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가장 놀라운 성장세를 보인 팀을 꼽으라면 전국민이 리센느를 떠올릴 테다. 그 팽창을 가능케 한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에는 천만 조회수를 달성한 영상이 10개가 넘고, 멤버 모두를 대중에게 각인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리메이크 싱글 ‘Pretty Girl’은 좋은 한 수였다. 화면 안에서 보여준 각각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동시에, 역주행을 거듭해 1위에 오른 ‘LOVE ATTACK’을 뒷받침할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 무엇보다도 시간에 쫓겨 컴백을 준비하기보다 공백을 최소화하면서도, 여유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높은 인기의 후광을 제대로 쬘 EP <PULSE>는 무난한 외연을 지녔다. 다시 말하면, 어느 아이돌 그룹이 부르더라도 상관없을 음악의 모음이다. 그나마 ‘올해 초 미나미가 포부를 담아 붓글씨로 쓴 사자성어’라는 ‘백화요란’ 정도가 내실을 서사로 충전한다. NCT DREAM ‘Hello Future’, 레드벨벳 ‘피카부’를 만든 프로듀싱 팀 문샤인(Moonshine)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이재(EJAE)가 참여한 ‘백화요란’은 크레딧의 화려함으로도, 만개(滿開)를 표현하는 가사로도 리센느의 현 위치를 설명한다. 그렇지만 곡 자체로는 이달의 소녀 이후 2010년대 말 천천히 정립되어 온 전형적인 K팝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Pinball’, ‘Déjà vu’ 등 기존 곡을 통해 리센느는 음악적 기대감을 확보해 왔다. 소속사 더뮤즈엔터테인먼트에서 리센느에만 집중한 프로듀싱은 그룹에 알맞은 색을 끌어냈었기 때문. 그렇기에 <PULSE>가 더 의아하다. 멤버들의 보컬 역량과 어울리는 톤을 잘 알 텐데 ‘MEME’, ‘Dragon’ 같은 곡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MEME’에서 원이의 목소리는 두 번이나 후렴을 부르기엔 많이 흔들리고, 제나의 랩은 너무 어색하다.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필요한 ‘Dragon’의 2절 역시 그냥 부르는 가창에 가깝지, 제대로 소화했다고 보긴 어렵다.
앞선 단점의 보완책은 ‘Finest Thing’에 있다. “Call it, keep it, feel it, let it” 처럼 끊어 치는 구간은 힘들이지 않고 운율을 극대화하며, “Cha-Ching” 은 발음만으로도 포인트로 남는다. 가볍게 듣기 좋은 기타 연주 위로 은은하게 퍼지는 목소리가 그룹의 장기적인 콘셉트인 ‘향기’와도 알맞게 어우러진다. 타이틀 ‘With’는 안전하게 감정을 끌어올리는 서정성을 지녔지만, 안전하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진부하게 읽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리메이크를 제외한 기존 음악이 떠오르는 벅찬 감성은 좋으나, 브릿지의 랩과 고음은 필요에 의해 넣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누가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난한 곡일수록 가창력이 관건이다. 보컬로 두각을 드러내 오던 미나미가 그나마 이끌어 가지만, 수록곡들이 멤버들의 목소리에 잘 붙지 않다 보니 이보다 어울리는 향이 있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전보다 신중하게 쏘지 않더라도 차트 상위권을 쉽게 노릴 수 있게 되어서일까, 시간에 쫓겨서일까. 맥박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원했겠지만 어딘가 붕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