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는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샷포(シャッポ/Chappo)는 일본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인디 록 듀오다. 결성 계기부터 남다른 덕에 화두에 오르기 쉬웠을 터. 1940년대 음악에 흠뻑 빠진 후쿠하라 오토(福原音)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핫피엔도 등 일본 음악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호소노 하루오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찾아가게 되는데, (오토의 아버지가 TV 음악 프로그램 프로듀서였기에 가능했으리라 추측한다) 그의 진동하는 취향에 감명받은 하루오미가 자신의 손자 호소노 유타(細野悠太)를 소개해 주며 결성하게 된 것이다. 하루오미가 밴드 편성에서 맡은 악기를 유타도 그대로 물려받으며 베이스를 연주한다. 음악적 DNA의 영향일까, 2000년생 둘이 만든 앨범에서 과거 일본 록의 향취가 진하게 느껴진다.
작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a one & a two>에선 인스트루멘탈 밴드라 봐도 무방했다. 소수의 구절과 나레이션을 제외하면 연주가 가득했고, 이는 탐구의 영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밴드 프로필을 살펴보면 1940년대 일본 대중음악과 영화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기재됐는데, 해당 시기에 주로 연주가 이뤄지던 카페, 혹은 상영되는 영상 속 음악은 대화가 파고들어도 여흥을 깨지 않는 BGM의 영역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런 음반이 지루함을 깨려면 연주 실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법. 뿌리도 뿌리인 데다 연습까지 매일 했다는 두 청년이 줄을 튕기는 화법은 청자의 하품을 허락하지 않았다. 몰두의 기록인 첫 음반은 매니아들의 뭇 화제를 모았고, 활동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이후 1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앨범에서 이들은 넓어진 범위를 의식한 듯 전작에선 2곡에 그친 가창의 양이 8곡으로 대폭 늘어났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서니 데이 서비스와의 합동 공연부터 진저 루트 등의 뮤지션이 오프닝 액트로 참여한 단독 투어 그리고 후지 록 페스티벌 등 다양한 관객을 만나게 된 만큼 친숙한 형태가 필요했을 테니까. 격동하는 기타와 신디사이저, 간결한 보컬 라인이 특징인 싱글 ‘온다!(やってくる!)’부터 호소노 하루오미, 사카모토 신타로 등의 계보를 잇는 시원한 터치가 넘실댄다. 앨범 제목이 <Commonplace>인 만큼 연구자의 태도보다는 친숙한 시선을 연주에 옮긴 것이다.
‘Pipeline=ABSOLUTE EGO DANCE’는 앨범의 중반부에서 기존의 발자취와 자신들을 섞은 핵심 지표다. 캘리포니아 서프 록 밴드 샨테이스의 1963년 ‘Pipeline’, 빌보드 4위까지 올랐던 옛 연주곡과 호소노 하루오미의 ‘Absolute Ego Dance’를 블렌드해 8분의 대용량을 중축하기에 이른다. 그 러닝 타임 사이 사이키델릭, 막걸리를 들어야 할 것 같은 동양의 흥겨움을 섞어 가면서 말이다. 다른 연주곡인 ‘산웃음(山笑う)’에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같은 캐롤이 연상되는 기타 선율이 들리기도 하는 등, 낯설기보다 살가운 감각의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멤버 호소노 유타는 초코 파코 초코 킨킨(CHO CO PA CO CHO CO QUIN QUIN)이라는 밴드도 하고 있는데, 조용필의 ‘단발머리(おかっぱ頭)’를 리메이크한 적도 있다. 여러모로 옛 음악에 대한 관심이 엿보이는 대목.)
같은 레이블의 인스트루멘탈 밴드 SAKEROCK과 그 중심축이던 호시노 겐의 솔로 초기작들도 언뜻 스친다. 특히 솔로 4집 <YELLOW DANCER>처럼 여러 음악에서 흡수한 정수를 일본의 일상적 그림으로 녹여낸 점도 그렇다. 그 같은 대중성을 갖췄는가 하면 아직이라 답할 수밖엔 없지만, 컨트리, 재즈 등 해외에서 온 음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내에 녹아든 장르 문법을 파헤치고자 한 노력이 고유한 매력을 높였다. 특히 ‘투비트(ツービート)’, ‘더 나은 인생(より良い人生)’ 같은 초반 곡을 듣자면 일본에서 빵을 물고 다급하게 자전거를 타거나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할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몇몇 레이블 내외 연주자들의 도움을 받은 것 말고는 둘의 힘이 커다랬던 1집과 달리 일렉트릭 기타에 오야마다 마이로(小山田米呂), 드럼에 야마모토 나오야(山本直親) 등 라이브에서 세션으로 함께하는 멤버가 다수 참여했다. 그러면서 ‘Dad Rock’이나 ‘비밀(かくしごと)’ 같은 트랙은 밴드 특유의 풍성함이 한껏 살아나게 됐다. 한국에서도 최근 김춘추의 솔로 프로젝트, 놀이도감이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1집 <숨은 그림>에서는 모든 악기를 그 혼자 구현했다면 2집 <Truthbuster>는 그간 협연해온 동료들의 소리를 수용하며 더 다채로운 질감을 품었던 것. 이처럼 1인 혹은 2인의 방의 문을 여는 일은 전작과의 차별화에도 확실한 도움이 된다.
후쿠하라 오토는 일본 음악 매체 Spincoaster에 보낸 코멘트를 통해 특별한 데뷔작을 지나 두 번째 작품부터 언젠가 올 마지막 작품까지 결국 첫 번째 것의 답습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꺼냈다. 그 탈피의 재료가 “평범함”이었고, 노래로 풀었다 밝히며 다음에 어디로 갈지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라고,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언급했다. 평범한 말도 결국엔 누가 표현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나이테가 보이면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 힘을 준 가창, 보다 직접적인 목소리에서 오는 여운을 만질수록 이 탈피가 비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