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김승주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다. 몇 년 전부터 발표해 온 EP <소년만화上>, <고시엔>, <소년만화下>의 제목과 앨범 아트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영감받은 음악을 주로 구사해 왔다. 당시 <슬램덩크>, <헌터X헌터>, <가비지타임> 등의 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기도. 열혈, 정의의 다이나믹을 타는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한 전작과는 달리 첫 정규작에선 파도에 오른 타이타닉의 키를 잡았다. 순항하기도, 침몰하기도 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말이다.
자신의 출생을 미워해 본 사람이라면 ‘불행의역사’의 가사에 빠져들지 않기도 어려울 테다. “혈관을 가득 채운 장면과 서사는 너무 무적 같은 놈이라서 (…) 결국엔 닮아가게 될 거야” 라고 첫입을 떼는 순간부터 휘몰아치는 체념과 좌절은 귀를 통과해 감정의 백신으로 퍼진다. 거친 기타 리프 위에 풀어헤친 멜로디가 끝나면 한결 차분해지고 속도도 변화무쌍한 연주가 길게 지탱하는데, 청자 자신의 불행의 역사를 되돌아볼 시간을 주듯 고조를 거듭한다.
거슬러 올라가는 청각적 효과의 도입부가 매력인 ‘신시가지로’도 같은 주제를 다룬다. 옭아매던 것을 탈출하고 새 터를 잡은 이들을 향한 부러운 시선. 이 곡에서 “물려받은 친척의 옷” 은 다음 트랙 ‘오진’의 “반짝이 옷” 으로 진화하며, 입기 전엔 갈망했던 그 찬란을 막상 몸 위에 대어 보니 얼마나 덧없던 것인지 깨닫게 된 자아를 다룬다. 돈도 벌어 봐야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어느 부자들의 증언처럼 그제야 “난 나를 죽게 두지 않아”, “미완성의 우릴 인정해야 해” 라며 울대에 공기를 주입한다. 앨범 초반부의 바이러스가 잔뜩 해소되고 나니 건강한 생각이 자리잡은 ‘오진’과 ‘일기장’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과정을 청자가 다 지켜보게 되며 드라마가 생겼으니까. 백신도 본디 적응할 만한 바이러스가 원료다.
제아무리 진지한 만화도 중간마다 개그로 환기를 시킨다. 그처럼 <미완성바이러스> 또한 어두운 드라이브 속에도 웃음 포인트가 심어 있다. 온마음을 다하는 것을 넘어선 인정욕구, 그로 인한 고뇌를 담은 ‘인간실격’에서 “역시 넌 아티스트야, 넌. 단연 예술가 / 웃기시고 있네, 이건 우울증인데” 라고 하거나, 불어나는 미움과 공존하는 애틋함을 표현한 ‘임시동맹’에서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유명 대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를 부른다거나. ‘유년의백신’ 속 “아파트를 어떻게 사” 란 맥락은 블랙 코미디 같다. 제아무리 마음의 풍요를 채워도 한계는 있는 법이라서.
솔직한 가사가 이 작품의 첫 번째 강점이지만, 사운드도 그에 못지 않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에너지가 꺾이지 않고 유연한 변주로 듣기 좋은 요소를 계속 퍼 담는다. 휘파람에서 본인이 혼신을 다한 코러스, 여러 명이 합창단을 꾸린 코러스까지. 재치가 발현된 흥미 유발 구간의 연속이다.
‘임시동맹’의 “저절로 죽어질 때까지 죽지 말자” 는 명대사로 닫을 수 있던 엔딩에서 한 발 더 간 점 역시 <미완성바이러스>의 힘을 덧댄다. ‘난로’는 아픔과 회복, 그 이후를 노래한다. “아끼는 컵을 언제 깨지 계획할 일” 없이도 컵은 깨진다. “12월은 올해에도 다시 돌아올” 것임을 인정하는 일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좌절이 되돌아오는 것에 이유 따윈 없고, 그 어이없는 파괴 속에서 살아남을 연료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따뜻하게 사랑합시다” 를 외는 일밖에 없다. 슬픈 일도, 그렇다고 아주 밝은 일도 아닐뿐더러 그저 당연한 일이다.
추운 시절을 겪어본 사람은 미온 속에서도 따뜻함만을 떠올리지 못한다. 고난을 대비(對備)하는 사람의 밤낮 대비(對比)는 늘 극적이다. 극단을 오가는 방황 속에서 인물은 성장한다. 문화 콘텐츠라 일컫는 만화, 영화, 소설, 희곡이 이야기하는 바는 모두 다르더라도 늘 같은 구심점을 갖춘다. 김승주도 신시가지를 꿈꿨지만 결국엔 ‘구시가지로’ 돌아가며 절망의 문을 닫는다. 그 문은 언제고 다시 열릴 테지만, 그 개방을 부정하지 않는 데서 개화는 시작된다.
이런 작품을 보면 고뇌의 시간은 결코 무용하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본작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소설의 한 페이지를 인용하며 나의 문을 닫는다.
“꿈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잠들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사람들은 지난 시간을 공백이라고 부르겠지만, 그 빈칸까지가 그의 노래야.”
정미경, <가수는 입을 다무네> 각각 16, 17p.
한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한 권의 책을 읽은 기분이었다. 40분이 채 안되는 <미완성바이러스>를 들으며 같은 감상을 느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음반을 들으며 무수한 어린 날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