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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에는 임계가 있다. 작품과 작가 사이 균열과 닮음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우주를 헤아리는 만큼 벅차다.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할 때조차 그럴 것이다. 다만 정보나 진술보다 말하는 사람의 말씨나 태도가 그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걸 일러줄 때가 있다. 어설프게 인터뷰 자리에 나가 하릴없이 입술을 물던 나의 모습처럼, 그리고 사무치는 열정과 신중에 대한 갈구가 이루는 긴장 속에 조심스레 견해를 내놓던 그의 모습처럼 말이다.
우연으로 방문한 작업실에 꽂힌 수많은 책들과 단출한 오디오 시스템 너머로 들은 우희준의 작품관은 대개 “내 음악이 여러 해석에 의해 입체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좋다”라는 말과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로 귀결되었다. (무심코 이런 말들만 귀담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라이브 레코딩의 질감을 좋아한다던 말처럼 솔직함은 분명 예술뿐 아니라 삶의 태도로도 막중한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해석의 여지를 긍정하던 말은 그가 독서 중 사용한 메모지의 두께에 금세 무색해지는 듯했다. 사상과 밀접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에게 정확한 전달보다 곡해의 가능성이 소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못다 한 질문이 뇌리를 서성였다.
2: 입체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 이후 3개월 만에 발매한 EP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는 제목부터 속편이라거나 외전이라는 암시를 전한다. 생명력을 고문 삼던 음악이 고문 같은 생존의 이후를 논한다. 또 다른 음악 외부의 텍스트인 앨범 소개를 읽으면 음반은 우리에게 대뜸 퀴즈를 내어놓기도 한다. “애초에 맞출 수 없도록 편집된 박자의 휘파람 소리가 있다. 우리는 하나의 헤드폰을 함께 나누어 썼다. 볼을 맞대고, 소리를 나눠 내기로 했다. 맞출 수 없는 박자를 우리는 맞춰보려 한다. (…) 우리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볼을 맞댄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알아맞혀 보자.” 다소 상징적으로 읽히는 글귀지만 직접 들은 일화로는 매우 명료한 서술이었다. 이는 표제작인 앨범의 마지막 트랙 녹음 당시의 전말이다. 휘파람 소리와 두 사람이 내는 똑딱임이 만들어내는 몇 가지 부조화가 은근한 감상을 이룬다. 질문을 조금 매만져 다시 묻자면 그 센티멘털의 정체를 규명하는 일이 즉 앨범이 남긴 숙제인 셈이다.
강렬하게 도입하는 ‘여기 태어나고 싶어서 (With 향우회)’는 이내 미니멀한 포크 사운드로 가라앉는다. 이어지는 ‘남자가 싫어 (With 송재원)’는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과 이에 응하지 않는 자아의 대립이 드러난다. 서림의 곡을 커버한 ‘신파의 왕’에서 이는 조소 어린 체념으로 나타나고, 가사가 담긴 마지막 트랙 ‘정직한 사람들’에 이르러 푸념인지 다짐인지 전망인지 모를 혼잣말이 오간다. 다소 가파르게 느껴질 음반의 진행은 그야말로 입체적이다. 입체적이라는 개념을 약간 파헤치면, 점보다 선을, 선보다 도형을, 평면 도형보다 다면체를 형용하는 수사인데, 이는 결국 입체적일수록 새로운 축이나 차원의 거리를 요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앨범의 요동치는 분위기나 가사의 대립적 요소는 특정한 거리를 내포함으로 입체적이게 된다.
해석의 여지와 입체성을 나란히 한 그의 말마따나 소통도 자신과 타자 간의 거리에서 개발되고, 예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적용된다. 작품이 모호하거나 은유적 표현을 사용해 거리감을 생성하는 것은 감상자가 작품 안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같다. 그 거리감은 반드시 특별한 양상의 것이어야 한다. 커다란 건물보다도 작은 사기그릇이 아름다울 수 있듯 입체성은 크기와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특별한 양상 혹은 중도를 유지하는 비법은 무한한 노력을 토대로 한다. 소통이란 너와 나 사이의 단차에 균형대를 놓고 한동안 올라서는 일이다. 그 위태로움처럼 우리는 소통에서 많이도 미끄러진다. 볼을 맞대고 맞출 수 없는 박자에 소리를 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3: 거짓말을 않기
그런 측면에서, 소리로 행위와 개념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기까지 한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는 “볼을 맞댄다”라는 언어가 주는 느낌만큼 낭만적이기도 한 셈이다. 물론 아주 그렇지는 않다. 소통을 향한 노력이 주는 감동 저변에는 어둠이 도사린다. 애당초 노력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노력이기 때문이며, 다시 말해 소통이 원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문제임에도 애쓴다는 데에 있다. 에리히 프롬의 주장대로 사랑이나 우정은 분명 서로 간 합일에의 욕구일 테지만 끝내 자신과 타자가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는 없다. 관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해는 관계를 종식시키기도 한다. 거리와 입체는 곧 파멸이다.
이때 ‘입체성을 옹호하는 일’과 ‘거짓말을 않는 일’이라는 우희준의 두 가치관에 딜레마가 발생한다. 입체성의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진실을 덮는 일과 같고, 그러지 않고 이면을 명시한다면 주제의 무게에 압도되어 입체적 형식이 무너진다. 이것은 양날을 넘어 손잡이도 없이 온통 날 뿐인 검이다. 이겨내는 방법으로는 별다를 게 없다. 눈 딱 감고 움켜쥐는 것이다. 하기에 형식상으로 변동적인 그의 음반은 의식적으로는 일관성을 붙든다. 억압에 대한 한탄이나 삶의 피투성에 대한 응시는 디스코그래피 전반으로 이어지며, 입체성을 띠는 동시에 입체성을 논해낸다.
다시 앨범의 소개로 돌아가 보자. “죄는 고통을 주고, 고통은 더 나쁘게 만듭니다. 고통과 죄의 이런 분리될 수 없는 뒤섞임이 악입니다.” 그가 소개란 첫 문장으로 인용한 시몬 베유의 말이다. “잔잔한 수면 위에 모두 돌을 던져 (…) 이 모든 뒤섞임을 떼내야 해 죄와 고통과 악을 떼내야 해” 그가 ‘정직한 사람들’의 마지막에 적은 노랫말이다. 그리고 좀 더 앞으로 가면 “맹목적인 정신은 길을 막고”라거나 “격류는 서로를 비추지 못하고”라는 가사가 있다. 죄와 고통의 악순환이 자타의 간극에서 나온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우연을 사랑해야 해”라고 말한다. 그것을 우연이라 일컫기 뭐하지만, 소통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더러 우연이라 한다면, 바로 그 말이 맞다. 너와 나는 하루에 두 번 정도만 맞는 고장 난 메트로놈이고 하루에 두 번 정도는 서로 사랑한다.
4: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
인터뷰에서 줄곧 언급되었고, 아마도 작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학자 한병철의 글. “빈틈의 부정성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행복이 없는 사회이다. 시각의 빈틈이 없는 사랑은 포르노이다. 그리고 지식의 빈틈이 없다면 사유는 계산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병철, <투명사회>) 우희준은 그의 이름과 책에 덧붙여 “죽음의 긍정성”이란 어구를 반복했다. 닥쳐오는 암흑을 외면할수록 승리자가 되는 사회에서 죽음 혹은 “빈틈의 부정성”이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우리는 그것으로 덜 휘황하고 덜 향락적인 삶을 살더라도 타자와 공생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용인하고자 하는 사회는 자타의 간극을 인지할 수 없다. 소통이 그 간극의 인지와 간극을 좁히려는 의지에서 발생함에도 그렇다. 어느 때보다 죽음이 간절한 시대에 우리는 ‘솔직함’이라고 하지 않고 ‘거짓을 않음’이라고 말하는 음반을 마주한다. 그 둘의 차이는 명백하다. 솔직함에는 고뇌가 없다. (“지나치게 솔직하다”라는 표현이 곧잘 사용된다는 점을 떠올리자.) 그러나 거짓을 않는다고 할 때 그는 거짓의 악마성을 깨달은 채다.
이제 알아맞혀 보자. 볼을 맞댄다는 것, 우리에게 맞대야 할 양 볼이 있다는 것,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누군가 왼쪽 뺨을 내밀면 다른 누군가는 반대쪽 뺨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그 사이에 나타나는 소리가 서로 다른 박자라는 것, 즉 우리는 다른 박자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때 우리의 박자가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 또 단념하지 않는 것, 시차를 해결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 모든 관계가 처음에는 장거리이고 모든 사랑이 종국에는 몸부림이라는 것, 말하자면 볼을 맞댄다는 것. 주관식이라, 모쪼록 너그러운 부분 점수를 기대해 본다.
5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열차를 탔다. 해가 어두워지고 있었고 나는 휴대폰을 꺼두었다. 침묵은 나의 은신처다. 머리가 복잡하면 찾는 장소다. 인터뷰가 끝나니 오히려 글을 적기에 막막했던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전해 들은 상황에 키보드를 대면하자 답지를 미리 받고 시험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로 재생목록을 시동하자 말해지는 가사들이 불가역처럼 생각을 안겼다. 그때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면 서울을 뒤안길 삼아 야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앉은 자리마다 창은 나있었지만 창을 내다보는 것은 나뿐이었다. 전진하는 기차가 야속한 내 시선은 자꾸 스쳐간 것에 머물렀다. 그러다 사라지는 풍경이 못내 아쉬운 스스로가 제법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생존한 모든 순간들이 그런 식이었는가 보다. 선로는 변하지 않으나, 종착역을 안다고 여정이 더 나아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때부터 바퀴의 열찬 함성 위에 조금씩 자판 소리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