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즈의 폭발적인 인기에 따라 국내에도 9월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사운드트랙이 영화 관람객 사이에서 연일 화제다. 국내에는 2010년 장기하와 얼굴들, 2017년 실리카겔과의 합동 공연 그리고 EBS <스페이스 공감> 출연으로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토쿠마루 슈고가 다시금 한국에서 회자될 수 있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일이 애니메이션 <치이카와>의 음악 감독으로 일어날 줄은 더더욱.
작중 가르마(하치와레)가 부르는 ‘ひとりごつ(혼잣말)’의 한국어판 1시간 반복 재생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3백만을 훌쩍 넘겼으며, 영화에 여러 차례 나오는 ‘島のうた(섬의 노래)’는 편곡에 따라 따뜻하거나 섬뜩한 면모를 동시에 갖춘 멜로디로 극의 메인 테마로 유효하게 기능했다. 빌보드 재팬과의 인터뷰에서 슈고는 극장판 음악을 맡으며 ‘미키 마우징’이라 일컫는, 애니메이션 화면과 음악이 맞아떨어지는 기법을 추구했다고 언급했다. 홀로 구현하기엔 한계를 느꼈고, <톰과 제리>의 음악 감독 스콧 브래들리에 대해 논문을 쓸 정도로 깊이 탐구한 작곡가 우에미즈타루 치카라(上水樽 力)의 도움을 받아 편곡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그런 만큼 솔로 커리어에서 느낄 수 있던 산뜻한 멜로디를 기반으로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듣는 재미를 채웠다.
사운드트랙에 포함된 ‘島のうた(섬의 노래)’나 토끼(우사기)의 랩 같은 곡들은 영상 속 상황과 결합했을 때 시너지를 유발한다. 하지만 ‘机さする(책상을 쓰다듬어)’는 다르다. 같은 나열 속에 있지만 따로 떼어 놓고 볼만한 곡이다. 영상물의 내용과 무관하게 일상적 장면을 담은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곡이기도 하고, 토쿠마루 슈고가 그리는 음표 특유의 이질적인 리듬까지 포근함 속으로 끌어당기는 매력이 한껏 느껴진다. 굳이 짚자면 <인어 섬의 비밀>에서의 쓰임을 의도했다기보다 <치이카와> 시리즈에 대한 애정으로 다듬은 음악 같다.
일본 음악을 듣다 보면 독특한 시선을 담은 가사를 발견하곤 한다. 예컨대 올해 태연이 리메이크하며 다시금 차트를 정복한 tuki.의 ‘만찬가’, 아노가 등교 거부 시기 먹던 감자튀김을 떠올리며 만든 맥도날드 CM송 ‘スマイルあげない(스마일 안 줄 거야)’ 등이 그렇다. 이런 독창적인 언어들은 청자에게 한 번 이해되고 나면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힘이 된다. 마치 나만 알 것 같던 곡을 좋아한다는 타인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처럼 말이다. 나가노가 써 내려간 가사 또한 작가 특유의 은은한 표현 속에 숨은 감정을 통해 다른 곡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시각을 꺼낸다.
“기억하고 있어도 잊어버릴 것만 같으니 적어두자, 무서우니까.” 후렴구를 장식하는 가사는 나가노가 <치이카와> 이전 연재작 <농담곰>에서부터 줄곧 꺼내던 ‘지금의 현실이 추억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두려움’을 그대로 함의한다. 마치 독일어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감정 묘사 단어 같이, 모두가 느끼지만 어렴풋이 풀어 헤치던 감정을 곡에 함축한 가사는 작가 본인이 오래도록 해당 감각을 어루만졌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그랬다.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었다. 기억하고자 하더라도 잊고 마는 자신을 믿지 못해서였다. 망각은 때로 축복이지만 걷잡을 수 없는 공포다. 작품을 해석하는 유튜브에서 <치이카와>를 잔혹한 현실을 귀여운 캐릭터에 투영한 시리즈로 읽어내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강점은 섬세한 마음씨를 일깨우는 나가노의 능력에 있다.
그런가 하면 슈고가 만든 예쁜 현악과 나가노가 빚은 모래알 같은 시간의 노랫말을 부른 아오키 하루카의 공도 컸다. 치이카와의 성우이기도 한 하루카는 2011년생, 중학생이다. 그의 설익고 순수한 목소리로 우정과 한 시절로 남을 현재에 대한 불안을 노래하기에 더 깊이 와닿은 것이다. 노래 혹은 연설처럼 마이크를 쥐고 하는 모든 행위에는 발화자가 누군지에 따라 같은 메시지도 다르게 들리는 구석이 있다. 어린아이의 옥구슬 같은 가창이 아니었다면 가사나 멜로디가 얼마간 아름다웠다고 해도 이토록 와닿진 않았을 것 같다. 마지막에 나나나- 하며 허밍을 반복하는 구간에서 치이카와의 모습이 스치기도 한다. 자주 울지만 그렇기에 웃을 땐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미소가 앞선 모든 두려움을 극복한 듯 홀가분해 보인다. 어쩌면 목소리에서 들리는 떨림에는 어른의 언어를 전부 이해하진 못한 아이의 의뭉스러움도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그 지점이 이 곡을 더 특별히 들리게 한 모순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무르익지 않은 감정에서 미셸 투르니에의 문장이 겹쳐 보인다.
“어린아이들은 일체의 직접적 체험 이전에 허구라는 통로에 의하여 사랑의 담화를 학습하게 된다. 그 담화는 어떤 비어 있는 틀인데 때가 되면 그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그 틀 속에 부어 넣게 된다. 어쩌면 실제로 느낀 감정들의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채 그 틀 속에 들어가 채워지지 못하고 지체하는 어떤 과도기가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그 어린아이가 번쩍하고 영감이라도 받은 듯이 이렇게 소리치는 날이 오는 것이다: “아, 그러니까 이게 바로 사랑이구나! 그게 이런 건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 미셸 투르니에 글, 김화영 번역 <외면 일기> (2004, 현대문학) 67-68p.
많은 글자를 적어 내렸을 공간, 추억을 가득 담은 서랍이 함께 있는 책상, 그것은 단순한 가구 이상의 역할로 인간사에 자리해 있다. 책상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면 졸업이 떠오른다. 지난 3년 혹은 6년을 기억하겠다는 다짐.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다음 페이지로 나아가리라는 의지. 끝맺음이라는 단어가 심는 울컥함이 이 곡에 있다. 시간의 무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