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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라는 장르의 용광로, Fievel Is Glauque의 <Rong Weicknes>

by 권도엽 | 

cover image of Fievel Is Glauque <Rong Weicknes>
Fievel Is Glauque <Rong Weicknes>Fat Possum Records

재즈는 대중음악 장르 중 가장 서둘러 태동한 만큼 가장 이른 종언을 고했다. 전위적 재즈 앨범으로 명성이 자자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Bitches Brew>가 1970년에 나왔으니 다른 장르는 출발도 하기 전에 해체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재즈의 역사적 위치는 시티팝이나 힙합같은 장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가공되는 역할을 톡톡히 했음에도, 소위 ‘재즈 시대’라고 불리우는 때를 한참 지나고 나면 재즈 홀로 대중음악의 중심지에 우뚝 선 적은 없었다. 현대라는 낱말은 재즈와 너무나 멀어 보였다.

전성기가 지난 장르의 경로는 대개 전형적이다. 재즈는 두 갈래 길을 나눠 걷기 시작했다. 한쪽은 전위와 융합의 가능성을 좇았고, 또 한쪽은 주로 재즈에서 스탠다드하다고 여겨지는 감수성을 희구했다. 전자의 재즈는 가끔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이름 아래 행해지기도 했다. 재즈 힙합, 재즈 록, 재즈 팝 등등. 이런 경우 뒤쪽에 배치되는 장르의 비중이 항상 강력하게 느껴졌다. A Tribe Called Quest는 힙합 아티스트로 불리지 재즈 아티스트라 불리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2021년 데뷔한 피블 이즈 글루크의 세번째 앨범 <Rong Weicknes>는 예외에 속한다. 이들의 음악은 종종 재즈 팝으로 분류되지만 장르명의 관용적인 사용례와 달리 재즈의 농도가 심히 짙다. 이전에 발매한 첫번째 앨범 <God's Trashmen Sent to Right the Mess>와 두번째 앨범 <Flaming Swords>는 사실상 다소 실험적인 재즈 정도로 규정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혼재처럼 보이는 몇 대목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재즈 듀오로 칭하는 매체가 적지 않다.

다만 이번 앨범의 경우 팝, 록, 펑크에서 들었던 구조적인 특성과 사운드에 대해 한층 접근하는 모양새다. 특히 이전부터 재즈의 스테레오타입과 가깝진 않았던 멤버 마 클레망의 사이키델릭한 보컬이 크게 일조한다. 한데 이상한 것은 팝적 요소를 짙게 첨가했음에도 여전히 이 앨범을 재즈라고 규정해야할 것 같다는 점이다. 그들이 재즈에 열중하는 정도를 얕봤기 때문이 아니다. 전제 자체가 달라졌다. <Rong Weicknes>는 팝적 요소의 확장은 물론이고 기존 배합의 용량까지 한껏 늘려버린다.

무엇보다 유례없이 다채로워진 악기 구성이 전부 재즈를 지향한다. 본래 기악 담당 멤버인 자크 필립스와 다양한 객원 연주자가 함께한 곡들은 펑크 리듬으로 진행되나 싶을 때 영락없는 재즈 옥텟의 향연이 판단을 위태롭게 하고, 록 밴드 사운드에 가까운 고양감 가득한 브릿지를 재즈 일렉 기타가 치고 들어오는 식이다. ‘Hover’의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 위를 기습하는 관악기 소리나 ‘Love Weapon’에서 스트링과 키보드로 나아가던 반주가 중반부를 넘어서자 색소폰 솔로로 이어지는 부분처럼 사운드는 비협조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충동적으로 솟구친다. 그러다 보면 거의 경주를 펼치는 듯한 연주의 즉흥성이 다시 재즈라는 궤도 안에서 청자의 사고를 회유한다. 아마 운이 좋다면 단 한 트랙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 앨범이 장르적 형언을 철저히 거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끊임없는 기악의 교차로 이룬 소리의 극점들은 가히 위력적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청각적 쾌감을 선사하기도 하고 다음 장을 펼칠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덕분에 한 곡 안에서도 유려하게 변모하는 음악은 더 많은 역량과 이야기를 선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전작들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난 트랙당 러닝타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Rong Weicknes>는 명백히 그룹의 디스코그래피가 확장되는 순간이다.

각각 뉴욕과 브뤼셀에 거주한다는 두 멤버가 만날 때면 당연하게도 녹음에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그 촉박함이 우발적으로 특유의 돌발스러움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콕토 트윈즈와 휘트니 휴스턴, 비요크를 동시에 꼽는 마 클레망의 폭넓은 취향에서 알아볼 수 있는 풍부한 음악 세계는 전위적 재즈가 장르 본연의 기풍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어떤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재즈를 잃지 않은 팝과의 외도. 이 나른한 유희 앞에 기쁜 마음으로 한 번쯤 예외를 두어도 괜찮을 듯하다. 그들의 음악만은 재즈 팝이 아닌 팝 재즈로 불러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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