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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작별을. Trooper Salute의 <友達がいました>

by 이한수|

cover image of Trooper Salute <友達がいました>
Trooper Salute <友達がいました>EIGHT BEATER

지나간 어린 시절이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어느샌가 문드러진 마음은 다음 날을 준비해야 할 밤이 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로, 교묘하게도 과거의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어지도록 만들었다. 분명 빨리 나이를 먹어서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그토록 바랐던 20살이 지나가고 사회의 일원이 되자 정말로, 정말로 직업이란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와중에 ‘원하는 내 모습’을 얻기 위해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사이의 거리마저 벌려 놓았다. 약속도 없이 매일 같이 놀던 친구는 이제 약속하지 않으면 1년에 한 번도 보기 어려운 사이가 됐다. 더 이상 관심사도 겹치지 않는다. 올해는 몇 번이나 연락했더라?

떠나가 버리지 않도록 뚜껑을 덮어두었다니 참 한심해
行ってしまわないように 蓋をしたなんて 情けないよ

떠나가 버리지 않도록 눈을 감았다곤 말하게 두지 않을 거야
行ってしまわないように 目を閉じたなんて 言わせないよ

‘도플러’ ドップラー

Trooper Salute는 어린 시절의 친구가 더 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뚜껑을 덮고 눈을 감았다.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했다. 이윽고 멀어져 가는 사이렌과 반대로 선명해지는 스네어 드럼. 몽환적인 리버브와 딜레이가 만들어낸 꿈속에서 과거의 감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첫 정규 앨범 <친구가 있었습니다>(友達がいました)는 그런 이야기다. 지나간 친구와 동고동락한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가지고 있던 후회를 놓아주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여정이다.

2개의 선공개 곡 ‘절연’(絶縁)과 ‘울타리’(埒) 그리고 타이틀곡 ‘친구가 있었습니다’(友達がいました)가 각각 앨범의 초반, 중반, 후반을 지탱한다. 그중에 단연은 ‘절연’이다. 인트로 1분 15초 간의 환상적인 좌우 패닝과 단절된 관계처럼 계속해서 끊어져 버리는 가삿말 등 음악적인 장치가 귀를 먼저 사로잡고, 이후엔 절연의 2번째 의미인 전류/열의 차단을 비유한 가사 “피복을 두르고 은빛 꿈을 꿨어”(被覆を纏って銀色の夢を見た) 와 코러스의 라임이 마음을 흔들어댄다.

어째서, 나 어째서, 그때 거절하지 않았던 걸까
どうして、私どうして、あの時拒めなかったんだろう

어째서, 나 어째서, 그 유성영화의 모방범이 되지 못한 걸까
どうして、私どうして、あのトーキー映画の模倣犯になり損ねて

‘절연’ 絶縁

직접 말로써 거절하지 못한 자신을 ‘유성영화의 모방범이 되지 못했다’라고 표현함은 물론 ‘그때’(あの時)와 ‘그 유성영화’(あのトーキー映画)를 운율적으로 받아주는 것까지. 능숙을 넘어 완벽하다.

‘울타리’ 또한 단어의 중의적인 의미를 활용한다. 곡의 결말부에서 반복해 외치는 ‘결론이 나지 않아!’(埒が明かない)라는 관용구는 본디 마구간의 울타리(埒)가 열리지 않는다(明かない)는 표현이다. “사전을 펴고 논리로 무장한 아이들”(辞書を広げ理論武装している子供達) 을 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는 관용적인 의미로 사용되며, 상대방이 선을 넘고 들어온 상황을 아이의 시선에서 “미지와의 조우”(未知との遭遇) 로 그릴 땐 ‘마음의 울타리’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 두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현악기의 송진이 마찰하며 불이 붙는다.

무거운 곡 뒤엔 가벼운 곡으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들통’(つつぬけ)은 보다 미니멀한 구성이고 ‘스로인’(スローイン)은 가볍고 밝은 분위기에서 키보드 코미야가 노래를 부른다. 마냥 주제를 돌리는 건 아니다. ‘들통’의 무사시는 마음을 꾹 참은 채 부드럽게 노래하고 있다. 색소폰이 가쁜 호흡으로 몰아칠 때면 그 복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갑자기 당신과 떠들거나 딴 길로 샜던 날을 떠올리는 건
ふいにあなたとお喋りしたり 寄り道した日を思い出すのは

스윽 마음이 멀어지는 걸 예감해 버리니까
すっと心が離れていくのを 予感してしまうから

‘들통’ つつぬけ

코미야의 보컬은 화려하지 않지만, 평범한 문장을 풋풋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네 옆에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조금 더”(君の隣で話がしたいよもっと)“조금만 먼 길로 돌아가자”(少しだけ遠回りして帰ろう) 처럼 흔한 가사를 Trooper Salute만의 방식으로 살려낸다.

‘잔꾀’(悪知恵)가 사이키델릭하게, ‘유토피아’(ユートピア)가 재즈 보컬 시대의 라디오 전파와 같은 질감으로 다시금 몽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나면 8분짜리 대곡 ‘친구가 있었습니다’의 차례다. 무사시의 지원을 받으며 노래하다 끝내 울부짖고 마는 코미야의 보컬이 과거형 문장과 합쳐지며 파괴력을 낸다. 하이라이트의 위치에서 그 어떤 트랙보다 진한 호소력을 내비친다.

이제 이야기의 결말이 다가왔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잠겨 끝없이 후회하기만 하면 된다. ‘말로’(成れの果て)라는 제목도 그런 식의 끝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앨범은, ‘쏙독새’(よだか)에서 “돌아보지 말고 열 세면 뛰어”(振り返ることはしないで 十数えたら走れ) 하고 소리치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어”(生きて行ける) 로 매듭지어진다. 자신들의 벡터를 시간의 방향과 일치시키겠다는 마음가짐. 강한 확신 또는 굳은 다짐. 드럼, 키보드, 현악 사중주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온 힘을 다해 자신해 보인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9기 : 어른 제국의 역습>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신형만은 엑스포에서 월석을 보자고 부모에게 떼를 쓰지만, 그까짓 돌멩이 하나 보겠다고 3시간씩이나 줄을 서는 게 말이 되냐며 거절당한다. 이후 현실로 돌아온 그의 주변을 엑스포의 모형이 감싸고 있다.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현재까지 남아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게 만든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는 이렇게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나 중요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을 미해결 과제라고 부른다. 붙잡고 있던 과거를 놓아주어야 새로운 시간 위로 행복과 추억이 쌓일 수 있다는 걸 영화는 회상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친구가 있었습니다>가 지나간 친구와 시간에 작별 인사를 건네는 방법도 같다. 닫고 있던 뚜껑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스러운 일과 행복한 순간 이곳저곳을 쑤시는 일. 그곳에 남아 있던 응어리져 있던 감정을 놓아주거나 극복하는 일. 저마다의 오랜 친구와 함께 슬프고 먹먹하고 씩씩대고 반짝이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도록 앨범은 온기를 담아 손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