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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아이즈(I's)

by 이한수 | 

바이바이, 아이즈(I's) main imageTOY'S FACTORY

이가 아팠다. “또 깨물었구나.” 하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양쪽 어금니를 짓누르는 내 버릇. 8월 1일 오늘 하루는 유독 고됐다. 이 고생을 마치 알아채기라도 한 듯 최애가 영상통화를 걸어 왔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온기 가득한 말들도 오늘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안에서 맴돌고 맴돌길 반복했다. 소용돌이치고 있는 마음속에 남을 받아들일 만한 자리가 따로 있을 리 없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해 그만 애플리케이션을 닫았다.

고통에서 벗어날 피난처를 찾느라 이곳저곳 할퀸 손톱에 인스타그램 버튼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하며 피드를 내리다, 찡그린 눈썹. 아노(あの) 공식 계정이 게시한 아이즈(I's) 활동 종료 소식과 마주쳤다. 아이즈가 지금 여기서 해산을 이런 식으로 왜? 수많은 뉴런이 금세 물음표로 가득 차며 뇌혈관에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 언젠가부터 턱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이즈에게는 기대가 컸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의 걸음걸이마다 보여주고자 했던 음악 세계가 선명히 담겨 있었다. 라이브 아이돌(지하 아이돌) 그룹 유루메루모!(ゆるめるモ!)의 인기 멤버에서 토이즈팩토리 소속 아티스트가 된 아노의 솔로 데뷔 초 ‘デリート(Delete)’와 ‘Peek a boo’에 깔려 있던 그림자가 인디 씬에서 활동하던 멤버들 - 키친 마에다(キッチン前田), 우네바사미 료타(畝狭怜汰), 나카야마 타쿠야(中山卓哉) - 을 만나 보다 거친 밴드 사운드에 담기기 시작했다.

방송인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아노는 자기 인지도를 활용하는 대신 프론트맨의 페르소나를 뒤집어썼다. 신세이 카맛테짱(神聖かまってちゃん)과 같이 작업하거나 크리프 하이프(クリープハイプ)의 록 넘버 ‘二十九、三十(이십구, 삼십)’ 커버 무대를 꾸리기도 하며 아티스트로서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얼터너티브 록과 하드코어 펑크, 노이즈 록, 이모(Emo) 등 긴난 보이즈(銀杏BOYZ)라는 수원지에서 흘러 내려온 음악 스타일은 도쿄 초기 충동(東京初期衝動), haze, pinfu 같이 현재 활약 중인 이들과 닮아 있었다. 분명 시모키타자와에 신세 지고 있었다.

바빠서 그만두는 게 아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아노의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끝으로 아이즈는 3년여 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허무한 마음이 노래를 틀었다. 오랜만에 듣는 ‘はっぴーえんどろーる(해피 엔드 롤)’의 가사창 안에는 함께 해피 엔딩을 보자는 말들로 가득했다.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엔딩 크레딧이 너무 빨리 올라가 버렸다.

짧지만 굵었던, 아니 짧았던, 아니 그냥… 그냥 이런 밴드가 있었다는 사실을 꺼내는 것도 이젠 욕심 같다. 히트 싱글 하나 없고 정규 앨범 한 장 내지 않은 채 사라진 아티스트에게는 훗날 운 좋게 주목받을 미래 또한 주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기억해 이들의 음악이 존재했던 사실이 내 주변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너의 웃음을 앗아간 녀석들한테 저주를 퍼부어주겠다던 ‘あなろぐめもりー(아날로그 메모리)’도 어른이 돼서 잃어버린 충동은 하나도 없다고 울부짖던 ‘永遠衝動(영원충동)’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바이바이, 아이즈. 종종 꿈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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