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X라는 이름의 밴드가 있다. 1983년 브레멘의 한 경연에서 우승하며 서독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의 음악은 뉴웨이브와 포스트 펑크를 기반으로 한다. 80년대 대중음악의 흔한 음악적 특질과 영미권 중심의 산업적 패권 속에 잊히는가 싶던 FEX는 2000년대부터 재평가가 이루어져 현재 적잖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Subways Of Your Mind’는 짜릿하고 중독적인 멜로디로 인터넷에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아티스트 소개로 읽히는 위 문단은 오히려 밴드 일대기의 결말부다. FEX는 아티스트의 정체보다 음악이 먼저 알려졌으며, ‘The Most Mysterious Song on the Internet’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Subways Of Your Mind’는 2024년 11월에 전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누구도 원작자와 출처를 특정하지 못했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일화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행보는 “로스트 웨이브”라고 명명된다. 유실된 예술 작품을 뜻하는 로스트 미디어에서 파생된 단어지만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다. 어떤 경로로도 접근할 수 없는 로스트 미디어와 달리 로스트 웨이브는 부분적 유실만을 겪는다. 온전한 음원이 갖춰진 경우에도 아티스트의 정체를 알 수 없거나, 음원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곡에 대한 기억이나 증언만이 남아있는 경우에도 로스트 웨이브로 간주한다.
재밌는 점은 음원이 존재하더라도 단순 정보의 부족으로 원작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이런 로스트 웨이브는 사실상 특정 군집의 감상자가 작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며, 누구나 그래본 적 있듯 은연중 기억 속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노래를 물색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적 업무가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로스트 웨이브 발굴의 특성상 드물지 않은 경우다. 폐쇄적인 발굴 환경으로 인해 아티스트는 대개 자신의 노래가 인터넷에서 논해지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심지어 최초 발견자(OP, Original Poster)의 증언이 조작일 경우 존재하지도 않는 음악의 뒤를 쫓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데이비드 흄은 “원인과 결과는 이성에 의해서는 발견될 수 없고 경험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지각은 경험을 토대로 하고, 따라서 우리는 인식 체계 바깥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다. 선천적 맹인에게 ‘붉은색’의 인상을 이해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가 외부 세계를 입증할 수 없다면, 사실상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로스트 웨이브의 논쟁은 이러한 인식의 교차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외부 세계보다 커뮤니티에 국한한 밀실 속 논의에 열광한다. 분명 원작자는 세상 어디엔가 존재하며 또 누군가는 그를 알고 있다. 그러나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는 아니다. 그리고 해당 커뮤니티에서 작자를 알아내지 못하면 작자는 ‘로스트’된 것으로 간주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음원이 한가득이지만, 이런 지엽적 문제 제기는 기어코 ‘사건’으로 승화한다. (잠재적 로스트 웨이브를 가장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다. 생성하는 음악의 양과 다양성에 비해 소비 양상은 제한적이고 반복적으로 특정 유형의 음악만을 향하기 때문이다.) 음악의 소비와 공급 양상을 조금만 지켜보더라도 로스트 웨이브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임이 틀림없음에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스트 웨이브 발굴은 일반적 음악 감상보다 흥신소 업무와 닮아 있다. 다만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행해지며 공론화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확보하는데, 이는 로스트 웨이브 발굴 작업이 추리 심리를 기반으로 하는 탓이다. 상당 부분 유실된 음원도 발굴이 시도되는 면은 이들의 원동력이 청취 경험보다는 호기심에서 나타남을 일러준다. 심지어 추리가 완결된 이후에도 로스트 웨이브는 음악성이 아니라 무용담으로 주목받는다. 상술한 FEX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음원은 이미 온전한 형식으로 발표되었음에도 당대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추후에 이루어진 부흥마저 음악의 재평가가 아닌 단지 원작자를 찾고자 하는 타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Subways Of Your Mind’는 하나의 음악이라기보다 하나의 이야기로 간주되거나 소비되고 알려진다. ‘Subways Of Your Mind’의 흥미로움은 FEX가 아닌 로스트 웨이브 커뮤니티가 생성한 것이다. 그들은 기어코 작품의 일원으로 침투한다. 단순 호기심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감상층을 생성하며 창작욕으로 거듭난다. 아티스트 란에 남겨진 공백이 다름 아닌 창작물의 공백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Subways Of Your Mind’를 2024년 작이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로스트 웨이브 커뮤니티에 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발견하는 음악이 세상에서 완전히 잊힐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식상의 한계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이미 한동안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직접 나서기 전까진 어떤 검색으로도 음원의 정보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로스트 웨이브의 발굴 작업이 유사 창작 행위라는 가설은 견고해진다. 많은 예술은 미학이나 현실의 반영으로 예술의 지위를 터득하고, 얽힌 서사와 별개로 ‘Subways Of Your Mind’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충분한 음악성을 지녔다는 점은 좁은 감상의 폭에 비해 난무하는 음악의 비대칭적 산업 구조를 암시한다. 로스트 웨이브라는 극단적 디깅 행위가 파헤치는 것은 비단 음원만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