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CIOUS LABEL
지난 2월 1일, 일본의 록 밴드 the pillows가 35년의 활동을 끝으로 해산했다. 1월 마지막 날 열렸던 라이브에서 두 번의 앙코르 총 22곡 모두 전성기 이후 발매한 곡만으로 준비한 이들은 마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는 듯 고맙다는 말을 뒤로 한 채 공연장을 떠났다. 이날 라이브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틀림없이 여태까지의 수많은 무대들과 견주어도 가장 쿨한 스테이지였을 것이다.
1989년 KENJI & THE TRIPS의 베이시스트 우에다 켄지(上田ケンジ)가 코인로커 베이비즈(コインロッカー・ベイビーズ)의 보컬 야마나카 사와오(山中さわお)와 결성한 the pillows는 이후 드러머 사토 신이치로(佐藤シンイチロウ), 기타리스트 마나베 요시아키(真鍋吉明)와 함께 4인조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인디에서 메이저로 진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방향성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켄지와 사와오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켄지가 밴드를 탈퇴하고 말았다. 이후 밴드는 1996년까지 사와오를 중심으로 재정비를 거치며 얼터너티브 록과 파워 팝 쪽으로 스타일을 선회했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the pillows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굿모닝 아메리카(グッドモーニングアメリカ)의 카네히로 신고(金廣真悟)는 당시를 “Oasis나 Blur, 밴드를 하는 걸 동경하면서, 그러나 밴드를 하지 못한 채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 밤에 듣고 있던 NHK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 소리에 반해버렸던 게 the pillows와의 만남”이라고 회고했다. 그 말처럼 1996년 전파 위 ‘ストレンジカメレオン(Strange Chameleon)’에 담겨 있던 브릿팝을 닮아 경쾌한 멜로디와 감성적인 가사는 사람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쭉 명반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밴드의 최고 곡으로 뽑는 ‘ハイブリッド レインボウ(HYBRID RAINBOW)’가 담긴 <LITTLE BUSTERS>(1998), 1999년에는 이 기세를 이어 가는 <RUNNERS HIGH>와 밴드를 상징하는 <HAPPY BIVOUAC> 두 장을 발매. 21세기에도 식을 줄을 모르고 ‘この世の果てまで(All the way to the edge of this world)’(2001), <Thank you, my twilight>(2002) 같은 작품들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2000년에는 가이낙스와 Production I.G의 협력 애니메이션 <프리크리>에 이들의 인기곡들이 마구 들어갔는데, 전위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과 캐치한 노래를 바탕으로 해외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새로 쓴 곡 ‘Ride on shooting star’는 기존부터 가지고 있던 살짝 노이지한 사운드에 엑셀 페달을 조금 더 밟아서 신나고 정신없는 애니메이션과 발맞추며 또 다른 대표곡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2018년에 개봉한 극장 애니메이션에서는 기존 애니메이션 공개 이후 발매된 ‘白い夏と緑の自転車 赤い髪と黒いギター(white summer and green bicycle, red hair with black guitar)’나 ‘Thank you, my twilight’ 같이 폭발력 강한 곡까지 마저 담아내며 협업을 이어 나갔다.
아직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곡, ‘ONE LIFE’나 ‘LAST DINOSAUR’, ‘LITTLE BUSTERS’, 인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Funny Bunny’, <RUNNERS HIGH>의 인트로 ‘Sad Sad Kiddie’과 이어지는 ‘Instant Music’, 동명의 밴드까지 만들어낸 ‘White Ash’, 4인 시절까지 돌아가면 ‘Colorful Pumpkin Fields’ 같은 쟁글 팝도, 금관이 돋보이는 마지막 정규 앨범의 ‘Rebroadcast’도. 기나긴 커리어 동안 이들이 남긴 뛰어난 곡들은 양손만으로 다 셀 수가 없다.
‘Life is beautiful 말하듯이 계속 노래하고 있어’(‘Thank you, my twilight’ 中)라고 부르는 목소리의 떨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러나 더 이상 필로우즈는 노래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더 이상 필로우즈로서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쪽에서 이야기할 차례다. 당신들의 35년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별이나 무지갯빛보다도 내 두 눈을 깜빡이게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