을 열심히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아방가르드하지 않게 해주는.
산희: 원래 영어로만 가사를 쓰려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어로도 써보려고 열심히 노력도 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주변에서 많이 혼나기도 했고… 왜 한국인인데 영어만 쓰냐고. 제 모국어는 어쨌든 한국어인데, 사실 제가 영어로 가사를 썼던 이유가 아무래도 영어가 덜 오글거린다고 생각해서였거든요. 근데 사실 그게 한국어로 잘 극복이 안 되니까 약간 비겁하게 도망치는 거잖아요. 그거를 스스로 인정하게 돼가지고 “이제 한국어로 좀 써봐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제 트랙별로 얘기를 한 번 해볼까 해요. 첫 트랙인 ‘GREENROOM<3’은 어떤 노래인가요. 이전에 싱글로 나오기도 했었는데요.
걸찬: ‘GREENROOM<3’에 관해서 소개를 하자면… 그거는 산희 양이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웃음) 아무래도 자전적인…
진영: 그렇죠 그렇죠. (웃음)
산희: 제가 부산 락 페스티벌에 놀러 갔었어요. 이 친구(박진영)의 다른 밴드가 거기 무대에 서게 돼가지고 승민이랑 저를 초대해 줬었는데, 승민이가 도망치는 바람에… 저 혼자.
진영: 부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미안하다. 갑자기 하루 전에. (웃음)
산희: 그래서 저는 이제 페스티벌에 혼자 간 사람이 된 거죠. 가보니까 이 친구(박진영)의 밴드 말고도 이제 제 학교 지인이 여기저기에 있었어요. 무대 위에. 동기들이 무대 위에 있는 걸 보니까 막 너무 대견하고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러다가 얘네(박진영)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잠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이 상황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저는 그때 당시에 기획사가 있었다가 이제 인디펜던트로 막 활동을 시작하던 상태였고, 뭔가 여러 가지로 좀 지쳐 있는 상태였거든요. 근데 페스티벌에 가서 동기들이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저는 밑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나는 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인데, 저렇게 페스티벌까지 갈 수 있을까? 이런 막막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생각을 시작으로 일기를 엄청 길게 쓰게 된 거죠. 나의 이 기쁜 마음이 불안과 걱정으로 바뀌게 되는 그런 과정들. 그걸 이제 가사에 넣고, 멤버들의 과거 찌질했던 사연도 조금 훔쳐 와서 넣고 해서 완성을 하게 된 거예요.
걸찬: 그 대기실이 그린 룸 이었던 거잖아.
산희: 그치 대기실이 영어로 green room이라는 걸 알게 되고… 녹색이 질투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잖아요.
그럼 그걸 바탕으로 사운드도 구성을 하셨겠네요.
산희: 그래서 그때 그러고 집에 돌아와가지고 “나도 락스타가 되고 싶다” 해서 스플라이스에서 기타 반주 하나 찾고 그 위에 노래를 불러서 단톡방에 보냈어요. 그거를 애들이 괜찮다고 해줘서 곡으로 디벨롭을 한 거죠.
걸찬: 보통 산희 아이디어는 이런 식으로 시작을 해요. 그러고 나서 “이거는 이렇게 하고 이건 이렇게 하자” 해서 저희가 덧붙이는 거죠.
진영: 원 샘플은 완전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느낌이었고…
걸찬: ‘GREENROOM<3’은 약간 다른 느낌이죠. 사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약간 팝 록 느낌이니까 그렇게 복잡한 구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금방금방 붙였던 것 같아요. 기타 리프 다시 짜고, 보컬 올리고, 송폼 짜고…
진영: 순차적으로 갔죠.
산희: 메시지에 힘을 싣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걸찬: 그래요?
진영: 저는 그런 생각은 사실 없었는데, 산희 보컬이 그걸 해내지 않았나. (웃음)
걸찬: 산희가 대충 보컬을 얹으면 결과가 좋아져가지고.
‘GREENROOM<3’도 그렇고, 이어지는 ‘MESS’ 같은 경우도 그렇고, 드럼앤베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는데요.
진영: 저희가 드럼앤베이스에 좀 빠져 있었어요. ‘GREENROOM<3’에도 그래서 드럼앤베이스 리듬을 포함시키고 싶었고…
걸찬: 저희가 일단 드럼 멤버가 없었고… ‘GREENROOM<3’ 같은 경우는 거의 초창기에 작업한 곡이기도 하니까. 제가 샘플 드럼으로 어떻게 잘 만들어 보겠다 해서 추가적으로 포인트를 줬었죠.
진영: 약간 벅차면서도 질투심이 느껴지는, 그런 멜랑콜리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MESS’ 같은 경우도 사실 완전 다른 장르에서 시작했다가, 제가 완전 드럼앤베이스에 꽂혀 있었어서…
걸찬: 사실 드럼앤베이스에 꽂혀 있던 거는 진영이었어요. 그 아멘 브레이크 샘플. ‘GREENROOM<3’에도 드럼이 2개가 나오는데, 거기 통으로 들어 있는 드럼앤베이스 샘플도 진영이 아이디어였고, ‘MESS’에 있는 드럼도 진영이 아이디어를 제가 그대로 넣은 거였거든요. 물론 저도 충분히 납득이 됐기 때문에 사용한 거지만요.
‘MESS’ 얘기가 나온 김에, ‘MESS’는 어떤 곡인가요?
산희: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어지러운 감정들을 좀 이렇게 정신없이 뱉어내는 곡이고, 듣는 사람도 머릿속이 messy 하게 만들어주는 곡이에요. 첫 가사인 “우린 결국 길을 잃고서 엉터리 노래를 지어 부르네” 이 가사로 시작을 했고, 연인과의 관계에서 들었던 생각을 기반으로 쓰기 시작한 곡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에 “우리는 길을 잃었지만 산책이라 부르지”(공중그늘 ‘산책’ 中)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연애를 하다 보면 관계가 건강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그렇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도 “길을 잃었다”, “끝났다”라고 하지 않고 엉터리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는 거죠. 인간의 어지럽고 양면적인 모습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하는…
진영: 그런 큰 주제가 있었다 보니 트랙도 그 주제에 맞춰서 잘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게.
사운드 구성은 어떤 방식으로 하신 걸까요.
걸찬: 초반부는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러시아 포스트 펑크 사운드, 그중에서도 몰찻 도마(Молчат Дома)라는 밴드의 사운드를 거의 따라하다싶이 한 거였어요. 그래서 사운드 디자인을 할 때 잔향도 엄청 들어가고 질감도 엄청 로-파이하게 만들었구요, 드럼도 일부러 옛날 드럼 머신 소스들 위주로 작업을 했어요. 그렇게 곡 분위기나 구조를 다듬는 과정에서 싸우기도 했었고…
진영: 제목 따라간 거죠. (웃음)
걸찬: 처음으로 싸웠던 곡이에요.
진영: 이 두 친구는 원래 장르의 특성대로 루프 뮤직 느낌으로 가자고 했는데,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너무 지루하다… 그래서 2절에 분위기를 이렇게 반전시키면 어떻겠냐 해서 그걸 밀어붙였죠.
걸찬: 저도 이게 이 파트에서 나오는 건 납득이 잘 안 된다 해서, 어떻게 잘 조율을 했죠. 송폼도 많이 바뀌고, 곡도 좀 짧아졌어요. 곡에 반복이 조금 더 많았었는데 이 전환 파트를 납득이 되게 하려면 뒤를 좀 잘라야 했었거든요. 셋이서 겨우 의견 통합을 본 거죠.
이 곡은 또 한글 가사로 쓰였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산희: 약간 도전정신으로 썼어요. 특별히 한글 가사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해서 쓴 건 아니었고.
진영: 가이드는 영어였어요.
산희: 어느 정도 다 완성된 상태였는데 갈아엎었어요. EP 전체를 봤을 때 한글 가사의 비율이 아직도 처참하게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막판에 한글로 다시 작업을 한 거죠.
다음 곡 ‘L=1/2ρV²SCL’은 제목부터 독특한데요.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양력에 관한 공식이더라구요.
산희: 맞아요. 공식이었어요. 비행기 이륙할 때 쓰는…
걸찬: 이거는 제가 인터루드 트랙이 만들고 싶어서 만든 트랙이에요. 큰 의미를 담지는 않았고, 뒷부분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트랙을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럼 ‘비행공포’ 이후에 작업이 되었겠네요.) 그렇죠. ‘비행공포’ 싱글을 만들고, EP에 넣기로 결정이 된 후에 인터루드도 만들까 해서 만든 곡이었어요. (사운드클라우드에도 이런 작업들이 꽤 있던데요. 앰비언트류의…) 진짜 다 들어오셨나 봐요. (웃음) 평소에도 그런 거에 관심이 있었죠. 제가 밴드 The 1975를 좋아하는데, 거기 프로듀서인 드러머 조지 다니엘(George Daniel)이 그런 사운드를 많이 쓰거든요. 그래서 저도 항상 하고 싶었어요. 그냥 interlude라고 적을까도 했었는데, 그건 또 얘네들이 싫다는 거예요. 재미가 없다고. 완전 홍대병 같은 발언이죠. 근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재미없잖아요.
진영: 우리가 태생이…
걸찬: 저희 멤버 다들 홍대병 환자이기 때문에…
사운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은 건가요.
걸찬: 이 곡에 나오는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사실 ‘비행공포’에 있는 소스에서 따온 거였어요. 거의 다 ‘비행공포’에 있는 소리들이에요. 중간에 대놓고 나오는 멜로디나 약간 저음을 구성하는 악기들 말고는 다.
흥미롭네요. ‘비행공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비행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중간에 등장하는 프리 재즈 스타일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된 건가요.
진영: 사실 그 독특한 구성이… 제가 뇌를 빼고 만들면 나오더라구요. (웃음) 뭔가 비슷한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곡 하나 안에서 장르가 많이 바뀌는 그런 곡들을 좋아했거든요. 다른 곡들에서는 이거를 어느 정도 너무 난잡하지 않게 줄였다면 이 곡에서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일단 하고 싶은대로 만들어 봤던 것 같아요.
걸찬: 진영이가 다 만든 트랙이에요. 처음에 받을 때부터 인스트는 전부 다 완성되어 있었고, 저는 거의 안 건드렸어요.
진영: 영감받았던 거는… 영화 두 개를 기억에 남게 봤었어요. <그랑블루>라는 영화랑 <그대 안의 블루>라는 영화를 봤는데 두 개가 분위기 면에서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대 안의 블루>에선 <그랑블루>의 포스터가 나오기도 하고. 어쨌든 그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되게 차가우면서 차분하고 고즈넉한 그런 분위기의 영화인데, 그거를 사운드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 진행도 난잡하거든요.
가사는 어떻게 쓰셨나요.
산희: 처음에 그 트랙을 듣는데, 사운드가 뭔가 쭉 이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확확 바뀌는 느낌이라서 뭔가 장면이 뜬금없이 바뀌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뭔가 일상적인 내용 말고 특이한 거를 하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비행공포>(Fear of Flying)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을 때였어서… 약간 <비행공포> 속의 내용이랑 제 생각을 섞어서 가사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다음 트랙인 ‘P.32’ 같은 경우는 어떻게 쓰셨을까요.
산희: 가사 같은 경우는 원래 아이디어가 존재하고 있었고, 트랙은 이 친구(진영)가 단톡방에 올렸었죠.
진영: 이거 엄청 옛날부터 만들었었는데.
산희: 이 곡이 저희 몰라시스템의 시초가 된 곡이라고 할 수 있죠. 이 트랙을 진영이가 단톡방에 보내지 않았다면 저희가 이 자리에 모이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제가 그걸 듣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갑자기 그냥 멜로디를 흥얼흥얼 녹음해서 단톡에 또 보냈거든요.
걸찬: 이거는 다사다난했어요. 편곡 기간도 길었고.
진영: 억울해서 타이틀의 타이틀로 했으면 좋겠어. (웃음)
‘P.32’의 사운드는 어떤 느낌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진영: 처음 여기 단톡방에 올렸을 때는 비요크(Bjork)의 ‘Army of me’를 듣고 그 인더스트리얼한 감성을 내고 싶어서 만들었던 곡이었는데, 이 친구들의 취향이랑 섞이게 되면서 또 새로운 느낌이 나왔죠.
걸찬: 이 곡이 진짜 많이 바뀌었어요. 초반에 비해. 질감도 많이 바뀌었고, 사용하는 악기도 달라졌죠. 원래는 기타 연주가 엄청 많았었고 막 멜로트론도 들어있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런 아이디어들도 싹 날아가고 드럼도 싹 다 다시 찍고… 진짜 틀만 유지하고 싹 다 바뀌어 버렸어요.
산희: 제가 태클을 좀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걸찬: 맞아요. 산희가 노래가 기괴하다는 태클을 순식간에 걸어가지고.
진영: 산희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별로인 것 같은데” 하면서 갈아엎으시는… (웃음)
걸찬: 맞아요. 그리고 흔치 않게 멜로디도 바꿨거든요. “이거 코러스 좀 구리지 않아?” 하면서. 멜로디를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산희: 들을수록 뭔가 듣기 힘들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특이해서 좋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하긴 했는데 뭔가 계속 듣기 힘든 요소가 계속 새롭게 들리더라구요. (듣기 힘들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일까요.)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걸찬: 이게 노래가 기괴했어가지고… 저도 기괴한 쪽에는 일가견이 있는데, 애초에 기괴한 곡에다 제가 뭘 더 덧붙여서 더 기괴하게 만드니까 산희가 그때부터 좀 질색을 하더라구요. (웃음)
산희: 저도 기괴한 걸 좋아한다고 스스로 자부심 같은 것도 약간 있었는데, 그때는 듣다 보니까 약간 청각 이슈가 생길 것 같은… 약간 환청이 들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걸찬: 막 노래가 무섭다 그랬어요. 노래가 공격적이고 무섭다고. (웃음) 그래서 이거는 굉장히 타협을 많이 하고 나온 버전이죠.
산희: 제가 좀 무섭다고 생각했던 게… 종소리 샘플이 있었는데 뭔가 일반적으로 맑은 “띵띵” 이런 종소리가 아니고 무슨 청동 거울을 두드리면 날 것 같은 그런 소리가 엄청 크게 계속… 막 꽹과리를 귀에다 갖다 대고 치는 것 같은 그런 게 계속 나오니까, 이걸 듣다 보면 약간 세뇌당하는 느낌이 들 것 같고…
걸찬: 신디사이저도 막 불협화음에다가 노이즈를 덧입히고 그랬는데… 그렇게까지 가니까 진영이마저 “이거 넣을 거야?” 이러더라구요. (웃음)
진영: 산희가 디렉팅을 잘했죠.
걸찬: 그치. 아니었으면 진짜 이상한 노래가 나왔거나 버려졌을 거예요. 점점 이상해졌을 테니까.
이 곡의 보컬 멜로디나 가사는 어떻게 구성하셨나요.
산희: 멜로디를 짤 때는 어느 정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초반에는 이 트랙이 너무 마음에 든 상태로 썼어서 어떤 대중적인 느낌을 주려고 쓰지는 않았고 그냥 나오는대로 썼었죠. 그러고 나서 이후에 듣다 보니 점점 귀가 공격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나중에 깎긴 했지만요.
가사 같은 경우에도 메모장에 있던 아이디어였고… 멜로디를 쓸 때도 이미 써놨던 아이디어를 떠올리면서 작업을 했었어요. 밤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고, 감정이 센서티브해지는 이유가 낮에는 우리 장기 사이사이 어딘가에 감정들이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면 이렇게 기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서 발전된 곡이었죠. 뭔가 기발하고 재밌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곡이었어요. 특이한 애들끼리 모여서 밴드를 하는 김에 저희처럼 약간 괴짜스러운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뭔가 위로를 더 얻을 수 있는 곡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구요.
제목이 독특한데요. 곡 제목을 ‘P.32’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산희: 예전에 제가 IELTS 시험을 보려고 공부를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그만하고 싶어져서 책을 딱 덮은 적이 있어요. 그때 32페이지를 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메모장에다가 “32페이지까지만 하고 말지 뭐”라고 적었었는데 그게 도입부 가사가 되고, 곡 제목이 된 거죠.
마지막 트랙으로 가보죠. ‘잔디’는 어떻게 만드신 곡인가요?
진영: ‘잔디’는 산희가 트랙을 거의 다 만들어서 시작한 곡이었어요.
산희: 저희의 기괴함을 좀 덜어내고자… 가볍게 들을 수 있고 내용도 조금 가벼운 곡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었어요. 어쨌든 사랑 노래니까요. 잔디의 입장에서 사랑 노래를 써본 거죠.
걸찬: 앨범을 내고 부모님께 들려드렸는데, 아빠가 음악이 어렵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6번 트랙은 괜찮지 않냐고 여쭤보니까 그건 들을 만하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산희: 저도 이런 것 때문에 “이거라도 넣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음악을 안 하는 친구들도 이 노래는 좋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구요.
걸찬: 가사도 한글이잖아. 우리 아빠가 한글 가사를 애타게 찾았거든.
개인적인 이야기로 가볼까요. 다들 어쩌다가 음악 쪽으로 들어오게 되셨나요.
산희: 원래는 음악인들을 동경하는 포지션에 가까웠어요. 어릴 때는 PD를 하고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했구요. 근데 공부가 적성에는 잘 맞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조금 힘들어하던 와중에 마침 학원가에 코인 노래방이 하나 생겼어요. 제 모든 용돈을 코노(코인 노래방)에 탕진하고… 그렇게 살던 시절이 있었죠. 그 무렵에 주변에서 “너 노래 좀 한다”,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 하는 얘기를 해줘서 한번 학원에 찾아갔었는데, 거기서 저한테 보컬로 대학 입시를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구요. 그 말에 갑자기 자극을 확 받아서 “나도 음악인이 될 수 있나” 하면서 입시를 준비하게 됐어요. (그때가 언제였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진영: 중학교 때부터 이미 저는 실용음악과를 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완전 어릴 때 학원에서 클래식 기타를 배웠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원장 선생님이 베이스 강사 선생님을 새로 구하셨는데, 배울 애들이 없으니까 저를 꽂아 넣으려고 하시더라구요. 안 그래도 기타들 사이에 있는 베이스를 보고 좀 신기해 했었거든요. 그렇게 어쩌다 배우다 보니 적성에 잘 맞기도 해서 계속 쭉 하게 됐어요. (기타는 어쩌다 배우게 되셨나요.) 초등학교 6학년이었나?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그때도 뭔가 기타를 칠 줄 알면 학급에서 인기가 있어진다는 소문을… (웃음) 그래서 나도 이제 학급의 스타가 돼야겠다 하고 기타를 배우러 갔는데, 알고 보니 인기 있어지는 거는 통기타로 즉석에서 코드 반주를 하는 친구들이고, 저는 아니었죠. 눈앞에 악보가 없으면 연주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걸찬: 저도 중학교 때 처음으로 음악을 엄청 많이 찾아 들었어요. 그린 데이(Green Day)를 필두로 해서 그 뒤로 록에 완전 빠져가지고 진짜 계속 록만 엄청 들었어요. 그게 계속 이어지다가… 제가 고등학교를 예고로 갔거든요, 연기 전공으로. 그때 실용음악과 친구들도 보게 됐는데 그 친구들의 분위기가 너무 자유롭고 좋아 보이는 거에요. 저희는 좀 빡빡했는데 말이죠. 그때부터 인터넷에 비트 만드는 프로듀서들도 막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도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전과 시도를 했는데 그건 부모님이나 선생님들한테 계속 반려당해서 못하고… 20살이 되고 입시도 다 끝나고 나서야 아버지께 허락을 받고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직접 음악을 만들고 나서 보니까 제가 만든 음악이 너무 구린 거예요. 제 음악이 너무 별로니까 어쩐지 제가 싫어했던 음악도 다 좋게 들리기 시작하더라구요. “이 사람들 다 진짜 엄청 잘하는 사람들이었구나” 하구요. 그때부터 제가 음악을 듣는 스펙트럼이 엄청 넓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원래 제가 808 위주로 하는 힙합 진짜 싫어했었거든요. 근데 노래를 막 만들다가 뭔가 진행이 잘 안 돼서 어쩌다 포스트 말론(Post Malone)의 ‘Wow.’라는 노래를 딱 들었는데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쯤부터 거의 모든 종류의 노래를 다 듣기 시작했어요.
다들 각자 아티스트로서 음악적으로 특별히 지향하는 바가 있으신가요.*
산희: 기억에 남는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독특하면서도 듣기 좋은 느낌으로 기억에 남는. 가사에도 그런 걸 신경 쓰는 것 같아요. 메시지가 담겨 있어서 듣고 나면 생각에 잠기게 되는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진영: 저도 산희랑 똑같은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곡을 쓰고, 연주하고 싶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그게 특이해서여도 좋고, 아니면 듣는 사람한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아도 좋죠. (특별히 신경 쓰시는 건 있나요.) 연주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연주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 연주를 할 때도. 작곡에서도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는 딱히 없구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그거를 조금 더 설득력 있게 하는 장치들을 많이 넣으려고 하죠.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면요.)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들이 그렇죠. 그런 장치들이 가장 잘 되어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라디오헤드(Radiohead)도 그렇고… 일렉트로닉 하는 사람 중에 무라 마사(Mura Masa)라는 프로듀서도 잘 듣고 있어요. (영향을 주는 베이시스트가 있다면요.) 베이시스트 중에서는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맞다고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내 식대로 한다는 태도도 확실히 자코한테 배운 것 같아요.
걸찬: 장르적으로는 딱히 없고… 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대체가 안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대중가요를 할 건 아니니까. 몰라시스템에서도 그래서 그런 걸 좀 넣으려고 하죠. 지금 대체가 안 되는 밴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안 되길 빕니다. (웃음) (특별히 영감받는 게 있다면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음악을 많이 찾아 듣긴 해요. 많이 찾아 듣고, 생각하고, 더 궁금해지면 인터뷰 같은 걸 찾아보고, 약간 이런 느낌.
세 분께서 모여서 밴드를 하시면서 “이걸 해야겠다” 하는 어떤 공통적인 목표나 생각 같은 게 있을까요.
걸찬: 공연을 하자?
진영: 공연을 하자.
걸찬: 음악적으로는 딱히 없어요. 누가 뭔가를 만들면 다 같이 듣고 “어, 괜찮네”, “곡 만들자”, “재밌겠다” 하는 거죠. 다음 계획에 대한 이야기 밖에 안 해요. “공연하자”, “연습하자”, “놀러 가자”, “영상 찍자”, “앨범 커버 그리자”…
앨범 커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앨범 커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그란 캐릭터는 어떤 의미인가요.
걸찬: 그게 막 캐릭터로 만들려던 건 아니었는데… 제가 일기장에다 그림을 자주 그리거든요. 졸라맨처럼 요즘 자주 그리고 있는 캐릭턴데, 애들이 “야, 이거 귀엽다”라고 하면서 앨범 커버에 넣자고 해서 그냥 계속 들어가게 됐어요. (뭔가 공룡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요.) 그냥 동그란 코에다가 눈 땡그랗게, 그리기 편해서 맨날 그리는 건데… 이름도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 졸라맨 그리듯이 그린 거거든요. (앞으로도 들어갈 예정인가요.) 이번 EP까지는 들어갔는데, 다음부터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캐릭터를 떠나서, 앨범 커버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매력적인데요. 앨범 커버 작업은 어떻게 하시나요.
진영: 저희가 매주 하는 회의 내용을 많이 참고하죠. 브레인스토밍하는 과정에서 나온 주제들이나 키워드들을 보면서 “이런 거 넣자”, “이런 느낌이 나게 하자” 하는 거죠.
이번 EP의 경우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흡수하는 느낌을 그려내고 싶었는데, 그래서 처음 그렸던 스케치는 승민이(팝콘Tv걸찬)가 만든 캐릭터가 아무것도 안 입은 채로 알록달록한 비를 맞는 그림이었어요. 알록달록한 비가 여러가지 감정인 거고, 그걸 우산이나 비옷 없이… 그러니까 아무런 방어기제 없이 맞고 있는 거죠.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추가해서 최종 커버가 나온 거구요.
걸찬: 이렇다 할 역할 분담도 없이 저희 셋이 다 같이 막 여러 가지를 보내고, 그걸 합쳐서 작업을 해요. 보통 산희가 마무리 작업을 하긴 하는데…
산희: 지금까지 거의 콜라주 느낌으로 작업을 많이 했어요. 스케치북에 막 그리고 손으로 찢어서 붙이고… 또 그걸 사진을 찍어서 누끼를 따고… 그걸 또 합치기도 하구요. 둘 다 포토샵을 야금야금 하더라구요.
걸찬: 포토샵이랑… 터치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저는 그걸로 약간 소스를 만들어서 많이 보내곤 해요. 각자 초보적으로 할 수 있는 거를 조금씩 조금씩 합쳐서 완성을 시키는 거죠.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웃음)
진영: 수작업이 많습니다.
산희: 아크릴 물감 사서 스케치북에 같이 그림도 그리고.
진영: ‘GREENROOM<3’ 싱글 커버 만들 땐 완전 다 콜라주였어요. 자세히 보시면 거기 페스티벌 약도도 조각조각 붙어있고…

확실히 음악도 그렇고 앨범 커버도 그렇고, 다 같이 자유롭게 작업하시면서도 어떤 특정한 정서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보면 인간적으로도 통하는 부분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진영: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거는… 드립(유머)의 결이 맞는다, 티키타카가 잘 된다.
걸찬: 저도 처음부터 불편하진 않았어요. 저는 사실 재미 이런 걸 떠나서 만났을 때 불편하냐 아니냐가 제일 중요해서.
앨범 작업을 하면서 서로에게 발견한 게 있다면요.
산희: 승민이(팝콘tv걸찬)가 되게… 소라게 같은 매력이 있는 친구예요. 계속 숨어 들어가려고 하거든요. 그걸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재능을 계속 발견하는 중이에요. 글을 잘 쓴다든지, 그림을 생각보다 잘 그린다든지…
진영 군은 이제 베이스 전공하는 친구로 알고 있었는데, 프로듀싱을 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기발한 송폼이나 사운드를 들고 와서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두 친구 모두 그냥 좀 특이한, 성격이 이상한 애들인 줄만 알았는데, (웃음) 작업을 하면서 파헤쳐 보다 보니 각자만의 깊은 생각이나 재능, 잠재력을 많이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밴드를 하면서 발견한 서로의 매력이나 “이런 게 좋았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걸찬: 질문이 너무 어렵네요. (웃음) 우선 저희 진영이는 음악적인 탤런트가 훌륭하죠. 듣는 음악의 폭도 굉장히 넓고. 악기 연주 스타일도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엄청 옛날에 봤을 때부터 연주하는 스타일이 특이했어요.
진영: 맞아.
걸찬: 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대요. (어떤 면이 특이했던 건가요.) 정석적인 스타일이 있다고 치면, 진영이 연주는 그 정석적인 스타일에서 좀 많이 벗어나 있어요. 그러면서도 충분히 납득이 가게 연주를 하죠. 그래서 멋있는 거고.
진영: 저만의 개똥철학 같은 게 있죠.
걸찬: 그리고 저희 산희의 매력은… 하… (웃음)
진영: 와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웃음)
걸찬: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에요. 보컬 스킬도 뛰어나고… 밴드 곡을 들려주면 제 모든 친구들이 곡 좋다는 얘기는 안 하고 보컬 좋다는 얘기만 잔뜩 하더라구요. 항상 상처받아요. (웃음)
진영: 맞아, 인정.
걸찬: 그럼 제가 “아니야, 안 그래” 이러죠. (웃음) 물론 당연히 농담이고… 산희는 정말 훌륭한 보컬리스트죠. 둘 다 저희 밴드에 꼭 필요한 친구들이에요.
아까 말씀하신 진영 님의 연주 ‘개똥철학’에 대한 내용이 궁금한데요. 어떤 개똥철학인가요.
진영: 저는 일단 연주를 배우면서도 제가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은 안 따라했거든요. 제가 레슨을 받았던 선생님이 됐건, 전공 교수님이 됐건 제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건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면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이 생기는데, 그 부족한 부분을 제가 찾은 다른 답으로 채우다 보니 조금 특이한 연주가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약간 그런 부분을 조금씩 없애려고 하고 있어요. 남 얘기도 들으면서 살고… (웃음)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요.) 비브라토를 쓸데없이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근데 저는 그게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넣은 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비브라토를 포기하거나 하지 않고 그걸 더 예쁘게 처리하는 방법을 오히려 연구했던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나 배운 점이 있다면요.
산희: 아무래도 이게 끝이 없는 조별과제를 계속 하는 느낌이라… 일단 제가 원하는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서로 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저희끼리 의견 대립이 생길 때 그걸 조율하고 하면서 팀워크에 대한 부분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걸찬: 저는 혼자 집에 있는 거를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연락도 잘 안 받고, 근데 그거를 밴드 활동을 통해서 강제로 고치게 됐어요. 지금도 고치는 중이고… (웃음) 믹싱/마스터링 실력도 많이 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약간 남들한테 제 음악을 들려주는 걸 되게 부끄러워하는 편인데, 밴드 활동을 하면 이걸 또 강제로 들려줘야 하니까, 약간 고문받는 느낌이 들면서도 자연스럽게 무뎌지게 됐죠. (제가 사운드클라우드 작업물을 들어봤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조금 부끄러우셨나요.) 그렇죠. (웃음) 근데 사운드클라우드에 작업물을 그렇게 많이 올린 시점부터 항상 그 부끄러움을 이겨내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었어요.
재미있거나 기억에 남는 일 같은 건 있었나요.
산희: EP에 수록된 노래는 아니긴 한데, ‘Amoeba’라는 곡에 나레이션이 있거든요. 그 파트 녹음을 할 때 웃음을 좀 참으면서 녹음했던 기억이 있어요. 막 목소리 연기를 해야 됐거든요. 원래 너(박진영)가 하기로 했었잖아.
진영: 제가 다 했었는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 별로였어서 셋이 한 번씩 해본 다음에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 거를 쓰자 했었어요.
걸찬: 근데 우리 뭔가 큰 이벤트가 없네. 자주 싸우자. 그래야 썰도 만들고… (웃음)
앞서 공연 이야기도 잠깐 나왔었는데, 공연 계획도 구체적으로 있으신가요.
산희: 공연 하고 싶어요. 애초에 공연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EP 작업을 했던 거였거든요.
진영: 근데 일단, 이 두 분이 기타 연주를 할 줄 아셔야 되기 때문에…
걸찬: 원래는 이 친구(박진영)가 기타를 하겠다고 적극 어필을 했었는데… 기타도 잘 치거든요. 근데 대뜸 저희한테 기타를 막 알려주더니 갑자기 저희한테 무슨 기타리스트에 재능이 보인다고…
산희: 저희를 막 추켜세워주기 시작했어요.
걸찬: 맞아요. 막 저희를 추켜세워주면서… 무슨 자기가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 됐다는 둥… 그러면서 저희한테 기타를 치라고 하고 본인은 베이스로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웃음) 그래서 저번 주부터 기타 연습을 하고 있어요.
진영: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자료까지 다 만들어주고.
걸찬: 아니 타브 악보랑 영상을 다 찍어서 보내주더라구요. 이렇게 하라고. 그래서 공연은 아마 빨라야 10월?
진영: 사실 공연은 기타만 되면…
걸찬: 이런다니까요?
기타는 칠 만한가요?
산희: 열심히 연습해야 될 것 같아요.
진영: 잘 안 돼도 때 되면 해야죠.
걸찬: 친구들 와서 실망하고 가겠다. (웃음)
진영: 잘 해봐.
기타를 두 분 다 처음 연주해 보셨던 건가요.
진영: 아뇨. 둘 다 많이 쳤었죠.
걸찬: 근데 이걸 실제로 치면서 공연을 한다던가 그런 적은 없어요. 실연은 또 얘기가 다르잖아요.
진영: 똑같아요.
단호하시네요. (웃음) 공연 외에도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요.
산희: 실물 음반도 얘기 중이고, 펀딩도 해보고 싶고…
진영: 화보 촬영? (웃음)
걸찬: 무슨 화보, <플레이보이>? (웃음)
그러고 보니 활동명(PopcornTvGulchan/팝콘Tv걸찬)이 예사롭지 않으신데…
승민 : 오해가 있으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그런 걸 보거나 하지는 않구요 당연히. (웃음) 제 고등학교 친구 중에 걸찬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제가 사운드클라우드 아이디를 만들 때 그 친구한테 전화를 했어요. 네 이름 좀 쓰겠다고. 걸찬이라는 이름이 특이하잖아요. 제 이름(김승민)은 너무 평범하고 이미 데뷔한 래퍼분도 계시고… 아무튼 근데 그 걸찬이라는 친구가 그냥 걸찬은 너무 심심하지 않냐면서 갑자기 막 팝콘Tv걸찬이라는 이름이 어떻냐는 거예요. 제가 그때 진짜 그 말도 안 되는 작명에 큰 감탄을 해서 그 이름을 그대로 쓰게 됐어요. 그 이름으로 데뷔도 하게 됐고…
진영: 그 친구가 저희 첫 프로필사진도 찍어줬어요.
걸찬: 사진과로 전과를 해서… 아무튼 놀랍게도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쓰려고 해요. 걸찬이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제가 이름 바꾸겠다고도 했는데 이 친구들이 그냥 이거로 하라고 그랬어요.
산희: 아… 그랬나?
걸찬: 그랬어요.
은근히 이런 류의 이름을 가진 팀들이 많더라구요. 비아그라 보이즈(Viagra Boys)도 그렇고, 사이키델릭 폰 크럼펫츠(Psychedelic Porn Crumpets) 같은 밴드도 있구요.
걸찬: 비아그라 보이즈는 멋있잖아요. 그 이름은.
진영: 너도 멋있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걸찬: 아니… 비아그라 보이즈는 멋있잖아. 노래도 좋고… 난 비아그라 보이즈로 데뷔하고 싶어. (웃음) 아무튼 저도 제 이름이 멋있어 보이게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활동명을 바꾸실 생각은 없으신 거죠.) 일단 지금은 없어요. 바꾸라는 성토가 많긴 한데… 걸찬이는 좋아하더라구요. 자기 데뷔했다고. (웃음)
다시 이전 질문으로 돌아와서, 밴드로서 하고 싶은 일이나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요.
산희: 아까 말씀드린 공연, 음반 발매도 하고 싶고… 페스티벌도 가보고 싶어요. 해외 투어도 해보고 싶고. 해외 공연이라는 게 막 돈을 벌기 위함뿐만이 아니라, 밴 같은 큰 차에 악기 막 잔뜩 싣고 다니고 하는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이제 마지막으로, 몰라시스템의 음악을 접하실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산희: 저희 몰라시스템의 여정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영: 산희가 저희 몰라시스템의 얼굴이기 때문에 저도 같은 말을 한 셈 치겠습니다. (웃음)
걸찬: 팝콘Tv걸찬 음악 많이 들어주세요. (웃음) 농담이구요, 몰라시스템 음악 많이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