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생각하길, 죽음이란 살아있음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또한 죽음이라는 개념은 주로 삶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상태, 무(無)의 상태로 묘사된다. 삶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기에, 삶의 종식인 죽음은 어떻게든 늦춰야 할 집착의 대상이 되고,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피해야 할 미지의 공포가 된다.
젊은 싱어송라이터 우희준의 데뷔작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은 이러한 관념과 도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등장했다. 그녀에게, 죽음은 더 이상 단순히 생존의 부재가 아니며, 삶 또한 그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연명하는 행위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삶은 무엇이며, 또 죽음은 무엇일까? 본 인터뷰는 물론 우희준이라는 한 명의 인간과 그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를 통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란 어떤 일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날짜: 2025년 7월 24일
방식: 대면 인터뷰
진행: 권도엽, 이승원
정리: 이승원
싱어송라이터 데뷔 이전에는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하셨어요. 김오키 님 밴드 세션도 하시고요.
대학교를 베이스 전공으로 갔어요. 사실 대체로 악기 세션 활동들은 그런 식으로… 학교에 들어가고, “아 걔가 좀 괜찮다더라.”, “걔 잘한다더라.” 이런 추천식으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런 경로로 세션 활동을 좀 하게 됐어요. 아이돌 밴드 세션 같은 것도 그런 식이었고요. 제가 뭐… 아주 말아먹지 않는 이상 그때의 인상이 좋게 남아서 다시 또 하게 되고… 이런 식인 것 같아요. 맞다. 홍이삭 님 연주도 한 적이 있어요. 저랑 뭔가 안 어울리기는 하는데… (웃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연주도 해봤고요.
사실 연주자들의 풀이 되게 좁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불려 다니면서 세션을 많이 했죠. 김오키 님 같은 경우에도 당시에 제가 김오키 님이랑 친한 에조(EJO)라는 래퍼 분의 세션을 하고 있었는데, 김오키 님이 제가 그때 연주하는 걸 보시고는 에조 님 통해서 저한테 제의 주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요즘에도 느끼는 게, 지금은 정말 좋은 뮤지션분들도 자기 밴드의 연주자가 필요해지면 그렇게 발로 뛰면서 보러 다니시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옴(omm..) 님의 경우에는, 제가 첫 앨범 <우리들의 푸른빛>이라는 앨범을 듣고 음악이 정말 좋아가지고 옴 님 인스타그램을 찾아봤었는데… 제가 아는 건반 치는 오빠분이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오빠에게 “이 분(옴 님) 어떻게 아냐”, “’음악 너무 좋다” 했는데, “나 그 친구 밴드 피아노 치고 있어” 이러더라고요. 근데 그 다다음 날인가? 갑자기 베이시스트가 공석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나 그럼 할래” 해서 옴 님이랑 처음 만나게 됐어요.
말 그대로 건너 건너네요.
맞아요. 완전 거의 다 그런 식이에요. 사실 막 오디션을 열고 그러기는 어렵고… 동시에 음악 스타일도 맞아야 되고… 그렇게 총체적으로 오래 같이 할 사람을 원하니까 다들 직접 발로 뛰면서 찾기도 하고, 이렇게 건너 건너 소개받기도 하죠.
대학에서 베이스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원래 엄청 어렸을 때는 클래식 음악을 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피아노도 배우고, 오케스트라에서 플룻 전공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제가 힙합 음악 쪽에 빠지게 된 거예요. 제 성격이 막 파고드는 성격이라 그냥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막 엄청 열성적으로 좋아하게 된 거죠. 제이딜라(J Dilla), 나스(Nas) 이런 걸 초등학생 때 들은 거예요. 완전 시작은 힙합이었던 거죠. 제가 그게 진짜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때 그게 정말 다 남아서 여전히 감각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제가 그때, 초등학생 때부터 미디를 배우기도 했어요. 컴퓨터 DAW 같은 거 배우고…
그리고 제가 그때 힙합엘이 같은 데 있는 제이딜라 인터뷰도 맨날 찾아보고 그랬었는데, “음악을 하려면 드럼 정도는 칠 줄 알아야지.” 이런 식으로 얘기한 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중학교 1학년? 이때쯤에 “아 그럼 드럼을 쳐볼까?” 하고 드럼을 치게 됐어요. 근데 또 제이딜라도 그렇고, 힙합 쪽에서 샘플로 쓰는 곡 중에 재즈가 되게 많잖아요, 그 원곡들도 되게 좋은 거예요. 그래서 후샘플드(WhoSampled) 같은 샘플 사이트에서 재즈 원곡들도 진짜 많이 찾아서 듣고, 드럼으로 연주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쯤까지 쭉 드럼을 치다가… 이제 입시를 준비하는데, 고등학교 2학년 말 정도 됐을 때 제가 현실적으로 제 드럼 실력이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동시에 슬슬 20대가 다가오니까 점점 직업적으로도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 드러머로 사는 게 나한테 과연 좋은 선택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전에 작곡도 배우기도 했고, 제 스스로 저한테 음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드럼은 아무래도 신체 훈련을 계속 해야 하는 악기다 보니 작곡을 하려면 뭔가 다른 화성악기를 배워야 하겠다… 이런 식으로 총체적으로 생각을 하다 보니 바꿀 수 있는 시기가 그때 밖에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베이스 전공을 해야겠다 하고 연주를 시작했어요. 늦게 시작했다 보니 남은 1년을 엄청 열심히 했고… 운이 좋게 20살 되자마자 대학교도 가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가장 마지막에 잡은 악기인데, 이전에 했던 경험들이 모이고… 마지막에 베이스로 딱 완성이 돼서 저는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베이스 너무 잘 맞네” 하고.
그 많은 악기 중에서 베이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일단 피아노는 하기 싫었어요. 엄청 어렸을 때 어머니가 억지로 피아노를 시켰어서 약간 청개구리 심보가 생겨버리더라고요. 근데 또 기타는 솔로 파트도 많이 있고, 다소 뽐내는? 조금 전면에 서야 하는 성격의 악기잖아요. 근데 저는 사람이 그런 성격이 안 돼서. (웃음)
그리고 제가 리듬 악기, 리듬감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베이스의 경우에는 리듬이 정말 중요한 악기임과 동시에 분명한 화성 악기잖아요. 제가 또 베이스라인이 좋은 음악을 되게 좋아하는데, 베이시스트가 짠 베이스라인이랑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짠 베이스라인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베이스를 배우는 게 좋겠다.” 이렇게 결론을 지었죠.
베이스 이전에 드럼도 오래 연주를 하셨는데, 그러면 지금도 드럼 연주를 어느 정도 수준 이상 하시겠네요?
네 맞아요.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 앨범도 마지막 곡 빼고는 다 제가 드럼 녹음을 했어요. 그때 그 드럼 녹음을 할 때 뭔가 제 꿈을 실현시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 정규 앨범에서 드럼 작업을 한 거를 기반으로 나중에 강지원 님 곡에 제가 드럼을 또 쳤거든요. 이 곡에도 이런 느낌의 드럼을 해달라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드럼 세션을 하게 된 거잖아요. 너무 뜻깊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베이스를 전공했고 베이스로 작업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는 드럼도 하고 싶고 그래요.
베이스를 연주하고, 베이스라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베이스 연주가 좋다 하는 철학 같은 게 있으신가요?
연주라는 게 사실은 말보다도 직관적인 표현이잖아요. 물론 가끔 “내가 너무 속단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연주할 때 그 연주하는 사람의 욕망이 다 보여요. 예를 들어 단적으로 연주자가 “나 멋있고 싶어.” 이런 생각을 하고 연주를 하게 되면 너무 자극적으로 들릴 만한 음계를 굳이 꺼내서 쓴다든가 하게 되거든요. 그런 욕망이 너무 보이는 연주는 좋은 연주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개인적 욕망보다는 그 날, 그 공간, 그 상황에 진심으로 임하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럼 녹음하실 때 테이크 수가 좀 짧으신 편인가요?
곡마다 다르긴 한데, 저는 사실 최대한 한 번에 하는 거를 너무 좋아해요. 최대한 한 방에 하고는 싶은데, 또 그렇게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잖아요. 그때는 약간 나 자신과의 싸움처럼. (웃음) 그리고 사실 “이 음악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가야겠다.”하는 판단이 딱 설 때가 많아요. 만약에 연주자가 따로따로 해서 합치는 게 만약 더 수려하더라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연주의 흐름이 더 중요하다… 이런 게 확실히 있는 거죠. 제가 또 메트로놈을 안 끼고 하는 녹음이 너무 많아서, 사실 메트로놈을 안 끼면 테이크를 따로 맞출 수도 없으니까… 그건 제가 진짜 연주자분들한테 항상 죄송한 부분이에요. (웃음)

그 볼을 맞대서 박자를 맞추는 행위를 통해 철학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가사의 내용이나 작품의 의도 같은 걸 너무 다 표명하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하긴 하긴 하는데… 그 헤드폰 하나를 나눠서 끼고, 맞출 수도 없는 박자에다가 둘이 “똑, 딱”을 하고 있는 그 상황 자체가 삶의 모습 같은 거죠.
예를 들면, 일단 저는 이성애자거든요. 근데 저는 다양한 정체성의 친구들도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게 조금 어렵기도 했는데 지금은 괜찮거든요. 근데 지금도 가끔은 남자와 여자가 둘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이게 딱 맞는 세상의 모습인 것 같은. 그런 관념을 느낄 때가 분명히 있는데, 그런 거에 계속 물음표를 던지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이 볼을 맞댄다라는 표현이, 제가 또 가뜩이나 여자이기도 하고, 어떤 연애 감정이나 로맨틱한 상황 같은 게 연상되기 쉽잖아요. 근데 그걸 그렇지 않게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남자 여자에 대한 내용이든 뭐든 어떤 획일화된 모습, 클리셰적인 얘기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던 거죠.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이라는 정규 앨범 타이틀도, 이걸 듣고 짝사랑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다는 분이 계셨거든요. 그게 막 “너무 싫다” 이건 아닌데, 살짝 속상한 거에요. (왜곡되었다는 느낌?) 왜곡도 왜곡인데, 약간 의미가 좁아지는 기분? 물론 제 음악을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려고 하시는 건 너무 감사한데, 조금 더 해석의 여지가 있는 방향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 무슨 얘기 하려는 걸까” 하고 이렇게 들여다보게 되는.
해석의 여지를 두는 작사를 확실히 선호하시는 게, 작품에 그런 가사들이 많잖아요.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의 ‘넓은 집’ 같은 트랙처럼요.
제가 철학이나 논리학 책도 정말 좋아하는데, 철학에서 주로 언어를 기호처럼 기능하게, 언어를 되게 엄밀하게 사용하는 작업들을 하잖아요? 문장 하나가 공식처럼 될 수 있도록. 물론 가사가 그래야 될 필요는 사실 없는데, ‘왜 그러지 않아야 되는가’는 곡마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곡마다 진짜 다르긴 해요.
이번 EP에 ‘정직한 사람들’ 같은 경우는 조금 엄밀하게 써보고 싶었어요. 물론 그런 엄밀한 언어를 쓰는 걸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근데 이런 엄밀한 언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어느 정도 걷어지고, 엄밀하게 봐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언어를 쓸 수도 있는… 그래서 엄밀한 단어를 쓰면서도 이거를 부드럽게 들리게 하려고 했어요.
‘정직한 사람들’의 경우는 그런 식으로 썼는데, ‘넓은 집’은 심상이 중요한 곡이거든요.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제 노래를 듣는 게 아니잖아요. 제 생각에 반대하거나 “그게 뭐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니까. 그런데 제 생각에 당장은 반대하더라도, 곡을 먼저 듣고 제 이야기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내 삶과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구나”, 혹은 “저 사람도 그렇게 나쁜 사람, 못난 사람이 아니구나”, “나랑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구나” 같은 걸 느끼게 하고 나면 그런 장벽 같은 게 허물어지고 이렇게 어우러질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너무 꿈 같은 얘기긴 하지만. 그래서 이 곡은 어느 정도 모호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또 그렇게 모호하게 해석되는 게 재밌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곡에 “납작하게 눌려서 천장을 보고 있어요 / 내 위에 어떤 남자가 애쓰고 있네요 / 좁은 곳에 욱여넣으려고 하는 이 남자의 몸은 너무 거칠고 차갑고 뜨거워”라는 가사가 있는데, 어떤 분들은 이거를 성관계에 관한 내용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물론 저도 이게 이렇게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쓰긴 했지만, 저는 이 위에서 애쓰고 있다는 게 어떤 자본주의의 구조 같은 걸 생각한 거거든요. 좁은 곳에 욱여넣으려고 하고… 이러한 사회의 지배 구조 같은 거. 이런 거였는데, 이게 보는 사람에 따라 성관계에 대한 내용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근데 그래도 재밌겠다 해서 그런 식으로 비유를 통해 모호하게 쓰고 그랬었어요.
‘굽’ 같은 노래도 퀴어적인 방향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모호성이 있잖아요.
그렇긴 해요. 제가 가사를 쓸 때, “이 곡은 이런 얘기를 해야지”, “이런 식으로, 이 정도의 강도로 얘기해야지” 하는 게 있다고 앞에서도 얘기를 했는데… ‘굽’은 굉장히 사적인 얘기예요. (기본적으로 곡 기반에 어떤 이야기가 있긴 하네요.) 네, 있긴 해요. 경험적으로 쓰는 게 맞고. 이 ‘굽’이라는 게 되게 여성주의에 대한 클리셰적인 상징물이잖아요. 근데 그거를 또 클리셰적으로 쓰고 싶진 않은 거죠. 그래서 곡 분위기도 뭔가 그런 사운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굽이라는 타이틀에서 흔히 나올 만한 사운드는 아닌 거죠.) 그렇죠.
그런 것도 재미있었고, 이 곡이 뒤 트랙 ‘맨몸’이랑도 이어지는 게 좀 있어요. ‘맨몸’은 사실 되게 대놓고 여자의 2차 성징에 대한 내용이란 말이에요. 2차 성징이 오는 시기, 15살 이쯤… 근데 보통 그때 보면 여자애들이 남자애들보다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잖아요. 저는 그 시기가 되게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몸은 갑자기 성인이 됐는데 정신은 아직 그렇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범죄나 위험에 많이 노출되기도 하고, 그 상황에 대해서 “사나운 냄새들이 줄지어 온다”는 느낌이 들었고, ‘굽’에 그 가사가 나오기도 해요.
“우릴 위한 도시는 없네”라는 가사는 여성주의 서적 중에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라는 책이 딱 생각나서 썼던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생각할 때, 저는 아직도 이게 어려운 게, 여성주의 책을 읽었으니까 나는 여성주의자인가? 아닌가? 읽는다고 하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상황이 있어요. 근데 그냥 모르겠어요. 지금은 살짝 포기했고… 제가 퀴어 이야기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뭔가를 느꼈는데, 그걸 못 쓸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퀴어 친구가 있는데, 퀴어를 떠나서 그냥 좋은 친구예요. 얘기하면 너무 재밌고, 책 얘기도 할 수 있고. 근데 이 친구가 했던 얘기 중에 “날개 없는 사랑이 우정이다.” 이런 얘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말이 마음에 막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이 구절도 그 친구한테 이거 좀 써도 되냐 해서 가사로 썼었어요.
확실히 경험적인 소재들이 가사로 나오는 경우가 많네요, 같은 앨범에 ‘나 같은 아이라면은’ 같은 트랙 경우는 어떤 일화에 기반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 부분은 사실 약간 픽션이에요. (그래요? 굉장히 사실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러니까요. 제가 앞서 말했듯이 클리셰 같은 걸 약간 꼬아서 표현하는 걸 재미있어하는데, 이거는 뭐랄까, 여자로 살게 되면 내가 아이를 안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은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 거를 약간 비틀고 싶었어요.
저 사실 아이들 되게 좋아하거든요.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어요. (정말요? 보육교사 자격증은 어쩌다가…) 제가 음악 할 때 대학교를 일찍 그만뒀거든요. 근데 이제 엄마가 “대학교 그만둘 거면 뭐 하나를 따라.”라고 그래서 땄었어요.
아무튼 제가 많은 자격증 중에 보육교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아이들 정말 좋아하는데, 또 여기서 청개구리 심보가 또 생기는 거죠. 내가 막 여성스럽게, 1등 신붓감처럼 보이려고 아이들을 좋아한 거는 아닌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막 분노에 차 있는 건 아니고요. (웃음)
곡에서 담배를 피는 내용이 나오는데, 담배도 사실 그거랑 비슷하잖아요. 여자는 뭔가 담배를 피우면 안 될 것 같은 인식이 있으니까요. 그런 인식이나 제 모습을 한번 꼬아보고 싶었어요.
가사를 전반적으로 보면 뭔가 화자가 답답해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막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자기 의심이 되게 많아요. 내가 이렇게 생각해도 되나,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하는 게 많은 거죠. 그래서 책을 읽는 것 같아요. 나 스스로 의문이 없고, “내 생각이 정답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굳이 책을 안 읽을 것 같거든요. 근데 저는 항상 의문이 있으니까 책을 읽지 않으면 멈춘 것 같고, 더 알아내서 의문이 풀려야 내가 말을 하는데 부끄럽지 않을 것 같고…
확실히 작품에도 부끄럽다는 감정이 계속 등장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앨범 만들면서 계속 했던 생각이 있는데… 우리가 이 구조가 아무리 싫어도 애초에 태어나기를 이 구조에서 태어나잖아요. 그래서 이 구조가 싫다고 말하는 것조차 그 구조의 형식을 빌려서 밖에 말할 수 없고… 이런 게 가끔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런 삶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부끄러움 같은 게 있다 보니 종종 죽음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 것 같은데요. 죽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있다면요.
공연 때도 말하긴 했는데, 제가 6살 때 이모가 돌아가셨어요. 26살에, 결혼 준비를 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죠. 진짜 하루아침에 가셨거든요. 그때 외가 분들의 진짜 그 말도 못 하는 슬픔, 슬퍼서 아예 말 한마디가 안 나오는 그 상황을 봤어요. 6살 때. 그때 죽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좀 느꼈던 거 같아요.
제가 살면서 죽음에 관련된 경험을 좀 많이 했거든요. 남들보다 좀 많이 한 것 같아요. 어디서 얘기해 보면 많이 했다는 인정도 받거든요. 최근에 어떤 평론가분이 제 앨범 리뷰 영상을 찍어주셨는데,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심지어 중간에 텀을 두고 말하세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게요. (웃음) 이 말이 가슴 속에 맴돌더라구요. 확실히 죽음에 관련된 경험을 많이 해서 그거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고, 또 많이 다룬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한병철 작가님의 말처럼, 죽음의 긍정성을 바라보는… 죽음을 너무 우울하게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귀엽고 신나게도 얘기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이찬혁 님이 이 내용에 대한 작품을 발표하셔서 저도 재밌게 들었는데, 저는 이찬혁 님만큼 신나게 쓰진 못하지만요. (웃음)
한병철 작가님의 철학과 관련된 내용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한병철 님의 책을 한창 좋아했어요. 죽음이 가지는 부정적인 면에 반해 죽음의 긍정성, 죽음의 유용성을 말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인 것 같아요. 저도 이분의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저도 상당 부분 이 이야기에 동의하거든요.
죽음이라는 게, 삶이 어차피 죽음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그 도식을 세워서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만 얘기하는 것이 저는 진짜 말이 안 된다고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음악 일도 그 도식에 완전히 안 맞거든요. 일단 생산적이지 않고… 그러면 이거에 대해서 그 도식에 반대되는 도식으로 얘기를 해야지 이게 가지는 가치를 얘기하고 또 설명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한다, 이런 거죠.
확실히 죽음에 대한 내용도 종종 나오고… <심장의 펌핑의 고문질>의 경우 일반적으로 듣기에는 다소 무겁거나 어두운 구석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전반적으로 천진하다는 인상을 주잖아요? 그런 감상에 대해서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 건가요?
그게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들렸으면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더 긍정적으로 들릴 수 있게.
보컬 스타일도 그런 것과 관련이 있는 거겠죠.
앞서 말했듯이 곡마다 열심히 생각을 하긴 하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언어를 쓸 것인가… 보컬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조용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나를 알던 사람들이 울거나 숨죽인 소리” 이 파트부터는 조금 웃음을 머금고 부르려고 했거든요. 앞서 말했듯 조금 무거운 얘기지만 긍정적으로 얘기하고 싶어서. 이렇게 보컬 부분에서도 신경을 써주는 거죠. ‘낮은 신’ 같은 경우도 어떤 부분에서는 “일부러 약간 음정이 안 맞게 불러야겠다.” 이런 것도 있었고. 항상 기술적인 면이랑 철학적인 면이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를 적당히 버무려서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럼 다시 이번 EP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이번 EP에는 산만한시선 분들 같은 다른 뮤지션분들의 조력이 있었잖아요. ‘신파의 왕’ 같은 경우 산만한시선 서림 님의 곡이기도 하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EP가 정규 앨범 활동에서 느낀 것들을 하려고 했어요. 산만한시선 분들이 어디서 인터뷰를 하신 게 있는데, 거기서 “요즘 좋게 들은 앨범이 있냐”라는 질문에 제 정규 앨범을 얘기해주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처음 알게 됐어요. 비슷한 타이밍에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수상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뮤지션’ 뭐 이런 게 있었는데, 거기서도 산만한시선 분들이 제 얘기를 해주셔서 인스타그램에 띠롱 하고 태그 알림이 오더라구요.
그래서 “이분들이 날 알고 있구나, 한번 뵈면 좋겠다.” 생각해서 이제 SNS 친구 맺고… 그렇게 있다가 처음에 이제 홍대 언플러그드에 계셔가지고 한번 뵀어요. 제가 그때 ‘남자가 싫어’라는 곡을 쓰고서 “아, 이거는 남자랑 부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한번 같이 하자고 했고, 그날 거기서 막 맞춰 보기도 했거든요.
확실히 이번 EP에는 정규 앨범을 통해서 한 경험을 쓰고 싶었고, 정규 앨범이 여러 방향으로 해석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해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있었는데, 정규 앨범을 통해 만나게 된 서림 님의 ‘신파의 왕’을 커버하는 게 이런 목적이나 의도에도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파의 왕’ 원곡을 들어보시면 곡 자체가 1절까지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2절을 내가 쓰면 딱 좋을 것 같더라구요.
‘남자가 싫어’를 남자 보컬과 같이 불러야겠다는 생각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단편적으로 얘기하면, 곡을 쓰고 나서 보니까 이거를 저 혼자 부르게 되면 듣는 사람들이 곡을 입체적으로 봐주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그냥 납작하게 보고 말 것 같은 거죠. “그냥 페미니즘 노래인가 보다.”하고 말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곡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 곡을 남자랑 같이 부르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하면서 최소한의 물음표는 가져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실제로 송재원 님이랑 같이 이 곡에 대해 얘기를 하고 가사를 수정하고 하는 작업 과정에서 곡 자체도 더욱 입체적으로 될 수 있었어요.
확실히 물음표가 남는 곡이에요. 그러면 이 곡은 어떤 생각을 기반으로 한 곡인가요?
젠더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항상 분류하기 좋아하고,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얘기예요. 성별을 빗대서 얘기한 것 뿐이죠. 제가 남자가 싫겠어요? 자꾸 생각을 비틀려고 하다 보니 반어법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동시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언어가 기호처럼 순수한 형태로, 다양한 사람의 여러 생각이 대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재밌고, 그게 또 가사의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1번 트랙으로 올라가 볼게요. ‘여기 태어나고 싶어서’는 향우회 분들과 함께하셨잖아요. 만나게 된 계기 같은 게 있다면요.
제가 작년에 잔다리페스타를 갔었어요. 카네코 아야노(カネコアヤノ)를 보려고 예매를 해서 다른 팀들의 무대도 쭉 봤는데, 그중에 향우회도 있었던 거예요. 향우회가 베이시스트분이 밴드를 나가셨는데, 그때 그 무대가 고별 무대였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무대가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그래서 잠깐 “내가 할까”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원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웃음)
그때 알게 돼서 계속 팔로우를 하고 있다가, 첫 앨범 준비하면서… 아무튼 제가 여성 뮤지션이잖아요. 여성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고 먼저 제가 연락을 드렸고, 공연 초대도 해주시고 해서 계속 그렇게 관계를 이어 나가다가… 마침 이 곡을 밴드 합주 녹음으로 하고 싶은데 향우회 분들이 해주시면 너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잘 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구요.
향우회 소속 전다인 님의 또다른 밴드인 전다인밴드와도 최근에 함께 공연을 하셨어요. 밴드 물장구클럽도 같이 말이죠.
그거는 이제 물장구클럽분들이 하신 기획 공연이었고, 물장구클럽분들이 연락을 주셨어요. 워낙 물장구클럽도 좋아하고 해서 평소에 알고 있었는데, 그 연락을 받아서 처음 직접 만나게 된 거죠.
근데 또 기획 공연이라고 해도, 공연 당일에만 딱 만나서 각자 공연하고 헤어지고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그쪽에서 뭔가 더 준비를 해주셔서 막 사진도 같이 찍고 그랬거든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실제로 그래서 공연도 훨씬 잘 됐구요. 서로 엄청 친해지기도 해서 공연 마지막에는 이제 막 “언니 사랑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됐어요. 그 공연 한 번으로요.
확실히 다른 뮤지션분들과의 협업이 많아지셨어요. 협업 과정에서 특별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 또 있나요?
완전 많아요. 앞서 말했듯 ‘남자가 싫어’도 송재원 님이랑 같이 가사도 고치고 하면서 더욱 입체적으로 될 수 있었고, 저 스스로도 더 입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신파의 왕’도 원곡자이신 서림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배우는 게 많았어요. ‘신파의 왕’ 영어 제목이 직역이 아니더라구요. 그 이유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구요. 확실히 다른 창작가와 함께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재밌고, 도움도 정말 많이 돼요.
옴(omm..) 님과도 협업을 오래 하셨잖아요.
앞서 말했듯이 제가 첫 앨범 <우리들의 푸른빛>이라는 앨범을 듣고 음악이 정말 좋아가지고 옴 님 인스타그램을 찾아봤었고, 아는 건반 치는 오빠 통해서 베이시스트로 만나게 됐어요.
근데 옴 님이 음악 전공이 아니시거든요. 그래서 음악 전공하는 친구가 없던 거죠. 그 상황에서 그래도 저는 전문 연주자니까, 다들 즐겁게 같이 하게 됐어요. 한 5년을 같이 했는데, 어려움 없이 같이 계속 발전하고 있고… 너무 좋은 거죠.
아직도 옴 님 음악을 많이 듣거든요. 해외 음악을 듣다가 들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저는 음악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요. 같이 오랫동안 해왔지만 여전히 옴 님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뮤지션이고, 계속 저도 많이 배우고, 그렇습니다. (웃음)
옴 님의 곡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나 재밌는 일화 같은 게 있다면요.
사실은 옴 님이 베이스를 너무 어렵게 만들거든요. 이게 신스 베이스로 그냥 통통통 하는 건 쉬운데, 실제로 연주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그런 라인을 그냥 막 만든단 말이에요. 베이시스트 입장에서 굉장히 고단하지만 재밌어요. 특히 이 ‘물길’이라는 곡이 제일 힘들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기쁘고 재밌는… 애증의 곡이죠.
옴 님 외에도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사운드 측면에서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또 있다면요.
산울림 음악 너무 좋고…그리고 제가 이 음악도 사운드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이누(INU)의 <メシ喰うな!>. 이 앨범도 어떻게 보면 사실 산울림 선생님들 음악이랑 결이 비슷하잖아요.
이거도 많이 들었어요. 이 앨범은 제가 진짜 닳도록 들은… DJ 해리슨(DJ Harrison)의 <Monotones>라고… 맞아, 이 앨범인 거 같아요 진짜. 제 음악은 여기서 태어났어요. 버처 브라운(Butcher Brown)이라는 팀의 건반 분이신데, 이건 2013년에 냈던 자기 개인 앨범. 제가 이 앨범 때문에 밴드캠프를 처음 가입했어요. 이분 앨범이 한번 음원 사이트에서 쫙 내려갔거든요. 처음부터 밴드캠프에만 있었으면 아예 몰랐을 텐데, 원래 음원사이트에 올라와 있었다가 갑자기 내려가니까 가입을 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공연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최근에 공연도 많이 하셨는데, 베이스 연주자로 무대에 서는 것과 싱어송라이터, 메인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서는 것에는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겠죠?
엄청 크죠. 말도 안 되게 커요. 일단 노래를 하는 게 너무 크고… 노래는 뭔가 단순히 기술적인 걸 넘어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내가 쓴 글을 목청껏 내지르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이 상황 자체가 저는 되게 신기한 상황 같아요.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있고, 내가 쓴 글을 목청껏 부르고 있는, 그런 상황이. 그때 인간적으로 느끼는 감정들과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생각들… 이런 영향이 너무 커요.
공연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앞서 말씀드린 것과 맥락이 비슷한데, 그날만 할 수 있는 걸 항상 하고 싶어요. 아까 향우회분들 얘기하면서 언급했던 카네코 아야노라는 뮤지션을 되게 좋아하는데, 그분이 셋리스트를 항상 바꿔서 공연을 하거든요. 근데 그게 완성도가 있어요. 물론 그게 진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렇게 하고 싶고, 그렇게 하려면 상황이 잘 뒷받침되어야겠죠. 사실 연주자분들은 다 저를 위해서 일해주시는 분들인데, 이분들한테 공연마다 셋리스트 다 바꿔서 다시 연주하는 그런 수고스러운 일을 부탁드릴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전에 그분들이 그런 일을 하고 싶게 만들 수 있도록 제 음악을 더 좋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구요. 그런 게 최종적인 목표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신지.
안정적인 공연 노동자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게 제 음악, 제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걸 말하는 거죠.
또 하나는 거짓말하지 않는 거. 거짓말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아가 분열되잖아요. 그게 어느 순간 터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음악으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목청껏 제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불러야 하는데, 그러면 선동이 되잖아요. 저 스스로도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요.
그리고, 공부를 멈추지 않고 싶어요. 언어나 음악도 계속해서, 평생 다듬고 싶고. 요즘 공연하면서 책을 전처럼 읽지 못하는 느낌이 드는데, 책에도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요. 궁금한 일에 대한 겁도 좀 없어졌으면 좋겠고…
아, 그리고 저는 다작하는 뮤지션들을 존경하거든요. 마냥 다작이라기보다는, 사람마다 다양한 삶의 굴곡이 있는데, 이 굴곡이 위로 가 있든 아래로 가 있든 그 상황에 대한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그런 뮤지션들. 저도 그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