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노래
*이전 회차(①)에서 이어집니다.
▴ 정규 6집 <雨後 uuhu> 앨범 사진. 출처 : 본인 제공
- 하비누아주로 시작을 하셨잖아요? 피아노를 전공하시다가 하비누아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는요?
“사실 그때는 너무 어렸어요. 어떤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때였는데, 대학교 졸업 때쯤에 노래하는 친구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이 너무 좋았으니, 그럼 학교 밖 무대에도 한 번 서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둘이서 무대를 서다 보니 기타, 베이스, 드럼이 있으면 더 풍성하고 즐거울 것 같아서 알음알음 멤버를 구했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밴드가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루키를 뽑아 지원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나갔었는데, 늘 결승까지 올라가서 떨어지더라고요. 항상 2등인 거예요. 처음엔 의아하고 믿기지 않았어요. ‘무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피아노를 치는 데도 아니라니···.’라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동료 뮤지션의 소개로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객원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디어클라우드의 기타 치는 용린 오빠와 노래하는 나인 언니를 보면서 음악을 대하는 자세와 책임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의 가장 뜨거웠던 시기에 그 팀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을 해요. 약 4년 동안 객원 멤버로 함께 하면서 ‘밴드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 팀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의지를 다지고, 도전해 보는 시기였어요.
- 솔로 앨범에 대한 갈증은 계속 있으셨던 건가요?
“그 시절엔 솔로 활동에 대한 계획이나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밴드가 휴지기에 들어가면서 ‘난 뭐 하는 사람이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 솔로 활동을 그려보게 되었어요.”
- 혹시 그 때와 지금 바뀐 게 있다면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도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지’보다도 ‘곡이 나오는구나’를 실감하며 가만히 계속 곡을 쓰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와서 ‘너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라고 해서 내게 된 게 1집 <피아노와 목소리>(2017)이었어요.
그때 제가 노래 두 곡을 불렀는데. 그 두 곡조차 부르기가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했고, 하비누아주도 그렇고 디어 클라우드도 그렇고 제가 가요 세션을 할 때도 보컬로서 정점을 찍는 분들과 했기 때문에 제가 하는 노래는 노래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도 친구들이 ‘네 이름으로 내는 앨범이니, 스스로 불러야 한다.’라고 해서 부르게 되었고, 발매 이후 작게 열었던 공연에서 만난 팬분들의 반응이 놀라웠어요. 아무도 들으러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작지만 가득 채워진 객석이 놀라웠고, 공연 내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을 흘리는 소리들이.
물론 피아노 연주는 표현하는 데 자유로웠지만, 벌벌 떨면서 염소 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듣고서 한 음절도 놓치지 않고 울고 계시는 광경이 저에게 큰 충격이자 용기로 다가왔어요.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염소지만 조금 더 잘 가다듬은 염소가 될 수 있다고. 지금도 자신은 없지만 내가 가진 목소리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라고. 팬들도 ‘성장캐’라고 한다고 한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염소’라고 표현한 것은 의외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눈물파’였던 사람이 팬이 되어주시는 것 같다며, 사실은 ‘그 팬들이 저를 키웠다’고 생각한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하진 않았지만, 친구들한테 “내 편은 팬분들밖에 없어.”라는 얘기를 한다고 한다.
책임감의 근원은 팬들이었다. 사랑으로 믿어준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끔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 노래하실 때 내면의 얘기를 하신다고 생각이 됐거든요. 다른 노래와 다르게 덩어리로 들리는 느낌. 그 자연스러움이 좋은데, 이유가 뭘까요?
“본능 때문인 것 같아요. 정리는 이성적으로 하더라도 시작은 본능이었기 때문에 뭔가 통하지 않았을까.”
‘덩어리로 들리는 느낌’이라는 표현에서 미소를 지었다.
- 가사도 쓰시고, 멜로디도 쓰시고, 피아노도 즉각 연주하시는데. 어떻게 작업하시나요?
“저는 가사를 제일 먼저 쓰는 편이고요. 메모를 많이 해요. 일기도 종종 쓰고요. 메모장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어떤 감정들을 계속 적는 편이에요.
일상에서 겪은 것들이 좀 임팩트가 큰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이라든지. 굴곡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인생에서 겪은 상황들을 풀다 보니 몰입이 잘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저도 무대에서 좀 많이 울거든요. 이번에 열린 콘서트인 <여름밤에 우리>에서는 한 곡에서만 울어서 다행이었어요.
무대 직전에 대기실에서 정신없이 수다도 떨고 많이 웃다가 무대에 올라가도, 첫 곡을 시작하는 순간 제 숨소리까지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관객분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저와 관객이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 보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어요.
“다 얘기해 봐. 내가 듣고 있어.”라고, 얘기해주는 듯한 관객석의 집중도가 느껴지면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듣는 사람도 똑같이 느낀다. 1대 1로 말을 걸어주는 것 같은 느낌. 장력이 세달까. 진심은 그렇다.
- 피아노를 연주하실 때나 가사를 쓰실 때나 접근하는 방식이 거의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 같아요. 자극적으로 들리게 만들려고 기술을 어디서 끌어와서 인위적으로 넣는 것은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기도 하지만, 저는 제 자체인 게 좋아요. 이 음악이 나였으면 좋겠고, 조금 모자란 부분도 지금껏 노력했던 부분도 다 나니깐. 딱 그만큼만. 제가 가진 만큼만요.”
무엇을 더 보태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음악으로 구현하는 ‘내추럴리스트’의 면모가 엿보였다.
* * *
Part 4. 기타와 나
- ‘Breathing in June’에 담긴 것처럼 기타 사운드를 좋아하시나요? 그런 느낌의.
“나일론 기타 너무 좋아하고요. 영화 음악에서 나올 법한 기타 연주였으면 좋겠기에 클래식 기타를 다루는 친구에게 부탁했어요.”
- 기타 얘기가 나왔는데요. 솔로를 하시고 하면 밴드 셋으로 공연도 하시는데. 밴드 사운드에 대한 접근 같은 거는 욕심이 있으신지.
“너무나도, 너무나 있어요. 저는 제가 기타리스트로 못 태어난 걸 진짜 서럽게 생각해요.
제 안에는 락커가 있는데···. 타고난 목소리의 피지컬이 연약해서 슬프지만, 밴드 멤버들을 통해서 분출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밴드 공연할 때 너무 행복해요.
특히 기타리스트에게 주문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기타도 못 치면서. 그래서 기타 치는 친구들이 굉장히 저와 함께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면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기타를 너무 좋아해요.”
- 그럼 그런 밴드 셋으로 할 때 나오는 밴드의 소리들이 전진희 님이 원하는 밴드 사운드라고 보면 될까요?
“네. 밴드 사운드로 다이내믹을 연출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 전진희 단독 콘서트 <여름밤에 우리> 스틸컷. 출처 : weete
- 확실히 공연 초반에 ‘이건 포스트 락인가?’ 싶은 곡들이 있었는데요.
“저를 음반으로만 살짝 들어보신 분들은 제가 되게 정제되어 있고 서정적인 뮤지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매우 많으세요.
대부분이 그러신데, 공연에 와보신 분들은 저를 분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제 모습이라서 그렇게 봐주시는 게 좋아요.”
- 앞으로 그런 쪽의 음악적 시도를 하실 생각도 있으세요?
“너무나도 시도하고 싶어요.”
- 앞으로 더 다양한 장르의 앨범들이 나올 수 있겠네요.
“네. 너무 하고 싶어요. 저는 이번 <雨後 uuhu>도 저한테는 그렇게 큰 시도는 아니었어요. ‘스트링이랑 같이 해볼까?’로 시작해서 좋아하던 소리들을 그려냈을 뿐인데, 큰 시도로 여기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록도, 앰비언트도 그려내고 싶은 소리 중의 하나이니 언젠가 준비가 되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스케일이 큰 뮤지션이라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여러 장르를 해보고 싶다고 말할 때 그녀의 눈동자가 유독 빛났다.
- 재지하고 즉흥적인 것과 이렇게 절제된 클래시컬한 것 중에 후자를 해오셨는데, 어느 쪽이 더 편하신가요?
“피아노라는 악기는 표현하기가 예민하기도 하고, 정제된 소리로 들리기 때문에 아마도 고전적인 것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가진 성향은 좀 러프한 것 같아요. 노이즈에 가까운.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로 이것저것 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제 성향과 절제된 피아노가 만나는 게 재밌다는 생각을 해요.”
- 요즘 흥미롭게 듣고 계신 음악이 있다면요?
“본 이베어(Bon Iver),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 키스 자렛(Keith Jarret). 음악 그 자체인 것처럼 들리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즐겨 듣는 것 같아요.”
구태여 정형화된 옷을 입기보다는 언제나 ‘나’로 존재하는 뮤지션. 그래서일까, 전진희의 음악은 늘 새로운 길을 향해 열려있다.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雨後 uuhu> 앨범을 통해서 사람들이 어떤 걸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있으신가요?
“그럼에도 다시 봄은 온다고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 희망인가요?
“네. 모든 것은 순환하고. 또다시 힘들지라도 지나갈 테니까요.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만 온전히 받아들이면 사는 게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에 하고 있어요.
죽을 것 같아도 꽃은 피고, 또 행복한 순간에도 비는 쏟아지고. 그게 사는 게 아닐까. 원래는 무서웠거든요. 시간이 흐르는 게 무섭고. 죽음도 피하고만 싶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랬는데, 당연히 무섭지마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 마음가짐도 이렇게 약간 변화해 오시면서,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라든가, 내면의 감정 같은 것들도 있을까요?
“저는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제가 지금까지 계속 힘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야기를 자신 있게 꺼내놓지는 못했다는 생각이에요.
성격상 엄청 힘들고 그래도 ‘괜찮아’ 웃으면서 ‘재미있으면 되지!’ 그런 생각이었는데. 깊숙이 숨겨놓은 어두움, 그런 게 내비쳐지는 게 약간 부담스러웠던 게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제는 그것을 음악가로서 좀 꺼내야 하는 때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핍은 누군가에게 큰 동력이 된다. 어쩌면 가장 건강한 승화다. 앨범으로 낼 생각이 없었기에 가볍게 연주한 <Breathing>이 사랑을 받으면서 ‘누워서 친 건데, 본격적이지 않은 음악이 사랑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브리딩 1집을 내고서 한 번도 안 들었다고. 근데 1년 정도 지나서 요가원에서 사바사나를 하고 있는데 흘러나오는 걸 보면서 ‘음악에는 쓸모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결핍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 <雨後 uuhu>였다.
- 끝으로 이런 모든 과정을 거쳐온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어요. 앨범을 발매하면 칭찬보다 채찍질을 많이 하는데요. 이제는 저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그녀에게 음악은 숨이다. 삶의 온도와 계절의 틈새가 맞닿는 순간을 기민하게 끌어올린 숨. 여름이면 음악가가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시간조차 음악으로 ‘돌파구’를 찾아 묶어둔 프론티어. 자신보다 잘하는 뮤지션을 보며 좌절하다가도 끝내 한 걸음 더 걸어 나가는 사람. 무대 위에서 홀로 모든 것을 관장하면서도 관객의 숨 앞에 눈물짓는 따뜻하고 섬세한 전진희의 음악은 결국 삶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토록 부드럽고 정직하게.
진행 : 이예진, 이승원
정리 : 이예진
사진 : 본인 제공, we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