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대중음악의 거장 퀸시 존스가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언론은 그를 마이클 잭슨의 제작자이자 ‘We Are the World’(1985)의 프로듀서로 회고하지만, 그의 업적은 비단 두 타이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Thriller>(1982)의 세계적인 성공과 ‘USA for Africa’ 총괄은 분명 그의 대단한 업적이나, 퀸시존스가 70여 년간 미국 음악 업계에서 재즈, 영화, 팝으로 씬을 확장해 가며 2,900여 곡의 다작을 통해 이름을 남긴 것은 인종과 장르 간 고정관념을 타파한 혁신이며 이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레이 찰스와의 만남이다. 시카고 빈민가에서 태어나 갱스터가 될 뻔했던 퀸시 존스는 십 대 때 레이 찰스 밴드에서 트럼페터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그와 친구가 되어 음악적인 교류를 주고받는다. 평생에 걸친 둘의 우정은 레이 찰스가 퀸시 존스의 케네디 센터 공로상 무대에서 연주한 ‘My Buddy’(2001)에 녹아 있다. “모든 음악에는 영혼이 있으니, 어떤 스타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진심이라면.”이라는 그의 말을 자신의 철학으로 삼고 평생에 걸쳐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을 한다. 훗날 레이 찰스와 함께 작업한 <Ray Charles and Betty Carter>(1961) 앨범을 들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퀸시 존스에게 작업 제안을 한다. 백인이 흑인 음악가와 음반 작업을 하는 것이 당시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뛰어넘은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작업은 ‘Fly Me To the Moon’의 대중화를 이끈 <It Might as Well Be Swing>(1964) 앨범을 탄생시키며 퀸시 존스가 재즈 신에서 인종 간 장벽을 뛰어넘은 업적이 된다.
다음은 영화음악이었다. 흑인 뮤지션이 영화 음악을 만들 수 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의 백인 중심의 업계에서 퀸시 존스는 <전당포>(The Pawnbroker, 1964)를 통해 흑인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영화 음악을 맡는다.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경력을 쌓아가길 수년, 영화판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퀸시 존스가 영화 <마법사>(The Wiz, 1978)의 음악감독을 하며 출연자였던 그의 성실함을 알아보고 음반 작업 제의를 받아들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를 시작으로 두 사람이 함께한 <Off the Wall>(1979), <Thriller>(1982), <Bad>(1987)의 역사는 미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꿨으며 특히 <Thriller> 앨범의 ‘Billie Jean’, ‘Beat It’, ‘Thriller’는 오늘날까지도 팝 음악의 정수로 회자된다. 이로 인해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로, 퀸시 존스는 ‘팝의 거장’으로 남았으니, 두 흑인 음악가가 백인 중심의 팝 씬에서 이뤄낸 성취이자 역사적 순간이다.
인종적 혁신뿐만 아니라 장르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낸 퀸시 존스의 움직임은 자신의 앨범을 통해 지속적으로 있었다. 첫 앨범인 <Quincy Jones Plays for Lover>(1961)에 이어 처음으로 빌보드 200 차트에서 최고 순위 54위를 기록하며 상업적으로 반응을 얻은 두 번째 앨범 <Big Band Bossa Nova>(1962)의 ‘Soul Bossa Nova’ 트랙을 통해 퀸시 존스는 팝과 재즈를 결합한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며 향후 행보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 곡은 훗날 <Q: Soul Bossa Nostra>(2010) 앨범에 아카펠라와 힙합을 가미한 리메이크 트랙 ‘Soul Bossa Nostra’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도입부의 빅밴드 사운드와 재기발랄하면서 동시에 캐치한 리프 덕분에 다수의 광고와 각종 매스컴에 쓰이며 대중 친화적인 보사노바 곡으로 남는다.
전작의 크로스오버적인 시도를 자양분 삼아 탄생한 <The Dude>(1981)와 <Back on the Block>(1989) 앨범은 퀸시 존스 행보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재즈, 소울, 펑크, R&B, 디스코와 팝의 요소를 결합해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하며 그만의 독특한 음악적인 색깔을 보여준 <The Dude>는 동명의 타이틀곡을 비롯해, ‘Ai No Corrida’와 ‘Just Once’로 1980년대 국내 라디오에 소개되며 인기를 끌었다. 이윽고 1990년대 힙합 열풍을 예견이라도 한 듯 선구적으로 풀어낸 <Back on the Block>(1989)앨범은 재즈부터 힙합까지의 역사를 2분 54초간 압축해 표현한 ‘Jazz Corner Of The World’와 미국 퓨전 재즈 그룹 웨더 리포트의 곡을 리메이크한 ‘Birdland’를 한 호흡으로 이으며 두 장르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힙합 역시 흑인 음악이라는 점에서 퀸시 존스가 장르, 인종 간 혁신을 미국 팝 음악씬에서 얼마나 뿌리 깊게 이뤄냈는지 알 수 있다.
퀸시존스의 음악적 키워드는 화합이다. 인종과 장르를 넘어 음악이 끼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의 끝을 보여준 ‘We Are the World’(1985)까지, 퀸시 존스는 대중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며 음악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다양한 문화와 장르를 융합하며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나는 항상 도전 정신과 범죄 수준의 낙관주의로 살아왔다’는 그의 말처럼,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만든 Q의 세계는 우리에게 영원한 감동과 영감을 전하며, 앞으로도 인종과 장르를 초월하는 울림을 전할 것이다.