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와줘, 러브 라이브!
2015년 4월, 전격 G’s 매거진을 통해 ‘도와줘, 러브 라이브!’라는 문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러브 라이브! 선샤인!!> 시리즈는 이듬해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며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니코니코니’와 ‘Snow Halation’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선배 그룹 뮤즈(μ’s)가 갑작스레 파이널 라이브를 발표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고 했던가. IP의 인기가 주는 부담감과 시리즈의 존망이 달려 있다는 무게감이 막 결성된 그룹에게 그대로 내려앉았다. 아쿠아(Aqours)는 일찍 철들어버린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로에서 하나로’라는 캐치프레이즈의 절박함은 무대로 이어졌다. 애니메이션 장면을 높은 싱크로율로 재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멤버들은 처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하고 백 텀블링을 하기도 했다. 연주를 실수해 스테이지가 얼어붙자 리더는 객석을 등지고 피아노를 향해 달려갔고, 퍼포먼스를 마치고 나서는 안도하는 마음이 기쁨을 앞질렀다. 두 번째 ‘함께 이루어 가는 이야기’는 한 장 한 장을 넘기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홀로 캐릭터성을 잃어버리다
<러브 라이브! 선샤인!!>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시리즈를 위험으로부터 구출했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선배로부터 홀로서기에 성공해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쿠로사와 루비(黒澤ルビィ)는 눈에 띄는 타격을 입었다. 의상 제작 특기와 스쿨 아이돌에 대한 애정이 선배와 언니 캐릭터의 특징으로 옮겨 갔고 나머지 특징들도 멤버들에게 이식된 채 ‘간바루비’(힘내다의 간바루 + 캐릭터 이름인 루비)나 ‘삐기’(의성어)처럼 표면적인 대사를 뱉는, 그것마저도 다른 멤버에 대한 리액션으로 사용되는 수동적인 캐릭터로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방영 후 다음 싱글의 센터 멤버를 선정하는 투표에서는 9명 중 9위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루비 역할을 맡은 후리하타 아이(降幡愛)는 ‘자신이 캐릭터를 맡아서’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적극적인 밈 캐릭터로의 부활
2020년에 닥친 코로나 팬데믹로 인해 라이브를 할 수 없게 되자 시리즈는 2020년 8월 1일부터 1년 동안 각 캐릭터의 생일날 자정에 신규 솔로곡을 뮤직비디오와 함께 발매하는 전략을 취한다. 팬들은 당연히 루비의 생일인 2020년 9월 21일을 기다렸고, 새로고침 끝에 등장한 ‘코튼 캔디 에이 에이 오-!’(コットンキャンディえいえいおー!) 뮤직비디오 유튜브 섬네일은 모두의 기대를 배신했다.
뮤직비디오에서 소극적인 루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스트레이 키즈 현진의 ‘영통 팬싸 후기’로 인기를 끌었던 카와이소니!(可哀想に!)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에는 수동적인 ‘삐기-’ 대신 땀 흘리며 정신없이 움직이며 솜사탕부터 언니까지 뭐든 삼켜버리는 캐릭터가 있을 뿐이었다. 패러디와 말장난, 추임새와 효과음, 그리고 노동요에서 따 왔을 ‘욧샤 욧샤 왓쇼이’와 ‘에이 에이 오-!’ 등으로 가득한 곡이 루비라는 캐릭터를 적극적인 밈 캐릭터로 거듭시켰다.
루비짱, 나니가 스키?
2024년 아쿠아 결성 9주년 생방송에서 9명이 서는 마지막 라이브 소식이 발표되며 팬덤은 <선샤인!!> 시리즈의 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9년 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뮤즈의 뒤에서 아쿠아만이 시리즈의 운명을 짊어지던 때와 달리, 아쿠아의 뒤에는 수많은 후배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즈 간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해서 종종 같이 자리할 일도 있었다. <러브 라이브! 시리즈 올 나이트 닛폰 GOLD>도 그중 하나로, <선샤인!!>에서 루비 역의 후리하타 아이가, 후속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니지가사키>와 <슈퍼스타!!>에서 각각 역할을 맡은 오오니시 아구리와 오오쿠마 와카나가 진행했던 라디오 방송이다. 이 멤버끼리 AiScReam이라는 유닛을 꾸려 2025년 1월 싱글 ‘아이♡스크림~!’(愛♡スクリ~ム!)을 발매했다.
아이돌계 곡이라면 콜 앤 리스폰스 형식을 적극 활용한 것들이 많다. 그건 의도적으로 정형적인 송 폼을 사용해 응원법을 쉽게 적용하기 위함일 테다. ‘아이♡스크림~!’도 그렇다, 아니, 그렇다를 넘어서 콜 앤 리스폰스로만 이루어져 있다. ‘YEAH YEAH YEAH’로 시작해서 ‘아이스크림!’으로 끝나는 말장난 가득한 코러스를 제외하면 모든 파트가 콜 앤 리스폰스다. 이 곡이 유행하게 된 첫 번째 요인이 이것일 것이다.
일종의 랩 파트 역할을 하는 2절의 ‘나니가 스키’ 부분이 루비-아유무-시키-얘들아로 이어지는 기승전결 흐름을 갖추면서도 30초로 끝나기 때문에 숏폼 형식으로 바이럴되기 좋았다. 30초 안에 기승전결이 이뤄지는데, 그 각각이 ‘루비 짱’, ‘네~!’, ‘어떤 게 좋아?’, ‘민트초코보다도 바.로.너’처럼 다시 4개로 나누어진다. (심지어 이 다시 나눈 4가지의 길이도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몰입을 돕는다.) 이렇게 ‘루비 짱’, ‘아유무 짱’, ‘시키 짱’을 각각 호명하면서 빠른 템포로 화면 전환을 하는 것이 두 번째 요인이겠다.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첫 번째 타자 ‘루비 짱’이 보여준 캐릭터 보컬이다. 과장된 행동과 과장한 목소리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지금 캐릭터로서 무대에 섰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시리즈 최고의 밈 캐릭터가 된 쿠로사와 루비와 이를 훌륭히 연기한 후리하타 아이 덕에 <선샤인!!> 시리즈도 화려하게 웃으면서 막을 내리게 됐다.
아쿠아의 마지막 9주년 타석에 오른 후리하타 아이가 쳐낸 끝내기 홈런. <러브 라이브! 선샤인!!> 시리즈의 결승 MVP급 활약으로 러브 라이브는 앞으로 ‘니코니코니’에서 ‘나니가 스키’로 기억될 것이다. 한때 자신이 캐릭터를 맡아서 인기가 없는 것 같다던 오랜 걱정까지 한 번에 날려버린 멋진 한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