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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가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 세 가지 이유

by 이예진 | 

11월 1일.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거론하는 두 이름이 있다. 바로 유재하와 김현식이다. 올해로 각각 37, 34주기를 맞은 두 뮤지션의 찰나와 같은 생은 그들의 음악적 성취만큼이나 안타깝다.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음악가를 기리며, 오늘은 그중에서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2018) 1위로 꼽히는 유재하 앨범의 타이틀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가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 세 가지 이유 main image

1.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한 악기 배치

클래식한 악기 배치의 이점은 시대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악기의 낭만적인 전주, 이윽고 들려오는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클래식함은 1987년의 여타 대중가요와 다른 소리를 만들며, 순박한 유재하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이라는 편지같은 가사를 담는다. 1절까지는 스트링의 사용이 두드러지는데 간주 부분에서야 기타와 드럼이 나오는 까닭이다. 같은 앨범의 연주 트랙인 ‘Minuet’에서처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현악 4중주 편곡을 해당 곡에도 적용하여 수직으로 내려치는 타악기 없이 수평으로 흐르는 현의 부드러움으로 부유하는 듯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어지는 목관악기 – 오보에, 클라리넷, 플루트 –로 나무 악기 특유의 순박한 느낌을 보컬과 상응하는 대선율로 배치하며 목가적인 서정을 더한다.

2. 롤러코스터와 같은 전주 선율 (00:00~00:36)

우리가 롤러코스터를 탈 때 고점에서 저점으로 떨어지면 몸이 붕 뜨면서 심장이 부푸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랑하는 순간의 설렘이 이와 같다면, 유재하는 이를 인트로의 멜로디로 표현했다. ‘사랑하기 때문에’를 재생했을 때 흘러나오는 바로 그 선율이다. 도#에서 시까지 일곱 계단을 올랐다가, 라에서 한 옥타브 아래 파#까지 열 계단을 내려가고, 또 일곱 계단을 올랐다가, 아홉 계단을 떨어지는 폭 넓은 고저(高低)로 그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서 서술했듯 가장 높은 음역대의 바이올린 선율이 큰 폭으로 요동칠 때, 베이스에 해당하는 저음역대의 첼로는 ‘라-솔-파-미’의 묵직한 하강 곡선을 그린다. 이는 이 곡이 가장조임을 감안할 때, 모든 ‘파’와 ‘솔’에 샾이 붙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다른 조, 즉 타 세계의 화성을 가져와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의 귀는 인트로와 보컬 도입 부분을 상이하게 인지하는 셈이다. 삽시간에 사랑에 빠져드는 순간과 그 감정을 인정하고 낙차 없는 구간을 달리는 롤러코스터의 분기점과 같다.

3.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00:37~00:44) VS ‘나 오직 그대만을’(03:07~03:12)

1절의 처음과 끝부분에 해당하는 두 가사의 구간을 소리 내어 불러보자. 같은 선율이다. 보컬이 소심한 듯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의 선율은 이 곡이 A(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B(어제는 떠난 그대를~)-A'(나 오직 그대만을~) 형식임을 감안할 때, A'에 해당하는 1절 후반부의 ‘나 오직 그대만을’에서 재현되는데 우리의 귀는 이 두 개의 같은 선율을 다른 분위기로 느낀다. 그 이유는 화성 진행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의 코드는 AM7-C#m-F#m로 이 곡이 ‘라(A)’가 으뜸음인 가장조임을 감안할 때 1도-3도-6도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평범한 진행이다. 그런데 ‘나 오직 그대만을’에서 멜로디를 재현할 때, 유재하는 같은 코드를 쓰지 않았다. 상당히 낭만적인 코드를 사용하는데 바로 ‘반음계적 화성’이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을 막론하고 어떤 곡을 좋다고 느낄 때 이론적으로 상위에 랭크될 만한 요소가 바로 베이스의 반음계적 진행이다. 별 게 아니다. 우리가 피아노 건반을 상상할 때 ‘솔-파-미-레’하고 흰 건반만 친다면 그건 온음계적 진행이다. 그런데 ‘솔-파#-파(제자리)-미’로 검은 건반을 이용하며 반 칸씩 촘촘히 내려간다면 반음계적이다. 유독 후자의 진행으로 베이스를 구성할 때 우리는 좋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페이소스를 자극하는 소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유재하는 이를 활용해 ‘나 오직 그대만을’의 코드를 AM7-C#m/G#-Gdim-F#7으로 구성했다. 암호처럼 와닿지 않는 알파벳 대신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라-솔#-솔(제자리)-파#’하고 반음계적으로 썼다. 베이스라인과 코드를 바꿨다는 설명이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은 덤덤하고 평평하게, ‘나 오직 그대만을’은 비애(悲哀)를 담아 하강하며. 유재하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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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하기 때문에’는 악기, 선율, 코드로 만든 고전과 낭만, 순수의 결정체다.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이 곡은 그 혁신만큼이나 미디어와 대중으로부터 처음부터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지만 37년이 흐른 지금, 대중의 입과 귀를 통해 여전히 호흡하며 연가(戀歌)의 대명사로 자리한다. 대세를 따르기보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이룩한 유재하의 성취. 더 많은 작품을 들을 수 없어 아쉽지만,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명곡이 담긴 명반을 11월이 흘러가기 전 한 번 더 감상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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