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9월, 금으로 도금된 레코드판이 우주로 떠났다. 반세기가량 태양계 바깥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지구발 믹스테이프, 보이저 1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다. 언젠가 닿을지도 모를 외계 생명체에게, 인류는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을까.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 팀이 고른 27곡 가운데 가장 많은 곡수를 차지하는 작곡가는 바로 바흐다. 그중 한 곡이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2권 1번, C장조 전주곡과 푸가다. 같은 판에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마티가 무대에서 연주한 척 베리의 로큰롤 ‘Johnny B. Goode’도 실렸다. 음악 장르를 바라보는 공평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왜 바흐 곡을 더 많이 실었을까. 외계인이 척 베리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그 믹스테이프를 실은 보이저 1호가 오는 11월 18일, 지구에서 1광일 떨어진 지점에 도달한다. 빛의 속도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다. 그리고 같은 날,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뉴욕 카네기홀 잰켈홀에서 평균율 1권을 연주한다.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손민수는 평균율을 두고 “밤하늘의 24개의 별을 바라보며 함께하는 하나의 긴 여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평균율은 지금 별들 사이를 날고 있다.
그는 왜 평균율을 24개의 별이라고 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듣는 음악의 대부분은 12개의 음, 그리고 장조와 단조로 이루어진 24개의 조를 따른다. 이 조성 체계는 바흐 이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24개의 조 모두로 온전한 음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한 권의 작품으로 펼쳐보인 곡집이 바로 평균율이다. 평균율 1권은 C장조에서 시작해 c단조, C#장조, c#단조로 반음씩 올라가며 장조와 단조를 번갈아 지나가고, b단조에서 끝난다. 각 조마다 전주곡과 푸가가 한 쌍씩, 모두 24쌍 48곡이다. 손민수가 말한 24개의 별은 바로 이 24개의 조인 셈이다. 어쩌면 골든 레코드에 바흐가 세 곡이나 실린 까닭도 여기 있을지 모른다. 말이 통하지 않을 외계 생명체에게도 인류가 만든 음악 질서만큼은 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
‘평균율’이라는 명칭은 건반악기 조율에서 왔다. 원제 ‘Das Wohltemperirte Clavier’는 정확히는 ‘잘 조율된 건반악기’라는 뜻이다. 당시 쓰이던 조율법으로는 샤프나 플랫이 많은 조에서 화음이 거칠게 어긋나 쓸 수 있는 조가 제한됐는데, 이 곡집은 모든 조를 자유롭게 오가는 오늘의 음악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슈만이 평균율을 음악가의 ‘일용할 양식’이라 부르고, 지금까지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로 남은 것도 그래서다. 그런 평균율을 손민수가 녹음했다. 지난 10월 2일 영국 레이블 하이페리온에서 나온 새 앨범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이다. 2011년에 낸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뉴욕타임스가 꼽은 그해 최고의 클래식 음반 가운데 하나였다. 2020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사이에 두고, 다시 바흐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15년이 걸렸다. 그 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15년 전 바흐를 꺼내본다. 손민수가 2011년에 내놓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첫 곡 ‘아리아’에 깔린 베이스 선율과 화성을 뼈대로 30개의 변주를 쌓아 올린 작품. 그 첫 변주부터 들어보자. 바흐를 들을 때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는, 같은 음형이 되풀이되는 순간을 찾아내는 데 있다. 변주 1번에서 주선율이 흘러가는 동안, 베이스는 짧은 음형을 한 칸씩 높여 가며 세 번 되풀이한다. 같은 모양을 시작음만 바꿔 반복하는 기법을 동형진행이라고 한다. 그대로 치면 밋밋해지기 쉬운 대목이다. 손민수는 음형이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소리를 키워 연주했다. 더 멀리 뛰려고 한 발 한 발 힘을 모으는 아이처럼. 처음 던져진 작은 씨앗이 같은 모양을 되풀이하면서도 점점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들리는 건 이 섬세한 셈여림 덕분이다. 변주 2번은 더 까다롭다. 손은 두 개뿐이라 귀에는 왼손과 오른손, 두 층으로 들리기 쉽다. 하지만 악보에는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선율이 있다. 소프라노와 베이스, 그리고 중간 성부. 세 갈래 선율이 어느 하나 밀려나지 않고 저마다 노래하면서 어우러질 때, 청자는 환희를 느낀다. 더 흥미로운 건 반복 구간이다. 처음에는 음을 이어 연주하는 레가토로 노래하던 주선율이, 다시 등장할 때는 짧게 끊겨 경쾌하게 튀어 오른다. 같은 선율에 다른 표정을 입히는 이 대비에서, 우리는 연주자가 이 곡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듣게 된다.
음을 끊어 치는 바흐라면 떠오르는 연주자가 있다. 글렌 굴드다. 그는 음과 음 사이를 살짝 떼어 치는 논레가토(non legato)를 곡 전반에 적용해 자기만의 바흐를 만들었고, 그 바흐는 보이저호에 실려 우주로 갔다. 손민수는 다르다. 기본은 레가토로 담백하게 노래하고, 끊어 치는 표현은 반복 구간에서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언제 잇고 언제 뗄지 고르는 데서 해석이 묻어난다. 각 선율을 독립시키는 테크닉, 셈여림으로 구조에 숨을 불어넣는 해석, 그리고 그 모두에서 배어 나오는 생동감. 2011년의 골드베르크는 이 세 가지를 고루 갖춘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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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후, 손민수는 다시 바흐를 입었다. 어떤 연주에든 해석은 들어가기 마련이고, 호오는 듣는 사람의 몫이다. 이번 앨범에서 손민수는 한마디로 바흐를 받든다. 바흐보다 한 걸음 앞에 서서 이끌지도, 지배하지도 않는다. 겸허하다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연주도 드물다. 그 방향은 첫 곡에서 바로 들린다. 1번 C장조 전주곡(BWV 846).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템포다. 2011년에 평균율 1권 음반을 낸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떠올려보자. 폴리니는 이 전주곡을 빠르게 친다. 16분음표가 쉼 없이 내달리고, 연주자가 추진력으로 곡을 밀고 간다. 잘 달리는 기차 같다. 손민수는 그보다 한결 여유롭다. 느리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속도를 조금 늦춘 만큼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 전주곡은 같은 분산화음 음형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곡이다. 훗날 베토벤의 ‘월광’ 1악장이 그렇듯, 반복되는 음형 속에서 화음이 마디마다 조금씩 바뀌고, 맨 위 음들을 이어 들으면 느리게 움직이는 선율이 숨어 있다. 빠르게 지나가면 이 변화는 차창 밖 풍경처럼 스쳐 간다. 손민수는 살짝 속도를 낮춰 그 변화를 하나하나 펼쳐 보인다. 화음이 바뀔 때마다 빛깔이 달라진다. 밝아졌다 잦아들고, 다시 밝아졌다 잦아든다. 같은 기차라도 천천히 달리면, 창으로 드는 햇살 각도에 따라 무릎 위의 책이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게 보인다. 이 연주가 꼭 그렇다. 이렇게 치는 건 빠르게 치는 것보다 외려 어렵다. 속도가 메워 주던 빈틈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손민수는 “아무리 작고 여린 목소리라도 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주곡을 듣고 나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분산화음으로 흩어 놓았을 뿐, 이 곡에서 음들은 저마다 갈 곳이 분명하다. 바흐의 음악에는 이유 없이 놓인 음이 없다. 손민수는 그 음들을 똑같은 무게로 늘어놓는 대신, 제각기 다른 빛깔로 섬세하게 만진다. 굴드처럼 독특하게 깎아 내지도, 폴리니처럼 힘 있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조금 늦춘 템포로 바흐를 펼쳐 놓고, 듣는 사람이 그 안을 천천히 거닐게 한다. 바흐를 음미할 시간. 이 앨범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이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면 이 절제는 더 분명해진다.
2번 c단조 전주곡은 평균율에서 숨 가쁘게 흘러가는 곡 중 하나다. 단조인 데다 빠르기까지 해서, 연주에 따라 어둡게 몰아치는 흡인력을 만들 수 있다. 16분음표가 여덟 개씩 한 덩어리로 쉼 없이 돌아가는데, 손민수는 덩어리마다 첫 음을 악센트로 명확하게 짚는다. 첫 음이 노래하고 나머지 일곱 음이 그 노래를 받치며 흐르는 식이다. 화음이 바뀌어도 템포를 루바토로 조절하거나 일부러 볼륨을 키워 변화를 강조하지 않는다. 음형에 빛깔만 달리 입혀 곡을 끌고 간다. 이 곡 끝부분에는 바흐가 직접 표기한 몇 안 되는 지시가 몰려 있다. 음형이 덩어리째 낮은 음역으로 내려가 덩굴처럼 뻗어나간 뒤, Presto(아주 빠르게)가 시작되며 베이스에 낮은 솔이 길게 깔린다. 한 음을 길게 끌어 그 위 움직임을 떠받치는 지속음(페달 포인트)이다. 19세기 체르니판 악보에는 이 자리에 포르티시모(아주 세게)가 적혀 있지만, 손민수는 낮은 솔만 단단히 짚고 그 위 16분음표는 앞에서 흘러온 호흡 그대로 이어 간다. 이어지는 Adagio(느리게)에서 화음을 아래에서 위로 흩어 펼치는 아르페지오도 마찬가지다.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부분에서 절대 동요하지 않는다.
이 곡에는 사연이 있다. 손민수를 가르친 러셀 셔먼은 평균율을 평생 아꼈지만 끝내 녹음하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쯤 뒤, 셔먼의 아내이자 손민수가 사사한 피아니스트 변화경이 연필 메모로 가득한 그 악보를 손민수에게 건넸다. 이번 녹음의 출발점이 된 그 악보에는 이 c단조 곡에 대한 습작 시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모티프는 카이사르가 남긴 마지막 말, “브루투스, 너마저”. 그 이야기를 알고 다시 들으면, 담담하게 흘러가는 음들 아래로 배신당한 비통함이 차갑게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다섯 목소리가 등장하는 4번 c#단조 푸가(CD1 8번 트랙)로 넘어가 보자. 손민수가 말한 “작고 여린 목소리도 들려야 한다”는 말을 시험하는 곡이다. 주제가 성부를 바꿔 가며 차례로 들어와 쌓여 간다. 같은 음형이 음역만 바꿔 계속 들어오다 보니, 세 번째쯤부터는 귀가 무뎌지기 쉽다. 손민수는 베이스가 주제를 다시 받는 대목에서 선을 한결 굵게 그으며, 저음에 묻히기 쉬운 선율을 앞으로 꺼낸다. 공간이 한 겹씩 넓어지는, 팽창하는 감각이 든다. 앨범을 통으로 들으면 CD를 갈아 끼우는 순간도 들을 거리가 된다. CD1은 12번 f단조 푸가가 무겁고 웅장하게 울리며 끝난다. CD2를 여는 13번 F#장조 전주곡에서 손민수는 첫 음부터 짧게 끊어 콕콕 찌르듯 주제를 시작한다. 직전까지 깔려 있던 무게가 단번에 걷히고, 2막이 열렸음을 알리는 밝은 빛이 들어온다. CD 두 장이 두 막짜리 공연처럼 느껴지는 전환점이다. 마지막 24번 b단조 전주곡은 바흐가 드물게 직접 템포를 적어 둔 곡이다. 느린 걸음으로 나아가는 이 곡에서는 트릴 하나만 들어도 절제된 연주가 느껴진다. 트릴은 이웃한 두 음을 빠르게 번갈아 떠는 꾸밈음인데, 연주자에 따라 부르르 떨듯 길고 빠르게 돌리기도 하고, 몇 번 오가지 않고 짧게 끝내기도 한다. 손민수는 짧게, 몇 걸음만 걷고 멈춘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앨범 전체에 절제미를 입힌다.
수많은 연주자가 녹음해 온 평균율 1권 가운데, 손민수와 견주어 들어 볼 음반을 꼽는다면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다. 느리고 깊은 바흐로 이름난 리히테르 역시 1번 C장조 전주곡에서는 편안하게 흘러간다. 차이가 벌어지는 건 2번 c단조 전주곡(BWV 847)이다. 리히테르는 이 곡을 강렬하고 빠르게 몰아친다. 고요하던 흐름에 갑자기 날 선 소리가 치고 들어오는 순간 듣는 사람은 움찔하고, 그 급격한 변화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손민수의 c단조는 다르다. 앞에서 미덕으로 꼽은 침착함이 이 곡에서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그의 c단조는 느리고 차분하다. 좋게 말하면 편안함이다. 앨범을 통째로 들을 때 이 곡은 흐름을 깨지 않고, 두 시간 내내 쉬어 가듯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리히테르처럼 휘몰아치는 짜릿한 단조를 기대했다면 이 트랙은 아쉬울 수 있다. 갑작스러운 놀라움보다 일관된 호흡을 원한다면 손민수를, 곡마다 날 선 대비를 원한다면 리히테르를 들으면 된다. 다만 이 곡만큼은 조금 더 몰아쳐도 좋지 않았을까. 템포가 다소 느리게 느껴지는 대목에서 긴장이 풀린다는 점은 이 앨범에서 짚어 둘 아쉬움이다.
결국 이 앨범은 음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작곡가가 남긴 악보를 연주자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넘어 우리가 평균율을 언제 듣는지 떠올려 보면 답은 단순하다. 분석하려고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몹시 지친 어느 저녁, 혹은 약속 없는 일요일 아침, 마음을 채우고 싶을 때 우리는 바흐를 꺼낸다. 그런 날 이 앨범에 기대하는 건 편안함이고, 바흐를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이다. 하프시코드의 쨍하고 화려한 울림도 매력적이지만, 손끝으로 소리 크기와 빛깔을 조절할 수 있는 피아노는 그 음미를 더 섬세하게 만든다. 그런 시간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 앨범을 고르겠다.
간담회 때 손민수가 말하길 주저했던 이야기가 있다. 2008년 사고 이후 양손을 차례로 다쳐 10년 넘게 피아노와 씨름했던 부상이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며, 자신의 아픔을 앞세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스승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 겸허함과, 스승을 향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 15년 동안 그것들이 숙성되어 평균율로 피어난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가르친 스승으로 기억되기보다, 한 피아니스트가 인생을 걸고 이어 온 길 위에 이 앨범은 놓여 있다. 들뜨지도 동요하지도 않는 거대한 평정, 그 아래에서 삶을 천천히 음미하고 고뇌하는 섬세한 표정들. 오늘에 이른 손민수였기에 가능한 해석이다.
다시 우주로 돌아가보자. 11월 18일, 골든 레코드를 실은 보이저 1호가 1광일 지점을 지나는 날, 손민수는 뉴욕에서 평균율을 연주한다. 300년 전 바흐가 써 둔 음악이 우주 저편과 뉴욕 무대, 그리고 스피커 속에서 같은 날 교차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평균율을 쳐야 하는데, 너희 가르치느라 시간이 없다.” 손민수가 기억하는 셔먼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투덜거리곤 했다. 스승이 끝내 녹음하지 못한 곡을 제자가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이 앨범은 또 다르게 들린다. 셔먼이 남긴 악보는 평균율 1권과 2권, 두 권이다. 손민수는 이제 그중 한 권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