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EP <Before Dawn>으로 데뷔해 2016년 시와 음악을 교차한 정규작 <곁에 있다 없을 때 빈 자리를 모른다> 등을 발표한 어쿠스틱 듀오 니들앤젬(Needle&Gem)에서 시작해 ijo라는 개인으로 활동한 끝에 새 이명(異名) Future Unbuilding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활동하는 점과 많은 이름을 미루어 보아 탈피를 거듭하는 캐릭터인 것 외에는 큰 정보가 없는 뮤지션이다. 있다면 몇몇 무대에서 가끔 라이브를 선보이는 정도랄까.
헌데 이력 나열은 사실 편의적인 판단을 위한 것이고, 이런 밀도 높은 작품 앞에선 무용해진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찾아간 미술관에서 오직 작품만을 보고 얻은 만족감과 비슷한 무엇을 느낀다. 작품 설명을 읽는 건 다음이다. 감각을 사로잡는 장치에 먼저 시선이, 귀가, 오감이 기운다. 아스라히 놀이기구를 탄 것 같기도, 자기 전 한 편씩 보는 영화가 뿜는 환각 속에 잠기는 것도 같은 이 작품 속에 말이다.
SF가 비일상적인 장면으로 하여금 극대화한 감정을 선사하듯, 드라마틱한 구조가 러닝타임의 논리를 타파한다. 참여진도 선율에 감정의 그을림을 각인할 사람들로 알맞게 꾸려졌다. 밴드 산새, 안녕의 온도에서 활동하는 드러머 소월(SOWALL)이 이끄는 비트와 스트링, 신디사이저가 극적인 연출을 빚는 ‘Who’s Not Seen Yet?’이 좋은 시작점. 타격감이 격동을 멈추고 난 자리에 보컬이 자리할 때 쓸쓸함이 배가된다. ‘H.A.B’는 신디사이저가 터뜨리는 쾌감이 꿈 속 괴물처럼 흠칫하게 만든다.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 같은 이 선율 직조에는 프로듀서 랜달 던(Randall Dunn)이 참여했는데, 원 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로 알려진 다니엘 로퍼틴과 몇 편의 영화 음악을 작업하고, 유명 영화감독 짐 자무쉬의 밴드 SQÜRL 음반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영화와 연관된 커리어를 보유한 만큼 몰입감을 증폭하는 데 한몫했다.
던은 ‘Unbuilding’에도 함께했는데, 피아노와 일상적인 녹음이 담긴 현실 기반의 소리들이 마련한 평화 사이 스며드는 신디사이저 연주로 이질감을 쌓았다. TV를 타고 흐르는 뉴스 전파와 현대 음악의 주무기가 된 전자파, 같은 모양새의 건반에서 태동한 두 연주가 뭉칠 때의 감각은 묘하다. 뒤틀린 풍경의 따스함, 그 역설적인 괴리가 이 안에 있다. 비슷한 분위기의 ‘In space, maybe I’ll be free’에서는 보컬 또한 악기로 기능한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내뱉음이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 연주와 맞물려 또 하나의 역설을 품는다. 로봇 몸체에 자란 이끼 같달까. 드럼은 유한성을 노래하는 것처럼 박동을 찍어대다가 이내 멎는다. 이렇게 앨범 전반에 걸쳐 극(劇)적인 순간들을 극도로 표현한다.
제멋대로 박자를 타거나 일반적인 전개에서 벗어난 전위성 때문에 앞서 미술관 작품에 비유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수정을 하자면 <Futures>는 멈춰 있는 그림이라기보다 부가 프로그램 속 행위 예술 혹은 퍼포먼스에 가깝다. 대개 그런 몸부림에 가까운 동작이 논하는 바는 결국 고독인 경우가 많은데, 이 앨범 또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느껴진다. ‘I want to live’ 같은 제목도 있지 않던가. 여기 그려진 디스토피아 속에 죽음의 차가움이 서려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는 도망의 외침에 가깝다. 어쿠스틱에서 전자음악으로 장르를 바꾸고, 아홉 트랙에서 거듭한 변주가 말해준다. 여기엔 탈피의 열망이 가득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